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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01년 야곱 2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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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529회 작성일 03-01-1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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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야곱 2 강
창세기 29:1-31:55
요 절 31:3

야곱을 훈련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창 31:3)"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모태에서부터 택하셨습니다. 리브가는 그가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미움을 사게 되자 밧단아람으로 피난을 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가족들로부터 떼어내시고 20년 동안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그의 필요를 채우면서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목자가 되사 그를 기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하시는 사랑을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투쟁을 해야 합니다. 때로 훈련을 받는 것이 슬프고 낙심되어 되는 대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투쟁할 때 하나님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좋은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나를 기르시는 목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Ⅰ. 야곱을 훈련하신 하나님(29:1-30:43)

첫째, 처가살이.  야곱이 장장 800Km나 되는 여행을 통해서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었습니다.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들에게 먹일 차례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들에게 물을 먼저 먹이기 위해서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에게 물을 먹이고 나서는 다시 우물 아구에 큰 돌을 덮었습니다. 야곱은 거기 있는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안다고 하면서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해가 아직 높은데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7)"고 권면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는 주인의식이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콩놔라 팥놔라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워낙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기 때문에 누가 보나 안보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라헬이 오고 있으니 단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오자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라헬이 끌고 온 양떼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그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알렸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우물에서 보자 마자 그의 미모에 반하였습니다.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에 아브라함의 종이 이곳에 왔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인도하사 이 근처 우물 있는 곳에 보내셨고 리브가를 때를 맞춰 보내주셨는데 이번에도 때맞춰 라헬을 보내주고 계신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에서 만나 주셨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어쨌든 여인들에게 우물에서 시작된 야곱과 라헬의 로맨스는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한 달동안 라반의 집에서 공으로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라반이 연봉 계약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때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라반도 딸들을 야곱과 같이 성실하고 능력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고 싶었는데 너무나 잘 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봉사하였는데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기한이 차자 라반은 결혼식을 올리고 잔치를 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야곱이 첫날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25)" 참 흥미있지 않습니까? 속임의 명수 야곱은 그가 이삭을 속인 죄로 그것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그곳에서 외삼촌에게 속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심은대로 거두게 마련입니다. 이 법칙은 하나님께서 자연에 심어 두신 생명의 법칙입니다. 사람은 심는 것을 거두게 됩니다. 이 법칙은 매우 필요한 것으로 만약 이 법칙이 없다면 인생은 실로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지 않으면 모든 농사는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이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은 자연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세계에도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따라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고 영을 좇아 심으면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격이 달라집니다. 그는 전에 속였더니 이제 그는 속임을 당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이런 행동을 볼 때 속이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에서를 속임으로 그가 받은 상처가 어떠했을까 조금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네 아내를 얻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기초를 놓고자 하셨습니다.  라반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리고 칠일을 채우면 라헬도 그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일주일 만에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무자하였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자 애를 썼습니다. 오죽하면 아들의 이름을 '아들을 보라'는 뜻의 르우벤이라고 지었겠습니까?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제는 시므온이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나이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를 낳고는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유다를 낳고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내면의 더욱 성숙해져 갔습니다. 비록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인해서 그 심령에는 찬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반면에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듬뿍 받았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아가 자식들의 재롱 떠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형을 투기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에게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30:1)."  그러자 야곱은 라헬에게 노를 발하였습니다.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라헬은 남편 야곱과 칠년 동안 연애를 하였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은 시기심과 질투로 죽 끓듯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과 레아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뼈가 쇠하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라헬은 레아와 아들 낳기 경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여종 빌하를 첩으로 준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인데 자식을 얻기 위해서 아픔을 감내하였습니다. 빌하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자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고 하고는 이름을 단이라고 하였습니다. 빌하가 다시 둘째 아들을 낳자 라헬은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하고는 그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4:2 밖에 안되는데도 자신이 이겼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라헬이 시녀 빌하를 주어 자식을 둘씩이나 낳자 레아도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는데 갓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복되도다는 뜻입니다. '갓'이란 '부대'란 뜻도 있습니다. 레아는 실로 한 부대를 이룰 만큼의 자식을 원했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자 아셀이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라는 뜻입니다. 보리를 거두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이것은 만드라고라의 작고 노란 열매를 맺히는 것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먹으면 임신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는데 라헬은 이것을 청구하였습니다. 자식을 낳기 위함이었습니다. 대신에 그날 밤에 야곱이 레아와 동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또 잉태케하사 아들을 낳았는데 잇사갈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임대로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시녀를 임대한 값으로 얻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레아가 여섯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입니다. 그리고 레아는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라헬에게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낳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더함이란 뜻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대로 베냐민을 더 낳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으면서도 이름을 지어 질 수 없었습니다. 그 만큼 야곱의 처가 살이가 힘들었습니다. 그는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보리 서말만 되어도 처가살이를 하지 말라는 말이있습니다. 그 만큼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20년 동안 처가살이를 시키심으로 그의 자존심을 깎고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벅찬데 그는 네 여자를 사랑하고 섬겨야 했습니다. 일부다처제는 성경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듯이 우리가 두 여인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더 사랑이 가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야곱의 가정은 라헬과 레아의 투기와 경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운데서 야곱의 내면을 넓히셨습니다.

둘째, 양치는 훈련. 야곱은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라반이 야곱을 붙잡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또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야곱은 자신이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아신다고 하면서 그가 오기 전에는 소유가 적었는데 이제는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공력을 따라서 외삼촌 라반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어느 때에나 자기 집을 세우리이까 하고 하면서 한가지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외삼촌의 양 중에서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염소 중에 점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낼 것인데 그 같은 것이 나면 자기 것이 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날에 라반은 아롱진자와 검은 양과 염소들을 가리어 내어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삼일 길을 뜨게 하였습니다. 이제 흰 양이나 염소들 속에서 아롱 진것이나 검은 것들이 나와야 야곱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라반은 속으로 야곱은 바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이는 불합리해 보입니다. 유전법칙을 생각해 보아도 불리함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 꿈에 보여주신 것도 있고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수십년간 양을 쳐오면서 교배시의 관습과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멘델의 법칙, 즉 우성의 법칙과 열성의 법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같은 흰 색깔을 지닌 양이나 염소지만 그들 중에 얼룩이와 점박이의 후손이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30:37-43절을 보십시오.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물 먹는 구유에 놓아 두면 양이 물을 먹으로 오다가 그것을 보고 발정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 지식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실한 양이 오면 그 가지를 두어 새끼를 베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종자 개량을 하고 자기 식으로 축산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오늘날 있었더라면 유전자 변형의 대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수고했을 때 재산이 라반보다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손대는 것마다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어떻게 훈련하셨는가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훈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훈련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평신도 목자님들의 경우에는 직장 상관들을 통해서 훈련하실 때가 많습니다.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인생의 고난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못된 사기꾼을 만나서 재산을 잃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질병에 걸려서 겸손케 하십니다. 저 같은 경우는 건강 하나 믿고 살았는데 신장병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하심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열매 문제를 통해서 훈련하기도 하십니다. 열심히 수고하는데 열매가 없을 때 우리로 하여금 순수하게 예수님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힘든 양들을 통해서 목자의 내면성을 키우십니다. 베이비시팅 훈련, 말씀훈련과 기도훈련, 공부훈련, 절제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Ⅱ. 야곱을 보호하신 하나님(31:1-55)

 야곱이 거부가 되자 라반의 아들들의 입은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물질이 많아지자 야곱과 라반 사이에 이런 문제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들 속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갈등을 통하여 야곱으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로 하여금 이동하도록, 혹은 움직이도록 여건을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시면 우리의 평상적인 리듬을 깨고 안락한 삶 속에 안주해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십니다. 세상에 파묻혀 살고 있을 때 어렵고 힘든 환경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하십니다.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야곱도 이제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고 밧단 아람의 생활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제 야곱에게 처가살이 훈련이라든가 양치는 훈련, 라반의 훈련은 끝났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3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는 편안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그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약속의 말씀을 주시기 전에는 우리로 하여금 모험에 뛰어들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으면 우리는 믿음으로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의 감정에 의존해서 행동하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과 더불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레아가 자기를 따라갈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양 떼가 있는 들로 이들을 불렀습니다. 즉 라반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약 100-130Km 떨어진 곳으로 그의 아내들을 불러내 조용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명령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안색을 살핀즉 이전과 같지 않다고 하면서 라반이 자기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꾼 것을 성토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에 말씀하시기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는데 그것들을 자기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타나셔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다고 했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자식들과 아내들을 태우고 그 얻은 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비 이삭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라헬이 자기 아버지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간 사이에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좇아갔습니다. 그들이 도망한 지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렸습니다. 라반은 그 형제들을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밤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24)." 라반은 지금 대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는 야곱이 강제로 자기 딸들을 데려 간다고 생각하고 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야곱을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라반은 이로 인해 속으로 두려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야곱이 몰래 도망친 것은 라반이 아내와 자식들과 재산을 빼앗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라반이 또 어떤 이유를 들어서 붙잡아 놓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야곱은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자기에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하여 두려워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도망한 것이요 만약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라헬은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비에게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라헬은 신앙적으로 순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도적질 당하는 신도 있습니다. 여인이 엉덩이로 깔아 뭉개는 신도 있습니다. 우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합니다. 그 따위 신을 믿는 자가 있다니 슬픈 일이 아닙니까?

 야곱은 자신의 결백이 증명되자 이제까지 쌓여있던 한을 풀었습니다. 라반은 이 장막 저 장막을 모조리 뒤지면서 그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못찾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뒤지는 것을 보고만 있던 야곱은 노하여 라반을 책망했습니다.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 38-42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38-42)." 이를 볼 때 야곱은 매우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몫을 충분히 해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이런 사람들을 원합니다.

 야곱과 라반은 이제 돌을 가져 기둥을 세우고 돌무더기를 만들었습니다. 라반의 말은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바벨론어로 여갈사하두라 하였고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이라 칭하였고 또 미스바라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말이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함이었습니다. 그는 야곱이 자기 딸들을 박대하지 못하도록 하고 또 다른 아내들을 취하지 말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돌무더기를 넘어가서 해하지 않디고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 나서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야곱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도우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꿈에 나타나셔서 방향을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고 사랑하시면서 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학생 목자들을 제자로 훈련하되 목자의 사랑이 뒷받침 되는 가운데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 훈련만하고자 들면 관계성이 맺혀지지 않아서 훈련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훈련하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기 까지 먼저 사랑의 관계가 생겨야 합니다.  또한 훈련은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본을 보이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육간에 훈련을 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을 세우고자 함입니다. 각 요회마다 믿음의 조상들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각 학년마다 믿음의 조상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후배들이 배우고 본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들을 키워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믿음의 조상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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