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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00년 가을 창세기 공부 제 1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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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4,062회 작성일 03-01-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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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창세기 공부 제 1 강
창세기 12:1-13:20
요 절 12:2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우리는 이번 주부터 오주간에 걸쳐서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었던 아브람의 신앙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부르시고 믿음을 성장시키시며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셨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의 근원으로 소망을 두고 키우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을 따라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12:1-12:9)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곳은 갈대아 우르에서요 하란에서 반복하셨습니다. 그는 이미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을 향하여 이동하던 중 하란에서 머물렀습니다. 그가 떠난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 수메르 지방의 상업,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늘 신 아누, 대기와 땅신인 엔릴, 태양신 우투, 달신 난나, 물신 에아등 여러 신들을 만신전에 모아놓고 섬겼습니다. 특히 우르 왕조는 달 신을 섬겼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을 정도로 건축술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탑을 세워 그 꼭대기에 난나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고 고고학이 발굴한 아브람의 옛 집터들에서도 방 끝에 우상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집 아래 충에 사는 분들도 한 집은 원불교 한 집은 남묘호랑개교를 믿는데 아침마다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고 남묘호랑개교 주문을 외웁니다. 2층은 기독교 3층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습니다. 우리 나라는 본래 샤마니즘을 숭배하고 유교가 전래되면서 조상 숭배가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유교의 전통이 강한 집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많은 핍박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고자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그에게도 인정을 극복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들은 영광스러운 아픔입니다.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장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자체가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정든 한국을 떠나 멀리 이방 땅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서 그들은 구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에 기초한 야망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에 기초해서 다시 꿈을 키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만의 생활 양식, 죄악된 습관, 고정 관념, 율법적인 생활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6:33절 말씀을 붙잡고 사명인의 삶을 결단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소망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75세나 된 늙은 아브람은 자식도 못 낳고 앞으로 나을 소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이란 나중에 이스라엘, 아랍, 기독교의 조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두고 섬기는 백성,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는 백성을 이루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이를 좀더 구체화시키셨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를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기는 백성을 만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는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3절을 볼 때 하나님은 이 한 민족을 통해서 세계를 복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참으로 원대합니다.

둘째, 아브람에게 복을 주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대개 복이라고 하면 오복을 생각합니다. 그것도 복이지만 일시적입니다. 정주영 회장도 수조원에 달하던 물질을 말년에 다 까먹고 평범한 부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질은 어느 날엔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날아감 같이 날아가 버립니다. 명예라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오래 기억되지 않습니다. 건강도 일시적입니다. 늙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참된 복은 영생을 얻는 것이요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명인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복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고 부요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복있는 사람은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움을 받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인생을 복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되게 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복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폭이 세계적입니다.

셋째, 아브람을 위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을 그 이름이 창대케 됩니다. 이는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사람이란 섬기는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입니다. 남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남을 밟고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복을 주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복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편이 되어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그의 부족한 점을 감당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사람에게는 아브람과 동일한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나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복을 나누어 주는 생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인제센타의 김요한목자님의 간증에 의하면 그가 이등병 시절에 그의 상관이 박세직씨였다고 합니다. 그가 사단장이었을 때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른 부대로 가면서 불교신자였던 사단장이 부임을 하던 첫 주일 예배를 보러갔는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더랍니다. 주일 예배에 온 사람은 목사님과 군종과 자신뿐이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 많던 사람들은 말씀을 좇아서 신앙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박세직씨를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나오는 롯과 같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친구 따라서 가는 사람, 선물 따라서 가는 사람, 상관을 따라서 가는 사람, 선거철이 되면 표를 따라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 껍데기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말씀을 기초로 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신앙 생활을 보면 그가 어려울 때마다 말씀의 인도함을 받고 그에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마다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만아니라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한 주간은 주일 말씀을 중심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회를 유지시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그 땅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종교도 있었고 매우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대하고 왔던 땅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부딪쳐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충격, 언어, 가치관의 대립,  물질 자립, 그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등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홍대 땅을 주셨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역사 창조를 위한 공간이요 사명의 땅입니다. 우리에게 센타가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전동 436-50번지를 우리 땅으로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리더들이 탄생하고 세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복음 역사를 섬길 때 공간의 확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행7:5). 하나님은 아브람이 살 동안에는 발붙일 만큼의 땅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명의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신앙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후손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당대만 생각하면서 일하면 안되고 후손들까지 생각할 때 원대한 비전을 갖고 생명력있는 역사의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Ⅱ. 믿음을 연단하신 하나님(12:10-13:20)

 아브람은 목초지를 좇아 남방으로 남방으로 애굽 가까이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땅에 기근이 심하게 들자 약속의 땅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명의 땅에 거하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비옥하고 물도 풍부하고 직장이 많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아니하고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것입니다.
 물질 문제는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문제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가정들이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에 항상 매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물질 우상은 강력한 유혹이 됩니다. 예수님도 가장 먼저 먹는 문제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아담은 먹는 문제로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검소해야 하고 물질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담이 애굽에 내려가게 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에 기초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사명의 땅을 버리고 자기 판단과 경험에 기초해서 나름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는 그가 처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의 동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가 불신에 기초해서 행동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가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왔을 때 그곳에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안전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에 내려가자 목숨의 위협을 받고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사래는 65세였지만 피부가 하얗기 때문에 거무티티한 애굽 여인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아내 하와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금방 애굽의 신하들에게 드러났고 바로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였습니다.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은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지는 못할망정 자기 생명을 위해서 아내를 팔아먹는 치사한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대단한 것은 그의 아내 사래였습니다. 사래는 남편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당신이 내 남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지 않고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아브람이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묵묵히 내조를 함으로 아브람의 생명을 지켜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습니다.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습니다. 아브람은 멀리 이국 땅에서 아내 없이 빈 방을 지키고 누워 있자니 그 많은 재물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이럴려고 고향을 떠나 온 것이 아닌데  하며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 보다 인간적인 꾀로 행동했음을 회개했습니다. 불신을 회개했습니다.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현실로 인해서 그는 몹시 당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세계 최강대국인 바로 왕의 권세 앞에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약속대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아마 바로의 집에 질병이 생기고 그가 악몽을 꾸었는가 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브람을 불러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고 책망을 하며 아내 사래를 돌려 주었습니다. 바로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사래를 건들지 못하게 하고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는 남방에서 올라와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을 쳤던 곳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며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 이후로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 어려움이 있다고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기근 중에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거했을 때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이삭을 결혼시킬 때도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게 했습니다. 저는 우리 선교사님들이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견디면서 자립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또 그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브람과 롯이 부자가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땅이 너무 좁기 때문에 아브람의 목동들과 롯의 목동들이 서로 싸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목초를 양떼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들판에 나갔다 하면 싸웠습니다. 이것을 이방인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이 문제를 큰 아버지의 권위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주관자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양보하고자 하였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런데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고 물이 넉넉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쪽을 택하였습니다.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롯의 선택은 그의 가치관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애굽에 다녀온 후로는 세상을 동경하면서 죄악에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을 떠난 이후로 점점 장막을 소돔으로 옮겨서 그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를 사모함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상대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자식 같던 롯을 떠나 보낸 아브람의 심정은 매우 외롭고 슬펐슬 것입니다. 좋은 땅을 양보한 현실 문제로 잠시 동안 마음이 좁아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오사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이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좁아진 마음을 넓혀 주시고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고 그의 어린 믿음의 싹을 키워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목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섬세하게 키워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어 복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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