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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6강/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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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729회 작성일 03-02-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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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학기 요한복음 제 6 강                                                                           
말씀 / 요한복음 4:1-30
요절 / 요한복음 4:1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맥주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맥주를 한 자리에서 70병을 마셔도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도 영혼의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도우시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중에 이 여인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예수님 안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기갈 든 영혼들에게 생수를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목마름 문제를 해결 받고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고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반목하고 질시하는 것을 피해서 다시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갈릴리로 가려면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북한을 갈 때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인은 잡놈이고 자기들은 정통이라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장벽으로 인해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만민의 구주로 오셨기 때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이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털썩 주저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셔서 뜨거운 길을 걸으시면서 피곤하고 목마르고 배고프셨습니다. 제자들은 점심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동네에 먹을 것을 사러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우물 곁에 앉아 계실 때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대개 여인들은 아침 일찍 물을 길러 우물에 옵니다. 거기서 최신 정보를 얻고 또 나누어 주고 수다를 한참 떨어야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그래야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물가에서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시간이 정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심을 먹거나 시원한 그늘 아래서 낮잠을 즐길 것입니다. 중동의 뜨거운 오후의 태양 빛 아래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그렇게 밝고 뜨거운 빛을 뚫고 나아오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마지 못해서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없이 슬퍼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이 여인을 건드리면 당장에라도 곱지 않은 소리가 튀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 여인의 내면은 어두워서 태양이 밝게 비취는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이 여인이 씨에스터 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을 보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은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고독하고 슬펐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물 길러 나온 여인 앞에 한 유대인 남자가 우물을 둘러싼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여인은 뛰어난 감각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여행에 지친 얼굴, 갈증으로 허옇게 된 모습,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것이 평화롭고 거룩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남자들을 이미 경험해 본 터라 빨리 물이나 떠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녀가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려 항아리에 붓고자 할 때에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물을 좀 달라.” 여인은 동일한 말씀을 십자가 상에서 두번째 들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19:28).””

 여인은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실 때 평소 유대인들에게 당했던 멸시와 모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를 내 뱉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 이 여인은 이 정도면 충분히 원수를 갚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만큼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 사이에 놓여 있는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여인의 이런 말은 그의 내면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귀찮다는 것입니다. 누구와도 관계성을 맺기가 싫었습니다. 여인들은 대개 모성애가 있어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 베풀기를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거칠게 되었고 또 병들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의 필요에 의해서 물 좀 달라고 하셨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여인을 돕기 위해서 말문을 트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장벽, 거룩하신 분과 죄인의 장벽, 남녀의 장벽, 문화의 장벽 등 여러 모양의 장벽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런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동네 사람들에게 멸시 받던 이 사마리아 여인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주로서 이 여인을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섬기기 위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도권을 가지고 여인을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또 이 사람을 따라 갔다가 광신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거기가 이상한 곳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386세대니, X세대니, N세대니 하면서 세대 차의 갭이 클 뿐만 아니라 세대가 매우 세분화되었습니다. 이런 장벽과 세대 차를 극복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겸손과 서로 간의 공통 관심사를 찾아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은 월드컵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대부분 축구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상식을 기초로 대화의 문을 열고 점진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들은 선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요즈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가 서로 나누면서 대화를 풀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양의 문제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좀 달라고 부탁하셨을 때 여인은 놀라며 반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열린 마음으로 그녀의 반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대개 내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해 주어도 순수하게 받지 못하고 의심을 합니다. 이 여인이 틱틱거리는 것은 자신의 순수한 사랑이 많은 남자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나서 사람에 대해서 미워하고 의심하게 된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의 내면 문제를 아셨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지 않고 관심을 좀더 영적인 곳으로 돌리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예수님은 여인이 반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당당한 태도에 여인은 그가 누구신가 알고 싶은 소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도 뒤질세라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야곱을 매우 이상적인 남자로 생각했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야곱보다 더 큰 이가 그녀 앞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자 하십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지구는 90%가 물인데 먹을 수 있는 물은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70%가 물입니다. 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증류수나 죽은 물, 오염된 물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깨끗한 물을 마시면 현재 질병의 80%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물을 26가지로 분류했고 요즘은 육각수를 비롯한 탈기수, 전자수, 자기수, 파이워터, 레민다(생명파동수)등 기능수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물은 단순히 H₂O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가 있습니다. 또 물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과 감사함으로 마시면 맹물도 육각수가 됩니다. 생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이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욱 커집니다. 사람에게는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사실 남편의 사랑에 목말랐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섬겨줄 남편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었지만 여전히 목말랐습니다. 인정에 대한 목마름도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이런 목마름이 강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너니까 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한 새로운 것, 뉴스에 대한 목마름도 있고 먹는 것에 대해 목마른 사람도 있습니다. 비디오와 영화에 대한 목마름, 쾌락에 대한 목마름, 일에 대한 목마름, 지식과 권력에 대한 목마름, 예술에 대한 목마름 등등 인간은 다양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목마름은 사람을 그것에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허함입니다. 솔로몬 왕은 영혼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험삼아 다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1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목마른 원인을 예레미야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13)”우리는 사실 하나님을 떠나 야곱의 우물에서 만족을 얻고자 할 때마다 이런 갈증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무엇을 말합니까? 요7:37-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6)”고 하심으로 그 속에서 생수가 터지게 하셨습니다. 죄라는 것은 수도관을 막는 찌꺼기나 녹과 같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의 생수는 우리 속에서 콸콸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속이 시원하고 영혼이 살아나고 기쁨이 생깁니다. 생수가 흐를 때 병든 부분들이 치유되어 건강하게 됩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는 사람은 자신도 번성하게 될 뿐 아니라 주위를 번성하게 합니다. 시절을 좇아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우리 속에 있어서 끊임없이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고 생명으로 풍성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고 하시자 여인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며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염두에 두고 그 마음에 있는 우상들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에는 다섯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을 섬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어로 돈을 ‘오까네(돈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들이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증거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공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생각보다 이루기 어렵고 또 실망스럽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은 우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우상 숭배 문제에 직면하자 여인은 참된 예배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진정한 문제는 예배문제였습니다. 예배란 영어로 worship인데 이는 worth와 service의 합성어입니다. 즉 참된 것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때가 이르리라”고 하십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사 성령을 보내주실 때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가 선포되는 장소였기때문입니다. 즉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곳에서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심으로 이제는 장소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바로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영과 함께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영적 진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모든 외식을 벗어 버리고 죄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 있는 소원을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아와서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계시해 주십니다. 한 번의 참된 예배가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참된 예배를 통해서 내 안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예배는 지속적으로 영생의 샘물이 내 안에서 솟아나게 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가장 가치 있고 귀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려서 사랑할 때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고 죄를 짓고 고통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진실된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경배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6).”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이 되시며 여인이 그렇게 기다리던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여인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 이제까지 이 여인은 사람들을 피했었는데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더 이상 그녀는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녀의 심령에는 기쁨과 활력이 넘쳤습니다. 그녀의 전도를 받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영혼의 목마름 문제가 세상 것을 더 채우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참된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가 우리의 몸을 드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매일 매일 속에서 흘러 넘치는 생수를 맛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수를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목이 마르십니까?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값없이 공짜로 그 깊은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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