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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5강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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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504회 작성일 03-02-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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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학기 요한복음 제 5 강             
말씀 / 요한복음 3:1-36
요절 / 요한복음 3:16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중 하나인 니고데모씨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혼의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뇌하는 지성인 니고데모를 깊이 사랑하시고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풍성히 누리며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니고데모 그는 누구인가?(1,2)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1). 관원이란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의원을 말합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의 최고 통치 기구로서 입법, 사법, 행정권을 다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회의원이나 판사, 장관 등의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또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10). 이는 오늘날 박선생, 김선생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랍비 정규 학교를 마치고 실력을 인정 받아 오늘날 교수 이상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 부자였습니다(19:39). 대개 권력자들은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는 구제를 많이 하고 대민 봉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도덕적으로도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고상한 인격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타고난 천재성도 있었겠지만 특출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태어났더라면 성공 시대에도 나왔겠지요. 신문과 잡지에는 그와 인터뷰한 기사들이 자주 실리고 그가 쓴 컬럼과 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회장 직함은 여럿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자요 정상에 오른 자요 정복자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았고 그가 지나가면 많은 자매님들은 첫째가는 신랑감으로 생각하고 여러 모양의 추파를 보냈을 것입니다. 이런 그는 뭇 젊은이들의 우상이요 성공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행복해야 할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밤에 찾아온 것은 공무로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도 의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찾아 뵙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내면이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실패한 사람보다 무엇을 성취한 사람들이 겪는 절망감이 더 크다는 것을 압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 60평짜리 고급 아파트와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한 사장 부인이 백화점에서 천만원어치의 물건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세상살기가 재미없을 때마다 고급 물건을 훔치면 위안이 되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대학 총장과 장관 아들이 마약을 하여서 붙잡혔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은 소유와 지위와 명예 등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우리의 내면은 하나님 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도 성취 뒤에 오는 깊은 공허와 허무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가로서 민족의 현재와 앞날을 생각할 때도 희망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압제 아래 살고 있고 사회는 각가지 비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고뇌 가운데 갈릴리 나사렛 예수가 와서 수많은 표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사두 마차를 혼자 몰고 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인사 한 뒤에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으로 자신도 변화를 받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가장 종교적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많은 율법적인 투쟁과 구제와 대민 봉사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의 신학 지식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영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모순에 가득한 세상만 보일 뿐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니고데모씨 거듭나야 합니다(3-15).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니고데모는 표적과 같이 외적인데 관심이 많았는데 예수님은 내면적인 것으로 돌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율법을 지키고 백성들을 위한 선행도 많이 했는데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것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육체가 어머니의 태로부터 태어나듯이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체가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에는 태양빛을 볼 수 없고 아름다운 꽃도 볼 수 없고 맛있는 음식 맛도 볼 수 없습니다. 외부의 차고 더운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태의 환경에서 외부 환경에 맞추기 위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감각이 생기고 영적인 소원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읽고 찬양을 하게 되고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기뻐합니다.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고후5:17). 거듭나는 것은 일회적인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남에 대해서 강조하고 성장에 대해서 등한시하게 되면 자기 모순에 빠지기 쉽습니다. 즉 거듭났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없다면 신앙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장이 더딘 아이들은 부모님들에게 근심 걱정 거리가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 변화가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거리를 안겨다 줍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먹고 많이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롬6:13,14).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고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주 장사가 최고로 귀한 진주를 얻기 위해서 좀 괜찮은 진주를 파는 것 같이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도 가장 좋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심령은 항상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눅17:21).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4)”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말은 그의 영적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학식과 경륜이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 했습니다. 그와 예수님과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간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대답해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 예수님은 계속해서 영적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주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씻는 것입니다. 물로 씻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의 죄를 씻기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딛3: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십니다(히10:22).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성령으로 난 것이 영인데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 생활하기에 적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엡2:3).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행음과 거짓말과 우상 숭배와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점 치는 것과 여러 모양의 악을 행합니다. 그 결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영원히 받아야 하는 고통은 끔찍한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서 죄의 기억이 주는 고통을 영원히 받을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영원히 타는 불 못에서 고통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들에게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7).” 그리고 친절하게 다시 바람을 비유로 거듭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 바람은 어디에나 있듯이 성령님은 무소부재 하십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듯이 성령님은 영이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해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변화되고 싶은 소원은 많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받고 변화되어 새로 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절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거듭나지 못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 듣지를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대답하며 따지고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10)”는 책망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들었습니다. 자존심이 묵사발이 되면서도 끝까지 듣는 그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영적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지만 그 증거를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교만을 깨시고 끈질기게 복음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에 그들은 거친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여호와께서는 불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보았을 때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예언한 것이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인내를 가지고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시면서 영적 진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앞으로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을 영적으로 무지한 니고데모에게 해 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16-21)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서 대적하는 악한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인이시지만 그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이런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만을 사랑하시고 로마인이나 율법이 없는 자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기 원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면서 희생적으로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은 죄인을 위해서, 또 원수를 위해서 죽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되고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서 가장 귀한 독생자를 내어 주면서 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17,18). 그 정죄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옵니다.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입니다.
넷째,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22-3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거하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는데 거기는 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한보다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요한의 제자들이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와서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지만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0)”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소리요 들러리요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자기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잘 되는 것이 기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날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번성하고 흥왕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예수님이 흥하기 위해서 자신은 연약해지고 가난해지고 쇠하고 망하여도 기뻤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 목적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위대한 사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도 흥하고 나도 흥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헌신하지 못합니다. 헌신을 해도 기쁨이 없고 힘이 없습니다. 자기 생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데서 자라지 못합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다 그 손에 쥐고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영적인 성장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은 여러분은 가장 부요한 자요 가장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쇠하고 그는 흥하는 것을 기뻐하며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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