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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4강 첫표적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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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296회 작성일 03-02-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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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학기 요한복음 제 4 강                                                                               
말씀 / 요한복음 2:1-22
요절 / 요한복음 2:11

첫 표적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우리는 지난 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마지막 표적입니다. 오늘 공부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첫 표적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로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I.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1-11)

 첫째, 결혼은 하나님의 복입니다(1-2).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첫 주간이었습니다. 유대를 떠나신 지 사흘 째 되는 날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미 그곳에 있었습니다. 아마 그 결혼식은 마리아의 친척 중 한 사람의 결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젊은 제자들은 대식가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식 피로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결혼식은 인생에서 가장 축복된 사건이었습니다. 관습적으로 결혼식은 수요일에 시작해서 주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혼식 후에 일주간의 축하 파티가 있었습니다. 음악과 춤과 시 낭송을 하면서 결혼의 즐거움을 노래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사모관대와 면사포를 쓰고 왕과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집에 머물면서 가정을 개방하였습니다. 결혼식은 환난과 곤고가 많은 인생 길에서 항상 위로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때, 마리아의 때(3-4).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혼 축제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 김새게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서 기본적인 것이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고소 조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는 당황이 되고 잔치는 망치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부정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칭한 “여자여”라는 말은 존칭어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도 사용하셨습니다(요19:26).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매여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때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때와 시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내 때”란 요한복음의 한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사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죽으심과 관계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서곡과 같은 것입니다. 내 때란 말은 요한복음의 천상의 심포니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심포니의 2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으로 발전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때를 한가하게 지내면서 영원히 살 것 같이 살아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시간표를 갖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 각자를 위한 시간표도 갖고 계십니다. 타임센스야 말로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셋째, 마리아의 기도(3-5). 예수님께서 그의 때를 말씀하셨을 때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의 반응에 대해서 섭섭해 하거나 화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기도의 단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첫째 단계. 그녀는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갔습니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결혼 잔치를 주최하는 가족들에게 작은 문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지혜를 주셔서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져가도록 도우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나타난 문제들이 너무나 참기 어렵고 감당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거나 그 상황에 대해서 근심 걱정만 할 뿐입니다. 아니면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기 쉽습니다. 우리가 너무 교만할 때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가서 기도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공동체는 건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불평하기 보다 주님께 들고 나가 기도하는 영적인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의 둘째 단계.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리아는 주최측이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을 책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즉시 어떤 것을 하시도록 바가지를 긁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방식대로 그 문제를 다루실 것을 믿고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셋째 단계. 마리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당황한 상태로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하인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5). 마리아는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무엇이든지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넷째, 종들의 아름다운 순종(6-11). 종은 종입니다. 그들은 해야만 하는 일들은 모두 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결혼 잔치에서는 특히 바빴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계속되는 공동체의 잔치에서는 많은 주인들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항아리의 물은 손발을 씻는 결례의식을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에 돌 항아리 여섯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채우려면 세 드럼 통이나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다 채운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종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아구까지 채웠다는 말은 그들의 순종이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순종은 맹종이 아닙니다. 순종은 자발성이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120%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발 씻는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실 때는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귀싸대기를 맞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포도주를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손님들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를 마음껏 즐기게 되었습니다. 연회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포도주 맛이 좋다는 것만 알뿐이었습니다. 한편 종들은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시몬을 성 베드로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우리 각자를 변화시키십니다. 첫번째 표적을 통해서 제자들은 그가 이 세상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실 때 변화의 능력자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잘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사람은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고후5: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자신의 열정과 교만으로 살았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사단의 종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종들의 순종은 주님 자신의 순종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왕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왕되신 하나님의 겸손은 대속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인류에게 저주를 가져왔지만 예수님의 순종은 구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히5:8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죄인은 자연스럽게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를 축복하심으로서 다시 인류를 축복하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II.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12-25)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12-22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초기에 두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세 복음서는 끝에서 다루고 있습니다(마21:12,13; 막11:15-17;눅19:45,46).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연대기적으로 쓰기보다 그의 가르침을 더 강조해서 썼습니다.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성전을 청소하신 것은 진리의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그는 축복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12-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며칠을 지내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셨을 때 많은 상인들이 희생 제사를 위한 유월절 양을 팔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환전을 하느라 매우 바빴습니다. 그들은 성전 통행세를 유대 화폐로 받았는데 노동자 삼일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고 희생 제사에 쓰는 짐승도 16배나 바가지를 씌워서 팔아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

 왜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을까요?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식을 축복하시던 모습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16절에서 그가 왜 이렇게 화를 내셨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가 화를 내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은 속죄의 장소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성전은 또한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의 중심이요 공동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지만 성전을 향해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성전에 대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0)”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돈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실제적인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그들은 죄로 병들어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둘째,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17,22). 마가복음은 성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 56:7).” 하나님은 이방인이라도 성전에 와서 구원 받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특권을 받은 백성들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작은 이익만을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권세가 높은 사람들을 향해서 분노하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 상황에서 제자들은 인간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은 이 사건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신성 모독 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먼저 계산을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했을 때 나중에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셋째, 예수님은 성전이십니다(18-25).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권위를 표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보이는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19절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성전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집임을 배웠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사람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그의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함으로 변화의 축복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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