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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 19강(서로 사랑하라 요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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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605회 작성일 03-02-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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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요한복음 제 19 강

서로 사랑하라
말씀 / 요한복음 13:1-38                                                                              요절 /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ꡓ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사랑에 대한 성경의 정의는 사랑을 배우고자 하는 우리에게 좋은 방향 제시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잉태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우고 또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 해야 하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의 교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만큼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이는 참된 동역이나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사람으로 자라는 가운데 행복한 제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서로 발을 씻기라(1-20)

 유월절 전에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연약한데 자신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30대로서 한창 일하실 때였습니다. 가장 건강하고 팔팔할 때였습니다.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도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또 이런 때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티격태격거리며 서로 누가 크냐 싸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 넣는데 반해서 마귀는 배반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마귀는 생각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생각을 다스려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그 이상은 진전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고 그런 행동이 습관을 형성하고 습관이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가룟 유다는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켰습니다. 요 12:6절을 보면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곤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 생활이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감사가 없었고 항상 욕구 불만이었습니다. 좀더 풍요로운 삶을 원했고 세속적인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고 나중에는 예수님의 생각을 바꾸고자 배반을 시도했습니다.

 1b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해도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시고 자기 사람들로 삼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했다는 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요 최선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다 주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끝까지 보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여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섬기는 사랑이요 그들의 죄를 감당해주고 용서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보여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표현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도 사랑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녁 먹는 중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고 또 자신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에 세계가 달려 있고, 역사가 달려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의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책임감이 무거우면 대개 눌려 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주저 앉거나 잠을 자거나 자기 중심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섬겨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따지면서 서열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막 9:34). 지금 서열이 결정되면 끝까지 간다고 생각했는지 한치도 밀려 나지 않고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는 위치 때문에, 요한은 자신이 섬길 경우 수제자 자리를 영원히 넘볼 수 없을 것 같기에 눈을 내리 깔고 손톱을 씹고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평소에 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이때만큼은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모른 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월절 만찬을 드는 자리에서 한 사람도 발을 씻지 않고 120개의 발가락에서 냄새를 피우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발을 펴고 팔꿈치로 기대어서 비스듬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코 앞에 다른 사람의 발이 오기 쉽습니다. 제자들은 서로가 냄새를 피우면서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철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발도 제대로 씻지 않고 만찬 석 상에 왔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식사하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왠 발 냄새가 이렇게 나느냐고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또 3년 반 동안 훈련 받은 것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느냐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허물을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냄새 나는 발을 아무 말없이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완전하였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명의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다 씻고 닦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만찬 자리는 깨끗하고 상쾌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사실 발을 씻기는 일은 유대인의 종도 아닌 이방인 종이 하는 일로서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장 낮아지셔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아셨지만 희생적으로 이를 감당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자신들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물 냄새가 나는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막7:20-23). 우리 마음 속에는 똥통이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이기심과 교만과 자기 의와 음란과 자기 사랑 등 온갖 더럽고 추한 것들이 썩어서 냄새를 피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죄의 똥통을 지고 가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쏟아내는 죄의 쓰레기들을 지고 가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발을 씻지 아니하면 무좀이 걸리고 나중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발을 씻어야 합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누가 매일 씻어 줍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 날마다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씻김을 받을 때 그 공동체는 향기가 나고 사단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발도 씻김을 받으면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쓰임받게 됩니다.  더러운 내면도 씻임을 받을 때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씻길 차례가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베드로는 생각하기를 벼룩도 낯짝이 있지 스승님의 발을 씻겨 드리지는 못할 망정 제자들이 태연히 씻김을 받는 것이 못 마땅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수제자인 자신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과 의리에 기초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예의가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서로 섬김을 받고자 하는 제자 공동체에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베드로를 부드럽게 도우셨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7). 그래도 베드로는 자기 자리에 가 앉으면서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며 냄새나는 더러운 발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씻겨 주시면 자신도 다른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최고가 되어야 할 자신이 가장 낮아져서 섬기기가 싫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기존의 가치관을 깨뜨려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그는 체면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안디옥에서 체면 치레를 하려다가 사도 바울에게 된통 혼나게 되었습니다. 이유인즉 예루살렘에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라 물러감으로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 진리를 흐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를 면책하였다고 하였습니다(갈2:11-14). 또 그에게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섬기신 것은 그의 권세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집을 부리자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b). 상관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분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내 허물과 죄를 예수님께 씻김을 받지 않으면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 남남이라는 것입니다. 구주와 죄인의 관계가 아니라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씻김을 받지 않으면 예수님의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은혜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죄사함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신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께 나아가 죄인으로서 자기 발견을 하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 복된 삶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병입니다. 자기의의 병이요, 교만 병이며, 무지한 병입니다. 아이들도 사랑을 잘 받는 아이가 사랑을 잘 해줍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죄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여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하며 머리를 대야에 쳐박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말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10).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는 뜻은 이미 거듭난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짓는 죄를 씻어내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내면을 살피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자기 발견이 부족한 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남을 가르치기만 했지 자기를 가르치는 일에는 게을렀습니다. 이기적이고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고 무지한 제가 주님 앞에 날마다 나의 더러운 죄들을 내 놓고 씻음 받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예수님은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2-15).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섬겨야 합니다. 사랑은 먼저 섬기고, 먼저 변하고, 먼저 사과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리더쉽은 섬기는 도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것은 제자들이 서로 행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서로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은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고 감당해주는 것입니다. 동역자들 끼리 사소한 문제로 마음이 나누이면 동역하며 공동체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발을 씻는 것은 매일 해야 하듯이 오해하고 캥기는 문제들은 그날 그날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또 서로 먼저 발을 씻겨 주어야 하듯이 이런 문제들은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먼저 이야기해서 풀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치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그런데 동역자 간에 발 씻기는 것이 왜 어려울까요? 섬기는 입장에서 생각할 때 내가 너무 주제 넘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는 그분의 목자님이나 팀목자에게 맡겨버리기 쉽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몸은 함께 있는데 마음은 서로 다른 데 가 있기 쉽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정말로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습니다.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의외로 효과가 큽니다. 그렇게 하면 목자 생활이 행복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존심을 내려 놓고 서로 섬기고 허물을 감당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서로 사랑하라(21-38)

 21-30절은 유다의 배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할 자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발꿈치를 들었다는 말은 발꿈치를 들어 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심령에 민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서로를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하여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주여 누구오니이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어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그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요한은 유다가 조각을 받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귀의 상으로 바뀌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함께 살았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감히 누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들은 서로 경쟁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유다가 마음을 열지 않고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평소에 돈을 훔쳐 간 것을 볼 때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막혀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숨은 의도가 드러났을 때 회개해야 마땅하지만 그 조각을 받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회개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저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영광스럽게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인 순간인데 영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 자체만을 생각지 않으시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와중에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예수님의 새 계명입니다. 신법은 구법보다 앞섭니다. 이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새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가 순종해야만 하는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감정이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결단과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자 결단하면 감정은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4:7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우리들이 사랑스럽지 않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사랑할 것이야.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가 먼저 사랑을 표현한다면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지.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요일 4:8절을 보면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셨습니다. 벧전 4:8절은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다면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자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배반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제자 공동체가 분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또 제자들은 유다의 배반 문제로 인해 서로 문제를 떠넘기거나 비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제자됨의 특징은 자격증이나 연륜이나 성경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구나 인식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 사랑은 희생적이고 값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양은 사랑하기가 쉽지만 동역자를 사랑하기는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동역자 간의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자기 곁에 있는 동역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양을 사랑하겠습니까? 동역자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전도하고자 하면 불신자들이 욕을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시되 영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사람을 못쓰게 만들지만 영적인 사랑은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 그가 충성을 맹세하는 그 때에 그의 배반을 예언하셨습니다(36-38). 베드로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지만 자기의 연약함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인간적인 충성의 한계를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자기 발견을 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서로 발을 씻기고 먼저 사랑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먼저 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까이에 있는 동역자들을 먼저 사랑하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변화된 삶을 살고자 투쟁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은 제자의 표로서 복음 전도에 가장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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