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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02년 여름 수양회 주제 2 강(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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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702회 작성일 03-02-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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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말씀 / 요한복음 19:1-42
요절 /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묻히심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세상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성취 후 외치신 승리의 외침이셨습니다. 이 시간 저희가 말씀을 통해 ‘다 이루었다’ 외치신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유대인의 왕 예수님(1~22)
 밤새도록 예수님을 심문한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월절 특별 사면자로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에 강도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한 빌라도는 다른 타협안을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무리들의 동정을 사 예수님을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채찍질은 십자가 사형수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처형 이전에 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채찍은 긴 가죽 끈으로 만들어졌고, 그 끝에는 뼛조각이나 납덩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로마법에는 등가죽이 벗겨지면 매질을 멈추라고만 되어있습니다. 사형수의 살이 찢어지고, 근육이 터지며, 인대가 파열되어 뼈가 부러지기 전에는 채찍질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살가죽이 파여 내장이 흘러나오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얻어맞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채 두 팔을 형틀에 묶었습니다. 한 로마 군병이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예수님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몸을 휘감고 납덩이가 예수님의 등가죽에 박혔습니다. 군병이 채찍을 당기자 납덩이와 함께 한 움큼 살점이 떨어져 나왔습니다. 살점이 떨어진 곳에는 곧 붉은 피가 고여 흘려 내렸습니다. 또다시 채찍이 예수님의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은 채찍으로 찢어졌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날카로운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꾹 눌러 씌웠습니다.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를 찌르고 들어가자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본래 면류관과 자색 옷은 왕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 받는 예수님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사람이 이처럼 부당하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조롱과 멸시를 다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은 예수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말했습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을 무리에게 보여주고 동정을 얻고자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자 피를 본 야수와 같이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무지한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지로 생명의 주를 십자가게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거듭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6). 그러자 유대인들은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말을 들은 빌라도는 다시 관정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힘썼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놓고자 하는 빌라도를 협박하였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다시 예수님을 끌고 나와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이 말은 “너희 왕을 내가 어떻게 하랴” 라는 뜻입니다. 빌라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리들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대답했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빌라도는 그들의 기세를 보니, 예수님을 놓아 주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예수님은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십자가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미 채찍에 맞아 심한 탈진상태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벗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마에는 피와 땀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기력이 다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고 쓰러지고 일어나시고, 쓰러지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를 짐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진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당신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의 십자가를 벗어버리고자 하였습니까? 나의 쉽게 해결되지 않는 죄 문제로 투쟁하다가 지쳐 믿음을 버리고자 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캠퍼스에 양들을 얻고자 도전했다가 빈 그물로 내려오기를 반복할 때 우리는 얼마나 사명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를 잘 하였습니까? 학업과 사명을 감당하다가, 직장일과 사명을 감당하다가 둘 다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질 때 사명을 버리고 안락한 소시민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시간 저희가 끝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캠퍼스 목자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쌔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 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자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뉘였습니다. 그리고 양 손목에 굵은 대못을 대고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쾅! 쾅! 쾅!” 굵은 대못이 예수님의 손목을 뚫고 들어가 나무에 박혔습니다. 뼈가 부서지고 핏줄이 터져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발목도 겹쳐서 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으로 사지가 뒤틀렸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몸무게가 못 박힌 양 손목에 실리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숨은 곧 멈출 것 같이 거칠어 졌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에 파고드는 고통을 참지 못해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아~~~~악”

 아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왜 이토록 끔찍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 하는 것일까요?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있는 죄 패가 잘 말해 줍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예수님의 좌 우편의 강도들에게는 “부녀자 연쇄 살인범”, “거액 사기범”과 같은 죄 패가 붙어있었지만 예수님의 죄 패는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과 예수님을 비하하기 위해 썼지만 “유대인의 왕”이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에 대한 별칭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예수님께서 왕의 왕이요, 주의 주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해줄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아이러닉하게도 죄 패는 당시 세계를 대표하는 언어인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뿐 아니라 온 세계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의 주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하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하여 유대인들의 요구를 거절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였으나 하나님은 이방인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의 왕이요 주의 주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주전 800년 경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의 왕이 고난 받는 이유를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바로 내 죄 때문에 무서운 고통을 받으시고 저주를 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생명의 주를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교만과 불신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정욕의 소욕을 버리지 않고 죄의 소욕을 좇아 은밀하게 즐긴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대로 살지 않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던 나의 이중적 생활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의 크신 사랑으로 죄 사함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나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므로 나의 죄로 인해 내가 받을 고통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배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놀라운 사죄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때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번민이 사라지고 우리 마음에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이때 우리 마음의 슬픔과 상처가 치유됩니다. 우리에게는 나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 가슴에 잘 아물지 않는 슬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무시하는 한마디 말로 상처를 받아 일생 미움과 증오의 삶을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 받은 성추행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괴로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평신도 목자님들 중에는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함께 인격적 모독을 들음으로 마음에 쓰린 상처를 쓰다듬으며 수양회를 섬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은 동역자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상처를 받아 관계성이 깨져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훈련을 받으며 목자님으로부터 들은 말이 채 소화가 되지 않아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시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유대인의 왕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상처가 치유되고 심령에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다 이루었다(23~42)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 겉옷을 취하고 속옷은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자비하고 무정하였지만 이는 시편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모친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의 처형을 지켜본 마리아는 칼이 그 마음을 찌르는 듯 하였습니다.(눅 2:35)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울고 있는 모친을 위로해 주시고 그 장래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수 시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많은 피를 흘리셔서 완전 탈수 상태가 되셨습니다. 심장은 가뭄에 논바닥처럼 바싹 바싹 타들어갔습니다. 입안은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메말라 버렸고 혀는 잇 틀에 달라붙어 말 한마디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시편 69편 21절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극한 고통 속에서도 어찌하든지 성경 말씀이 응하게 하고자 몸부림 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 한마디 하기 힘든 죽음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여 예수님의 입에 대자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남은 힘을 다해 한 말씀을 남기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러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 이십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메시아에 대한 모든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경에서 오시기로 예언한 바로 그 약속된 메시야 이십니다.

둘째, 이는 놀라운 해방 선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인류 구속 역사를 완벽하게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죄가 요구하는 것이 생명인데, 생명은 그 피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레 17:11) 염소나 양, 송아지 같은 짐승을 죽여 피를 뿌림으로 자신의 죄 값을 대신 치루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짐승의 피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 번 죄 값을 치루었다해도 또 다시 죄를 지으면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죄 사함 받아 우리의 육체가 정결케 되어도,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해 주셨습니다. 이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요,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 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영원히 사함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내가 지은 죄로 양심의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결과 의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히 9:14, 눅 1:75) 이제는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적인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추한 죄를 사함 받고자 내가 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할 것이 있다면 나의 죄를 겸손하고 진실하게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나를 그토록 얽어매고 괴롭혔던 죄의 사슬이 뚝 끊어지고 속에서부터 말 할 수 없는 평화가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 이는 실로 놀라운 해방 선언입니다. 이는 죄로 고통하는 자들을 향한 평화의 선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 사함 받는 길이 너무 쉽다고 이를 잘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하지 말아야 양심적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은 내가 죄 사함을 영접하면 목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영접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목동은 양을 잘 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취소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합니다. 특히 반복해서 죄에 넘어질 때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영접치 못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어떤 몹쓸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한 아무리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믿지 못해 당신께 나오지 못하는 의심 많은 어린양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죄 짐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셋째, 이는 사명을 완수한 승리의 외침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는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명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해서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한 탈진상태에서도 자기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1000번을 기절했다 깨어나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결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잔을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마시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 이는 사명을 완수한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승리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들에게도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은 안식일 전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꺽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였습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죄수의 다리를 꺽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꺽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는 “그 뼈가 하나도 꺽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이 응한 것이요, 심장 파혈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으셨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장사 되었습니다.

 저는 충북 제천에서 5대 독자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내면은 이기심으로 병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저의 집은 수원에서 미니 수퍼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은 수퍼이기 때문에 손님이 100원짜리 과자를 사면 10원을 깍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손님이 동네 사람이면 10원을 깍아주고 낯선 사람이면 100원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10원을 주지 않고 10원짜리 사탕 하나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친 동생들에게도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저를 1988년 전기 대학 입시 실패를 통해 겸손케 하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막생활을 하며 나의 이기심으로 형제들과 많은 신경전을 버렸습니다. 특히 조용한 저는 저와 성격이 다른 목소리 큰 한 동역자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센타를 섬기고 같은 장막에서 한솥 밥을 먹으며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저는 그를 경계하였고 그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 아브라함 선교사님은 사도팀 훈련을 통해 제가 얼마나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는가 발견토록 도와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제가 자기를 발견하도록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정말 심각하다.” 저는 이로서 독자로 자라며 한사람도 사랑할 수 없고 한 사람에게서도 순수히 사랑을 받아 주지 못하는 병든 자임을 깊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신의 죄로 병든 자임을 발견했을 때 저는 아무데도 쓸모 없게 된 자신으로 인해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제게 본문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는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저의 이기심의 죄를 사하시고 죄로 병든 내면을 치유해 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제가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저의 이기심으로 병든 내면을 예수님께 들고 갔을 때 예수님은 저의 죄를 사해 주시고 죄로 병든 저의 양심을 당신의 거룩한 피로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속에 당신의 사랑을 부어 주시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후 저는 그 동역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의 발을 씻겨 줌으로 주님안에서 사랑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새롭게 제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십자가에서 저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당당해주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올 들어 급여를 제대로 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동안 수 십억 원을 들여 개발해 오던 프로젝트가 KT납품 시험에서 불합격함으로 더 어려움이 가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합격의 원인이 바로 제가 맡아 개발한 장치에 있었습니다. 저는 저로 인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됐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연구소 책임자로부터 책임추궁과 함께 인격 모독성 발언을 들은 후 저는 그만 들어 눕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쓰린 상처를 치유하기위해 말없이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또 제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유대인의 왕을 바라보았을 때 직장에서 받은 쓰린 상처가 치유가 되었고, 심령에 평화가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저는 제게 상처를 준 연구소장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직원회의에서 의기소침에 빠진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이사야서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회사에 실패의 옛 일을 기억할 수 없을 새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라고 희망을 심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대신 저주신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제가 죄와 상처로 무거운 인생을 사는 지성인들에게 승리와 영광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의 왕이요, 주의 주로서 세상 모든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인류 구속 역사를 완성하시고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 한분 한분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죄와 상처를 고백함으로 죄 사함의 은혜와 치유의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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