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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4강(4:12-25)/ 나를 따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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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454회 작성일 03-03-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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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마태복음 제 5 강                                                        514
말씀/마태복음 4:12-25                                                               
요절/마태복음 4:19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우리는 지난 주 캠퍼스 바이블 아카데미를 통해서 몇몇의 양들과 일대일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양육과 제자 훈련을 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초기부터 전도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지도자로 키우셨습니다. 우리는 캠퍼스의 영적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평신도 목자님들은 자비량 사역자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부르심을 받음과 동시에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롬1:5, 벧전2:9).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사역을 위한 지도자이며 이 지도력이 어떻게 개발되는가가 그의 삶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요회에 소속되어 있고 요회 목자와 팀 목자의 지도 하에 영적 지도자로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일대일 제자 양성방법에 따라서 훈련을 하고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과 제자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흑암에 비취는 큰 빛(12-17)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요한이 헤롯에게 잡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담담하게 그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왔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사역의 본부로 삼고 갈릴리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에는 세관이 있었고 군대가 주둔해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3년 사역의 전반부를 대부분 이곳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15,16).” 갈릴리는 이방인들과 혼혈이 되어 동족들에게서 무시와 수치를 받았습니다. 나다나엘 같은 사람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귀신들리고 강도를 당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700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영적 기갈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한 선교사님은 몇 년 만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북한 핵 위협으로 인해서 적지 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라크전이 끝나고 나면 다음은 미국이 북한을 손 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로 인해서 한반도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매일 방송을 타고 나오는 전쟁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이라크에서는 740만명 이상의 국민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최첨단 무기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5세의 이라크 출신 미국 소녀가 쓴 평화의 편지는 “제가 여러분이 죽이려는 아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라는 내용인데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휴유증은 패배자에게는 큰 상처를 남기고 승리자에게는 무수한 비난이 쏟아질 것입니다. UN을 통한 국제 질서는 위협을 당하고 있고 많은 국가 협의체들이 분열될 조짐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것들로 인해서 어두운 그늘이 우리에게 드리워 있습니다. 신촌 지역은 서점은 7개인데 유흥업소가 180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고 해서 어두움의 그늘이 걷히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비전이 없으니까 어두컴컴한 게임 방에 박혀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비전이란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아야 현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역류해서 사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20세에 인생 설계를 다 하고 나머지는 그에 따라서 산 것 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큰 빛을 비추셨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전파하심으로 천국의 환한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이 동터오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천국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실 때 평화가 있고 의가 세워지고 사랑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은 미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낼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이곳에 우리 선교사들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사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 소식으로 인해서 마음이 어두웠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나라를 바라보니 마음이 새로워지고 새소망이 생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세례 요한이 증거했고 예수님이 증거하신 동일한 복음을 나도 전해야겠다는 소원으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천국 복음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주고 생명을 줍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과 실패감을 몰아내 줍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사단을 파하신 승리의 주님이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꼭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은 천국의 특성이 무엇인지 이제 예수님께서 펼쳐 나가시는 사역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음으로 변혁시키는 길만이 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길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일을 하셨습니까? 

둘째, 제자를 부르심(18-22).
  18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거기서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해변에 30개 촌락이 있었는데 다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부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벳새다 사람들이었는데 가버나움에 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캠퍼스를 두루 돌아다니시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주목하여 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전도를 하려면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두루 돌아다녀야 합니다. 자주 만나다 보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고기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갈치나 오징어를 잡을 때는 반드시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또 어떤 고기는 그물을 쳐서 잡습니다. 큰 고기인 고래를 잡을 때는 갈고리 같은 작살을 쏴서 잡습니다. 고기를 잡을 때는 미끼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잡을 고기에 따라서 미끼도 다양합니다. 붕어 낚시에서는 떡밥, 깻묵가루, 어분, 지렁이, 새우, 참붕어를 쓰고, 강 계류에서의 낚시 특히 산천어 낚시에서는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등 산 곤충을 미끼로 씁니다. 잡고자 하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쓰는 미끼가 다릅니다. 또한 낚시질을 잘 하려면 먼저 고기가 잘 모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남보다 먼저 가야 합니다. 어떤 낚시꾼은 새벽 미명에 낚시터로 가기도 합니다. 고기는 아무 때가 간다고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들이 잘 나타나는 때에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우리는 여기서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에 담긴 의미 즉 제자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은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제자는 영어로 'disciple'인데 이는 'discipline'(훈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훈련을 받는 자입니다. 훈련이란 국어 사전에서는 ‘가르쳐서 익히게 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훈련이란 단순히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것을 완전히 생활로 습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상을 배우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매우 인격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어느 틀에 넣어서 짜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장점과 개성을 살려 주면서 예수님을 배우는 자가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의 내면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순종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이는 죄인들을 초청하는 부르심인데 구원에로의 초청입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은 자기의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22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세리 마태는 회계 장부와 그 외의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희생이 따릅니다. 그런 희생을 감당하는 데는 아픔이 따릅니다.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없이 진정한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종은 제자도의 가장 주된 특성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게 된 원인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게 된 원인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구원하려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5:8,9).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은 제자 생활의 알파벳에서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둘째로, 회개입니다. 아무도 회개 없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어떤 죄악된 방향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는 죄악된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자는 죄에서 떠나 의를 행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부인없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 죄를 회개하는 자기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자라게 됩니다. 회개는 자기를 죽이는 투쟁입니다. 회개는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자가 일생 지고 가야할 자기 십자가입니다.
 
셋째로, 복종입니다. 제자는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멍에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자에게 부여된 일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는 왕이요 주이신데 복종이 없이 어찌 따를 수 있겠습니까? 복종은 그의 권위 아래 자기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과 복종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순종은 스스로 기쁨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복종은 하기는 싫지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억지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사람은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을 복종시키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복종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다른 방향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예하면서도 어려워도 외로워도 따르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구경하러 시골에서 왔다가 로마 군병이 시켜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군인의 권위에 복종하여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까지도 다 구원을 받고 초대 교회에 귀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넷째로, 신뢰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함이 없이 그를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뢰의 결핍은 그를 떠나 곁길로 가게 합니다. “나를 따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제자들이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먹는 문제를 주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어떤 약속이나 보장을 받지 않고 따랐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대단한 특권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같이 비천한 자를 제자로 삼아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따랐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 “나를 따르라”는 말은 “내가 너희를 책임지고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너희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다 투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문제와 집 문제로 걱정하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요14:1,2).” 예수님은 그의 말씀과 행하심을 통해서 신뢰할 만한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섯째, 인내입니다. 제자 생활은 어느 기간 동안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의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졸업할 때까지만 제자 생활하고 그 후에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할 때까지 마지막 장벽을 넘을 때까지 달리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자기가 주님을 배반했다는 생각으로 울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와서 일생 동안 수제자로서 헌신했습니다. 한 번은 로마에서 핍박이 하도 심하여 도망가려고 하는데 주님께서 나타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로마로 돌아가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남아 있는 분들은 정말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인내를 주님께서 넘치게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어떤 비전을 주셨습니까? 19b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제자들을 피싱하고 양육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목자의 직분을 말합니다. 세상이라는 죄악의 바다에서 사람들은 죄와 사망 권세라는 큰 고기에게 잡아 먹히는 운명 가운데 있습니다. 목자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방황하는 인생들을 낚아서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씀은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그물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들입니다. 이 세상은 고해라고 합니다. 주님은 죄악의 바다 가운데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는 인생들을 구원하도록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일대일 전도 방법을 씁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쓰신 방법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과 나다나엘을 일대일로 휘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일대일로 부르셨습니다. 개인 전도는 누구나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점심 시간이나 공강 시간, 강의가 끝난 시간 등을 이용하여 캠퍼스에 나가면 많은 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자 앉아서 사색을 하고 있는 양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면 잘 듣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전쟁의 두려움 등으로 인해서 마음이 많이 가난해졌기 때문에 복음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봄학기에 집중적으로 전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소망을 갖고 계심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이 그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키우셨습니다. 천국 일꾼을 키우는 일이야 말로 가장 귀한 삶이요 그 일에 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값진 투자입니다. 우리는 내가 현재 부족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람 낚는 어부로 키우고자 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요단 경영자문위원회에서 컴퓨터로 12제자에 대한 분석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대부분 배경이 약하고 교육이 빈약하고 직업 적성의 능력이 없으며 팀의 결속 능력도 미미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계속해서 경영 능력과 개인 지도력 향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2제자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평가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화도 잘 내고 마음의 변화가 심하다. 안드레는 지도력의 자질이 결핍되어 자기가 할 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공동체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마는 도덕적 수준이 낮고 또한 의심이 많아 다른 사람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사람으로 그가 있는 곳에는 늘 사기가 저하된다. 마태는 무작정 직장을 무단이탈한 수배대상자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등 나머지 제자들은 열심당원이며 급진주의자들로서 혁명하는 데는 역할 수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섬김의 공동체인 예수의 제자단에서는 그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뛰어난 큰 잠재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사람들을 잘 사귀는 사교 능력도 가지고 있고 예민한 사업적 능력도 있으며 권력층과도 교제를 나누며 그들에게 찾아가서 자기의 의견을 바르게 표출하여 의견을 수렴시킨다. 그는 큰 야망을 가지고 있고 또한 동기 유발을 시키며 합리적인 인물로서 손익을 계산할 줄 아는 변별력도 갖추고 있다. 이 사람은 잘 사용하면 요긴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금력도 풍부하며 일을 수행함에 있어 약함이 없다. 이 사람을 잘 성장시키면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바로 가룟 유다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지도력의 수준으로 보면 가룟 유다가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에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냐 하면 내가 재주가 제일 많은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사람, 사도 중에 제일 부족한 사람, 목자 중에 제일 약하다고 하는 사람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남아서 쓰임 받는 분들을 보면 겸손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역(23-25).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고 선포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일대일로, 그룹으로 가르치시며 카운슬링 하시며 백성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선포된 말씀은 믿음으로 영접하느냐 배척하느냐, 그 권위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치료하셨습니다. 육신과 영혼의 병을 다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치유의 역사는 말씀 사역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오늘날 10대의 27%가 인격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요즈음 대학생들 중에도 대인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폐증을 보입니다.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간염, 장염, 위염 등 예수님은 모든 앓는 자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가 치료하지 못할 상처가 없습니다. 그가 치료하지 못한 병도 없습니다. 그는 말씀의 권능으로 치료하십니다. 기도로 치료하십니다. 문둥병자 같은 경우는 터치하심으로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깨어진 심령도 치료하십니다. 죄로 짓이겨진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고통을 치유하시는 유능한 의사이십니다. 저는 콩팥이 상해서 2년 동안 무기력하게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병든 저를 깨끗하게 치료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녹 목자님의 간염을 치료하셨습니다. 오기드온 목자님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고치셨습니다. 그 결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았습니다 .
  예수님은 사역의 초기부터 제자 양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할 때 훌륭한 제자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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