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마태복음 03마4강(4:1-11)/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862회 작성일 03-03-16 10:04

본문

2003년 마태복음 제 4 강                                               
말씀 / 마태복음 4:1-11
요절 / 마태복음 4:10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메시야 대관식 후에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배고픔, 두 번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세 번째는 우상 숭배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당했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여 패배한 것들입니다. 마귀는 온 인류를 이 세 가지 문제로 시험하여 넘어뜨리고 죄와 죽음 권세로 왕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도 열병에 걸려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시이저도 암살을 당했습니다. 칭기스칸도 마귀의 발밑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마귀에게 시비를 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마귀에게 도전장을 내미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결코 호전적이거나 투사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마귀와 싸워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와의 싸움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시험은 우리도 당할 수 있고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본래 천사였으나 자기의 처소와 사명을 버리고 하나님께 반역했던 타락한 천사입니다(유1:6). 마귀는 너무나 무서워서 생각하기도 싫고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마귀는 애매모호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간교하고(창3:1), 교만하고(딤전3:6), 악하고(요일2:13), 거짓말장이고 살인자입니다(요8:44). 마귀는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기도 하고 무서운 핍박을 쓰기도 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속이고 유혹합니다(고후11:3). 마귀는 우는 사자(벧전5:8)와 같이 우리를 대적하는데 잠을 자거나 졸지도 않습니다. 거의 6000년 동안 쉬임없이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원수는 보이지 않으며 죽지도 않고 우리 가까이 있고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갑니다. 마귀는 광야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시험할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과 같이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에서도 시험하고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성전에서도 시험합니다. 또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서 교묘하고 교활하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에서 공부하고 일을 할 때 사람들과 부딪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 마음에는 보복하고 싶고, 분노를 터뜨리고 싶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 미움, 시기, 의심, 죄악된 상상, 반역하는 마음, 혈기, 평화를 파괴하고자 하는 마음들을 심습니다. 우리는 이런 마귀의 공격을 당하면서도 사람과 싸우던지 아니면 단지 내 인격이 부족하고 내 속에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자학하고 운명적이 되고 슬퍼합니다. 또 마귀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열심히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할 때 장애물을 놓고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설상가상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의심을 심어 믿음을 실족시키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려서 하나님과 그 나라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고후4:4). 오늘날 마귀는 인간에게 주어진 무한대한 자유라는 미명 하에 죄의 종을 삼아 인간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켜놓았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가치관과 도덕 수준을 부패와 폭력으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세상을 극복하며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여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끝까지 그렇게 악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이 마귀는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계20:10절은 말씀합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습니다. 영화 빠삐용을 보면 그가 탈출을 기도하다가 금식 체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 이틀은 잘 참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는 감옥 안을 돌아다니는 벌레들을 잡아먹습니다.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은 가죽 끈이라도 씹어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연약해 지셨을 때에 마귀는 접근했습니다. 마귀는 사람이 연약해지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저함이 없이 공격했는데 하물며 우리들에게는 어떠하겠습니까? 마귀의 시험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시험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시험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마귀는 시험을 합니다. 마귀의 시험에서 이겨야만 구원 역사를 이룰 수 있고 시험 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이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마귀의 공격이 어떤 형태로 오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만일”이라는 말은 이 시험이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시험이며 예수님 안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품도록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만일’ 이라고 함으로써 더 미묘하고 효과적으로 공격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어가는 상황에서 돌로 떡덩이를 만들라는 것은 굉장히 교묘한 시험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한다면 너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말고 먹는 문제를 네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니 자기를 신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끊어버리라고 몰아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약속을 의심한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한 번 의심하는 마음이 들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보입니다. 더 나아가 마귀는 예수님께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고픈 문제가 아닌가? 배고픈 문제도 하나 해결하지 못했는데 영혼 구원이란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사역을 축소시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비량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자님들에게 사단은 이런 식으로 시험을 합니다. 직장 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드냐? 시간도 없고 피곤하기 까지 하니 너는 돈이나 벌고 직장 생활이나 잘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헌금하면 그것으로 내 일은 다 된 것이 아니냐? 그리고 전도하고 제자 양성하는 것은 사모님들이나 풀타임목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슨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육신과 함께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는 떡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해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조화된 가운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유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생답게 산다, 의미있고 행복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공산주의는 빵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다가 비인간화되었고 자본주의는 빵을 근본으로 삼다가 타락과 부패의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로 굶주린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빵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인생들을 보실 때 심히 슬퍼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둘째로, 사람의 생명의 원천이 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빵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먼저 빵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신명기 8:3절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40년 동안 만나로 먹이시고 육신의 생명을 돌봐주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 때 육신의 양식까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현재 당면한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스스로 빵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40일 금식 기도를 하도록 하셨으면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이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드심으로 사람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 때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족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시 37:16)”

둘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마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인용하니 마귀도 시편 9:11,12절 말씀으로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말씀을 왜곡하기도 하고 가감하기도 하고 문맥에 맞지도 않는 말씀으로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말고 인간의 이성을 앞세우라고 유혹합니다. 말씀을 주의 깊게 공부하기보다 대충 읽고, 기초 문제도 준비하지 말고 대충 공부하도록 시간에 쫓기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상대적으로 보도록 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으로 매도합니다. 그래서 ‘네가 말씀대로 한다면 이 말씀대로 해 보지 그래. 성전에서 뛰어 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된 것인지 한번 해보지 그래?’라며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일에 책임을 가진 하나님의 위치에 서고, 하나님을 우리의 종처럼 취급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해발 750m나 되는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5). 그리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마귀의 말대로 뛰어내린다면 땅에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던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고 해도 신뢰의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하자 더욱 정확한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말씀 대 말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를 볼 때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져야 함을 보게 됩니다. 신앙에 실패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경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잘못 해석함으로써 시험에 빠지곤 합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6:16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호렙 산에서 물이 없어 고통할 때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했을 때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물을 마셨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사람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고꾸라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욥은 사단의 공격으로 하루 아침에 일곱명의 자녀들과 모든 재산을 잃고 자기도 죽을 병에 걸렸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내가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1:21)”라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가 시험을 이겼을 때 믿음이 견고해졌고 더욱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흠모하지 말라(8-10). 마귀는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시2:8절에 있는 대로 메시야가 천하만국을 얻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마귀는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무서운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로, 쉬운 방법으로 영광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섬기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죄로 타락한 이 세상을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실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렇게 힘들게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이 쉽게 성취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데 반드시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 가장 유혹이 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은 언제나 십자가를 빼고 쉽고 안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신앙은 힘이 없고 기쁨이 없고 진정한 가치도 없습니다. 쉽게 하고자 하는 유혹 속에는 정직도 성실도 공의도 없습니다.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희생과 엄청난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희생없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쉽고 편하게 사는 길은 오늘날 사단이 가장 재미를 보고 있는 유혹 방법입니다. 

둘째로, 경배문제입니다. 경배는 영어로 worship인데 worth + ship라고 합니다. 즉 가치있고 존귀한 분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경배란 단순히 절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가치있는 분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경배하는가에 따라 그의 종이 됩니다. 마귀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미끼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하고자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자유를 줄 것처럼 속삭이지만 이에 넘어가면 결국 마귀 숭배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마귀는 피조물입니다. 이 세상 권세와 영광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거짓말을 했습니다. 물론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요(요12:31, 14:30),공중의 권세 잡은(엡2;2), 타락한 신(고후 4:4)입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권세를 실현할 수 있는 흑암의 세력이며 끝 날에는 형벌을 받게 될 불법적 치리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세상 영광과 권세를 줄터이니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그 본성인 교만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경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주이시오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시오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을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매혹적인 여인을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또 과학문명을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아니면 우상을 경배하느냐 하는 것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귀를 책망했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단의 교만한 말을 들으셨을 때 영적 분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썩 꺼져버려!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과 대화하거나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조금도 사단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단호히 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마귀는 전에는 결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었지만 예수님께 완패를 당하고 물러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자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들었습니다. 40일간의 금식과 마귀와의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기진하신 예수님을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시험으로부터 지켜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시험에 들 우려가 있는 형제자매들을 긍휼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기도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할 때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막9:29).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단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엡6:17). 우리는 성경을 책장 위에 놔두기보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면서 손때가 묻도록 읽고 먼지가 펄펄 날 정도로 읽읍시다. 그리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고 사랑합시다. 말씀을 충분히 읽지 않는 것은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마다 주님께 나아가서 그의 긍휼을 깊이 체험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81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