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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26강(20장)/섬기러오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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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882회 작성일 03-08-31 10:42

본문

2003년 마태복음 제 26 강                                               
말씀 / 마태복음 20:1-34
요절 / 마태복음 20:28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은 놀고 있는 품꾼들을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복음의 일꾼들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큰 자가 어떤 자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일꾼으로서 바른 자세를 갖고 섬기는 종의 도리에 대해서 깊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놀고 있는 품꾼들을 부르시는 하나님(1-16)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19:30절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갈구하지만 세상 보화를 버리지 못해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런 부자 청년과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받을 엄청난 축복을 말씀하신 후 아울러 경계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리고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꾼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을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포도원 주인은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다섯 번이나 품꾼들을 얻기 위해서 나갔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 비유는 또한 우리에게 열심히 일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창1:2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세상의 청지기로서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셨음을 보여 줍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면 이 세상은 낙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한다면 이 세상은 사단이 다스리는 지옥일 뿐입니다. 살후3:10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양식을 먹을 특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일을 하지 않는 폼꾼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품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일을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입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처자식이 있고 그날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고역입니다.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욱 부담이 될 것입니다. 놀더라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낫습니다. 일을 하고 싶은데 써주는 사람이 없을 때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나서 쉬는 것은 보약이지만 할 일이 없어 노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도록 부르십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조건이 맞아야 뽑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에 관계없이 다 부르셔서 그에게 맞는 할 일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실 때는 나이와 관계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연령대별로 할 일이 있습니다. 일찍 온 사람은 일찍 온대로 쓰시고 늦게 온 사람은 늦게 온 사람대로 쓰십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일감이 쌓여 있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정리 해고될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고 재생산하는 일을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추수하는 일꾼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서 매우 관대하십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천국을 좌우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침 아홉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주인은 저희에게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2시와 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그들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포도원 주인은 보통 주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통 주인들의 관심은 품꾼을 통해서 얼마나 포도를 수확할 것인지, 또 얼마나 이익을 얻을 것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돈을 적게 주고 일을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이 사업하는 목적이 이익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주인은 정오가 되어서 더 많은 품꾼이 필요해서 다시 장터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민망히 여겨 고용했습니다. 주인은 품꾼이 필요해서 그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할 필요가 있어서 고용했습니다. 주인은 일찍 온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고 그 후에 온 사람에게는 상당하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이런 약속도 없었습니다. 단지 은혜와 신뢰의 관계로 일을 하게 했습니다.

  저물매 주인은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했습니다(8). 제 십일시(오후5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와서 삼사 데나리온은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받은 후에 그들은 집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나중 온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2). 그들은 일을 나중 온 사람보다 더 했기 때문에 더 받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비교의식에 빠지자 불평과 원망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자기의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은 세리나 창기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는 것을 도저히 봐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약 천사백년 이상 고생을 했는데 이방인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은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온 제자들은 나중 온 사람들이 세상에서 즐길 것을 다 즐기고 늦게 와서는 은혜롭게 소감을 발표하고 인정을 받고 쓰임 받는 것을 보고 영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 온 사람들이 은혜를 입어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팔짱을 낀 채로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빈정거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고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인데 영생까지 약속대로 받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셋째, 우리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은 주권자가 되십니다. 그는 약속을 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관용과 자비를 베푼다고 질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서 이방인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관대한 성품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던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푼 주인의 마음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나중 온 사람들과 똑같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은혜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마땅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포도원에 나중 온 자는 은혜가 넘치는데 먼저 온 자는 불평과 원망이 넘쳤습니다. 나중 온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랑의 관계가 잘 맺혀졌습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라 현재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성입니다. 진정으로 먼저 된 자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II. 섬기러 오신 예수님(17-34)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지난 번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능욕을 당하고 채찍질을 맞고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지만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제자들이 고난의 때에 믿음을 지키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십자가와 부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이 나의 두 아들을 하나는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살로메는 로비스트였습니다. 이들은 철없는 애들과 같았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는데 영광이나 생각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권력욕에 물들어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소화해 낼 수도 없는 자리를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나이다.” 그들은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는 말처럼 높은 자리만 주신다면 어떤 고난이라도 받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 만큼 치루어야 희생과 대가가 큰 것입니다. 감당해야 할 부담도 큽니다. 그들이 이렇게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을 때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밧모섬에 귀양을 갔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 제자는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대하여 분히 여겼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자기가 남겨두고 온 장모와 아내와 리틀 베드로와 잘 나가던 어부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말대로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께 가장 충성되게 일했고 헌신했으므로 총리 자리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아무도 팔씨름에서 자기를 이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이용해서 청탁을 하고 있는 약싹 빠른 두 놈을 보았을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불이 튀어나왔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거친 숨소리를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저희 임의로 주관하는 맛으로 삽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고 자기를 높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제자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그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지도자론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을 높이고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7:7-10).”고 하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섬기고 궂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섬김이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병든 내면을 치료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종의 도를 익힌다는 것은 큰 십자가입니다. 죄악된 인생들의 본성으로는 종이 될 수 없고 정말로 사람을 사랑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가르치셨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과 존귀와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셨습니다. 대속물이란 죄악된 인생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도록 드려진 속죄 제물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인생들을 섬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선한 목자가 되는 법, 진정으로 위대한 자가 되는 법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몸과 피를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들을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겨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더 많은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해야 합니다. 장막에서 어린 사람들은 낮아져서 섬기면 무언가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 정말로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사회는 섬기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기쁨이 넘치는 분들은 생명을 내 놓고 양들을 섬기는 목자님들입니다. 참된 기쁨은 무엇을 받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가운데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되 예수님과 같이 생명을 주기까지 섬겨야 합니다. 2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섬기는 종의 삶을 살면 망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섬기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셨습니다. 빌2:9-11절을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좇았습니다.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러자 무리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잠잠했습니다. 그런에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러 가시는데 천한 것들이 눈치도 없이 소리만 지른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은 그들이 보잘 것 없고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취직을 시켜 달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결혼을 시켜 달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근본적인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소경이지만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니사 곧 보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길에서 좇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마음이 어려울 때 무리들이 무시하는 소경 둘을 섬기셨습니다. 이를 통해 섬기러 오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도록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겨야겠습니다. 또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 받아서 생명을 주기까지 섬기는 목자 생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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