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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20강(14장)/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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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615회 작성일 03-07-13 10:51

본문

2003년 마태복음 제 20 강                                                284
말씀 / 마태복음 14:1-33
요절 / 마태복음 14:16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당시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영적 지도자로 키우셨습니다. 오늘은 만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을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속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폭풍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이 속두려움을 극복할 때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이러한 지도자의 자세를 자세히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21)

  1-12절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목자 노릇을 해야 할 헤롯은 불의를 일삼았습니다. 그는 의인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삶이 허무하고 안타깝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그는 사명인으로서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셨습니다. 빈들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빈들은 고독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옴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깊은 속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빈들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목자 노릇을 해야 하는 헤롯의 악한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우셨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들로 나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에게서 목자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들은 목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폭정에 염증을 느끼고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무리들은 목자의 냄새를 맡고 걸어서 빈들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양을 알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문제에 빠지면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 못합니다. 자기 문제를 극복하고 믿음이 있을 때 양들의 문제가 보입니다. 목자의 심정은 아비의 마음이요 어미의 마음입니다. 양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목자를 힘들게 할지라도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힘든 것들을 감당해 내는 것이 어미의 마음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 날부터 목자 노릇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은 목자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날마다 정말로 양들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심정이 있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캠퍼스 복음 운동을 힘있게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고자 빈들로 나오셨는데 무리들이 나오는 것을 보셨을 때 스케줄을 갑자기 변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의 병든 모습을 보셨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을 보셨을 때 고쳐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보셨을 때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정말로 모두가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건강하게 비전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판단하기보다 불쌍히 여기고 치료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계획을 포기하시고 양들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참다 참다 못하여 나아와 예수님께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은 무리들이 각자 알아서 자기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니 무리들을 먹일 힘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지쳐서 양들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알아서 사 먹든지 말든지 자기 코가 석자라 무리들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방향을 주셨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을 때 오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아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자기들 배도 채우지 못해서 “꼬르륵 꼬르륵”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잘 아셨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먹이라고 하시면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이다 보면 자기들의 배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가능성을 찾아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먹을 것이 없을지라도 양들을 먹이고자 하는 심정이 있을 때 어찌하든지 먹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있는 것을 찾아 믿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뭇가지 두엇을 주어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죽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엘리야의 말대로 했을 때 여호와가 비를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왕상17:10-16).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가진 것이 적을 지라도 오 천명의 무리를 먹일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 목자의 책임감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은 갈 것 없다고 하심으로 제자들이 도망갈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적 지도자로 키우고자 소망을 두셨기 때문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목자 훈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해결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믿음을 배우고 심정을 덧입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임감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방관자가 되거나 회색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은 많이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한 명의 양을 감당하는 것도 큰 부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또 한 양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실패의식과 불의감에 빠집니다. 나 살기도 바쁜 데 왜 내가 남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양으로 인해서 속을 썩이고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 여러분이 목자요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목자로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시대의 소망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학생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학생들의 지도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자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생각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천 명을 먹이는 문제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복음 역사를 섬기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의 한계에 갇히기를 잘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려운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 양성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23가정이나 있습니다. 선교지는 한 두 가정이 힘을 쓰고 있는데 비해서 우리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센타도 있습니다. 학교도 가깝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재능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오병이어에다가 믿음만 합한다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많이 가져오는 것보다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찾아서 주님께 가져올 때 이를 긍정적으로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알고 예수님께 맡기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셋째,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부족하지만 함께 동역을 하셨습니다.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것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양성을 할 때 공동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항상 제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훈련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독불장군식으로 할 수 없습니다. 동역을 받아서 일할 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것보다 부족한 여러 사람이 합심해서 하는 것이 더욱 풍성하고 오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일하는 사람은 쉽게 탈진해 버립니다. 그러나 함께 일할 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많은 난관을 쉽게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겸손하게 제자들과 동역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것들이 오천명을 먹이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감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리고 외롭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세상과 캠퍼스는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데 이들을 구원할 자원이 없습니다. 우리의 것만 가지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여름 수양회를 섬겨야 하는데 일꾼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작은 힘과 지혜와 믿음을 합하여 동역하는 가운데 한 방향으로 나가면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로 인해서 감사하셨고 그들이 가지고 온 것을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 손에서 떡을 떼면 뗄수록 계속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빵공장 장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만든 떡은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만든 떡은 영혼의 만족까지 줄 수 있는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자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모두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II. 폭풍 훈련(22-33)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느라 피곤한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쉼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무리들을 다 보낸 후에 예수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고자 했던 계획을 무리들을 돌보신 후에 어찌하든지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물매 산에 혼자 계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시면서 쉼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깊었습니다. 예수님은 밤늦게 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큰 역사 후에 기도에 침잠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쉼을 가지셨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심히 피곤하였는데 바람이 거슬리므로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필요에 민감하셨습니다.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벌떡 일어나 폭풍우 치는 바다 위로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밤 사경이었기 때문에 새벽 세시에서 여섯시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은 대단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심방하시는데 어떤 제약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놀라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으악 유령이다!” 그들의 머리는 쭈뼛 쭈뼛 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담력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는 제자들에게 즉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가 기상천외한 요구를 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는 아이가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 하듯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면 자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받으시고 “오라!”고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와우! 베드로는 맨발로 물 위를 걸은 두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험한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면 물 위도 걸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잘 나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는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살면서도 우리는 자주 바람과 두려움과 의심과 환란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그런 것들에 마음을 쏠리게 되면 문제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 믿음의 눈을 고정시키면 항공모함과 같이 세상의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보면서 속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점차적으로 세상의 파도에 빠져들게 됨을 봅니다. 속두려움이 있으면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이야기도 하지 못합니다. 한 목자님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양을 쳤는데 그가 모든 은혜는 다 받아 먹고 도망을 가버리자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 이후로 양을 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손발이 굳어버리고 머리도 굳어 버립니다. 두려움에 잡히면 창조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모험을 하지도 못합니다. 상당히 많은 실패는 대담하게 도전하기보다 지나치게 조심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할 때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속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덧입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해변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속에 있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담대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로마 시대의 크리스챤들은 로마 황제나 그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마침내 로마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주후 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양들을 어찌하든지 먹이게 됩니다. 목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양들과 이 시대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책임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책임감이 있을 때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여름 수양회를 책임성 있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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