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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15강(10:1-42)/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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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906회 작성일 03-06-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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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마태복음 제 15 강                                                       
말씀/마태복음 10:1-42
요절/마태복음 10:7,8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방황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그 기도 응답임을 알게 합니다. 제자들은 비록 어리지만 이리가 들끓는 곳에 나아가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면서 빼어난 말씀의 종이요 목자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적 지도자요 목자로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훈련하셨는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15)

  예수님은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의미하고 새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부르심은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사 팀을 이루시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양육하시며 훈련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산상 수훈을 통해서 천국 시민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이론적으로 가르치시고 실제로 나아가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시며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풍을 잠잠케 하시며 믿음을 키우셨습니다. 이제 때가 되자 현장 실습을 시키고자 하십니다. 실전 경험을 통해서 노련한 군인이 되듯이 제자들은 현장에서 잡초같이 근성이 있는 목자들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사역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은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킬 때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십니다. 주시는 은사가 여러 개 일수도 있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사는 개발시켜야 합니다. 불일 듯 사용할 때 받은바 은사를 통해서 권능이 나타나고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활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담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신유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말씀의 은사가 있고 지혜의 은사가 있습니다. 전도의 은사, 제자 훈련에 은사가 있는 분도 있습니다. 찬양의 은사, 레크레이션의 은사, 꽃꽂이의 은사, 청소하는 은사 등등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그 일을 감당할 만한 권능과 은사를 주십니다. 그 은사를 찾아서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습니다. 가나안 인 시몬은 로마의 정복자들에게 저항하는 유대 국수주의자인 열심당원이었습니다. 반대로 마태는 로마 정부가 고용한 세리였습니다. 다른 복음서는 그냥 마태라고 기록했는데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자신을 세리 마태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옛 신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도로 부르사 쓰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세리 마태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쓸모없는 죄인이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교만해집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기록함으로써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자 하면 은혜를 까먹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뛰어난 지성과 가문과 배경을 가진 사람도 부르사 쓰시지만 동시에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제자들 중에 로마를 증오했던 사람과 로마의 아첨꾼 마태가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이전에 있던 적대감과 갈등을 모두 끌어안고 초월해서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영남도 없고 호남도 없습니다. 빈부귀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요 사역자들로 쓰십니다. 마태는 제자들을 둘씩 둘씩 기록함으로써 모두가 다 하나이지만 동시에 깊은 우정과 친밀감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두 형제들이 있었고 빌립과 나다나엘은 예전에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가끔가다 싸우고 다투기도 했지만 성숙해 가면서 동역을 잘 하였고 서로 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표입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한 마음을 이룰 때 세상의 어떤 핍박이나 고난도 함께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려면 먼저 한 마음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의 요소들이 있지만 마음을 열고 자주 대화를 함으로 사상을 공유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5,6). 18절을 볼 때 앞으로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지만 먼저 자기가 속해 있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들을 찾기 위해서 직접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습니다.(마9:35) 그리고 그것으로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시고 안타까워하시며 어린 제자들이지만 그들을 파송하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 삭개오를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 비유에서 “어느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라고 반문하셨습니다.(눅15:4) 양들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됩니까? 절벽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맹수의 밥이 되거나 무서운 독초를 먹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으로 어린 그들이지만 양들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캠퍼스 양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역시 예수님께는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사상의 이리의 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양식을 먹지 못하여 물질과 쾌락의 종이 되어 영적으로 메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선 효순 양의 촛불 시위가 반미 반정부 투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어제 홍익대학에서 범청학련 집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반미, 반정부 구호를 외쳤습니다. 캠퍼스의 학생들은 분명한 푯대를 행해서 달려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자신이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도우려면 먼저 그들이 영적으로 잃어버린 양이라는 사실부터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들에게도 가라고 하십니다. 저희가 이에 순종하여 캠퍼스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야 하겠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길은 험난합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잃은 양이 아니라고 우기며 거절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저희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깊이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희의 목자의 심정을 받으시고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잃은 양들이 멸망에서 구원받는 역사를 크게 이루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유다이즘을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사역에 성경적인 원칙이 있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라고 하면서 어디를 가든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배척하면 이방인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유럽 선교를 할 때는 빌립보에 있는 자주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는 간수장과 그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캠퍼스에 올라가면 먼저 신입생들을 찾아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교 센타는 지난 17년 동안 선교사를 양성하고 파송하는 센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7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3명이 귀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넘치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학사가 83%, 학생이 17%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10년 동안 학생들을 제자 삼는 역사를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사보다 4배가 많은 역사를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대학생 성경 읽기 선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속담에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풍랑은 만나지 않지만 결코 노련한 어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 현장 훈련을 통해서 캠퍼스의 목자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 옷자락만 붙잡고 있지 않고 잃은 양을 찾아서 섬기도록 내보내셨습니다. 어린 제자들이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 나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운 상황을 계속해서 직면해야합니다. 복음을 자꾸 전하다 보면 마음이 강해지고 목자의 심정이 생깁니다. 믿음이 없어도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면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가면서 전파하라” 예수님은 그들이 어느 고을에서만 눌러앉아서 전파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라는 것은 매우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전도여행을 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또 전파하는 내용도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통해 나타나 있는 많은 천국 비유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주제 중 가장 큰 주제는 천국입니다. 이는 성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천국에 대한 메시지는 세례 요한이 전했던 메시지요 예수님이 증거했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도 동일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성경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고전15:3,4). 회개하고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영생을 얻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우울증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서 양들의 삶 전체가 회복되도록 도와야합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의 행복과 자기 성취,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위할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라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개인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는 변화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친히 일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사역에 참여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이야 말로 가장 큰 상급입니다. 우리는 이미 상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갈 때 오직 믿음으로 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전도하러 나갈 때 이것 저것 많이 가지고 가면 매우 불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9,10).”고 하셨습니다. 몽골군이 전쟁에서 가는 곳마다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의 군장이 가벼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이 원칙에 따라서 평신도 자비량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를 섬기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질 문제에 막히게 되면 복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복음 역사를 섬깁니다.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복음을 받는 자들이 복음 사역자들을 돌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어려운 선교사를 물질을 들여 돌본다면 그들은 복음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선교사들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이 없게 채워 주십니다(눅22:35).
 
  제자들은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 내여 거기를 떠나기 까지 거기서 머물러야 합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어야 합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제자들이 기도한대로 그 집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열심히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제자들을 영접도 아니 하고 그들이 전하는 말도 듣지 않으면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갈 때에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잃어버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II. 제자로서 합당한 삶(16-4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실 때 그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제자들의 이미지는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강압적으로 이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면 찢기고 상하고 심지어 죽기도 할 것입니다. 양은 공격용 무기가 없기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고 당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신자의 삶이 그러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당했다고 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방법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리들의 공격에 대항하면서 순결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응해 나가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면 통찰력이 생기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신자들의 사회적응 능력을 키워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어리숙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경찰에 넘겨지기도 하고 유대인의 회당에서 채찍질도 당하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좋은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다 영접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무시받고 배척을 받고 고난의 종이 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재판을 받고 고난을 받을 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엄청난 핍박이 있었습니다. 조상도 몰라보는 상놈들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을 받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성령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우리 아버지의 성령이십니다(19,20).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성령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 할 때 당할 고난이 어떠합니까?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족들의 배신과 미움, 귀신들렸다 미쳤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면 생활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개인의 가치관이 변화되고 삶의 우선순위와 목표를 재조정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자매님들은 어머니에게 붙잡혀서 머리카락이 짤리고 집에 갇히기도 하고 어떤 목자님은 아버지가 목에 낫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호적을 파가라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은 그가 참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 때 이런 어려움뿐이겠습니까? 그 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피할 때도 있고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들은 우리를 순수하게 하고 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애매하게 고난을 받아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해야 합니다(28).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고난을 견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진정한 화평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다툼이 있게됩니다. 복음은 칼과 같아서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잘라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됩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됩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부모나 자식이나 다른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보다 아내나 자식들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생명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39). 이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구약 계명의 신약적인 표현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매우 부족하고 어립니다. 정말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소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런 보잘 것 없는 자 중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뜨거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열심히 잃은 영혼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제자들을 그 심정에 동참하도록 전도 여행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저희에게도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에 순종하여 캠퍼스에 나아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여름수양회에 초청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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