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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3년 눅 25강(13:22-3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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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3-02-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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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25 강
말씀 | 누가복음 13:22-35
요절 |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우리는 계속해서 제자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좁은 문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에게 혼동이 생깁니다. 나는 구원을 받은 것인가 아닌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음을 너희가 알리라고(요일 5:13)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구원을 받았다 안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음을 알 때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제자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고자 결심하셨습니다. 사명인으로서 자기의 길을 죽기까지 감당하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이 심해지자 구원을 받는 자가 많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주님은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제자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은 구원받는 자가 많고 적음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먼저 구원을 받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여기서 ‘좁은 문’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걸어가신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다른 종교에도 다 구원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 희생을 하였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누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였습니까? 누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악에 대해서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요 14: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과 할례 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의지나 노력, 선행,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즉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 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은 좁은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가는 피해자 혹은 ‘호구’가 되기에 십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수를 갚는 삶을 살게 되면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어리석게 보이지만 결국 사람을 살리고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 있지만 그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힘이나 자격으로 이룰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습니다.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과거의 구원입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칭의에 이르는 것입니다(요 5:24, 롬 5:6-8). 다음으로 현재적인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 옛 본성과 새로운 본성 사이의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씀합니다. 이는 현재 나의 죄와 싸움으로 거룩한 생활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래적인 구원이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어 영화롭게 되는 구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에서 ‘힘쓰라’는 단어는 경주자가 운동 경기에서 상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현재적인 구원을 위해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말씀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 구원의 확신이 생기고 견고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영적인 투쟁을 게을리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속의 힘에 밀려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성장이 없고 퇴보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희미해집니다. 세상 일에 푹 빠져서 넓은 길로 떠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는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헛된 자부심, 교만, 자기 의, 정욕, 음란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성령을 통해서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그 분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고자 힘쓰게 됩니다. 이런 삶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 현재 하나님 나라가 있고 장래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주어질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3-6절은 신자들을 싸우는 병사로,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경기하는 선수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수고하는 농부로 비유합니다. 이 말씀은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전심전력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그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과 친근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충만합니다. 
 
  집 주인은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다시는 열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라고 간청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23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인은 그들이 어디서 온 자들인 줄 모른다고 두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덧입고 죄를 죽일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주님이 하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누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까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았습니다. 이처럼 동서남북 각 나라에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복음을 영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구원의 축복이 이방인에게 넘어갔습니다. 좁은 문은 좁고 협착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항상 배우고 순종하면서 일생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즉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그들은 헤롯의 위협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맡은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예수님 당시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요한을 목베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왕성할수록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눅9:7). 또한 자신이 다스리던 영토 안에서 어떤 소요도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이 자기 관할 구역에서 떠나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의 위협에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으십니다.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가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삼일’ 즉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마지막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인류 구원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사명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도 사명인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사명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요구를 저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은커녕 미움과 조롱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사명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무슨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살고자 합니까? 사람이 자기 임의로 인생의 목적을 정하고 살 때 참된 의미와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정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뜻을 두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은 영혼을 구원하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캠퍼스 상황이나 시대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는 예루살렘을 위해서 어떤 마음을 품으셨습니까? 34,35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은 탄식하며 안타깝게 예루살렘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사랑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들이 선지자 중에 선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모세도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책망합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6,7).” 이스라엘 백성이 악할지라도 예수님은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이스라엘을 자식처럼 모으려고 하셨습니다. 암탉은 뱀이나 쥐가 다가오면 날개 짓을 하면서 “꼬꼬덱~, 꼬꼬덱~” 소리를 치며 제 새끼들을 모읍니다. 위험에 처하면 뱀이나 쥐에게 달려가서 부리로 쪼으며 쫓아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을 향해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며 돌이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먹이고 섬기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도록 그 백성을 선동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구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릴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그들의 집은 텅 빈 채 버려지게 될 것이고 세계를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죄로 인해서 마음이 찔려서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찌할꼬” 묻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이 날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면 집은 텅 빈 채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말세로 흘러가는 이 때에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겠습니다. 그리할 때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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