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3년 눅23강(12:35-59)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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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23 강
말씀 | 누가복음 12:35-59
요절 | 누가복음 12:42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일을 해서 열매를 남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열매 자체보다 우리의 마음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진실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가를 살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맡은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목자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5,36절을 보십시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통으로 짠 긴 옷을 입었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을 때나 놀 때는 허리에 띠를 하지 않거나 느슨하게 풀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거나 전쟁에 나갈 때에는 겉옷의 허리 부분을 졸라맸습니다. 허리에 띠를 띤다는 말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일을 할 수 있는 긴장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키타리스트가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 줄을 팽팽하게 조율을 시켜 놓은 상태와 같습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은 한밤중에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 된 삶을 살면서 언제든지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와서 종이 이렇게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주인의 인정과 섬김을 받는 것은 얼마나 황송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7-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할 일을 다 하고서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종이 취하여야 할 자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일생 종으로 사셨기에 종의 노고를 잘 아십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쉼과 기쁨을 누리도록 섬겨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더 많은 성읍을 다스리도록 하심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십니다.
주인이 혹 이경이나 삼경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경은 밤 9-12시까지, 삼경은 밤 12시부터 오전 3시까지입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7-8시 되면 취침하고 새벽 4-5시가 되면 일어났습니다. 종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몸이 무겁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밤늦도록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실하지 못한 종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기다립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주인의 상황을 늘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오신다고 하셨지만 자꾸 늦추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늦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몇몇 분들이 짝을 지어 캠퍼스에 올라가서 합심해서 기도하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이들이 복음을 알도록 기도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깨어 있는 분들입니다.
반대로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면 그것이 영혼의 잠을 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 일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신자의 비범성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약속을 따라서 살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한 명을 섬기는 일에서 승리할 때 여러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 모든 일을 넉넉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내 생각만큼 빨리 오시지 않더라도 나는 반드시 주님께 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밤이 깊어가는 것을 볼 때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현재 죄와 싸우며 구원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의 육체까지 일시에 변화되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고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를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들을 구원하고 제자로 키워야 합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할까요?
42-4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첫째, 진실한 청지기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되어 있지만, NIV 영어성경에는 “The faithful and wise manager”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먼저 진실한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보나 안 보나 진실한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주인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디모데후서 2장 2절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종들은 한결같이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다보면 내가 기대하는 때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인내를 배웁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기도하게 됩니다. 한 목자님은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맡아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으로부터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 감정, 말과 태도, 계획과 행동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방법으로 때마다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주 일대일 성경공부와 모임을 합해서 열 팀을 섬기고 있습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말씀을 주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양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끝까지 충성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는 것은 열매보다 충성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충성하는 것이요 열매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둘째는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써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충성스럽지만 지혜가 없으면 주인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인에게 유익을 남길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실제적인 것들을 배웁니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도와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어찌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을 품을 때만이 남에게서 배웁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배웁니다. 손으로 달을 보도록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에게서 배우는 것은 그의 것을 그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를 배우는 것이요 원칙을 배우는 것입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혜는 사거리에서 소리치며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그 집종들’은 예수님의 양 무리를 가리킵니다. 또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시대 양 무리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양식을 나누어줄 자가 누구냐?” 물으심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자발적으로 그 일에 헌신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양들을 말씀과 맛있는 음식으로 먹일 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내가 양들을 먹이려면 깨어 있게 됩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배우고자 소원하게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어 줄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힘들지만 말씀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눌 때 행복합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지혜롭고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으로 모든 소유를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우리에게 복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그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할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습니다. 이 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신 후 오순절에 내렸습니다. 성령의 불이 붙자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불길처럼 세계로 번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까지 분쟁이 있을 것을 예견하신 것입니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사람과 자기가 왕이 되어 왕 노릇 하려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런 갈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갈등을 통해서 복음이 세상에 전파가 됩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집안에서 갈등은 더욱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분란을 통해서 가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화평은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또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이 시대를 분간해야 합니다. 지금은 종말이 아주 가깝습니다. 지구 종말 시계는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100초”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핵과학자회는 종말을 막기 위해 행동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인류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질적인 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빠르게 지구는 종말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마치 나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가는 시기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는 내가 해를 끼친 형제를 가리키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날에 그들이 나를 고발할 것입니다. “법관”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최후로 심판하실 재판관이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다 마치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행한 대로 이실직고하고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죽기 전에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판을 받고 나서 옥에 갇혀 빚을 모두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결이 내려지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 때를 따라 주의 말씀을 양들에게 나누기를 힘씁시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이때 더욱 깨어서 맡은 일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2:35-59
요절 | 누가복음 12:42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일을 해서 열매를 남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열매 자체보다 우리의 마음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진실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는가를 살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맡은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목자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5,36절을 보십시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통으로 짠 긴 옷을 입었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을 때나 놀 때는 허리에 띠를 하지 않거나 느슨하게 풀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거나 전쟁에 나갈 때에는 겉옷의 허리 부분을 졸라맸습니다. 허리에 띠를 띤다는 말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일을 할 수 있는 긴장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키타리스트가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 줄을 팽팽하게 조율을 시켜 놓은 상태와 같습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은 한밤중에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 된 삶을 살면서 언제든지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와서 종이 이렇게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주인의 인정과 섬김을 받는 것은 얼마나 황송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7-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할 일을 다 하고서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종이 취하여야 할 자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일생 종으로 사셨기에 종의 노고를 잘 아십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쉼과 기쁨을 누리도록 섬겨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더 많은 성읍을 다스리도록 하심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십니다.
주인이 혹 이경이나 삼경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경은 밤 9-12시까지, 삼경은 밤 12시부터 오전 3시까지입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7-8시 되면 취침하고 새벽 4-5시가 되면 일어났습니다. 종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몸이 무겁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밤늦도록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실하지 못한 종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기다립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주인의 상황을 늘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오신다고 하셨지만 자꾸 늦추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늦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몇몇 분들이 짝을 지어 캠퍼스에 올라가서 합심해서 기도하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이들이 복음을 알도록 기도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깨어 있는 분들입니다.
반대로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면 그것이 영혼의 잠을 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 일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신자의 비범성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약속을 따라서 살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한 명을 섬기는 일에서 승리할 때 여러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 모든 일을 넉넉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내 생각만큼 빨리 오시지 않더라도 나는 반드시 주님께 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밤이 깊어가는 것을 볼 때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현재 죄와 싸우며 구원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의 육체까지 일시에 변화되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고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를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들을 구원하고 제자로 키워야 합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할까요?
42-4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첫째, 진실한 청지기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되어 있지만, NIV 영어성경에는 “The faithful and wise manager”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먼저 진실한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보나 안 보나 진실한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주인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디모데후서 2장 2절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종들은 한결같이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다보면 내가 기대하는 때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인내를 배웁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기도하게 됩니다. 한 목자님은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맡아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으로부터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 감정, 말과 태도, 계획과 행동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방법으로 때마다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주 일대일 성경공부와 모임을 합해서 열 팀을 섬기고 있습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말씀을 주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양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끝까지 충성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는 것은 열매보다 충성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충성하는 것이요 열매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둘째는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써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충성스럽지만 지혜가 없으면 주인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인에게 유익을 남길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실제적인 것들을 배웁니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도와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어찌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을 품을 때만이 남에게서 배웁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배웁니다. 손으로 달을 보도록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에게서 배우는 것은 그의 것을 그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를 배우는 것이요 원칙을 배우는 것입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혜는 사거리에서 소리치며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그 집종들’은 예수님의 양 무리를 가리킵니다. 또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시대 양 무리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양식을 나누어줄 자가 누구냐?” 물으심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자발적으로 그 일에 헌신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양들을 말씀과 맛있는 음식으로 먹일 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내가 양들을 먹이려면 깨어 있게 됩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배우고자 소원하게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어 줄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힘들지만 말씀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눌 때 행복합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지혜롭고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으로 모든 소유를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우리에게 복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그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할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습니다. 이 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신 후 오순절에 내렸습니다. 성령의 불이 붙자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불길처럼 세계로 번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까지 분쟁이 있을 것을 예견하신 것입니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사람과 자기가 왕이 되어 왕 노릇 하려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런 갈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갈등을 통해서 복음이 세상에 전파가 됩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집안에서 갈등은 더욱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분란을 통해서 가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화평은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또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이 시대를 분간해야 합니다. 지금은 종말이 아주 가깝습니다. 지구 종말 시계는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100초”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핵과학자회는 종말을 막기 위해 행동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인류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질적인 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빠르게 지구는 종말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마치 나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가는 시기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는 내가 해를 끼친 형제를 가리키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날에 그들이 나를 고발할 것입니다. “법관”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최후로 심판하실 재판관이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다 마치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행한 대로 이실직고하고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죽기 전에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판을 받고 나서 옥에 갇혀 빚을 모두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결이 내려지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 때를 따라 주의 말씀을 양들에게 나누기를 힘씁시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이때 더욱 깨어서 맡은 일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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