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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3년 눅22강(12:13-34) 염려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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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3-01-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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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22 강
말씀 | 누가복음 12:13-34
요절 | 누가복음 12:22

염려하지 말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오늘 말씀은 탐심(13-21)과 염려(22-34)에 대한 교훈입니다. 둘 다 돈에 관계된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없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예수님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적인 물질관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탐심을 물리치라.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본래 율법에 유산 중에 장자는 두 몫(2/3)을, 차자는 한 몫을(1/3)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형은 욕심이 많아서 유산을 동생과 나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피해자요, 약자인 동생의 요구를 들어줄 법도 한데 거절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14,15).” 예수님이 이 사람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셨지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그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그들이 다투는 이유가 탐심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탐심’은 좀 더 움켜주려는 욕심을 가리키는데 탐심은 결코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카네기에게 얼마나 더 벌면 만족하겠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1달러만 더”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 자족할 줄을 모르고 일 달러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탐심으로 다투는 이들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탐심은 부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탐심이 있습니다. 탐심으로 인해서 사람의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울 때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자기 편향적인 정보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확신이 더욱 강해지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자기 생각을 바꿀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탐심으로 인해서 죄를 짓게 되고 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소유가 많다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여기서 ‘생명(조에)’은 단지 이 땅에서의 삶을 지탱해주는 생물학적 목숨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와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또한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런 생명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주성 죄악(indwelling sin)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주성 죄악”이란 우리 인격의 중심부에 뿌리를 박은 죄악으로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은밀하고 내면적인 죄악을 일컫습니다. 내주성 죄악의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적 습관으로서 음심, 공상, 음란물 탐닉 등이 있습니다. 성격과 기질면에서 신경질, 화, 고집, 퉁명스러움 등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태도를 볼 때 미움, 시기, 질투, 교만, 경멸 등이 있습니다. 욕심으로서 그릇된 야망, 명예심, 탐심, 하나님 영광보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함 등이 있고, 그릇된 사고로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함, 편견, 선입견, 고정 관념 등이 있습니다. 이런 죄악은 우리의 인격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단번에 근절될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복잡한 요인들로 인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속적 회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할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젊고 아름다우면 상대적으로 삶의 만족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행복하다면 부자일수록, 학자일수록,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하셨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행복하다고 하셨고,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3-8). 원하는 것을 소유하면 일시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뿐 그것으로 끝납니다. 또 다시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합니다. 옷장에 예쁜 옷들이 가득하다고 행복감을 느낄까요?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는 3천벌의 명품 옷이 있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수백켤레의 명품 구두를 모았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멜다는 “탐욕은 자선이다, 모든 이들에게 나눠 주려면 일단 탐욕스럽게 모아야 한다.”라는 망언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전설의 사치가가 된 것은 남편의 외도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현모양처였지만 그 후에 남편의 외도를 알고 사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집에 산다고 행복감을 느낄까요? 처음 6개월 동안은 만족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의미해집니다. 뷔페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그때뿐, 하루가 지나가면 만족감은 사라집니다. 재물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행복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To have)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To be)에 달려 있습니다. 인격이 성숙해 감에 따라서 우리는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낍니다. 인격의 성숙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풍성한 삶은 물질적인 풍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한 삶입니다(12:21).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습니다. 주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집니다. 주는 자가 누리는 기쁨이 엄청납니다. 결국 주는 사람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며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한 부자의 비유를 예화로써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하인들과 함께 열심히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채소와 곡식을 가꾸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땅이 풍성한 소출을 얻게 하였습니다. 땅이 영양분을 내어서 곡식을 자라게 하지 않으면 많은 소출을 거둘 수 없습니다. 적당한 때에 비가 내렸고, 태양이 비추어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그는 곡간에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풍성한 소출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가뭄이 들거나 뜨거운 동풍이 불거나 메뚜기 떼가 몰려오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많은 소출을 얻게 되었으니 부자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수확한 곡식을 합당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둔 후에,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안정된 노후보장을 이룬 것입니다. 많은 재물이 자신의 인생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재물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17-19절에서 ‘내’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내가’, ‘내 곡식’, ‘내 곳간’, ‘내 모든 곡식’, ‘내 영혼’ 등 그는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청지기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재산이 분배와 나눔을 위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또한 인간의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은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칭하십니다. ‘어리석다’는 얼이 섞여서 분별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 목적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생명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하시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인간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집니다.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갈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일을 해서 집을 사고 살만 하면 병이 들고 모아 놓은 것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에게는 청지기 사상이 없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졌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나뿐인 사람’입니다. 줄임말로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취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만 생각하고 죽음 이후의 삶을 대비하지 않았기에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를 위해서 사용한 것은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집니다. 다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한 것만 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주와 복음을 위해서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100배, 1000배로 보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확신하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하나님을 섬기며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염려하지 말라(22-34). 제자들은 예수님이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자 염려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염려’의 어원은 ‘분열하다’, ‘나누다’입니다. 염려는 분열된 마음, 찢겨진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열매를 맺기 위한 기본 상식입니다.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보다 못한 음식과 의복은 당연히 주십니다. 제자들은 필요한 것을 신실하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비굴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당당해집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보면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염려하는 근본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까마귀와 백합화를 예로 들어서 제자들의 마음에 믿음을 심으십니다. ‘까마귀’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모이를 구하기 위해서 부단히 날고 노력하지만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새들을 돌보시고 먹이십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자의 태도입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먹고 살아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그 뜻대로 살 때 나의 삶과 장래를 책임져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우리가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며 근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것들을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구한다(seek)”는 것은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결과 인간은 죽도록 이마에 땀이 날 때까지 일을 하면서 먹고 살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저주 받은 인생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본래 인간은 사명의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 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만일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산다면 평생 버러지 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소유를 어떻게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드리고 복음 역사를 위해서 물질을 드리며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루터는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복음으로 살리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을 어디에 쓰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딤후 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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