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23년 신년1강(사 43:1-21)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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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년 제 1 강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2023년 1월 1일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새 날을 맞이합니다. 2020년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논문에서 우리의 몸도 매일 낡은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들이 생기고 자라서 80일만에 세포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즉 30조개의 세포 중에 매일 3300억개의 세포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그러나 뇌 신경세포와 눈 수정체 세포는 일생동안 교체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배우고 새로운 마음을 덧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를 운행하시지만 인간의 선택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면 쓸데 없이 일만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하시는 일을 보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는 잊어버리고 현재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하시는 일에 힘써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원문을 보면 “그러나 이제(But now)”로 시작합니다. 무슨 반전이 있는 것일까요? 앞의 3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42:23-25).”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불법을 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고 왕과 귀족들과 쓸만한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그들에게 쏟아부어서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참으로 한심하게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무감각하였습니다. 변함없이 죄악 가운데 거하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바벨론에서 나갈 수 있는가? 강대국 바벨론이 자신들을 놓아줄 것인가? 설령 그들이 놓아준다고 해도 고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대기업들도 허리띠를 조이고 있습니다. 신입사원들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이 아주 적습니다. 이로 인해서 청년들은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는 현재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어디까지 승진을 할 것인가, 못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려운 생각이 있습니다. 복음 역사를 볼 때도 어두운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에 무관심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였다는 것은 노예를 값을 주고 샀다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명하여 불렀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겠다는 것이요, 위로하고 사랑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관계를 기억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서남북에서 모을 것입니다(5,6). 이 예언의 말씀은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에 의해서 귀환과 성전 재건, 성벽 재건,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AD 70년에 또다시 로마에 의해서 멸망하여 온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은 또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한 회복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셔서 세상 각처에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교회 안으로 끌어 모으십니다. 이런 역사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나의 현재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대적임을 확신할 때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을 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홍수와 불은 환난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은 불구덩이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기도한다고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십니다. 고난과 상실과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십니다(롬 8:31-39).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연단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깊은 절망에 빠지면 주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 문제에 너무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또 자기편향적인 사고로 인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우리도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미래를 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일을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그가 유일한 구원자요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일을 알려 주었으며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미래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바벨론에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보내실 사람은 바로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해서 BC 550년 메대를 멸망시키고, 얼마 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리디아를 정복했고, 여러 소국들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바벨론 진격에 앞서 이란 고원 전역과 북서인도까지 이르는 영토를 확보한 고레스는 마침내 BC 539년에 바벨론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때 바벨론 내부의 여러 갈등과 분열들로 인해, 역사의 기록들은 그가 무혈입성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군사를 이끌고 바벨론에 쳐들어올 때 바벨론 귀족들은 자기들이 연락하며 즐기던 그 배를 타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당시 바벨론성은 수로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거기서 뱃놀이를 하다가 고레스가 쳐들어온다고 하니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킬 때는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일하십니다. 이방 왕 고레스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고자 하는데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며 거기서 즐거움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그들이 소수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새 일이 일어납니다. 새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3년 동안 행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온라인을 통한 말씀공부, 예배, 제자 양성, 세계선교보고대회, 선교지와 본국을 연결하는 말씀 공부 등 온라인을 통한 일을 하셨습니다. 비행기 삯도 들지 않고 국제적인 규모의 선교사 수양회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동일한데 일하시는 형태는 다릅니다. 우리 가운데 가정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자녀들과 부모의 관계가 더 친밀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합니다.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가야 합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전에는 하나님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사막을 물길로 바꾸어놓으십니다. 하나님이 사막을 초장으로 바꾸어놓으십니다. 광야에 강을 내어서 무수한 나무들이 자라게 되면, 목마른 들짐승들도 목마름을 해결하고 먹고 살아가는데 윤택하게 될 것입니다. 옛적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잡족들이 구원의 은혜를 누렸지만, 이제는 이리와 타조를 포함한 짐승들까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덕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사막에 물길을 내는 주된 목적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새로운 산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히10:20). 광야 같이 메마른 인생길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하고 감격적인 일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하늘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몇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과거의 하나님, 역사 속의 하나님, 기록물 속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일하시는 본질은 같으나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바로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킴으로서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으로부터 나올 때는 오히려 이방 왕의 도움을 받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는 예기치 않는 방식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런 하나님을 볼 때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 크신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현재의 형편이나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구속역사에 대해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새 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상황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복음 역사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하게 하시고 군인들이 변화되고 로마가 복음화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삶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도 대면 모임뿐만 아니라 비대면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변화된 세상은 새 일을 행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2023학번 양들이 들어옵니다. 대입시가 끝나고 이제 대학에 들어올 학생들을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세계 각처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제는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섬기며 세계선교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위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2월 초에는 전국 학생 연합 수양회가 있습니다. 동역자들과 함께 교제하며 비전을 나누는 가운데 새 해를 준비합시다. 우리가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이번 주부터 금요기도모임을 가족기도모임으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모임 가운데 새 일을 이루어주시도록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2023년 1월 1일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새 날을 맞이합니다. 2020년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논문에서 우리의 몸도 매일 낡은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들이 생기고 자라서 80일만에 세포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즉 30조개의 세포 중에 매일 3300억개의 세포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그러나 뇌 신경세포와 눈 수정체 세포는 일생동안 교체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배우고 새로운 마음을 덧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를 운행하시지만 인간의 선택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면 쓸데 없이 일만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하시는 일을 보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는 잊어버리고 현재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하시는 일에 힘써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원문을 보면 “그러나 이제(But now)”로 시작합니다. 무슨 반전이 있는 것일까요? 앞의 3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42:23-25).”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불법을 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고 왕과 귀족들과 쓸만한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그들에게 쏟아부어서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참으로 한심하게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무감각하였습니다. 변함없이 죄악 가운데 거하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바벨론에서 나갈 수 있는가? 강대국 바벨론이 자신들을 놓아줄 것인가? 설령 그들이 놓아준다고 해도 고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대기업들도 허리띠를 조이고 있습니다. 신입사원들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이 아주 적습니다. 이로 인해서 청년들은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는 현재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어디까지 승진을 할 것인가, 못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려운 생각이 있습니다. 복음 역사를 볼 때도 어두운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에 무관심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였다는 것은 노예를 값을 주고 샀다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명하여 불렀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겠다는 것이요, 위로하고 사랑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관계를 기억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서남북에서 모을 것입니다(5,6). 이 예언의 말씀은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에 의해서 귀환과 성전 재건, 성벽 재건,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AD 70년에 또다시 로마에 의해서 멸망하여 온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은 또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한 회복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셔서 세상 각처에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교회 안으로 끌어 모으십니다. 이런 역사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나의 현재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대적임을 확신할 때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을 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홍수와 불은 환난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은 불구덩이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기도한다고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십니다. 고난과 상실과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십니다(롬 8:31-39).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연단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깊은 절망에 빠지면 주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 문제에 너무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또 자기편향적인 사고로 인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우리도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미래를 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일을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그가 유일한 구원자요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일을 알려 주었으며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미래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바벨론에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보내실 사람은 바로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해서 BC 550년 메대를 멸망시키고, 얼마 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리디아를 정복했고, 여러 소국들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바벨론 진격에 앞서 이란 고원 전역과 북서인도까지 이르는 영토를 확보한 고레스는 마침내 BC 539년에 바벨론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때 바벨론 내부의 여러 갈등과 분열들로 인해, 역사의 기록들은 그가 무혈입성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군사를 이끌고 바벨론에 쳐들어올 때 바벨론 귀족들은 자기들이 연락하며 즐기던 그 배를 타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당시 바벨론성은 수로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거기서 뱃놀이를 하다가 고레스가 쳐들어온다고 하니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킬 때는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일하십니다. 이방 왕 고레스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고자 하는데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며 거기서 즐거움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그들이 소수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새 일이 일어납니다. 새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3년 동안 행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온라인을 통한 말씀공부, 예배, 제자 양성, 세계선교보고대회, 선교지와 본국을 연결하는 말씀 공부 등 온라인을 통한 일을 하셨습니다. 비행기 삯도 들지 않고 국제적인 규모의 선교사 수양회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동일한데 일하시는 형태는 다릅니다. 우리 가운데 가정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자녀들과 부모의 관계가 더 친밀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합니다.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가야 합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전에는 하나님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사막을 물길로 바꾸어놓으십니다. 하나님이 사막을 초장으로 바꾸어놓으십니다. 광야에 강을 내어서 무수한 나무들이 자라게 되면, 목마른 들짐승들도 목마름을 해결하고 먹고 살아가는데 윤택하게 될 것입니다. 옛적에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잡족들이 구원의 은혜를 누렸지만, 이제는 이리와 타조를 포함한 짐승들까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덕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사막에 물길을 내는 주된 목적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새로운 산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히10:20). 광야 같이 메마른 인생길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하고 감격적인 일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하늘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몇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과거의 하나님, 역사 속의 하나님, 기록물 속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일하시는 본질은 같으나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바로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킴으로서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으로부터 나올 때는 오히려 이방 왕의 도움을 받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는 예기치 않는 방식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런 하나님을 볼 때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 크신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현재의 형편이나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구속역사에 대해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새 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상황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복음 역사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하게 하시고 군인들이 변화되고 로마가 복음화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삶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도 대면 모임뿐만 아니라 비대면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변화된 세상은 새 일을 행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2023학번 양들이 들어옵니다. 대입시가 끝나고 이제 대학에 들어올 학생들을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세계 각처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제는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섬기며 세계선교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위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2월 초에는 전국 학생 연합 수양회가 있습니다. 동역자들과 함께 교제하며 비전을 나누는 가운데 새 해를 준비합시다. 우리가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이번 주부터 금요기도모임을 가족기도모임으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모임 가운데 새 일을 이루어주시도록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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