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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32강(25장)/착하고 충성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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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117회 작성일 03-10-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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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마태복음 제  32 강                                                378
말씀 / 마태복음 25:1-46
요절 / 마태복음 25:21

착하고 충성된 종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우리는 오늘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열처녀 비유(1-13), 둘째는 달란트 비유(14-30), 셋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첫째는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 둘째는 충성된 자와 악하고 게으른 자, 셋째는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과 저주를 받을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될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을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젊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고 나중에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재수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I. 열처녀의 비유(1-13)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아주 즐겁게 축하하기 위하여 신부와 들러리들은 신랑이 오고 있다는 통지를 받게 되면, 그들의 손에 등을 들고 나아가 격식을 차려 정중하게 불을 밝혀 신랑을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기름이 떨어질 때를 예견하고 대비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로운 자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미래를 예비합니다. 인생을 부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인생 전체를 생각합니다. 이런 자는 현재의 손익을 따지지 않고 현재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합니다.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손익 계산에만 급급합니다. 슬기로운 자들이 등과 함께 기름통을 가지고 다닐 때에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겁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미련한 자들은 당장 편하고 보기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이란 쉽고 편리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신앙생활하는 자들을 미련하게 보고 조롱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가장 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만일 그들이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가장 중하게 생각하였더라면 철저하게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들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준비성이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십자가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기름을 들고 가는 것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신랑을 사모하고 신랑을 맞이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평소에는 똑같아 보였지만 신랑이 불현듯 나타나게 되면 그 차이가 분명해 집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습니다. 아무리 깨어 있고자 해도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다 졸며 잤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잔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둔하여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실망하여 물러설 것입니다. “신랑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혼인 잔치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천국이란 있지도 않고 인생이란 그저 아무런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벧후 3:3-7)
 
  그런데 밤중에 소리가 났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이에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자들은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믿음은 빌릴 수도 없고 빌려 줄 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항상 미래를 예측하면서 대비하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천국 문은 한번 닫히면 열리지 않습니다. 은행문은 닫혀도 비상구로 들어갈 수 있지만 천국 문에는 비상구가 없습니다. 지금 천국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때이기 때문에(고후 6:2),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문이 언제까지나 무한정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천국 문은 닫히게 됩니다. 전철 문은 닫쳤다가도 신문지를 끼워 넣든지 억지를 부리면 다시 열립니다. 그러나 천국 문은 한번 닫히게 되면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문이 닫힌 후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간청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때 주께서 대답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그들이 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축복된 혼인 잔치에 참예하지 못하고 밖에서 슬피 울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 

 이상의 비유에서 등은 성도의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면 ‘기름’은 그 신앙생활의 원초적 힘이 되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내면생활과 성령, 믿음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61:1; 요일 2:20,27).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신자와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명목상의 신자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신자는 신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b)고 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자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믿음은 살아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반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자들은 진실된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을 좇아 살지 않고 육을 좇아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일찍 오든지 늦게 오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합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고 노후를 위해 적금도 들고 보험에도 가입합니다.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을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육을 위해서 노후의 삶에는 신경을 쓰지만 자기 영혼을 위해서 영원한 삶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영원한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하인이 한 사람 들어왔는데 주인이 보기에 너무나 우직하여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너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보이거든 지팡이를 그에게 주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지팡이를 받자마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에 어떻게 해놓고 가실 건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인은 그 질문에 당황하여 "아니, 그거야 아직 준비하지 못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아니, 사람들이 하루 여행길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법인데 영원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어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주인님이니, 여기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라며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만 생각하고 영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로마서 13:11,1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에베소서 5:14절은 말씀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II. 달란트의 비유(14-30)

  또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습니다. 각각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므로 금 한 달란트는 시가 3억원에 해당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가장 고귀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달란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유익을 남겨 드려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16,17). 이들이 바로 가서 장사를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머리와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정확한 정보와 지식, 판단력을 기초로 즉시 자본을 투자했습니다. 투자하려면 단호하고 치밀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 헌신하는 마음, 모험심이 없이는 투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장사하는 일에 자기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21, 23절을 보십시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을 하였습니다. 작은 일은 기본적인 일, 기초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은 사람들이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기본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입니다.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은 기본 동작 연습에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랬을때 어려운 동작도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려한 기술만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산업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기초 학문이 튼튼합니다. 그래서 이를 기초로 창조적인 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상업화시킵니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일대일과 일용할 양식 쓰기, 개인 기도 생활, 소감 쓰고 한 말씀에 순종하기 등 기초적인 것들이지만 이것이 잘 되는 사람은 웬만큼 해서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스프릿이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원리는 꼭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에게 맡겨진 작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큰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사람들은 한결같이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다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도 맡은 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충성심을 보시고 애굽의 총리로서의 큰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종이었습니다(히 3:2). 다윗도 아비의 양을 지키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을 때 골리앗을 이기고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시기 가운데서도 자기에게 오는 원통한 사람들, 빚진 자들, 환란을 당한 자들을 잘 감당하여 이스라엘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그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큰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충성이란 맡겨진 사명을 귀히 여기고 책임성 있게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충성에는 진실성과 지속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맡은 바 사명을 묵묵히 변함없이 책임성 있게 감당할 때 충성되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잘하다가 뒤에 가서는 흐지부지하거나, 또 책임을 맡았으나 무책임하게 할 때 충성되지 못하다고 합니다. 충성되지 못한 자는 세상에서도 쓸모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충성심이 요구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말씀을 두뇌회전이 빠른 스마트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2).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한 팀의 일대일과 같은 작은 일을 귀히 여기고 충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 그들은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장사를 잘하여 어찌하든지 주인에게 많은 유익을 남겨서 주인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지극히 사랑하고 주인에게 충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인과 바른 관계성을 맺기에 힘썼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주인이 보든 안 보든 맡은 바 일에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장사를 하고자 할 때 하기 힘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이나 캐나다같은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이 너무 교만하고 이기적이어서 제자로 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와 같은 후진국에서는 뿌리 깊은 의존심과 거지 근성 때문에 제자로 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장사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핑계가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장사를 잘하는 자들에게는 핑계가 없습니다. 복음 장사를 잘 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장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지혜도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착함과 악함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첫째와 둘째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착한 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떠했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18). 주인이 와서 회계할 때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24,25).”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이 주인은 종에게 많은 돈을 상당한 기간 동안 자유롭게 맡겼습니다. 그 당시는 종이 주인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칭찬이나 상급을 받는 문화가 아니었습니다(눅17:7-10). 그러나 이 주인은 종에게 많은 것을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인을 엄하고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피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했고 바보처럼 행했습니다.

  그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볼 때 악하고 게으른 것입니다. 그가 악한 것은 주인을 악하게 본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전혀 일하지 않았습니다. 게으름이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게으름을 정의해 보면 일하기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입니다. 그 결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또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미루어 버립니다. 그러면 사소한 일도 서툴게 하게 됩니다. 음악가 루빈스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가 알고 사흘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또한 게으름이란 마땅히 해야 할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분주한 것입니다. 그가 돈을 땅에 갖추었다고 해서 가만히 누워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을 게으름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든지 집중할 때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게으른 종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 영적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이 되었습니다.

III. 염소와 양의 분별 비유(31-46)

  세 번째 비유는 실제 생활에서 의를 행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장차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그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임금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이에 대한 임금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아무런 돈이나 재산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나 목자들을 가리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자를 말합니다. 아무리 도와주어도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무시하고 소홀히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이런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캠퍼스에서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돌보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연약하고 가난하고 헐벗고 불쌍한 자들을 돕는 것이 주님을 돕는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은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34)”며 축복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상속자들이 됩니다.

  반대로 왼편에 있는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임금을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임금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의인들은 무의식 중에 임금을 섬겼고 악인들은 무의식 중에 임금을 무시했습니다. 이를 볼 때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대했느냐에 의해서 평가가 달라짐을 보게 됩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명의 양, 일대일 한 팀에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칭찬을 다 들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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