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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31강(24장)/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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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158회 작성일 03-10-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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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마태복음 제 31 강                                                     
말씀 / 마태복음 24:1-51
요절 / 마태복음 24:30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장은 말세의 징조와 때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세상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재림 신앙과 기독교 역사관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역사관으로 볼 때 어느 지점에 와 있으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지 말씀을 통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1-14)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왔습니다. 당시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증축을 한 것입니다. 성전은  높은 대지 위에 세워졌는데 주위는 원주와 아름다운 문으로 둘러싸이고, 빛나는 대리석의 아름다움은 멀리 수 km의 땅에서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그 시대의 가장 장려한 건축물이었습니다.  통곡의 벽은 오늘도 볼 수가 있는데 커다란 석재를 쓴 하부구조는 경탄할 만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전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고 성전을 나오면서 이것들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예수님께서도 인정해야 한다는 투로 성전을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곳을 떠나기를 주저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롯의 아내와 같습니다(창19:24-26).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소식을 듣고 떠나가는 때에도 세상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 가면서도 노예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출16:3). 그들은 광야 생활이 힘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소망하기 보다는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지만 우리들은 세상의 편안한 삶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고 이곳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 과학 문명과 컴퓨터 기술, 우주산업, 로봇 공학, 자동차의 발전 등을 보면 인간의 능력에 대한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신기술의 발명들은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명의 뒷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죄악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인간의 죄악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죄악이 하늘에 사무칠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심판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헤롯시대 후에 성전은 거의 외국 지배 하에 놓여졌습니다. 대제사장은 문관으로 취급되고, 중앙정권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와 동조하고, 타협 내지는 심히 세속화했습니다. 로마 총독의 통치하에 있어서 성전들은 종종 3대 순례제(巡禮祭)등을 기회로 터진 폭동 때문에 유혈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은 성전을 점령하고, 기원 70년 성전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일곱 가지의 촛대, 성전의 성스런 기물들은 승리품으로 로마에 옮겨지고, 그것들은 티토의 개선문의 부조(浮彫)에 나타나 있습니다. 헤롯 성전의 멸망일은 기이하게도 아빕월의 9일로서, 이것은 제1성전 멸망과 같은 날입니다.  그때 이래, 이것을 슬퍼하는 금식의 날로서 각지의 유대인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식의 신전이 건설되고, 아라비아 시대(기원 7세기)이래, 이슬람의 사원인 [암석의 돔]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란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먼저 세상 끝 날에 임할 징조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종말의 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세상 종말에는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첫째,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종말이 가까워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두렵고 조급하여 거짓 메시야에게 잘 넘어가게 됩니다. 특히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며 회개가 없는 사람은 쉽게 미혹이 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재림주가 10명 이상이 됩니다. 이미 타계한 재림주도 있고 감옥에 있는 재림주도 있습니다. 그리고 70여개의 거짓 그리스도와 이단 종파가 있습니다. 여기에 미혹된 사람이 약 1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무엇으로 미혹할까요? 성경을 통해서 미혹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이 넘어가기 쉽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단들의 교리는  매우 논리적입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짜맞추었습니다. 그러므로 논리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논리를 뛰어 넘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다고 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사단도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적 신앙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인격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재난의 연속입니다(6-8). 6,7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각 곳에서 난리가 일어나고 난리 소문이 풍미하게 됩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습니다.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무기로 인해서 많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반도를 금세기 최고의 화약고로 보고 있습니다. 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게 됩니다. 유니세프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가 세계적으로 매년 1200여 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의 1/3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기근으로 100만명이 죽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식량 생산이 많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진은 200년 전부터 갈수록 빈도수가 급격히 증가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입니다.
 
셋째,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증가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성도들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고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미워합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3:1-4절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13). 재난이 심하게 되면 견디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믿음을 저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배반하게 되면 구원을 얻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키려면 개인 신앙이 분명해야 하고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서로 돌아보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환난들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NIV영어 성경은 “All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s.”이라고 했습니다. 재난을 의미없는 고통이 아니라 해산의 고통과 같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의미있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처음에는 주기가 길다가 점점 빨라집니다. 이와같이 인류 역사의 재난도 그 주기가 완만하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해산의 고통이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는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종말이 임하는 표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선교를 함으로써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미전도 종족이 2만 오천 종족쯤 됩니다. 대부분이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유럽도 신자의 수가 5% 이내로 떨어져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은 개종하면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됩니다. 그들은 뜨거운 형제애와 강력한 선교를 국가 정책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군대도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이슬람의 군대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유럽은 종교 자유라는 미명하에 이슬람에 동조하고 있고 이슬람의 세력이 유럽에서 급격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이들의 개종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또 세계사를 구원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 안에서의 계시’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 인식을 가지고 이 민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 놀라운 영적부흥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세계의 모든 신학교는 학생들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지원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교를 한국 학생들이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또 수없이 많은 청년들이 세계 선교에 헌신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이민 열풍이 젊은이들 사이가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쓰셔서 세계 구원 역사를 힘차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40년 안에 수많은 대학생들을 성경 선생으로 키우고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15-51)

  15-22절은 가깝게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 장차 있을 환난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이 말씀은 신성모독을 의미합니다. 이 예언은 주전 167년에 시리아의 통치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단이 있는 곳에 헬라의 제우스를 위한 신전을 세웠습니다. 주전 40년에도 로마 황제 갈리굴라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의 상을 세우려고 했었고 주후 70년에는 로마의 티토 장군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오늘날에도 절대적으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예배당뿐만 아니라 신앙의 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가증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7000만의 성도를 가진 큰 교파인데 동성애자를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전세계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증한 일들이 계속됩니다. 

  68년 웨스 파사누스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했을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많은 성도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 70년에 멸망할 때에 100만명 이상이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환난이 임할 때에 물질에 매이면 안됩니다(17,18). 환난의 때에 세상일에 얽매인 사람일수록 피난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환난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실 것입니다(22). 그때에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야합니다. 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임합니다(27). 메시야가 오시는 것은 은밀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까요? 29,30절을 보십시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대환난 후에 죽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 소리에 놀라 기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됩니다. 영화 아마겟돈, 인디펜던스 데이, 딥임택트는 아무 것도아닙니다. 아마겟돈이나 딥임팩트는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내용입니다. 충돌혜성을 파괴하기 위해 소련과 합작으로 우주선 '메시아호'를 제작해서 전 인류의 운명을 걸고 우주로 쏘아 핵폭탄으로 혜성을 파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게 될 행성 충돌은 한두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천재지변 속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입니다.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기가 지은 죄와 그로 인한 심판으로 인해서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각인이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말구유에 오셨을 때는 비천하고 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가시 면류관대신 금 면류관을 쓰고 홍포 대신에 가슴에 금띠를 띤 빛난 옷을 입으시고 그 손에는 만국을 심판하실 홀을 들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신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31절을 보십시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 때에 비행기를 타고 가던 사람,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크리스챤들을 천사들이 모을 것입니다. 원어 성경에서는 하늘을 복수로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주선을 타고 하늘들을 여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과학 문명이 그 정도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문명의 발달과 함께 죄도 극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나누면서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사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 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참된 희망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18).

  예수님은 세상 끝날에 있게 될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종말의 때를 알라고 하십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게 되는 때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과 거룩한 곳을 가증한 것이 더럽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표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이 최고조에 달하고 악의 세력이 극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시지만 그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예수님의 임하심도 그러할 것입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사명이 없이 육신적인 일만 추구하게 되면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에 주님께서 임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이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 조소를 보내고 있을 때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45절을 보십시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양들에게 때를 따라서 말씀으로 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하여 양들의 문제를 도와서 건강하게 만듭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이듯이 충성스러운 목자는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이기에 부지런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알아서 밥을 찾아 먹으라고 해 보십시오. 밥을 먹지 않고 과자나 먹고  빼빼 말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병에 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때를 따라 말씀으로 먹이려면 목자가 깨어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길 것입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해야겠습니다. 역사의 주역은 일대일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만민 구속 역사를 힘차게 진행하고 계시며 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세계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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