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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04년 추수감사절 특강(골로새서 1:13-2:7) /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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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233회 작성일 04-11-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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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추수감사절 특강
말씀/ 골로새서 1:13-2:7
요절 / 골로새서 2:6,7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나님께서 올해도 우리에게 풍년을 주셨습니다. 서민 경제가 어렵지만 우리는 감사 제목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추수 감사절은 구약 성경의 맥추 감사절(레23:9-14)과 장막절에서 유래합니다. 오늘날 추수 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구교도의 박해를 피해 1620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 추위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그들은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하고 인디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처럼 청교도들이 추위와 시련을 이겨내고 거둬들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일주일간 감사 축제로 드림으로서 계속되었습니다. 그 후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한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믿음으로 노예해방을 단행하고 워싱턴 함락 위기에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예제도는 불의라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암살자의 흉탄에 그는 숨졌으나 미국은 민주와 자유의 기반 위에 통일된 연방국가가 됐고 노예해방은 이루어졌습니다.1864년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주를 추수감사절로 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추수 감사는 그저 평안한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하고 의의 싸움을 벌이는 순교적 신앙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순교적 신앙이 없으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그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9년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감사절을 변경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904년부터 지키게 되었습니다. 제 4회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 추수감사절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1월 10일을 감사일로 선포했습니다. 이후 1914년 각 교파 선교부 회의를 통해 미국 선교사 최초 입국일인 11월 셋째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지만 곧 주일로 바뀌게 됐습니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시기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환경과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논의가 분분합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일회적인 절기로 지켜지기보다는 날마다 삶 속에서 감사절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향연과 이웃을 사랑하는마음을 함께 나누는 감사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많은 감사 제목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골로새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깊이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부터 감사가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죄사함을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1장 13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은 죄와 죽음을 말합니다. 흑암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흑암 아래 있는 사람은 어두운 길을 걷는 것처럼 더듬더듬 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삶의 희망이 없고, 삶의 방향이 없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없습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이고, 패배적입니다. 깊은 운명 주의에 시달립니다. 더럽고 추한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내 자신이 어두우면 세상이 모두 어둡게 보입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옮겼다”는 것은 국적과 신분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영벌에서 영생으로, 죄악에서 의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빛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평화가 넘치고 사랑이 충만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위로가 넘칩니다. 삶의 의욕이 충만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구속 곧 죄사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결코 죄사함이 없습니다. “구속”이란 일정한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죄와 죽음의 노예, 두려움의 노예, 좌절과 무기력과 허무의 노예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 값으로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을 구속하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좌절로부터의 자유, 무기력과 허무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셔서 심판에서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죄사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둘째,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형상”이란 원형에 대한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가 되시고 창조주가 되시되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천사들, 모든 것들이 그로 인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속에서 질서가 있고 아름다우시고 다양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만나게 됩니다. 가을 단풍 나무와 은행 나무의 아름다운 빛깔, 소나무, 전나무, 회양목의 푸르름, 감나무의 풍성함, 뿐만 아니라 배, 사과, 밤, 포도, 딸기, 귤, 고구마, 감자, 흰쌀밥 등등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열매로 인해서 우리는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사 주님의 창조 세계를 보게 하시고 삶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잘 자고 걸어다니게 하신 것을 인해서 감사합니다. 숨을 자유롭게 쉬고, 눈을 자유롭게 깜빡거리게 하시고 배설을 잘하게 하신 것 자체도 감사해야 할 제목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병든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신 은혜를 찬송합니다.
셋째,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머리는 몸을 대표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모두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로 모일 것입니다(엡1:10). 그와 연합된 신자들은 머리이신 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통하여 영양분을 공급받고 자라게 됩니다(골2:19).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는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다”(골2:9-10).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의 인도하심과 행하심에 따라 지배되고 통제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고 다스리심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충만이 그 안에 거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요1:14). 20-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충만히 임했기 때문에 그 충만은 하나님과 만물을 화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이루어진 화평입니다. 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만물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되었던 우리가 화목케 되었습니다. 22b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하고 흠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심입니다. 23a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우리가 예수님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초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을 바 복음의 소망을 굳건히 지키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반복하여 강조하건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은 어떤 새 삶을 살아야 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주”라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롬10:9).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심은 복음의 핵심이요, 복음의 진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하면, 섬기는 종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님 등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로, 그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행한다”는 뜻은 KJV에는 walk in Him이라고 했고, NIV에 보면 continue to live in Him이라 했습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고동락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멈추시는 곳에 내가 멈춥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밤에 불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출발하면 출발했습니다. 낮에 구름 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출발하면 출발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분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성경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나의 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죽음으로 여기는 삶을 말합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삶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뿌리를 박는다”는 뜻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완료형 분사로, 주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는 것은 이미 완료된 기정사실이고, 이제 뿌리를 내렸으니 계속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그 뿌리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진 나무는 비바람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뿌리를 예수님께 깊이 내리지 않으면 작은 역경과 환난에 넘어지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구원과 부르심에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합니다. 구원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제자에서 부처의 제자로, 니체의 제자로, 때로는 히틀러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의 권세에서 불러내어 사랑하는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구원의 은혜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비전이나 사귐(fellowship)이나 목자에게 뿌리를 내려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여러 종류의 사역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캠퍼스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캠퍼스의 부르심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비록 캠퍼스 지성인 사역이 어렵지만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변함없이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가운데 캠퍼스 지성인 사역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캠퍼스는 무한한 인력의 저수지입니다. 한 사람을 키우기가 어렵지만 그 한 사람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한 나라로 보고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부르심에 깊이 뿌리를 박을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되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1:3).
셋째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감사를 넘치게 한다는 말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듯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축복을 받을 때, 일이 잘 풀릴 때 뿐 아니라 어려울 때에도 감사의 생활이 몸에 배어 일상화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바 교훈에 충실하고 믿음에 굳게 설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3:16,17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합니다(골4:2).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엡5:20).
우리가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은 죄의 뿌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치 않았을 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불평하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대신에 원망과 불평이 자라게 됩니다. 감사가 말라 버리면 생명력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했습니다. 이를 볼 때 감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역동적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을 모두 나열한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로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은혜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영원토록 감사해.”

시50: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사람을 두드러지게 만듭니다. 같은 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평과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신 상황이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해야겠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시107:21).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문제 속에서 감사할 때 문제를 극복할 믿음이 생기고 도전 정신이 생깁니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 감사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빛이 임하고 문제를 해결할 지혜가 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찬양과 감사로 채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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