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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04년 누가복음 제 19 강(눅9:18-27)/하나님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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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2,732회 작성일 04-12-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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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누가복음 제 19 강                                               
말씀 누가복음 9:18-27
요절 누가복음 9:20

하나님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말고사를 치루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제까지 자신이 누구신가 말씀과 기적과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고백에 기초해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길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제자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점검하고 제자의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I. 하나님의 그리스도(18-22)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일에 힘쓰셨는데 특별히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실 때나, 오늘과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양들의 회심을 위해서 목자의 중보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름 수양회에서 말씀이 강력하게 일어나도록 하려면 우리의 합심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보고 체험하려면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종들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주역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객관식으로서 예수님의 지난 사역을 점검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확인해 보는 기말고사를 보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말씀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19).” 무리들은 예수님을 좋게 보았지만 구원자로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복 주시는 분,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해서 매우 피상적인 견해입니다.

  무리들의 반응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셨습니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는 그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오래 동안 관계성을 맺어 왔는데 왜 이 시점에서 이것을 물으실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구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살피셨습니다. 특히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거듭남의 문제를 깊이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이 질문은 한 단계 더 높은 신앙 훈련을 위한 점검이었습니다. 즉 그들에게 십자가의 삶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한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영생에 관계가 된 것입니다. 요17: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는 구원 자체보다 구원자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은 이기적인 동기이지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은 그를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알과 같이, 우상과 같이 생각합니다. 샤머니즘에 물든 한국 백성들은 예수님을 복주는 분으로 압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분으로 아는 분도 있습니다. 그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만 알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20b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하나님의 그리스도란 헬라어로 톤 크리스톤 투 데우(To;n Cristo;n tou' qeou')로서  하나님의 그 그리스도란 뜻입니다. 여기서 강조는 ‘그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메시야의 유일성을 말하는 것이고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로서 정통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시오 그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스리는 왕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중재하고 중보하는 대제사장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왕이시오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하시는 대제사장이시오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이심을 말해줍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을 가르쳐 주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눅24:27,44).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인데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를 어두움과 죽음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구원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거나 고행을 하거나 선행을 하는 등 자력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모든 죄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계는 먼저 자신이 죄인됨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죄를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은 죄에 대해서 속수무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옥 문턱에서 벌벌 떨면서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을 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제사제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예표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인생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다 보면 우리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병들면 병원에 찾아가고 의사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완치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열심히 일하면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잊고자 하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고 양심을 찌릅니다. 죄책감으로 자살을 한다고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죄와 죽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와 그로 인한 해악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인간의 모든 죄는 “무한히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노하고 계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분노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을 철저히 징계하셔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스스로 죄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구원자를 예비하셨습니다. 창3:15절에 처음으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 나실 메시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2-14).” 예수님은 자기 피로써 우리를 이기심과 정욕과 미움과 슬픔과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어두움 가운데 소망없이 앉아 있던 우리 인생 가운데 큰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이제 이 구원자 예수님 안에서 누구든지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셋째,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저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동시에 이 왕께 철저한 충성과 순종을 다 바칠 것을 다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왕이시오, 이 땅의 모든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모사요 카운슬러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사9:6).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스림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 행복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내신 유일하신 구원자시오,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이 신앙 고백이 베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나의 왕으로 영접한다는 고백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셨고, 좋은 친구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구주와 죄인으로서, 왕과 신하로서 관계성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이는 나의 존재의미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내 인생을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왕되신 주님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고백입니다. 일생 왕되신 주님을 높이고 주님께 충성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 신앙 고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마서 10:9,10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던 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두움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그 신분과 소속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 얻는 믿음이란 예수님께 대한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위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고 나는 구원받은 죄인임을 고백함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 생활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의 고백을 기초로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설령 우리가 연약하여 주님을 배반하고 떠날 지라도 이 신앙 고백이 있기에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이 신앙 고백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순간 순간 주님께 사랑 고백을 함으로 연합의 관계는 깊어지고 믿음은 강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 문제뿐만 아니라 내가 돕고 있는 양들이 진정으로 중생의 체험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회심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종종 종교적인 일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메시지가 새롭게 들립니다. 성경이 새로운 책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빛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성경책만큼 즐거운 책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와 사람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공허하던 마음에 충만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죄사함을 체험함으로 날아갈 듯이 기쁘고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이 느낍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매우 사랑스럽게 보이고 원수마저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르다고 해서 힘들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얻는 문제는 세상의 어떤 다른 일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문제에 최우선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칠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믿음의 고백을 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계하신 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말씀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일어날 고난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사실 그는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합니까? 이사야 53장은 이를 잘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 뿐아니라 부활 승천하사 이제는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로 승리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Ⅱ.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23-27)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는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처음 은혜를 체험할 때 온통 생기로 가득했던 영혼이 점차 둔감한 상태로 변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너무나 많은 “부패”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려는 사람들에게 제자로서 치루어야 할 대가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자기입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고 더 높으며, 더 지혜롭기 때문입니다(사55:8,9).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부인해야할 죄악된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요소들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율법 즉 진리를 앞세울 때 우리는 자유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영접하고자 할 때 그 당시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자기 부인의 본을 가장 잘 보이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나는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함으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둘째,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 내면적인 생각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자기 십자가”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인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사명의 십자가를 질 때만이 인간다워집니다. 우리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배우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과 내면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조각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부활의 생명을 덧입는 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속사람이 강해지고 영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되고 실제적인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십자가를 지되 날마다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매일 십자가를 지지 않고 학생 때만 한시적으로 지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축복을 받을 때만 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날마다 져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힘들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줘주시기 때문에 가볍습니다.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내면이 강해집니다. 여러 개의 십자가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성숙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을 때 어떤 약속을 해주셨습니까? 24,2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가 세상에서 원하는 것들을 다 얻고자 할 때 주님을 배울 수 없습니다. 시간은 나에게 무한정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한된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 손해를 보고 핍박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소중한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고 풍성한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가지 않을 때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세상 조류에 떠내려가  믿음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차 예수님의 재림 때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장차 예수님께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26)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기 부인할 것과 져야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좇으므로 주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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