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누가복음 2004년 누가복음 제 7 강(눅4:1-15)/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2,816회 작성일 04-12-12 22:39

본문

2004년 누가복음 제 7 강                                                395,363,396
말씀 / 누가복음 4:1-15
요절 / 누가복음 4:8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치열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도 마귀의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첫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1-4)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에게 이끌리며 광야로 가사 사십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 하루만 굶어도 죽는 줄로 생각하고 음식을 찾아 먹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40일을 굶으면 힘이 빠지고 살도 빠지고 움직이기도 어렵게 됩니다. 또한 이는 죽음이 코 앞에 닥친 위기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떤 자입니까? 마귀는 복된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과 죽음을 이 세상에 가져왔습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은 더럽고 추악해지고 흉악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사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시고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 하던 데서 불러내어 40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 넘어졌습니다. 마귀는 옛 뱀으로서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계12:9).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 죄를 범함으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서 죄악을 조장하고 후원합니다. 거짓의 아비요 인간을 종으로 삼고 이용하다가 죽이고자 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마귀는 헛된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 퍼뜨리고, 음란하고 죄악된 유행과 풍조들의 배후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을 시험하여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범죄하게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구원자가 되기 위해 인류의 대표로서 친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범죄치 않는 의인만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주의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졸업 논문을 쓰려면 자격 시험을 치루는 것과 같이 구주가 되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셔야만 했습니다. 또한 사단의 시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시험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고 우리를 깊이 이해하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처음에 던진 시험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원하시면 돌들에게 명하여 빵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지금 40일 동안 굶어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시험이 될까요?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야 대관식을 치루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메시야로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로 오셨는데 자신을 위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명도 좋지만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유혹입니다. 이것은 사명이냐 목숨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먹는 문제는 그렇게 거창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는 문제는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담도 먹는 문제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먹이셨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에 빠져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엎드러졌습니다. 사람은 먹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고 싸우고 전쟁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사명도 좋지만 먼저 취직을 하라.”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더 넓은 집이 있어야 되고 차도 있어야 하고 더 좋은 컴퓨터도 있어야 하고 자녀 교육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돈 버는 일에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우리가 삶의 주안점을 먹는 문제에 두게 되면 평생 그 문제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것이 사단이 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보셨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사람은 육체와 함께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밥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밥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먹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을 믿고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굶어 죽어도 하나님을 믿고 사명인으로 살고자 투쟁하셨습니다. 이는 욥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욥에게 주어진 사명은 고난을 견딤으로써 “사람이 축복을 받아야만, 축복을 받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섬긴다”라고 하는 사단의 주장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그 사명을 성취했습니다. 비록 이로 인해 욥은 자신에 대한 격한 의심과 회의가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 고난의 근원이심을 알지만 그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여전히 그를 신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린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할 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마6:3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설령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하셨고 말씀으로 살고자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생명력이 있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순종하는 데서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요 생명이며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요 죽음입니다. 더욱이, 죄로 인하여 불행과 죽음 아래 처한 인생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 곧 구주 예수에 대한 말씀은 영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떡으로만 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청년 실업이 매우 심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직장으로만 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위해서 살면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을 것을 주십니다. 육신의 생명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이 세속 정신에 휩쓸려 떠내려 가게 됩니다(히2:1). 우리가 신자요, 목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라(5-8)

  마귀는 또 예수님을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귀는 먼저 육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도록 예수님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이제는 즉시 세상 왕국을 눈 앞에 보여 줌으로서 안목의 정욕을 자극했습니다. 대중들의 환호, 휘황 찬란한 왕궁, 쌓아 놓은 금은 보화, 휘두르는 권력, 엄청난 군대의 사열 등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6,7).”였습니다. 사람은 배고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를 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인기나 좋은 평판을 얻기 원합니다. 이 때문에 형제들은 자매님들의 사랑을 구하게 되고 반대로, 자매님들은 형제들의 사랑을 구하게 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6)”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마귀를 ‘이 세상의 신’이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표현했습니다(고후 4:4, 엡 2:2). 또 ‘온 세상은 악한 자(곧 사탄) 안에 처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요일 5:19). 또한 이 세상의 권세와 부귀, 영광이 마귀가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이라고 보여 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마귀의 손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는 세상 권세가 다 하나님께로 나며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말씀했습니다(롬 13: 1).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롬 11: 36).

  마귀의 제안이 거짓에 근거해 있지만 예수님은 장차 세상 권세와 영광을 다 받으셔야 합니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셔야 합니다(요17:2). 그런데 마귀가 자기에게 절을 하면 다 주겠다고 하기 때문에 유혹이 되었습니다. 마귀의 이 수법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세상을 취하려는 자는 이 시험에 넘어져 하나님 대신 마귀를 섬기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권세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억원씩을 가지고 힘있는 사람들에게 절을 하면서 청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리를 보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목숨과 바꾼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권세는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세상 권세는 임의로 주관하려고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얻기 위해서 행하는 행태를 보면 역겹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타협하자고 하는 마귀의 초청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이 세상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마귀인 자신과 싸우지 말고 타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동시에 마귀의 이 말은 예수님께 대한 위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타협하지 않으면 세상의 영광이나 어떤 권세의 맛도 볼 수 없다는 위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와 타협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제안에 대한 예수님의 단호한 결단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예수님은 마귀를 대적하시면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천사였던 마귀도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오 피조물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헛됨을 잘 아셨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일 2: 15). 또 야고보서에도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약 4:4). 세상을 취하려는 자는 하나님 대신 마귀를 따르게 되고 그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기가 없는 채 살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합당하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겨야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경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단어는 “만”이라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우리의 경배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경배해서도 안됩니다. 형제가 자매를 ,자매가 형제를 경배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권세와 영광보다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9-15)

  이제 마귀는 예수님을 영적인 수준에서 시험하였습니다. 이때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시 91:11,12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유혹하였습니다. 마귀가 시험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는 예수님께서 곡예 서커스를 하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칭찬과 명성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마귀는 예수님에게 자기 과시욕을 부추켜서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뛰어 내려 사뿐히 내려앉으면 기적을 좋아하는 유대인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게 되어 결국 하나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나님께 그릇된 표적을 구하도록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마귀가 요구한 것은 확신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과 자기 과시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수단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방식으로 기적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기적들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역사상 기적들을 통해 다 확증되었고 그것들이 다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치 말고 성경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와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왜곡시켜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일부러 죄를 짓고 나를 치시면 사랑하시는 증거로 알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시험기간이 되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서 이번 시험에 좋은 성적이 나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표로 알겠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그 돈을 저축해 놓고 풀타임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센타 건축을 하고자 하오니 꼭 로또 복권에 당첨하게 해 주셔야 한다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순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믿지 못해서 시험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얼마 동안’이라는 말은 마귀가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예수님을 시험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가 그러하였다면, 우리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에서 “우리로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며”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고전10:13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승리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여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시험을 이기면 더욱 강한 성령의 권능을 덧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러 회당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인생들이 불행하게 된 근본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빵만으로 살고자 할 때 시름시름 앓다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 때 힘있고 신령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진정으로 행복하고 열매가 풍성할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77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83 누가복음 섬김이 3304 12-14
182 누가복음 섬김이 2732 12-14
181 누가복음 섬김이 2781 12-14
180 누가복음 섬김이 3350 12-14
179 누가복음 섬김이 2766 12-14
178 누가복음 섬김이 2618 12-14
177 누가복음 섬김이 2730 12-14
176 누가복음 섬김이 2812 12-12
175 누가복음 섬김이 2752 12-12
174 누가복음 섬김이 2827 12-12
173 누가복음 섬김이 2816 12-12
열람중 누가복음 섬김이 2817 12-12
171 누가복음 섬김이 2963 12-12
170 누가복음 섬김이 3022 12-12
169 특강 이엘리야 3375 12-0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