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05행18강(21:17-23:35)/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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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사도행전 제 18 강
말씀 / 사도행전 21:17-23:35
요절 / 사도행전 23:11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전도할 기회를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비전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만의 비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21:17-22:29)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과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기꺼이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문안하고 이튿날 선교보고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보고대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울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자신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던 사건, 빌립보에서 일어난 루디아와 간수의 변화, 에베소에서의 제자 양성과 말씀 역사 등등 하나 같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핍박도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듣고 저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바울의 가르침이 유대인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들렸습니다. 바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닥칠 고난을 생각할 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은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입니다(24). 그러면 모든 사람이 바울에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바울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입니다. 그들은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이해가 유대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핍박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고보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서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복음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같이 되고자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 담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그 담을 넘어 성전으로 들어오면 쳐 죽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율법적이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고 영접하고자 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단정을 내리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삐딱하게 보자 모든 것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돌로 쳐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때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을 듣고 군대의 천부장이 달려왔습니다. 그는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기 때문에 알 수 없어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들이 폭행을 가하므로 바울을 번쩍 들어 올려서 영문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생명은 위태로웠습니다. 바울로 인해서 천하가 소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바울은 백성들에게 변론할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헬라말로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무지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안타까운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바울은 롬9: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도 이를 감당치 못하고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몹시 슬펐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한 때는 그들과 같은 행동을 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만 어찌하든지 그들을 설득해 보고자 층계 위에서 결박된 상태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보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 증거자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복음을 증거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복음을 증거할 영적인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소란스럽게 데모를 하는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면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제 봄학기가 왔습니다.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내용으로 복음을 전했습니까?
22:1-5절에서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했고 6-16절에서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리스트를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고 죄사함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예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7-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급히 복음을 증거해야 할 때 나의 인생 소감을 간략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체험한 예수님을 증거하면 깊은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다는 말까지 듣고 그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그리하여 그들은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죽줄로 바울을 기둥에 맬 때에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25)” 백부장이 듣고 천부장에게 말하니 천부장이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자신은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라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했습니다. 바울은 채찍을 맞아야 할 때와 맞지 않아야 할 때를 잘 분별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했지만 필요 없는 고난을 받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학증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지혜롭고 성숙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시간과 건강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신 비전대로 이후 그는 총독과 왕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Ⅱ.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22:30-23:35)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바울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여러분 부형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아직 재판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을 치라고 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문제를 지적하였지만 동시에 곁에 선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는 말에 대해서는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성경에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공회가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즉 자신은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로서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은 죽지 아니할 줄을 믿었습니다(요11:25,26). 그때 신자들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불의를 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영생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했고 죽음에 직면해서도 용기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합니다. 그들은 시간과 돈에 대해서 매우 쩨쩨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삶을 살아보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썩고 더럽게 되고 쇠하게 됩니다. 젊음도 시들어지고 꽃도 활짝 피었다가 어느새 떨어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물질에 대해서 관대할 수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대신에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건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체포되고 죽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바울의 태도는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 때문에 희생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기대합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담대하고 강하게 만듭니다. 이 소망 때문에 사도 바울, 베드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과 복음 역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해서 심문을 받는다고 말하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고 함이었습니다. 크게 소동이 일어나자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 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회 안에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날 밤에 바울은 답답한 장래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고자 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옥에 갇혀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만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감옥 속에서 혼자 있을 때 고독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혼자서 이 길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부활하신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때마다 바울과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위로는 하늘의 위로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어라고 미워하고 고소하고 때리고 없이 하고자 할 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바울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것 이상으로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서서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고 힘을 주시고 넘어지려고 할 때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무한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 곁에서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는 목자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에게 선교 비전을 주셨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나서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고 했습니다. 그의 비전을 주님께서는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로마는 복음을 세계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거점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선교에 대한 불타는 비전을 감옥에서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처할수록 비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어두운 동굴 속을 걷고 있을 때에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간직한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실 때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날로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양의 양과 동역자라도 변함없는 겸손과 사랑으로 섬깁니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시작합니다. 때로 자신의 죄성으로 넘어지고 많은 허물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겸손히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순종의 투쟁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학생들의 목자요 영적인 아비요 어미로 쓰시고자 부르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다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대로 우리 각자를 대학생들의 목자로 쓰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홍대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굳게 서고 홍대 동아리 방이 학생 양들로 북적거리며 센터가 비좁을 정도가 되기까지 양들로 차고 넘칠 비전을 덧입어야하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한 사람 이상 양들을 양육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목자님들 안에 더욱 형제애가 자라나서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이 모임에서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이 새자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즉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이 맹세한 대로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다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맹세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쓸데없는 맹세를 했다가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사십 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울을 처치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조카가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는 사실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했습니다.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예화된 로마 군병 470명이 동원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바울을 보호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여 총독 벨릭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까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까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보호하시고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약한 마음을 먹은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고 구원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배웠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용기가 있게 되고, 인생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비전이 보이게 됩니다. 어떤 고난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 / 사도행전 21:17-23:35
요절 / 사도행전 23:11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전도할 기회를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비전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만의 비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21:17-22:29)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과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기꺼이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문안하고 이튿날 선교보고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보고대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울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자신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던 사건, 빌립보에서 일어난 루디아와 간수의 변화, 에베소에서의 제자 양성과 말씀 역사 등등 하나 같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핍박도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듣고 저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바울의 가르침이 유대인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들렸습니다. 바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닥칠 고난을 생각할 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은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입니다(24). 그러면 모든 사람이 바울에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바울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입니다. 그들은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이해가 유대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핍박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고보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서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복음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같이 되고자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 담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그 담을 넘어 성전으로 들어오면 쳐 죽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율법적이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고 영접하고자 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단정을 내리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삐딱하게 보자 모든 것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돌로 쳐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때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을 듣고 군대의 천부장이 달려왔습니다. 그는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기 때문에 알 수 없어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들이 폭행을 가하므로 바울을 번쩍 들어 올려서 영문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생명은 위태로웠습니다. 바울로 인해서 천하가 소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바울은 백성들에게 변론할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헬라말로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무지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안타까운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바울은 롬9: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도 이를 감당치 못하고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몹시 슬펐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한 때는 그들과 같은 행동을 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만 어찌하든지 그들을 설득해 보고자 층계 위에서 결박된 상태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보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 증거자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복음을 증거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복음을 증거할 영적인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소란스럽게 데모를 하는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면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제 봄학기가 왔습니다.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내용으로 복음을 전했습니까?
22:1-5절에서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했고 6-16절에서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리스트를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고 죄사함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예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7-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급히 복음을 증거해야 할 때 나의 인생 소감을 간략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체험한 예수님을 증거하면 깊은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다는 말까지 듣고 그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그리하여 그들은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죽줄로 바울을 기둥에 맬 때에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25)” 백부장이 듣고 천부장에게 말하니 천부장이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자신은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라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했습니다. 바울은 채찍을 맞아야 할 때와 맞지 않아야 할 때를 잘 분별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했지만 필요 없는 고난을 받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학증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지혜롭고 성숙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시간과 건강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신 비전대로 이후 그는 총독과 왕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Ⅱ.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22:30-23:35)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바울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여러분 부형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아직 재판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을 치라고 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문제를 지적하였지만 동시에 곁에 선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는 말에 대해서는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성경에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공회가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즉 자신은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로서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은 죽지 아니할 줄을 믿었습니다(요11:25,26). 그때 신자들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불의를 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영생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했고 죽음에 직면해서도 용기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합니다. 그들은 시간과 돈에 대해서 매우 쩨쩨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삶을 살아보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썩고 더럽게 되고 쇠하게 됩니다. 젊음도 시들어지고 꽃도 활짝 피었다가 어느새 떨어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물질에 대해서 관대할 수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대신에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건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체포되고 죽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바울의 태도는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 때문에 희생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기대합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담대하고 강하게 만듭니다. 이 소망 때문에 사도 바울, 베드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과 복음 역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해서 심문을 받는다고 말하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고 함이었습니다. 크게 소동이 일어나자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 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회 안에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날 밤에 바울은 답답한 장래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고자 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옥에 갇혀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만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감옥 속에서 혼자 있을 때 고독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혼자서 이 길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부활하신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때마다 바울과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위로는 하늘의 위로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어라고 미워하고 고소하고 때리고 없이 하고자 할 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바울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것 이상으로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서서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고 힘을 주시고 넘어지려고 할 때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무한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 곁에서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는 목자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에게 선교 비전을 주셨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나서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고 했습니다. 그의 비전을 주님께서는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로마는 복음을 세계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거점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선교에 대한 불타는 비전을 감옥에서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처할수록 비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어두운 동굴 속을 걷고 있을 때에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간직한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실 때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날로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양의 양과 동역자라도 변함없는 겸손과 사랑으로 섬깁니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시작합니다. 때로 자신의 죄성으로 넘어지고 많은 허물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겸손히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순종의 투쟁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학생들의 목자요 영적인 아비요 어미로 쓰시고자 부르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다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대로 우리 각자를 대학생들의 목자로 쓰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홍대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굳게 서고 홍대 동아리 방이 학생 양들로 북적거리며 센터가 비좁을 정도가 되기까지 양들로 차고 넘칠 비전을 덧입어야하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한 사람 이상 양들을 양육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목자님들 안에 더욱 형제애가 자라나서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이 모임에서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이 새자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즉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이 맹세한 대로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다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맹세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쓸데없는 맹세를 했다가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사십 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울을 처치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조카가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는 사실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했습니다.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 백부장 둘을 불러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예화된 로마 군병 470명이 동원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바울을 보호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여 총독 벨릭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까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까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보호하시고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약한 마음을 먹은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고 구원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배웠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용기가 있게 되고, 인생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비전이 보이게 됩니다. 어떤 고난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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