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사도행전 05사도행전 11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임요한
댓글 0건 조회 4,012회 작성일 05-01-28 21:39

본문

2005년 사도행전 제11강
첫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
(제 1 차 전도여행)

말씀:사도행전 13:52  요절:사도행전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은 크게 1장~12장, 13장~28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에서 12장까지의 역사의 중심지는 예루살렘 교회였고, 베드로가 주역이었습니다. 그러나 13장부터 선교의 중심지가 안디옥 교회로 옮겨졌고, 주역은 바울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의 제 1차 전도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는 이방인 선교의 첫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세계선교에 어떤 자를 쓰시며, 이방 세계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1. 첫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13:1-3)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선지자’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아 예언도 하고 또 교회의 행정을 담당하면서 성경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사’는 주로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성경선생을 가리킵니다. 이런 능력있는 성경선생이 안디옥에는 다섯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처음부터 안디옥 교회의 개척자들로서 뛰어난 성경선생들이었습니다. ‘니게르(Niger)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입니다. 루기오는 구레네 출신이고, 마나엔은 헤롯왕과 어릴 때 함께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 고관출신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운 안디옥 교회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역사를 섬겼습니까? 2a절과 3a을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틈만나면 기도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이렇듯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계선교를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며 주님의 뜻을 찾고 있을 때 드디어 성령께서 하실 일을 지시하셨습니다.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따로 세우라!”는 명령은 이 일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따로 남겨 놓으라는 뜻이요,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일을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안디옥 교회의 두 기둥과도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택하셨을까요? 이는 그 만큼 세계선교가 중요하고도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일군을 따로 세우시고 이들을 통해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 어디로 보내시든지 가서 개척역사를 능히 섬길 수 있는 준비된 일군으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안디옥 교회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들은 즉시 두 사람을 세계선교 역사에 바쳤습니다. 그들은 자체 역사보다 하나님의 더 큰 만민구원역사를 위해 자신을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일이라면 나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UBF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이유도 세계선교에 쓰임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이요 큰 특권으로 여기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로 가는 것을 가장 큰 영광이요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센타에서도 기둥뿌리 같은 종들을 세계 각처에 파송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선교사의 삶을 동경하고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 투쟁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좁고 편협한 자기 중심적인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복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계각처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센타가 되도록 밤낮으로 합심하여 기도해야 겠습니다. 때론 금식기도도 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동교센타가 되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2. 구브로 개척한 바나바와 사울(13:4-12)
 4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마가 요한을 데리고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갔습니다. 그들은 구브로 섬의 첫 성인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 전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바보(Paphos)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예수’는 예수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는 자칭 예수의 아들이라 칭하며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그는 간절히 진리를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수 엘루마는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는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면 자기는 더 이상 박수 노릇할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원수를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깨어 기도하며 성령을 굳게 의지하고 원수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0,11) 그러자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총독은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영적인 투사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우리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 뿐입니다. 캠퍼스의 양들 이 시대의 교만한 사람들을 복음으로 섬기고자 할때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봄학기에 우리는 복음의 원수들과 큰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복음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죽어가는 캠퍼스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한해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3. 비시디아 안디옥을 개척하는 바울(13:13-52)
 13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이 바보에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자 지금까지 수종자로 동행하던 마가가 저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마가는 바예수 사건에 충격을 받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예루살렘 부잣집 과부의 아들로 자라 내면이 연약하였습니다. 그가 중도에서 돌아가므로 남아서 역사를 감당해야 할 동역자들에게 힘을 빼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4절을 보십시오. 마가는 돌아갔지만 성령의 역사는 쉬지 않고 계속되어 저희는 버가를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이곳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아 있었습니다. 회당장들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바울 일행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부탁하였습니다.(15) 바울은 이를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로 보고 흔쾌히 승낙하고 일어나 손짓하며 온 몸으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준비된 성경선생이었습니다. 16~41절까지는 바울이 전한 메시지입니다. 그 대상은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간략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기초로 메시지를 전하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신 소원이 얼마나 크고 역사적인가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주권적으로 행하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까? 사울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교만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왕위를 폐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앞세우는 교만한자로 전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거스리는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더 이상 쓰실 수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용맹한 장군이요, 모사요, 시인이요, 음악가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어린 목동 시절이나 왕이 된 후에나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심히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섬기다가 잠들었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자를 찾으십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이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슬플때나 기쁠때    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만민구원역사에 귀히 쓰실 것입니다.

 24-37절까지의 메시지의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실 것을 이미 다윗과 언약하셨지만 예수님을 보내시기 바로 전에 세례요한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셨습니다.(24,2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증거를 듣고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글을 달달 외웠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기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에서 형식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또한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27,29) 또한 예수님의 부활도 이미 성경에 많은 증거가 있고 또 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은 시편 2:7, 이사야 55:3,4, 시편 16:10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메시지의 결론으로 예수님을 통한 사죄의 은혜를 증거합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므로 구원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힘입을 때만이 죄사함을 얻고 의롭게 된다고 분명히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과 숨은 죄를 단순히 고백하고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므로 의롭게 되고자 몸부림치는 투쟁을 해도 의로워질 수 질 수 없었는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 인정을 받고 새 사람, 새 인생을 살게 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기쁜 소식입니까? 값없이 사죄의 은총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상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구약의 말씀을 기초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요, 이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심오한 철학이나 복잡한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바울의 단순한 복음 메시지로 인해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역사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순수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 세계 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죄인이요, 죄문제는 율법이나 인간의 노력, 세상 학문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듣기 원하는 것은 순수복음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새학기에는 오직 순수 복음만을 들고 캠퍼스에 나아가야 겠습니다. 그러할 때 양들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마음 가운데 시기심이 생겨 바울의 말을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동족들을 불쌍히 여기고 상한 마음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망했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을 찾았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할 뿐아니라 비방까지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세계의 특징은 어둡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캠퍼스 양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해 방황합니다. 참 만족이 없이 곤고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기만 하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두신 크신 소원을 영접함으로 새 힘과 비젼을 덧입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였습니다. 율법으로 인해 죄의식에 짓눌려 살던 이들이 사죄의 복음, 은혜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듣자 살아나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52)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준비된 일군을 통하여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방 세계는 준비된 복음의 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희어져 추수하게 된 홍대 캠퍼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준비된 복음의 일군이 되어, 죄로 신음하는 캠퍼스 양들에게 나아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75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