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5gen15(24장)/이삭의 믿음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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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창세기 제 15 강
말씀 / 창세기 24:1-67
요절 / 창세기 24:3,4
이삭의 믿음의 결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크고 중대한 일입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가정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인 만큼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의 결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결혼을 이루는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아브라함의 종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결혼을 결단하는 리브가의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결혼은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떻게 믿음의 결혼을 이루어야 하는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가운데 나타난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심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여성 리브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결혼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삭의 결혼 문제를 위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은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롭고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지금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아브라함은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할까요? 아마도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진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과년한 딸을 가진 가나안의 유지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보면 탐이 났을 것입니다. 준수한 청년 이삭을 사위로 맞이하고 싶어서 여러 방면으로 타진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 여인들 중에는 조건이 좋은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대학을 나오고 미모이고 능력이 많고 부유한 공주같은 여성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지방의 유지들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면 두루두루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본적으로 이삭을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을 택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 종에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4)”고 방향을 주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세속적인 사람이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하여 신앙적인 사람이 되고 신앙적인 사람이 세속적인 여인과 결혼하여 세속적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아내가 남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입니다. 신명기 7:3,4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나중에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고 나라가 패망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이방 여인들이 각자 자기가 섬기던 우상들을 이스라엘에 가져오고 신전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은 우상전시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에서도 노아시대 타락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관능적인 미를 보고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이 타락하고 그 사회가 패괴하여 강포하여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믿음의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삭이 단지 인간적 감정에 따라서 끌리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다면 그의 가정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감정에 기초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제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과 먼저 결혼하고 믿음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사람이 임의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믿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좀 부족할지라도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영육간에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남자의 얼굴도 보지 않고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이역만리를 좇아 나설 것인가? 그 종은 난감한 가운데 만일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라고 타협점을 제시했습니다. 최소한 얼굴이라도 보여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사진이라도 가지고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확고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결혼을 이루고자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고자 아니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도 이삭의 인간조건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노총각, 노처녀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에다가 세상적인 조건까지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목자님은 총각 집사였을 때 결혼을 하려고 맞선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100번이나 맞선을 보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총각이 100번의 맞선을 보았지만 실패한 이유를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면서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 주위에도 결혼 적령기를 지난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잠18:22절에 보면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노총각들이 믿음으로 가정 교회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이 정하신 여인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습니다.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였습니다. 그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기도한 여인은 나그네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에 마시라고 할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물을 마시 울 수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은 심정의 여인입니다. 마음이 넓은 여인입니다. 섬김이 몸에 밴 여인입니다. 내면성이 있는 여인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여인입니다. 건강한 여인입니다. 보통 남자들은 결혼 대상자를 구할 때 외모를 먼저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외모는 아브라함의 종이 제시한 리스트에는 끼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풍성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이 종이 기도를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외조카 딸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외사촌간이 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순수한 처녀였습니다. 리브가의 아름다움은 이런 순결함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간청하였습니다.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힘들게 길어 올린 물을 집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가 물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라면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로서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되물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이라면 “에이, 재수없어, 우물까지 내려가서 떠 잡수세요. 손이 없어 발이 없어”라고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가 마시우기를 다하자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나 리브가가 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급히, 달려가서 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풍성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약대 한 마리가 45리터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약대 열 필이면 450리터입니다. 리브가는 약대 450리터를 먹일 수 있는 풍성한 내면성이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까지 물을 마시울 정도면 사랑이 있고, 세세한 것에까지 배려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기고자 할 때는 민첩해야 합니다. 여성은 건강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양까지 치려면 정말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은 공주와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밤늦게까지 일손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양을 치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면서 가정을 돌보시는 사모님들, 직장 일을 하면서 가정을 잘 섬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 동역자를 보면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밤을 새며 일을 합니다. 우리 사모님들이나 자매 목자님들이 캠퍼스에 나아가서 열심히 일대일을 하고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는 것은 리브가의 삶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리브가와 같은 여인들이 많이 있을 때 캠퍼스는 활기가 넘칠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고 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우리는 기도하고 나서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세한 것까지도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리브가가 약대를 먹이고자 말하는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가 열 필의 약대에게 물을 다 마시우는가를 지켜보았습니다. 리브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의 약대에게 정성껏 물을 먹였습니다. 열 필의 약대에게 물을 다 마시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밤이 어둑어둑해졌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시간 내내 기다려 주었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약속한 대로 끝까지 섬기는가 보고자 했습니다. 과연 리브가는 훌륭한 여인이었습니다. 자기의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을 다하는 여자였습니다.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자 그는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물었습니다. 네가 뉘 딸이냐?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의 대답이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라고 곱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그를 인도하사 아브라함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신 것을 찬송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끝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종은 먹는 것보다 사명을 앞세웠습니다. 리브가가 달려가서 집에 알렸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은 우물로 달려가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이르렀습니다. 때에 아브라함의 종은 우물가 약대 곁에 서 있었습니다. 라반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섰나이까 내가 방과 약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라며 정중하게 영접하였습니다. 라반이 집으로 들어가자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 앞에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먼 길을 왔고 지금은 저녁때였기 때문에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천천히 말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3b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는 먹고 마시고 쉬는 것보다 사명을 앞세웠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고전4:2). 그는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편한대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 편에 서서 철저하게 일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구경이라도 먹고 나서 할 일이지 배고픈 상태에서는 즐겁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메소보다미아에 관광을 하러온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결혼을 성사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명을 마치기까지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의 분명한 태도에 기가 질렸는지 라반은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결혼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혼임을 세세히 증거했습니다. 먼저 자신은 아브라함의 종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청성케 하셨고 그 노년에 아들을 낳아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들 이삭의 결혼을 위해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하신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라며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51).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었습니다. 이 종의 진술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로 인해서 리브가의 부모와 형제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사명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비록 음식은 식고 고기 국물은 엉겼지만 결혼이 성사됨으로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종은 식은 밥이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넷째, 추진력이 대단한 아브라함의 종. 그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늦잠을 자고 메소보다미아 관광을 하면서 천천히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주셨을 때 지체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말했습니다.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갈 것이니라.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단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주인 아브라함이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주실 때에 전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불도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리브가의 가족들은 소녀에게 물으리라 하고 그를 불렀습니다. 다 같이 58절을 읽겠습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리브가는 결단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리브가의 식구들은 리브가를 보내며 축복했습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천만인의 어미는 열국의 어미입니다. 그들은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리브가의 결혼을 축복했습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약대를 타고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했습니다.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내 주인이라고 말하자 리브가는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를 가리웠습니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데 있습니다. 신비는 신비한 모습 그대로 두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종이 이삭에게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다 고하였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의 사랑을 받으면서 모친 상사 후에 리브가로 인하여 위로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보았습니다. 결혼은 건축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환난의 때에 넘어지지 않듯이 믿음과 내면성을 키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준비해야 합니다. 성숙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할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 분들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결혼을 하기를 바랍니다. 또 이미 결혼을 하신 분들은 서로 깊이 사랑함으로 가정에서 위로를 풍성히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24:1-67
요절 / 창세기 24:3,4
이삭의 믿음의 결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크고 중대한 일입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가정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인 만큼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의 결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결혼을 이루는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아브라함의 종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결혼을 결단하는 리브가의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결혼은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떻게 믿음의 결혼을 이루어야 하는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가운데 나타난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심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여성 리브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결혼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삭의 결혼 문제를 위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은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롭고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지금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아브라함은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할까요? 아마도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진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과년한 딸을 가진 가나안의 유지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보면 탐이 났을 것입니다. 준수한 청년 이삭을 사위로 맞이하고 싶어서 여러 방면으로 타진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 여인들 중에는 조건이 좋은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대학을 나오고 미모이고 능력이 많고 부유한 공주같은 여성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지방의 유지들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면 두루두루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본적으로 이삭을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을 택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 종에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4)”고 방향을 주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세속적인 사람이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하여 신앙적인 사람이 되고 신앙적인 사람이 세속적인 여인과 결혼하여 세속적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아내가 남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입니다. 신명기 7:3,4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나중에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고 나라가 패망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이방 여인들이 각자 자기가 섬기던 우상들을 이스라엘에 가져오고 신전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은 우상전시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에서도 노아시대 타락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관능적인 미를 보고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이 타락하고 그 사회가 패괴하여 강포하여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믿음의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삭이 단지 인간적 감정에 따라서 끌리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다면 그의 가정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감정에 기초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제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과 먼저 결혼하고 믿음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사람이 임의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믿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좀 부족할지라도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영육간에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남자의 얼굴도 보지 않고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이역만리를 좇아 나설 것인가? 그 종은 난감한 가운데 만일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라고 타협점을 제시했습니다. 최소한 얼굴이라도 보여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사진이라도 가지고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확고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결혼을 이루고자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고자 아니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도 이삭의 인간조건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노총각, 노처녀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에다가 세상적인 조건까지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목자님은 총각 집사였을 때 결혼을 하려고 맞선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100번이나 맞선을 보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총각이 100번의 맞선을 보았지만 실패한 이유를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면서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 주위에도 결혼 적령기를 지난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잠18:22절에 보면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노총각들이 믿음으로 가정 교회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이 정하신 여인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습니다.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였습니다. 그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기도한 여인은 나그네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에 마시라고 할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물을 마시 울 수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은 심정의 여인입니다. 마음이 넓은 여인입니다. 섬김이 몸에 밴 여인입니다. 내면성이 있는 여인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여인입니다. 건강한 여인입니다. 보통 남자들은 결혼 대상자를 구할 때 외모를 먼저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외모는 아브라함의 종이 제시한 리스트에는 끼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풍성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이 종이 기도를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외조카 딸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외사촌간이 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순수한 처녀였습니다. 리브가의 아름다움은 이런 순결함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간청하였습니다.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힘들게 길어 올린 물을 집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가 물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라면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로서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되물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이라면 “에이, 재수없어, 우물까지 내려가서 떠 잡수세요. 손이 없어 발이 없어”라고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가 마시우기를 다하자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나 리브가가 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급히, 달려가서 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풍성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약대 한 마리가 45리터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약대 열 필이면 450리터입니다. 리브가는 약대 450리터를 먹일 수 있는 풍성한 내면성이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까지 물을 마시울 정도면 사랑이 있고, 세세한 것에까지 배려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기고자 할 때는 민첩해야 합니다. 여성은 건강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양까지 치려면 정말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은 공주와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밤늦게까지 일손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양을 치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면서 가정을 돌보시는 사모님들, 직장 일을 하면서 가정을 잘 섬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 동역자를 보면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밤을 새며 일을 합니다. 우리 사모님들이나 자매 목자님들이 캠퍼스에 나아가서 열심히 일대일을 하고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는 것은 리브가의 삶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리브가와 같은 여인들이 많이 있을 때 캠퍼스는 활기가 넘칠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고 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우리는 기도하고 나서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세한 것까지도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리브가가 약대를 먹이고자 말하는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가 열 필의 약대에게 물을 다 마시우는가를 지켜보았습니다. 리브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의 약대에게 정성껏 물을 먹였습니다. 열 필의 약대에게 물을 다 마시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밤이 어둑어둑해졌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시간 내내 기다려 주었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약속한 대로 끝까지 섬기는가 보고자 했습니다. 과연 리브가는 훌륭한 여인이었습니다. 자기의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을 다하는 여자였습니다.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자 그는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물었습니다. 네가 뉘 딸이냐?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의 대답이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라고 곱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그를 인도하사 아브라함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신 것을 찬송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끝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종은 먹는 것보다 사명을 앞세웠습니다. 리브가가 달려가서 집에 알렸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은 우물로 달려가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이르렀습니다. 때에 아브라함의 종은 우물가 약대 곁에 서 있었습니다. 라반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섰나이까 내가 방과 약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라며 정중하게 영접하였습니다. 라반이 집으로 들어가자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 앞에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먼 길을 왔고 지금은 저녁때였기 때문에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천천히 말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3b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는 먹고 마시고 쉬는 것보다 사명을 앞세웠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고전4:2). 그는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편한대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 편에 서서 철저하게 일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구경이라도 먹고 나서 할 일이지 배고픈 상태에서는 즐겁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메소보다미아에 관광을 하러온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결혼을 성사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명을 마치기까지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의 분명한 태도에 기가 질렸는지 라반은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결혼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혼임을 세세히 증거했습니다. 먼저 자신은 아브라함의 종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청성케 하셨고 그 노년에 아들을 낳아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들 이삭의 결혼을 위해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하신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라며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51).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었습니다. 이 종의 진술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로 인해서 리브가의 부모와 형제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사명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비록 음식은 식고 고기 국물은 엉겼지만 결혼이 성사됨으로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종은 식은 밥이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넷째, 추진력이 대단한 아브라함의 종. 그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늦잠을 자고 메소보다미아 관광을 하면서 천천히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주셨을 때 지체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말했습니다.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갈 것이니라.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단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주인 아브라함이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주실 때에 전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불도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리브가의 가족들은 소녀에게 물으리라 하고 그를 불렀습니다. 다 같이 58절을 읽겠습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리브가는 결단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리브가의 식구들은 리브가를 보내며 축복했습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천만인의 어미는 열국의 어미입니다. 그들은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리브가의 결혼을 축복했습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약대를 타고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했습니다.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내 주인이라고 말하자 리브가는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를 가리웠습니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데 있습니다. 신비는 신비한 모습 그대로 두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종이 이삭에게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다 고하였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의 사랑을 받으면서 모친 상사 후에 리브가로 인하여 위로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보았습니다. 결혼은 건축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환난의 때에 넘어지지 않듯이 믿음과 내면성을 키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준비해야 합니다. 성숙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할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 분들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결혼을 하기를 바랍니다. 또 이미 결혼을 하신 분들은 서로 깊이 사랑함으로 가정에서 위로를 풍성히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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