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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gen7(6:1-7:24)/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입은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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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496회 작성일 05-04-24 08:39

본문

2005년 창세기 제  7 강                                                                262
말씀/ 창세기 6:1-7:24
요절/ 창세기 6:13,14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입은 노아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오늘 말씀은 노아 시대에 있었던 대홍수 사건입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그 가족만 살아남았습니다. 이 대홍수 사건은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한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고 말씀에 순종치 않은 자는 다 죽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는가? 노아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장차 있을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노아 시대 사람들(6:1-7)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로서 신자를 말하고 사람들의 딸들이란 가인의 후손으로서 불신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같은 죄인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멀리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었지만 계속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 아벨의 후예, 여인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시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결혼을 하면서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여인들과 결혼을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딸들은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싫어하고, 외모를 화려하게 가꾸는 사람의 딸들에게 끌렸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인격이 어떠하든, 가치관이 어떠하든, 그의 행실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얼굴만 반반하면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런 문란한 삶으로 사회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가족이라는 개념도 없어졌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육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120년 안에 멸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120년 동안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사람이 유명했습니까? 네피림, 용사가 유명했습니다. 네피림은 거인으로서 몸짱입니다. 오늘날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이 인기가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힘이 있고 근육질인 사람들이 유명했습니다. 당시에 자매님들은 기도의 용사, 말씀의 종들보다도 키 크고, 잘 생기고, 싸움 잘하고, 체력이 우람한 남자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오늘날은 외모지상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취직도 잘 생겨야 잘 된다고 해서 성형 수술을 하는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항상 어떻게 하면 오늘도 킹카를 만나서 멋있는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누구를 속이고 한탕을 할까? 무슨 화끈 일 없는가? 오늘은 누구를 골탕 먹을까? 항상 이런 생각만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시대는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습니다. 더 이상 회복될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패괴하고 강포가 충만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썩어버렸고 불의가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쓰레기같이 된 인간들을 지상에서 홍수로 쓸어버리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사람만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겠다고 하십니다.

 심판과 저주는 타락과 부패 때문에 임합니다. 타락이 극에 달하면 심판이 임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썩지만 죄는 썩지 않고, 모든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죄는 번성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죄였지만 그것은 마치 암처럼 순식간에 퍼져갑니다. 죄는 지으면 없어지지 않고 쌓입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죄가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판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알지 못하고 방자합니다. 그러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죽지도 않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죽고 싶어도 죽음이 피해 갑니다. 그러므로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6절과 7절에는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죄악이 끝없이 넓게 깊게 무섭게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죄악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아픔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슬퍼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Ⅱ. 은혜 입은 노아(8-22)

  8-1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러나 노아는” 이 말씀은 노아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살아 있는 물고기와 같았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배를 허옇게 뒤집고 탁류를 따라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노아는 탁류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조차 하나 둘 세상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며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했습니다. 사실 노아도 가만히 놔두면 부패할 사람인데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서 죄와 투쟁을 하고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자기의 지혜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그는 의인으로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또 그는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완전한 자’란 도덕적으로 흠이 하나도 없는 자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는 그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음을 나타냅니다. 노아가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로부터 외면당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알고 그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과 더욱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5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마 그는 믿음의 여인을 기다리다가 늦게 결혼했는지 모릅니다. 여하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늦게 자녀들을 두었지만 믿음의 사람들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심판 때에 자녀들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지 않고 함께 구원의 방주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을 믿음의 동역자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패괴하였다는 말은 부패했다, 썩었다는 뜻이고 강포란 불의라는 뜻입니다. 이제 인간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기다리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인을 옳다고 하고 죄짓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과 죽음뿐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는 일급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17절에는 구체적으로 홍수를 땅에 일으켜 생명의 호흡이 있는 육체를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영원히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닫힙니다.

 그러면 심판 계획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엄청나게 큰 방주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사실 자신의 구원을 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제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길이 135미터, 넓이 22.5미터, 높이 13.5미터로 짓되 위에서부터 45센티미터에 창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의 창은 공기와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밖을 보지 못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노아의 방주 생활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 일 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일년 동안 그들은 방주 안에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았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죽음의 망망 대해가 일 년 동안 계속 되어 사람과 동물의 썩은 시체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절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보지 못하게 하시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파도와 격류에도 복원력이 가장 뛰어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율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아스팔트로 안팎을 칠해서 방수 처리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가르쳐 주신 방주의 크기와 양식은 세상에서는 본 일이 없는 배였지만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이성과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말씀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주에 노아의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노아의 아내 총 8명이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이끌어 들여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새, 육축,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그에게 나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먹을 모든 식물을 가져다가 저축하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분량의 식량을 비축해야 했습니다. 방주 속은 모든 것이 풍성하게 갖추어졌습니다. 이 방주는 화물기차 520대 분량을 적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이 약 17만 5천종이나 되고 암수로 하면 약 35만쌍이 된다고 합니다. 그 동물들이 방주 안에서 일 년 동안  무엇을 먹을 것이며, 배설물은 어떻게 할 것이며, 노아의 여덟 식구가 이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있고 산소가 부족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동면이나 하면을 합니다. 하나님이 모두 재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지도 않았고 싸지도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었겠지만 동물들과 노아의 여덟 식구는 풍성하고 행복하게 일 년을 지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동력이 없었습니다. 돛이나 노도 없었습니다. 진로를 오직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기절할 것만 같습니다. 취직, 결혼, 자녀 교육, 노후 생활 등등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 속에서 병들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Ⅲ.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7:1:24)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1)”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4). 5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햇빛이 쨍쨍 내리 쬐는데 뭐하고 있느냐고 비웃었습니다. 또 방주가 하도 커서 규모를 반으로 줄여서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육체적인 노동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식양대로 방주를 만들고 식량도 다 채웠습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600세였습니다.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닫아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방주의 문은 지하철 문과 달리 한 번 닫히면 아무리 밖에서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몸부림을 쳤지만 사람들은 비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방주에 들어간 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로 팔고 도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12절을 보십시오.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깊음의 샘들이 터졌을 때 지구 지각의 파쇄된 부분들을 통하여 갇혔던 물들이 분출되었을 때 의문의 여지없이 막대한 수효의 대 해일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폭풍 파도, 해일, 대지각 변동 등은 작년 12월 25일에 있었던 서남아시아의 지진과 쓰나미의 파괴 효과와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폭풍 파도의 엄청난 파괴력은 해수면에서 거의 60m 위에 있는 등대까지도 솟구쳐 오르고, 평방미터당 32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늘의 궁창에 있는 물이 쏟아짐으로 인해서 지각이 하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약한 쪽은 심해의 산맥과 같이 푹 꺼지고 한 쪽은 에베레스트산과 같이 치솟아 올라와야 합니다. 그때 생기는 굉음은 해변에 살던 사람들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동물들을 뛰어난 감각 작용으로 인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화산 폭발과 폭우, 폭풍, 해류의 대 단위 합성, 역류, 소용돌이, 기타 수압에 의해서 대륙에 물이 차 오르고, 극지방에는 빙하 작용이 일어나고 하는 등등 홍수의 파괴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19절에 보면 물이 땅에 창일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와우산, 남산, 금강산, 백두산은 물론이요, 세계 최고봉인 산까지 다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22절에 보면 육지에 있어 코로 생명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철저합니다. 홍수가 심해져서 점점 물이 불어날수록 세상에 높은 산과 높은 건물들은 깊은 물속에 점점 더 잠기게 되었지만 노아의 방주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노아의 방주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땅 위에 움직이는 것은 새, 육축, 사람, 기는 것 등 모든 것이 죽어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렇게 150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첫째,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손수 창조하신 사람일지라도 죄가 관영하게 되었을 때 가차 없이 심판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무섭고 철저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나 일단 심판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은혜 입히신 사람 외에는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은 그 경고하신 대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120년 후에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시고 사람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이성을 의지해서 그런 홍수 심판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그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 구원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사 말씀에 순종하며 의롭게 살도록 하시고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친히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길을 예비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된 최후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시고, 그 심판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떨어지는 우주적인 대재앙이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마 24:2931). 벧후 3:7절에는 세상이 불에 타서 멸망당하는 불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합니다. 현재 지구에 있는 핵폭탄만으로도 지구를 35번을 태우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그때는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게 되고 땅의 모든 것이 뜨거운 불에 다 녹아내리고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 도시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뉴욕의 무역센타가 불에 타서 녹아내렸듯이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자기 이런 일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영혼은 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계 21:8). 우리는 지금 말세지말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무서운 심판에서 우리 인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구원을 받는 길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불 심판의 때에 큰 영광과 권능으로 재림하십니다(마 24:30). 그리고 그동안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에게 붙어 있던 자들은 공중에 들리어 올리우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부활하여 주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 속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살전 4:16,17, 벧전 3:13).

  우리가 이 구원의 방주 안에 들어가려면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와 연합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의 뜻을 섬기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짓는 것처럼 고난도 따르고 사람들의 조롱도 따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심판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방주 안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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