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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서 051cor4(고전3:5-23)/ 교회를 섬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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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875회 작성일 05-10-0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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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고린도전서 제 4강                                                     
말씀/ 고린도전서 3:5-23
요절/ 고린도전서 3:7

교회를 섬기는 방법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사도 바울은 지난 시간에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자연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힘써 순종해야 합니다. 이때 주님의 마음을 아는데서 자라가게 됩니다. 주님은 섬기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 위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속한 이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5-9).

 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사역자들이라고 강조합니다. 사역자들이란 식당의 웨이터나 심부름꾼, 시종 드는 자들입니다. 요회 목자나 스탭 목자나 시니어 목자나 팀 목자나 예외없이 지휘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아니라 섬기는 종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권세자들은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는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높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교회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교회 성장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일을 모두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라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인간 사역자가 아니라 추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용되는 도구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인간의 노력은 실패하고 맙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자랑하고 그 회중 내에 있는 여러 다양한 그룹들은 각기 자신들의 지도자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높이는 태도는 교회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역자들을 신성화하거나 하나님 자리에 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난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말씀을 심고 사랑의 물을 제 때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심어 주실 뿐만 아니라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양은 내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하나님이시고 나를 키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양을 사랑하고 희생적으로 돕지만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 중에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휘싱 목자나 일대일 목자나 팀 목자나 요회 목자나 누가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각 자기의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상을 받습니다. 즉 말씀을 연구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을 데려오고 섬기고 청소하고 찬송하고 들어주고 카운슬링하고 책망하고 심방하는 일등도 동일하게 다 중요합니다. 타이틀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보면 동역자들이 하나 하나 다 수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맡았는가에 따라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에 따라서 상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사람으로부터의 칭찬이 아니라, 추수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여!“라는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가 동역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바울과 아볼로는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경쟁자들이 아니라 동역자입니다. 우리가 동역의 힘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배우고자 할 때 동역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뢰의 관계를 깊이 맺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각각 은사가 다르지만 그 받은 은사를 발휘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밭에서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갈5:22-23),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구제의 열매(롬15:26), 선한 일의 열매(골1:10), 찬미의 열매(히13:15)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뭇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롬1:3). 영적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서 놀라운 양적 부흥이 일어납니다. 한 열매 속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씨들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15:8).”

  하나님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십니다. 목회는 집을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요회 목자는 집을 세우는 자와 같습니다. 그것은 외형적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들의 양육을 말합니다. 신앙 지식과 인격이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데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엇으로 양육해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겨야 합니다(10-15).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집의 터를 닦았습니까? 10,11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이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우지 않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세우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힐 때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우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마7:24,25). 그래서 지혜로운 건축자는 반석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세웁니다. 바울은 이 터를 중요시하였습니다. 바울이 닦아 둔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만을 전파했습니다(2:1,2). 그리고 이 터 외에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1,12).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요14:6).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심판장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신앙의 기초가 됨을 믿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의 기초를 놓지 않고 헬라 철학과 영지주의자들의 이상한 지식에 기초를 놓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나 조직이나 철학에 기초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7-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이 반석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또는 그의 계시를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시오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딤전2:5).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해결 할 수 없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신 유일한 구주가 되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위에다 터를 닦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진 기초 위에서 서로 간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은 것이 큰 사람은 큰 사랑을 하고 죄사함을 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생 배워도 다 배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높고 깊고 넓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생애를 본 받아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다 인생의 기초를 놓은 사람, 그런 공동체는 인생의 환란과 역경이 닥쳐와도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닦아 놓은 터 위에 다른 이가 집을 세울 것인데 어떻게 세울 것인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심판의 날 그 공력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은 짓는 자들은 이 터 위에 집을 짓되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풀이나 짚으로 짓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력이 나타날 때가 옵니다. 그때 공력을 나타내는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내구성이 있고 영구적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아름답습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우리가 찾고 보존하고 매일 지니고 다녀야 할 보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비교할 수 없도다(잠3:13-15).”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잠8:10,11).”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은 짓는 것은 애쓰고 힘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것입니다. 한 말씀이 내 마음에 샛별 같이 떠오르기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으로 양들을 먹일 때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은 매우 힘든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또한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좇는 삶입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나무, 풀, 짚으로 짓는 것은 세상 지혜를 따라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을 흉내내는 교회는 일시적으로 성공할 듯이 보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곧 재로 변할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거짓된 교훈을 가리킵니다. 구약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전하기보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비위를 맞추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악한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치기보다 하나님의 평안을 빌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참 평안은 오지 않았습니다. 참 평안은 죄를 버릴 때에만 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훈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을 것입니다.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은 구원은 창세기에 나오는 롯과 같은 구원입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각각 공력이 나타날 것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목자들을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문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역에 관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에 대해서 불로 시험을 하실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거룩하게 섬겨야 합니다(16-17).

  16,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신자 개인의 몸뿐만 아니라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여기서 성전은 단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 전체는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십니다. 그릇된 교리를 전하면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훼손시키는 것이 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영지주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몸은 악하고 영은 선한 것이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된 교훈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 전체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믿을만하다는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할 때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공동체가 열매를 맺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섬겨야 합니다(18-23).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죄를 짓고자 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자들을 지혜롭게 여긴다면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주께서 지혜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여기십니다. 진리만이 가치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것은 헛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곱명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그들을 어리석게 여겼습니다. 월요일에 시험이 있는데 주일에 공부를 하지 않으니 시험 성적이 다른 이들보다 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졸업식에서 그 친구 일곱명이 상을 독차지 했고 1등부터 7등까지를 그들이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넘치게 축복해 주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21). 올바른 동기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사람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사역자들을 비교했고 육신에 속한 그런 행위로 인해 교회를 분쟁 상태에 빠지게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려고 했다면 고린도 교회에는 화합과 일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각개의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주지시킴으로써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21b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부요한 자들입니까? 이처럼 만물이 모든 신자들에게 다 속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분쟁하며 경쟁한단 말입니까? 바울은 “너희 시선을 오직 그리스도께만 두라.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동참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자랑함으로 시기와 분쟁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사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지 그 동기를 아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러한 동기들이 드러나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는 종의 자세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충만할 때, 또 말씀이 살아 역사할 때 각 개인과 공동체가 변화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교회를 섬김으로 교회가 하나가 되고 건강하게 되어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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