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소아시아 일곱교회 - 제 1강 에베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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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 일곱 교회 1
말씀 / 요한계시록 2:1-7
요절 / 요한계시록 2:4,5
에베소 교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리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대 에베소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지금은 셀주크라고 불리웁니다. 당시 에베소는 여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파리와 이태리를 가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에베소에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에베소는 동향 최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250000명이 사는 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도시 입구에는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이 있었습니다.(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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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장에서 사도 바울은 은장색 데메드리오로 인한 소동을 겪었습니다(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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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를 1차로 개척을 했고 제 3차 전도여행 때에도 들렸습니다.(그림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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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적어도 2년 3개윌 체류하면서 열심히 제자 양성을 한 결과 아시아에 살고 있던 자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행 19:1-10). 사도 바울은 제자들을 눈물과 간구로 3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들이 변화되고 성장하여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이 원형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두 시간을 외치며 소동했습니다. 그 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났다. 제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 에베소에 들릴 수 없어 바울은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의 인사와 교훈을 주었습니다(행 20:17-38). 후에 로마 옥중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두기고에 들려 보냈습니다(엡 1:1,6:21,딤후 4:12).
로마 시대의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속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순교하기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모친 마리아를 맡겼기 때문에 순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그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왕성하게 사역할 동안에 그는 소아시아에 들어가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된 이후부터 소아시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만 사도 요한의 초상화가 마리아와 함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 즉 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라는 사명 때문에 마음대로 순교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이 황제의 신전을 에베소에 세우고 누구든지 그 길을 지나는 자는 신전에 절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결코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도미티안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을 잡아다가 기름 가마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자 그를 밧모섬에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도미티안의 조카도 개종하여 그와 함께 유배를 갔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의 수명이 다하여 에베소에 묻히게 되었습니다.(그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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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2:1절을 보십시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자신을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서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합니다(1:13,16,20).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 두 사람을 따로 모아 놓고 2년 반동안 말씀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두란도 서원 역사를 통해서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왕성한 시장과 아데미 신전과 음행과 왕성한 철학으로 인해서 복음을 전하기기 매우 어려웠던 지역이지만 사도 바울의 제자 양성 역사를 통해서 복음 역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목자들은 20팀 일대일을 하고 12명 이상 씩 양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목양을 하였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시에 분포되어 있는 모든 가정 교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미티안 황제의 불같은 핍박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복음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많은 핍박을 받았고 핍박을 받으면서 인내하였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들어온 흉악한 이리들이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고 헤치고자 했을 때 이를 잘 분별하고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섬기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런 고난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세계 구속사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AD 313년에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면서 핍박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전에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가족들과 살아남은 대부분의 성도들은 매우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원형 경기장을 파괴하고 거기서 가져온 돌로 사도 요한의 기념 교회를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세웠다고 합니다.(그림8,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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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고난을 잊지 않고자 그 고난의 현장에 있던 돌들로 교회를 장식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핍박 가운데서 인내하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부족한 한 가지를 책망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입니다. 둘째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처음 고백하면 죽을 것 같던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첫 사랑 때문에 감격하여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사실 그 때 가장 많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열매도 많이 맺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쁨이 넘치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들은 고생을 해도 고생이 아니라 제자된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처음 사랑을 버렸을까요?
첫째, 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교회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점차 안일해 지고 사랑이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사람들을 교회가 사랑으로 감당하다가 지쳐버리게 되었습니다. 뜨거웠던 마음이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리더들은 성숙하고 영적인 투쟁을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의로운 마음으로 인해서 어리고 연약한 자들을 판단하고 품을 수 없었습니다. 양들은 비빌 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투쟁을 앞세웠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소원이 많아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만했고, 음란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천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생기고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때는 어떤 모양의 사람이라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싸움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자기 투쟁과 열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수고한 것만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자 슬픈 생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인상을 쓰게 되고 서로에 대해서 마음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니 형제를 사랑할 힘이 나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에 눌려 있는 사람이 어찌 양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 안에 주님의 사랑을 충만히 유지하면서 형제들을 섬기는 일을 힘써 감당해야 하는데 그들 안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데 마음을 쏟다 보니 날카롭게 판단하는 마음이 자라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거짓을 분별하고 거짓 사도들을 쫓아낸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아페카스'로서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으로 칭찬할만한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한다고 경고하십니까?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을 쓰시고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자를 축복하시지만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에게 고개를 돌리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후 몇 백년 동안 잘 투쟁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사도 요한이 묻히게 된 그 자리에 사도 요한 기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잊어버렸습니다. 사도 요한 기념 교회에서 2Km 떨어진 곳에 마리아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가 있었는데 그 회의에서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교리가 통과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인지 마리아 기념 교회 뿐만 아니라 에베소 교회는 지진으로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에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늪지대가 되면서 질병이 돌아 에베소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금 에베소는 고고학의 발견으로 과거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지만 황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당시에 니골라당이 있었습니다. 니골라당은 역사적으로 사도행전에 언급된(행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없애다' 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민22:12) '발람' (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습니다. 에베소 지역에서는 신자라는 사람들이 아데미 여신에게 제사도 하고 행음도 하면서 자기 유익을 좇아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런 이중적인 신자들을 미워하였고 이들을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의 물질 숭배와 음행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에베소 교회 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단과 타협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온전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십니다. 생명 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 영생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 진리를 새롭게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정죄하고 판단하다가 복음 신앙을 잃어버리고 차가운 교리만 남은 사람들로 변해버립니다. 우리는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악들을 회개하고 첫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형제를 권면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첫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또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양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을 돕고자 하다가 죄를 회개하도록 돕지 못하는 것도 문제요, 회개하도록 돕는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이 행하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되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사단에게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보이게 되고 서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진리와 사랑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수고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첫 사랑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계시록 2:1-7
요절 / 요한계시록 2:4,5
에베소 교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리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대 에베소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지금은 셀주크라고 불리웁니다. 당시 에베소는 여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파리와 이태리를 가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에베소에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에베소는 동향 최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250000명이 사는 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도시 입구에는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이 있었습니다.(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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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장에서 사도 바울은 은장색 데메드리오로 인한 소동을 겪었습니다(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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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를 1차로 개척을 했고 제 3차 전도여행 때에도 들렸습니다.(그림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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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적어도 2년 3개윌 체류하면서 열심히 제자 양성을 한 결과 아시아에 살고 있던 자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행 19:1-10). 사도 바울은 제자들을 눈물과 간구로 3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들이 변화되고 성장하여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이 원형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두 시간을 외치며 소동했습니다. 그 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났다. 제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 에베소에 들릴 수 없어 바울은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의 인사와 교훈을 주었습니다(행 20:17-38). 후에 로마 옥중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두기고에 들려 보냈습니다(엡 1:1,6:21,딤후 4:12).
로마 시대의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속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순교하기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모친 마리아를 맡겼기 때문에 순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그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왕성하게 사역할 동안에 그는 소아시아에 들어가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된 이후부터 소아시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만 사도 요한의 초상화가 마리아와 함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 즉 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라는 사명 때문에 마음대로 순교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이 황제의 신전을 에베소에 세우고 누구든지 그 길을 지나는 자는 신전에 절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결코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도미티안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을 잡아다가 기름 가마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자 그를 밧모섬에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도미티안의 조카도 개종하여 그와 함께 유배를 갔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의 수명이 다하여 에베소에 묻히게 되었습니다.(그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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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2:1절을 보십시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자신을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서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합니다(1:13,16,20).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 두 사람을 따로 모아 놓고 2년 반동안 말씀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두란도 서원 역사를 통해서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왕성한 시장과 아데미 신전과 음행과 왕성한 철학으로 인해서 복음을 전하기기 매우 어려웠던 지역이지만 사도 바울의 제자 양성 역사를 통해서 복음 역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목자들은 20팀 일대일을 하고 12명 이상 씩 양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목양을 하였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시에 분포되어 있는 모든 가정 교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미티안 황제의 불같은 핍박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복음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많은 핍박을 받았고 핍박을 받으면서 인내하였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들어온 흉악한 이리들이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고 헤치고자 했을 때 이를 잘 분별하고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섬기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런 고난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세계 구속사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AD 313년에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면서 핍박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전에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가족들과 살아남은 대부분의 성도들은 매우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원형 경기장을 파괴하고 거기서 가져온 돌로 사도 요한의 기념 교회를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세웠다고 합니다.(그림8,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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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고난을 잊지 않고자 그 고난의 현장에 있던 돌들로 교회를 장식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핍박 가운데서 인내하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부족한 한 가지를 책망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입니다. 둘째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처음 고백하면 죽을 것 같던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첫 사랑 때문에 감격하여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사실 그 때 가장 많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열매도 많이 맺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쁨이 넘치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들은 고생을 해도 고생이 아니라 제자된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처음 사랑을 버렸을까요?
첫째, 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교회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점차 안일해 지고 사랑이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사람들을 교회가 사랑으로 감당하다가 지쳐버리게 되었습니다. 뜨거웠던 마음이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리더들은 성숙하고 영적인 투쟁을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의로운 마음으로 인해서 어리고 연약한 자들을 판단하고 품을 수 없었습니다. 양들은 비빌 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투쟁을 앞세웠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소원이 많아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만했고, 음란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천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생기고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때는 어떤 모양의 사람이라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싸움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자기 투쟁과 열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수고한 것만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자 슬픈 생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인상을 쓰게 되고 서로에 대해서 마음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니 형제를 사랑할 힘이 나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에 눌려 있는 사람이 어찌 양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 안에 주님의 사랑을 충만히 유지하면서 형제들을 섬기는 일을 힘써 감당해야 하는데 그들 안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데 마음을 쏟다 보니 날카롭게 판단하는 마음이 자라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거짓을 분별하고 거짓 사도들을 쫓아낸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아페카스'로서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으로 칭찬할만한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한다고 경고하십니까?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을 쓰시고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자를 축복하시지만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에게 고개를 돌리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후 몇 백년 동안 잘 투쟁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사도 요한이 묻히게 된 그 자리에 사도 요한 기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잊어버렸습니다. 사도 요한 기념 교회에서 2Km 떨어진 곳에 마리아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가 있었는데 그 회의에서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교리가 통과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인지 마리아 기념 교회 뿐만 아니라 에베소 교회는 지진으로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에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늪지대가 되면서 질병이 돌아 에베소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금 에베소는 고고학의 발견으로 과거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지만 황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당시에 니골라당이 있었습니다. 니골라당은 역사적으로 사도행전에 언급된(행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없애다' 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민22:12) '발람' (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습니다. 에베소 지역에서는 신자라는 사람들이 아데미 여신에게 제사도 하고 행음도 하면서 자기 유익을 좇아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런 이중적인 신자들을 미워하였고 이들을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의 물질 숭배와 음행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에베소 교회 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단과 타협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온전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십니다. 생명 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 영생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 진리를 새롭게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정죄하고 판단하다가 복음 신앙을 잃어버리고 차가운 교리만 남은 사람들로 변해버립니다. 우리는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악들을 회개하고 첫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형제를 권면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첫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또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양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을 돕고자 하다가 죄를 회개하도록 돕지 못하는 것도 문제요, 회개하도록 돕는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이 행하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되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사단에게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보이게 되고 서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진리와 사랑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수고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첫 사랑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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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회 다운로드 | DATE : 2005-09-26 19: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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