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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gen26(창49,50장)/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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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691회 작성일 05-09-11 08:54

본문

2005년 창세기 제 26 강                                                               
말씀 / 창세기 49-50장
요절 / 창세기 50:20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0)”

  요셉은 꿈의 사람인 동시에 사랑의 사람이요, 용서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이 열 두 자녀들을 축복하는 내용과 요셉의 용서하는 사랑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조건없는 사랑, 한계가 없는 사랑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십니까? 

Ⅰ. 열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49장)

  야곱은 죽기 전에 그 아들들을 불러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후일에 당할 일을 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특권이 있었지만 서모와 죄를 지음으로 장자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는 물의 끓음 같이 자제력을 잃음으로 축복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의 정욕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그 인생이 불행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를 보십시오. 5-7절을 보십시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했을 때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세겜 사람들과 짐승을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비열했고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감정적인 복수를 하나님은 징계하셨습니다.

  야곱의 자식들 중에 또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유다입니다. 메시야가 탄생한 유다 지파입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엄청나게 풍성합니다. 유다는 실수도 많이 한 사람이지만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강한 지파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메시야를 잉태하는 지파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13절 이하에 여러 지파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관심있게 보아야 할 지파는 22절에 나오는 요셉 지파입니다. 22-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유다의 복과 더불어 요셉의 복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담장을 넘을 정도로 무성할 것입니다.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형제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자로 인정받는 복을 받습니다. 이후에 에브라임 지파는 항상 이스라엘의 선두에 서서 일을 합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축복했는데 무엇을 기초로 축복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하나님이 복을 편파적으로 주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사람마다 복을 받을 그릇이 다를 뿐입니다.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복을 받게 됩니다. 복 받을 그릇이나 믿음의 분량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 내가 채우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요셉은 운명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연단을 받음으로 더 큰 그릇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회개함으로 더러운 그릇을 깨끗케 하였고 더 큰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레위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자기 뜻대로, 자기 감정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고난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 감정적이 되거나 교만한 자세로 뻣뻣하면 그릇이 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고자 하시는데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릇이 커지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자포자기하거나 영적인 투쟁을 게을리 하면 그릇이 커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려움의 때에 하나님을 붙들고 깊이 회개하며, 자신의 내면을 깨끗케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통하여 자기가 죽는 자기가 죽는 투쟁을 할 때 깨끗한 그릇이 되고 큰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게 됩니다(딤후2:20,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누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지만 심은 대로 거둡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복을 받습니다. 우리 각자 큰 믿음의 그릇을 가지시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드리어 야곱은 운명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그러나 야곱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삶과 죽음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과 저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Ⅱ. 형들을 용서하는 요셉(50장)

  요셉은 야곱을 성대하게 장사지냈습니다. 요셉과 형들은 장례식을 마치고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개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허탈합니다. 죽은 사람의 유물과 흔적만 남아 있고, 남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를 때보다 치른 후에 자주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장례식을 치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형들의 마음에 있던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아버지 떠나고 나니 그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갚았다’는 것도 아니고 ‘갚지나 아니할까’하며 형들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불안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염려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불안해 하는 까닭은 용서받지 못한 과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요셉이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여러분의 과거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과거와 인연을 끊기를 바랍니다. 과거가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피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 수치스러운 과거, 나를 꼼짝할 수 없게 하는 과거를 깨끗하게 씻는 능력이 있습니다.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말합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을 그토록 환대하고 사랑해도 요셉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조금만 자세히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라는 말을 보십시오. 아직도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을 근거로 해서 보호를 받아 보려고 합니다. 야곱을 통해서 요셉의 용서를 받아보려고 합니다. 또 요셉이 모르는 사실을 하나 얘기합니다. “내가 죽더라도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유언을 아버지가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언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성경에 그런 말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유언을 정말 했다면 야곱이 왜 요셉에게 말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말했을까요? 형제들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밤에 잠이 안 오고 성격이 비뚤어집니다. 남을 믿지 못하고 항상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빙자하여 요셉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습니다. 불안해하는 형들을 보면서 요셉은 울었습니다. 요셉만 우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해하는 여러분을 보며 목자인 저도 웁니다. 무엇보다 불안해하는 여러분을 보며 하나님도 우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대가를 다 치루신 예수님도 우십니다.

  용서를 바라는 형들의 노력은 계속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요셉의 형들의 영적 상태를 잘 보여 줍니다.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용서받았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을 이기지 못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죄사함을 확신하십시오.

  요셉은 사랑의 사람,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성숙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직업이나 업적은 당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사람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 용서할 수 있느냐가 바로 당신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사랑은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나를 선하게 대해 주면 나도 선하게 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건이나 반응에 따라서 형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고 파멸시키려고 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본질부터 사랑했습니다. 그런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찾으셨습니다.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도 이미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덕을 부리지 않으십니다.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비판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간 형들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받은 상처가 없었습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형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는 한마디조차 없습니다. 요셉은 조건 없이 사랑하고 용서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 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심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섭리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단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기에게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악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연단하셨고 또한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쓰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슬픈 생각,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꿈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물질과 권력과 힘을 주셨을 때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섬기는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80년 동안 총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1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에게 애굽은 제 2의 고향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임종 시에 가진 바 소망이 무엇이었습니까? 24-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의 소망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에 가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살면서 동화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도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소망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우리가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으로 그 마음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녀입니다.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치욕스런 과거를 끊어 버리고 묻어 버리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가득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내 주변에 일어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여러분의 생애에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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