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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05년창세기제25강(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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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o James
댓글 0건 조회 4,200회 작성일 05-09-0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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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창세기 제 25강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말씀: 창세기 46:1-48:22                                            요절: 창세기 46: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우리는 지난 강의를 통해서 요셉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많은 역경과 시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도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46장은 야곱일가의 애굽 이주와 초기 정착에 관한 기록입니다. 46장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야곱은 사랑하는 요셉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온 가족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헤브론에서 발행하여, 애굽으로 출발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남단 접경지역인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그의 마음에 알 수없는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이제 곧 애굽으로 넘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을 등지는 것은 아닌가? 요셉을 약속의 땅으로 불러드리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할머니인 사라를 빼앗길 뻔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고, 애굽은 죄악과 쾌락의 난무하는 땅이었습니다. 애굽으로 갈 것인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의 머리는 아프고 가슴은 답답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었지만 기근이 심해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요셉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자 했습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방향과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고 희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야곱과 같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택은 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선택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합니다.  선택의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짧은 지식과 경험에 고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훼방합니다. 그 증거는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저변에는 교만과 무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환경과 조건을 불평합니다. 이때는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 “언약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이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체류했던 곳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유서 깊은 신앙의 유적지였습니다(창21:33, 26:25). 이스라엘도 브엘세바에 들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의 “희생을 드리니”의 뜻은 여러 번 반복해서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간절한 심정으로 애굽 이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주장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고자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2-4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 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애굽이주에 대해 불안해하던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확신에 찾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하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불안을 떨쳐버리고 브엘세바에서 발행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면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하나님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의 하나님(하엘)은 정관사 “하”를 동반한 단수형의 “엘(단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엘)을 상징합니다. 이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17:1)”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경우와 비슷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거기 즉 애굽에서 야곱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대 제국이었던 애굽이 야곱의 눈에는 두려움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애굽의 풍부함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큰 민족”의 “큰(까돌)”은 “강하다(신명기2:10)”, “부하다(삼상 25:2)”, “존귀하다(삼하 7:9)”라는 뜻이 있습니다. 큰 민족은 야곱의 후손들이 단지 숫자적으로만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위대한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12:2; 18:18)과 이삭에게(창 26:4, 24)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야곱 자신에게도 여러 번(28:3, 14; 35:11) 확증시키신바 있는 원대한 약속입니다.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즉 이방 땅에서 사백 년간 객으로 살게 될 것이나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그 약속(창15:4,5,13,14)이 성취될 장소가 바로 애굽(거기서)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것, 이스라엘 일족의 생존을 위협했던 기근으로 인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뒤로하고 애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거기(애굽)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 약속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가능합니다.
     
 둘째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당시 중근동 지방 사람들은 지역신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어떤 신이든지 특정 지역에서만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야곱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단지 가나안에서만 활동하는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이러한 지역신 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바로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로 천지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시공간의 제한을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렘23:23, 24). 다만 하나님께서 언제나 야곱과 동행하며 그의 인생길을 인도하시고 삶을 보호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보통 히브리 문장에서는 인칭 대명사가 사용되지 않으나 특별이 본문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내가”라는 단어가 문장의 서두에 나와 하나님 자신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 행동의 주체가 되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와 함께”에 해당하는 “임메카”는 행동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야곱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택한 백성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사 7:14 ; 8:9, 10). 또한 하나님은 야곱에게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반드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오시겠다는 사실을 거듭 거듭 강조하여 야곱을 안심시키셨습니다.

  톨스토이는 귀족출신이요 부자였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시골길을 산책하던 중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농부의 얼굴은 너무나 평안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물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편안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뭐 가진 것이 있습니까? 제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지요. 그래서 평안한 모양입니다.” 톨스토이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구나.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했다. 그런 것들은 마음의 평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이제는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 그 이후로 톨스토이의 마음에는 불안과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는 “부활”과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마음의 평강과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브엘세바에서 발행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8-27절까지에는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의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야곱 일가족의 애굽으로의 이주는 구속사적으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먼저 이 말씀은 창세기15:13,14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하신 하나님 말씀의 성취입니다. 다음으로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애굽으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오묘한 섭리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춘추전국시대처럼 수많은 호전적인 부족들이 패권다툼을 하는 각축장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야곱의 미약한 일족이 큰 민족을 이루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한사항이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어, 그를 총리가 되게 하신 후, 막강한 요셉의 보호가운데 야곱의 가족이 큰 민족이 되기까지 키우시고 보호하신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가 심각하여, 야곱 일족이 통혼 등으로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해 갈 위험성이 많이 내재된 곳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야곱일족을 애굽의 고센땅으로 이주시킴으로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악으로부터 분리시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47장1-26절은 야곱일족과 요셉의 상봉장면, 그리고 요셉이 총리로서 기근 중에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 충성한 내용입니다. 47:27-49장까지는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과 야곱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상에서 야곱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하시는 하나님의 소망과 비전을 배웠습니다. 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시대의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인도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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