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05년 창세기 2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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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강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창세기 42-45장
요 절 45:7 "하나님이 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고난 중에서나 영광 중에서나 항상 함께 하셔서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후반부 생애로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쓰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첫째,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요셉의 진정한 사랑(42-44장)
42장 1,2절을 보십시오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여기서 때란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들기 시작하여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한 때를 말합니다. 세계 각국 백성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왔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곡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어릴 때 꾼 꿈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절하는 꿈’. 바로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완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가지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 형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 훈련은 42-44장 까지 지루할 만큼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형들에 대한 요셉의 진정한 사랑을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엄한 소리로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진실을 증명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들을 다함께 삼일을 가두었다가 다시 풀어 보내며 말했습니다.
18절b "나는 하나님을 경외 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그리고 시므온을 인질로 결박하여 잡아두고 곡식을 가지고 집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정탐으로 몰리게 된 형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들은 20년 전 동생을 노예로 팔았던 그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해 주십니다(요일 1:9).
24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마음이 아파서 안으로 들어가서 울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셉이 우는 것을 볼 때 형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결박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낼 때 곡물과 함께 돈도 도로 넣어 보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돌아가는 중에 객점에 들러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었다가 돈뭉치를 보고 혼이 나서 떨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 일을 행하셨는고"(28b). 그들은 요셉의 사랑과 도움을 하나님의 징벌로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 아비 야곱에게 모든 일을 고하자 야곱은 요셉도 잃고, 시므온도 잃고, 이제 베냐민까지 잃게 되었다고 하면서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뭄으로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베냐민과 함께 아들들을 애굽에 내려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그의 몸을 담보 삼아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베냐민과 많은 예물을 가지고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요셉은 마음을 졸이며 형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시므온을 생각할 때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드디어 형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형들을 자기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예물을 드리고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베냐민을 보고 "소자야,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노라"(43:29b)하고 축복했습니다. 동생 베냐민은 요셉이 팔려올 때 어린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매우 닮은 동생 베냐민을 보니 마음이 타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그 정을 억제하고서 형들을 대접했습니다.
여기서 "그 정을 억제하고"(43:31b) 이 말씀은 그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요셉은 어머니 없이 자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20년만에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정이 많은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습니까? 요셉이 만일 그 정을 억제치 못하여 형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면 더 이상 그들을 훈련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을 억제함으로서 그들을 형들을 끝까지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먼저 형들을 나이 순서 대로 앉히고 풍성한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더 주었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자 요셉은 또 다시 한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청지기로 하여금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각본대로 조사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형들은 충격을 받고 옷을 찢고 각기 짐을 싣고 다시 성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들은 현장에서 잡힌 절도범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또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까?
44장16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들은 이번에는 모두 다 종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종이 되고 모두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참 모습을 테스트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 유다가 요셉에게 가까이 가서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44:18-34절까지는 유다의 간청입니다. 이 유다의 간청은 구약성경 중 가장 장엄하고 설득력있는 웅변이라 일컬어 집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베냐민을 구속하고자 하는 대속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일생 종이 되겠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노예로 팔고 항상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식량을 사러 와서 정탐꾼으로 몰려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 당시에 동생이 당했을 그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악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 생명보다도 아버지와 동생을 더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되게 회개한 유다를 받으시고 후에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메시야의 조상으로 귀히 쓰셨습니다.
45: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회개한 모습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억제하였던 정이 폭발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마음껏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컷던지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습니다. 그가 이때까지 많은 사건들을 고의로 만들어 형들을 곤경에 빠지게 한 것은 그들에게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감정적이고 무책임해서 하나님께 아무 쓸모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은 20개에 동생을 판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려면 진실되게 회개하여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요셉은 여러 모양으로 형들을 훈련시킴으로서 그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남모르는 희생과 아픔을 감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의 사랑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도록 돕는 사랑입니다. 형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의 사랑이요,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요셉의 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도울 때 이러한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짐바브웨에 계신 윤영종 학사님은 자기 의가 강한 의지의 한국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모님이 하나님을 믿게 되자 그게 싫어서 얘들을 다 키우면 이혼 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까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불신자 남편을 영적인 사랑으로 섬기신 사모님의 믿음과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랑하는 양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돕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요셉과 같이 죄 문제를 해결 받기까지 사람들을 품고 섬기는 사랑의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의 믿음(45장)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힌 다음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45:4-8절은 요셉의 간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뜨겁게 영접할 수 있었던 내적 힘이 그의 믿음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이 형들의 손에 의해서 좌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가운데서 인도되었음을 증거했습니다.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사 요셉을 연단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친속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와 신하들이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아비와 친속들을 애굽으로 오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때 애굽으로 간 야곱 족속이 70인 이었고, 그들은 총리 요셉의 덕분으로 기름진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이민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기근으로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야곱 족속을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구속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우리에게까지 구속역사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가장 운명적인 삶 속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45: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온 것을 운명의 장난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 가운데서 자기를 먼저 이곳에 보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눈으로 자기 생애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생애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 편에서 보지 않고 운명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그의 생애가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운명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로 태어나 배다른 형들과 함께 구박을 받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어릴 때 일찍 어머니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때 꾼 꿈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 낯선 이방 땅에서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정 총무가 되었지만 또 다시 강간범이란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뼈속까지 스며드는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만큼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도 이글거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복수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팔아 넘긴 형들,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게 한 보디발 여사, 진실을 외면한 시위대장 보디발도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생애를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과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이곳에 자기를 먼저 보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서 8:2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뜻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요셉은 말끝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도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없이 볼 때 인생은 운명적이고 슬픈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하여 섭리 가운데서 나를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인생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은 그가 낯선 땅에서 슬픔과 고독을 이기게 하였습니다. 또한 유혹을 물리치고 청년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감옥에서 최악의 환경을 극복케 하였고, 인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총리가 되었을 때에 교만하지 않고 맡은 바 직분에 충성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한 순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합하여 볼 때 결국 선이 되었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그의 인생은 고난 중에서나 영광 중에서나 조금도 요동치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요셉의 생애를 살펴볼 때 그가 너무나 훌륭하여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요셉은 요셉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를 아름답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전 생애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완전한 뜻을 두시고 완전한 사랑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인생의 고난과 시련들을 극복하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드러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창세기 42-45장
요 절 45:7 "하나님이 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고난 중에서나 영광 중에서나 항상 함께 하셔서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후반부 생애로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쓰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첫째,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요셉의 진정한 사랑(42-44장)
42장 1,2절을 보십시오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여기서 때란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들기 시작하여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한 때를 말합니다. 세계 각국 백성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왔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곡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어릴 때 꾼 꿈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절하는 꿈’. 바로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완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가지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 형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 훈련은 42-44장 까지 지루할 만큼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형들에 대한 요셉의 진정한 사랑을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엄한 소리로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진실을 증명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들을 다함께 삼일을 가두었다가 다시 풀어 보내며 말했습니다.
18절b "나는 하나님을 경외 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그리고 시므온을 인질로 결박하여 잡아두고 곡식을 가지고 집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정탐으로 몰리게 된 형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들은 20년 전 동생을 노예로 팔았던 그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해 주십니다(요일 1:9).
24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마음이 아파서 안으로 들어가서 울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셉이 우는 것을 볼 때 형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결박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낼 때 곡물과 함께 돈도 도로 넣어 보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돌아가는 중에 객점에 들러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었다가 돈뭉치를 보고 혼이 나서 떨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 일을 행하셨는고"(28b). 그들은 요셉의 사랑과 도움을 하나님의 징벌로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 아비 야곱에게 모든 일을 고하자 야곱은 요셉도 잃고, 시므온도 잃고, 이제 베냐민까지 잃게 되었다고 하면서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뭄으로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베냐민과 함께 아들들을 애굽에 내려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그의 몸을 담보 삼아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베냐민과 많은 예물을 가지고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요셉은 마음을 졸이며 형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시므온을 생각할 때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드디어 형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형들을 자기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예물을 드리고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베냐민을 보고 "소자야,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노라"(43:29b)하고 축복했습니다. 동생 베냐민은 요셉이 팔려올 때 어린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매우 닮은 동생 베냐민을 보니 마음이 타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그 정을 억제하고서 형들을 대접했습니다.
여기서 "그 정을 억제하고"(43:31b) 이 말씀은 그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요셉은 어머니 없이 자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20년만에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정이 많은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습니까? 요셉이 만일 그 정을 억제치 못하여 형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면 더 이상 그들을 훈련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을 억제함으로서 그들을 형들을 끝까지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먼저 형들을 나이 순서 대로 앉히고 풍성한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더 주었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자 요셉은 또 다시 한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청지기로 하여금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각본대로 조사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형들은 충격을 받고 옷을 찢고 각기 짐을 싣고 다시 성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들은 현장에서 잡힌 절도범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또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까?
44장16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들은 이번에는 모두 다 종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종이 되고 모두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참 모습을 테스트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 유다가 요셉에게 가까이 가서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44:18-34절까지는 유다의 간청입니다. 이 유다의 간청은 구약성경 중 가장 장엄하고 설득력있는 웅변이라 일컬어 집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베냐민을 구속하고자 하는 대속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일생 종이 되겠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노예로 팔고 항상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식량을 사러 와서 정탐꾼으로 몰려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 당시에 동생이 당했을 그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악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 생명보다도 아버지와 동생을 더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되게 회개한 유다를 받으시고 후에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메시야의 조상으로 귀히 쓰셨습니다.
45: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회개한 모습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억제하였던 정이 폭발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마음껏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컷던지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습니다. 그가 이때까지 많은 사건들을 고의로 만들어 형들을 곤경에 빠지게 한 것은 그들에게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감정적이고 무책임해서 하나님께 아무 쓸모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은 20개에 동생을 판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려면 진실되게 회개하여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요셉은 여러 모양으로 형들을 훈련시킴으로서 그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남모르는 희생과 아픔을 감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의 사랑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도록 돕는 사랑입니다. 형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의 사랑이요,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요셉의 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도울 때 이러한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짐바브웨에 계신 윤영종 학사님은 자기 의가 강한 의지의 한국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모님이 하나님을 믿게 되자 그게 싫어서 얘들을 다 키우면 이혼 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까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불신자 남편을 영적인 사랑으로 섬기신 사모님의 믿음과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랑하는 양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돕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요셉과 같이 죄 문제를 해결 받기까지 사람들을 품고 섬기는 사랑의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의 믿음(45장)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힌 다음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45:4-8절은 요셉의 간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뜨겁게 영접할 수 있었던 내적 힘이 그의 믿음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이 형들의 손에 의해서 좌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 가운데서 인도되었음을 증거했습니다.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사 요셉을 연단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친속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와 신하들이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아비와 친속들을 애굽으로 오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때 애굽으로 간 야곱 족속이 70인 이었고, 그들은 총리 요셉의 덕분으로 기름진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이민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기근으로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야곱 족속을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구속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우리에게까지 구속역사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가장 운명적인 삶 속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45: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온 것을 운명의 장난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 가운데서 자기를 먼저 이곳에 보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눈으로 자기 생애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생애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 편에서 보지 않고 운명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그의 생애가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운명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로 태어나 배다른 형들과 함께 구박을 받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어릴 때 일찍 어머니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때 꾼 꿈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 낯선 이방 땅에서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정 총무가 되었지만 또 다시 강간범이란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뼈속까지 스며드는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만큼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도 이글거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복수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팔아 넘긴 형들,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게 한 보디발 여사, 진실을 외면한 시위대장 보디발도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생애를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과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이곳에 자기를 먼저 보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서 8:2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뜻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요셉은 말끝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도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없이 볼 때 인생은 운명적이고 슬픈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하여 섭리 가운데서 나를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인생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은 그가 낯선 땅에서 슬픔과 고독을 이기게 하였습니다. 또한 유혹을 물리치고 청년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감옥에서 최악의 환경을 극복케 하였고, 인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총리가 되었을 때에 교만하지 않고 맡은 바 직분에 충성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한 순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합하여 볼 때 결국 선이 되었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그의 인생은 고난 중에서나 영광 중에서나 조금도 요동치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요셉의 생애를 살펴볼 때 그가 너무나 훌륭하여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요셉은 요셉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를 아름답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전 생애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완전한 뜻을 두시고 완전한 사랑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인생의 고난과 시련들을 극복하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드러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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