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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창19강(29,30장)/ 밧단아람에서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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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521회 작성일 05-07-10 08:21

본문

2005년 창세기 제 19 강                                                       
말씀 / 창세기 29:1 - 30:43
요절 / 창세기 30:43

밧단아람에서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오늘 말씀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며 복을 받은 내용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네 명의 아내를 얻어서 열 두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심히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초로 그는 열 두 지파를 형성하고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성이 강한 야곱을 밧단아람에서 훈련시키시고 열국의 아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하신 종들을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 뜻을 이루십니다.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사람 막대기, 라반을 통한 훈련과 결혼(29:1-30)

  야곱이 벧엘을 출발하였습니다. 그가 720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한 달 이상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는 발을 들어서 떼어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여행을 한 결과 마침내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밧단아람에 도착하기까지 야곱을 지켜 주셨습니다. 야곱이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목자들을 만나서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그의 딸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보자 큰 위로와 기쁨으로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맞춘 후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라반의 조카라는 것과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라헬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야곱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라반은 그가 정말 자기와 피붙이인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을 잘 하는 것을 보고  라반이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라반과 야곱 사이에 연봉 협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그는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봉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명예를 먼저 구하고 다음에 사랑을 구했습니다. 사랑을 구한 다음에 물질을 구했습니다. 그는 가치관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여인과 결혼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또한 한 여인을 7년 동안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맨스를 즐기면서 7년을 수일 같이 여기면서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동기로 일하는 사람은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고 즐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함으로 일한다면 여러 모양의 수고와 희생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 동안 충성스럽게 일했습니다. 기한이 차자 야곱은 라반에게 내 아내를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이 그곳 사람들을 다 모아 잔치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치루었습니다. 결혼식은 그 지방의 풍습대로 여자의 몸과 얼굴을 베일로 가리우고 저녁에 치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반은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갔습니다.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습니다. 야곱이 첫날 밤을 지내고 아침에 깨어 보니 레아였습니다. 레아는 그 밤에 라헬과 같은 목소리와 몸짓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깜깜한 밤이라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제게 딸들이 셋이나 있는데 다 다릅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외모가 다 개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하의 야곱이 라헬과 레아를 구별하지 못해서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는 너무나 황당하고 화가 나서  라반에게 따졌습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25)” 그런데 라반은 무엇이라고 둘러댑니까?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는 하지 않는 일이여, 자네 라헬을 위하여 칠 일을 더 채우게. 응, 그러면 라헬도 자네에게 줄 것잉께. 자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하는 것이야, OK.” 야곱 생각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바로 라반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라반의 말을 듣자 야곱은 자기가 형 에서를 속인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감쪽같이 속인 것에 대해서도 생각났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사기를 당했다고 펄쩍 뛰다가 진짜 사기 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을지도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는 죄의 대가를 받을 때 “억울하다. 분하다. 하나님은 너무 하시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가를 치를 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때 복이 다시 시작됩니다. 억울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 대가는 고통으로 변합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원칙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모든 저주가 끝나게 되고 모든 심판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회복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4:14-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잘못해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미숙해서 고통을 겪습니다.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함부로 말을 쏟아 놓아서 고난을 겪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하고 부정직한 사람이라할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끝까지 인내하셔서 책임있고 정직하고 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 41:14).”

  야곱은 상관인 라반을 통해서 자기 성실과 의지가 깨어지고 인간적인 것들이 부서지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결국 라반을 위하여 14년간 무보수로 봉사해야 했습니다. 라반은 욕심 때문에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야곱이 아마추어라면 라반은 프로였습니다. 야곱은 꼼짝없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치는 생활, 섬기는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직장 상관이나 교수님이나 사람 막대기를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그런 훈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역사합니다.
 
둘째, 가정생활을 통한 훈련과 열 두 자녀를 얻음(29:31-30:2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습니다. 레아는 신혼살림을 차렸지만 독수공방을 하면서 긴긴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레아는 외로운 밤에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레아는 하나님께 자신의 한 맺힌 마음을 쏟아놓았습니다. 레아는 철야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레아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남편에게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에게는 열매를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라헬은 자기를 죽기 살기로 좋아하는 능력있는 남편 야곱이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이런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남편의 사랑에 갈급한 레아와 태의 열매가 없음으로 고통하는 라헬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을 겸손하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레아는 남편의 사랑타령을 하면서 첫 아이의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습니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에 목말라 하다가 이제는 두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레아는 남자에 대한 실망과 절망과 포기의 단계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기 시작합니다.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짓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즉 셋째까지는 남편과 연합하리라는 식의 표현을 담은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넷째 아이 유다를 낳은 후에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어줍니다. 남편의 사랑에 얽매여 있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고 허무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한 여자에게서 영적 성숙의 한 단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질없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포기하고 영원한 것을 붙잡는 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이 여자가 변했을 때 태어난 아이가 놀랍게도 열 두 지파 중에서 가장 복 받은 지파의 조상 유다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레아가 아들을 계속해서 넷씩이나 낳으니까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긴 했어도 임신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니 레아를 질투합니다. 그녀는 견디기가 매우 힘들어서 야곱에게 자기로 아이를 낳게 하지 못하면 확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합니다(30:1). 야곱은 난감해질대로 난감해졌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노를 발하였습니다.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2)” 그런데 라헬은 남편에게 혼이 나자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따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려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이루어지는데 라헬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불신앙에 기초한 결정을 내립니다. 하나님 앞에 오기와 자존심을 내세우고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단입니다. 단이라는 아이가 태어난 동기는 질투입니다. 부모의 축복 속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언니에 대한 질투와 억울함을 참지 못해서 태어난 아이가 단입니다. 창49:16-18절을 보십시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 지파는 훗날 우상 숭배를 합니다. 또한 요한 계시록의 14만 4천 명 중에 단 지파는 빠져 있습니다. 단 지파는 이런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런 단 지파도 제사장의 가슴에서 보석 중 하나로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이 태어났지만 라헬의 분노와 질투심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라헬은 또 아이를 낳도록 몸종을 부추깁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라헬은 “아이가 태어나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지 않고 “내가 형을 이겼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4:2입니다. 라헬은 한이 맺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라헬의 추격에 신경이 곤두선 레아가 그녀의 몸종인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습니다. 실바는 아들을 낳자 레아가 “복되도다”라고 그 이름을 갓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바가 둘째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라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습니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합한채를 먹으면 임신이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레아에게 이것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라헬이 레아에게서 야곱을 빼앗간 것이 아니라 라헬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레아가 야곱을 속여서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의 언제나 사실을 바꿔서 상대방을 공격하게 마련입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묵묵히 수모를 겪습니다. 그리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 잇사갈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다시 잉태하여 스불론이라는 아들을 낳고 또 디나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라헬은 어떠했을까요? 라헬은 합환채도 써보고 투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말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다”는 말은 “라헬을 잊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거절로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기다림일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드렸던 기도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거절당했다 생각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라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헬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믿음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야곱은 가장이었지만 자식들의 이름을 짓지도 못했습니다. 두 아내의 자식 낳기 경쟁과 사랑 싸움 속에서 가정이 시끄러웠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와 함께 하사 열 두 자녀를 낳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아내도 기도의 여인들이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셋째, 양치는 훈련과 물질적인 복을 풍성히 받은 야곱(30:25-43)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야곱이 하란에 살았지만 가나안은 야곱의 영적인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고향인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이 돌아가겠다고 하자 라반은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이에 야곱은 가시 돋친 말을 합니다.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부리는 사람은 몰랐지만 섬기는 사람은 마음 속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덕분에 외삼촌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렇게 살기 싫다.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그래서 라반은 야곱에게 떠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라고 합니다. 이에 야곱이 제안을 합니다. 즉 오늘 외삼촌의 양 떼 와 염소 중에서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제안을 듣고 보니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가 숫 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어 내고 양 중에서 검은 자들을 가리어 내어 자기 아들의 손에 붙이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습니다. 라반과 야곱은 서로 양보해 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야곱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서 방황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을 지내놓고 보니 자신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장인에게 속아서 사기 결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인에게 또 속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또 다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에 향하게 했습니다. 그 떼에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또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결국 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밧단아람에서 야곱을 훈련하시면서도 때마가 축복하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상관 라반을 통해서 속는 자의 아픔을 알게 하시고 결혼을 통해서 아내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대로 열 두 자녀를 낳고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때 그는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의 복이 충만히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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