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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05lk2(1:26-56)/비천함을 돌아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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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628회 작성일 05-12-04 07:35

본문

2005년 성탄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1:26 - 56
요절 / 누가복음 1:48

비천함을 돌아보셨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비천한 죄인들을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회복되어야 할 인간의 형상이 무엇인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사모하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일생 감당하기 원합니다. 이 시간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가 잉태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세상에서 완수하도록 받은 사명을 다 하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이 잉태한 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찾아갔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은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나사렛 뒷편에는 레바논과 언제나 눈이 덮여있는 헬몬산이 있고, 다른 쪽에는 푸르고 높은 갈멜산이 위치했는데 이 산은 지중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현재는 이 지역을 '엔 나시라'(EN  Nasirah)로 부른다고 합니다. 한편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나사렛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할 정도로 멸시를 받던 동네였습니다(사9:1). 그러나 이방의 갈릴리, 멸시를 받던 동네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영화롭게 되었습니다(사9:1).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실 때 내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 되고 영광스러운 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오실 때 의미가 있고 영화롭게 됩니다. 예수님은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운명적이던 이 나라에 오셔서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유대에서 정혼을 하면 아내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결혼식을 하고 아내를 자기 집으로 데려 옵니다. 27절에서 정혼한 처녀, 29절에서 처녀, 34절에서 사내를 알지 못하니 등은 마리아의 처녀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조는 정혼 이후에 마리아가 더욱더 조신(操身)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확증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혼한 마리아는 요셉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끊임없이 요셉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시장에서 줄서 있을 때, 음식을 만들 때에도 요셉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따금 요셉에 관해 혼잣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성실한 목수요 의롭고 진실되고 믿음직한 청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요셉과 함께 하루 종일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의미심장한 인사를 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일반적으로 은혜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을 사용할 때 기본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이는 죄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슬픔과 운명과 연약함과 모든 죄짐을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함으로써 은혜와 사명을 동일시했습니다. 주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자는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고 기쁜 일입니다. 때로 사명을 감당하다가 아픔을 당하지만 그가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모든 인류가 흠모하는 성모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성모가 되기 위해서는 아픔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요셉으로부터 오해받는 아픔, 사람들의 비난하는 눈짓을 받아야 하고 자기의 꿈이 깨질 수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참하게 처형되는 모습을 보며 칼이 그 마음을 찌르듯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런 희생과 아픔을 이기고 인류의 어머니로 쓰임 받는 복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사명의 은혜를 일생 감당하는 가운데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러면 마리아의 몸을 빌어 나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란 여호와는 구원자시라는 뜻입니다. 아담이 사단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을 때 그는 교만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두려움과 수치심, 도피 심리, 불안, 변명, 불화가 생기고 거짓과 미움, 시기, 살인과 전쟁, 사기, 간음, 폭력 등 어두움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죽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인간은 허무, 무기력, 무정, 무관심, 무표정 등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인생이 이게 아닌데 하며,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에서 구원을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낙원을 잃어버리고 자아를 상실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자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하시며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우 리를 구원해 주신 구원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메시야를 이 세상에 보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저가 큰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3년 동안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33세로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보여준 인격과 사역은 그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겸손과 사랑, 온유와 관용, 그가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감격하게 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가장 무거운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영접하는 한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의 오실 것에 대한 예언과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베스트셀러입니다. 그가 들어가는 곳마다 여권이 신장되고 인권이 회복되며 인간의 평등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 역사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호수를 말씀으로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 그를 보고 “주는 그리시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롬1:4절은 말씀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그는 죽음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넷째, 그는 왕 중의 왕이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손이십니다. 그는 성경에 약속된 메시야이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그 백성된 우리를 사랑과 공의, 평화로 통치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그는 사단의 권세를 파하시고 우리를 그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게 됩니다(롬14:17).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예수님께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움의 나라에서 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1:13).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해되는 것이나 악한 것이나 질병이나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가 영원하시고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무궁합니다. 이는 그가 그 나라를 공의와 긍휼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왕들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죽습니다. 진시황도 불로초를 먹고 영원히 다스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나라는 아무리 길어도 천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 나라가 부패하고 죄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위대하신 만왕의 왕,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을 낳고 기르며 섬기는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성령의 능력이 그를 덮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덮듯이, 창조 시에 성령이 수면 위를 덮듯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동정녀의 탄생은 유일무이한 기적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동정녀 탄생도 믿을 수 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의문을 어떻게 해결해 주었습니까?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엘리사벳은 육 개월 전에 천사 가브리엘의 고지대로 아들을 배었습니다.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엘리사벳은 폐경기를 넘어서 난자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엘리사벳이 회춘하여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믿음을 심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계집종이란 말은 노예를 뜻합니다. 노예는 자유의지도 없고 인간적인 권리도 주장할 수 없고 자기 소유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요셉의 아내이기 전에 주의 계집종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임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자신에게 미치게 될 온갖 비난과 돌팔매질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 앞에 선 인생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마리아의 이 고백은 결코 가볍게 여겨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처녀 수태로 인해 파급될 문제는 엄청난 것입니다. 파혼과  함께 부정한 여인으로 몰려 세인의 멸시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자칫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의 가슴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이 처리하시리라는 굳센 믿음이 마리아의 심령을 사로잡았습니다. 마리아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만민 구속 역사에 인류가 흠모하는 성모 마리아로 쓰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천사가 떠나가자 마리아는 얼른 일어나 유대 산 동네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마리아에게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았는데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큰 소리로 마리아를 축복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6-48).” 엘리사벳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한 마리아의 마음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 46,47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나사렛 목수의 아내로서 메시야를 낳고 양육하는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격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낮은 마음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때 비천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발견한 것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베드로도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나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받고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밤새도록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하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수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자신이 비천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상태는 비천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을 잃어버리고 이기심과 탐심과 교만과 정욕 등 더러운 걸레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귀족 출신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라고 고백했습니다. 마리아는 구약에 나오는 한나와 같이 비천한 자의 슬픔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 때에 내가 비천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인격이 천박하고, 하는 행동이 철이 들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비천한 가정에 태어나서 비참하게 죽을 이 죄인을 구원하사 캠퍼스 목자로 삼으시고 구원역사에 써 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비천한 우리 각자를 돌아보셨음을 알게 될 때 모든 슬픈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비천함을 돌아보사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을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비천하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사시면서 가난을 깊이 체험하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하여서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아무렇게나 다루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거절당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비방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그가 왜 이런 가난과 모욕과 비천한 삶을 사셔야 했습니까? 바로 비천한 인생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비천한 인생들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으로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비천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택하여 성모로 쓰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나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위대한 자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왕이심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요 공평과 정의의 왕이요 영원한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그 백성된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사 마리아와 같은 찬송시를 읊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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