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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05년 추수감사(시103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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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411회 작성일 05-11-20 08:28

본문

2005년 추수감사절                                                        308,460
말씀 / 시편 103:1-22
요절 / 시편 103:2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이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택을 기억하고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은 개인적인 회복으로 인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6-18절은 모든 성도들의 사죄를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19-22절은 천군 천사를 비롯하여 만물로 하여금 송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개인적인 회복(1-5)

  1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송축하라는 말씀은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합니다. 나의 생각, 기억력, 지성, 감성, 의지, 사상 등 모든 것을 다해서 전 인격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이는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찬양은 훈련되어져야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좋을 때는 찬양하다가 어려우면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3:10절에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어두운 생각, 운명적인 생각이 물러갑니다. 어려울 때 감사를 해야 불평이 사라지고, 마음이 밝아져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고난 가운데 감사할 때 운명적인 생각들이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감사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생깁니다. 힘들 때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감사치 않는 것은 죄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은택이란 은혜와 덕택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는 피조물의 의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전인격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정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받은 바 은혜를 잘 잊어 먹습니다. 또 은혜를 많이 받고 자주 받으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신 것은 잊어먹고 더 주시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우리 공동체에 행하신 일,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비전도 생깁니다. 한 해 동안 받은 바 축복이 없어 보여도 기억을 되살려 감사 제목을 찾아보면 은혜가 풍성해 집니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있는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나의 모든 죄악을 깨끗이 사함 받았습니다. 여기서 나의 모든 죄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무거운 죄, 가벼운 죄,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지은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모든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런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사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믿을 때 그 피의 능력이 나에게 적용이 됩니다. 다윗은 오실 예수님을 보고 죄사함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보고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있는 우리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나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시32:2-5)” 그리고 그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7,8)”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없음, 인본주의, 게으름과 안일, 교만과 음란, 미움과 시기, 판단 정죄, 영적 무지 등등 우리의 죄는 끝이 없습니다. 죄 사함 받은 것은 우리가 받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이요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입니다.

둘째, 모든 병을 고쳐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병에 시달릴 때 그 고통과 불편함과 절망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시대는 과학의 발달로 많은 병들을 고치고 있지만 동시에 공해로 인해서 수많은 병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병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모든 병에서 고쳐주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 은혜를 인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파멸이란 음부, 지옥, 덫이나 함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함정을 파 놓고 우리를 빠뜨리고자 유혹합니다. 사단은 교만의 함정, 불신의 함정, 좌절의 함정, 정욕의 함정, 세상 욕심의 함정, 자기 사랑의 함정, 자기 연민의 함정, 자학의 함정, 비난과 정죄의 함정 등 다양한 함정을 마련해놓고 벼르고 있습니다. 교만의 함정에 빠지면 마음이 부유해지고 높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이 사람 저 사람 판단하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오만 방자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심히 부담스럽게 합니다. 불신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염려와 두려움이 몰려와서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단이 주는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가슴 깊이 영접하고 새기며 묵상합니다. 하나님도 못 믿고 사람도 못 믿고 나 자신도 못 믿고 아무도 못 믿겠다하며 구덩이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눕습니다. 심령이 무겁고 몸도 무기력해져서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시간을 다 허비합니다. 현재 사단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신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붙잡고 나오십시오. 우리를 모든 사단의 덫에서 구원해주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히브리서 저자는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우리를 사단의 모든 함정에서 건져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넷째,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관을 씌웠다는 말씀은 감싸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자와 긍휼로 감싸안아주십니다. 사단은 우리의 연약함을 짓밟고 뭉개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교만 방자히 행할 때에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욕과 음란으로 더러워졌을 때에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의 터진 웅덩이에서 목마름을 채우고자 헛되이 행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보시고 친히 목자님을 통해서 심방오시고 말씀으로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촉촉이 적셔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셨습니다(마12:20).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셔서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심판하고 정죄하기보다 자기 몸을 던져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감싸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보실 때 정죄하는 무리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감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인자와 긍휼을 생각할 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셔서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소원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의 소원을 만족케 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한 맺힌 기도 제목들을 응답해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공부하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내 속에 있었던 묵은 누룩을 제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제자 양성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정시 퇴근하는 직장을 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음식을 주셔서 건강을 유지하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좋은 것이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 그것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한 분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의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심령으로 영접하고 믿을 때 죄사함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겁게 누르던 모든 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고 독수리처럼 힘있게 창공을 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독수리는 때가 되면 털을 갈아서 청춘을 유지합니다. 또 독수리는 날카로움, 강인함의 상징입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매우 강해서 태풍이 와도 그 회오리에 말려들지 않고 올라가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덧입게 될 때 어떤 인생의 강풍이 몰아닥쳐도 약해지지 않고 독수리가 태풍을 뚫고 날아가듯이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31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우리의 겉 사람은 늙고 쇠약해 자기지만 속사람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과 은혜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고후4:16).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청년과 같은 스피릿을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실 때 우리는 어려울수록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도전 정신이 생깁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독수리 같이 날아오르기를 기도합니다.

∏. 공동체에 베푸신 은혜(6-18)

  6,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 나라 현직 법조인의 73%는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판정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십니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선지자적인 자세로 개선을 촉구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유엔에서북한 인권 개선안에 대해서 기권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크리스챤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그것이 동포애를 발휘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에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산 밑에서 소 우상을 만들어 제사하며 음란을 행했을 때 하나님께서 당장 그들을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엎어 버릴 수 있었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따라서 처치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10,11).”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죄를 따라 처치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나라 안에서 행해지는 죄악을 생각하면 참으로 두렵습니다. 6자 회담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아니하시고 그를 경외하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이 나라가 온전한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보고 간과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징계하지 아니하시고 참으시고 감당해 주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노를 푸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멀리 떼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영단번에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십니다. 십자가를 영접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죄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십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아비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아비는 자식을 판단하기 보다는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무엇을 요구하기 보다는 감당해 줍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베푸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는 사랑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체질이란 인간이 흙으로 지음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한 갓 진토요 먼지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사실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나약한 인생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가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그 양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양을 알 때 요구하고 정죄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긍휼과 인자는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이렇게 불쌍히 여기시는 이유가 또 무엇입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인생은 그 일생이 풀과 같이 약하고 짧습니다.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이 잠시 아름답다가 곧 말라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6절에 바람은 ‘시록코’라는 뜨거운 동풍입니다. 이 바람이 한 번 불면 들판에 있는 풀도, 그 꽃도 말려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참으로 인생은 무상합니다. 인생은 덧없습니다. 권력를 지니고 있던 분들이 임기가 끝나고 나서 검찰에 불려 다니는 것을 보면 인생의 무상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헤세드’로서 언약적 용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택한 백성과 맺은 언약에 의거해서 당신의  주도적이고도 신실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 백성을 신실하게 사랑하심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받는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하듯이 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되 마음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각별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언약에 기초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Ⅲ. 만물의 송축

  하나님의 통치는 어디에까지 미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암시하는 보좌가 하늘에 세워졌다는 것은 결코 요동함이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보좌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 왕의 보좌는 선거에 의해서, 반란과 혁명에 의하여 그리고 사망에 의해서 그 주인이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결코 그 주인이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자자손손 영원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여된다는 확신의 토대는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모든 천군들, 여호와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천사들,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자들을 초청합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제 시편 기자는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도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우주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만유의 주요, 왕 중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가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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