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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서 05고전7강(6:1-20)/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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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628회 작성일 05-11-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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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가을 고린도전서 7강                                                        493,375
말씀; 고린도전서 6:1 - 20
요절; 고린도전서 6:20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오늘 말씀은 1-8절에서 세상 법정에 호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책임 대신에 권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말로 깊이 회개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바울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그들에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9-20절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음행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극적인 행동이라면 적극적인 행동으로는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셨습니다. 또 우리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몸을 음행하여 창기와 섞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몸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Ⅰ. 세상 법정에 호소하지 말라(1-8)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신자들 사이에 분쟁이 있어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해 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툭하면 법정에 송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을 오락거리요 여흥거리로 즐겼습니다. 헬라 도시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변호사였으며 법률 소송의 판결을 내리거나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울이 볼 때 소송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습관은 본질상 그들이 고린도의 성적 방종에 동화된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세상이 교회 안에 침입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자들끼리 법정에서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내에서 권징이 행해지지 않으므로 세상 법정에서 이런 볼썽사나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 재판관들에 의해서 재판을 받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교회 관련 사건은 대개 신자인 재판관이 집행한다고 합니다. 성도들  역시 불가피한 상황에 따라서는 세상 법정에 송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 이후에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는 차선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교회 내에 법을 전공한 분들이 있어서 분쟁 문제들이 생길 때 중재를 한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세상 법정으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을 때 마땅히 법정의 순서상 절차를 따라 출두하여 해명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일반 국가 시민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법의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 사이에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재판을 받겠다고 송사한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책망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신자들은 장차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까지도 심판하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세상 재판관들도 재판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식사 대접 받는 것도 마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할뿐만 아니라 재판관들의 삶이 고결해야 재판 결과에 사람들이 승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희생적인 삶을 통해서 세상의 비행을 심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장차 세상을 심판할 성도들은 이 땅에서 신자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발생하는 ‘지극히 작은 일’이란 물질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동역하기보다 서도 판단하고 교만하게 행하며 분쟁했습니다. 그럴 때 지극히 작은 일로 불신자들 앞에서 싸우고 송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교인들 간에 발생한 소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바울은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세상 법정에까지 끌고 가지 말고 교회 내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형제들이 서로 송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아니합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재판의 판결이라는 것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의지와 조정자의 중재에  의하여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 개인의 권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이런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시면서 까지 구원하셔서 그 백성을 삼아주셨는데 나의 권리에 집착하여 형제를 고소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둘째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서로가 송사하고 싸우는 것도 문제인데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형제와 싸워서 이겼다고 해도 그것은 완전한 패배입니다. 왜 패배입니까? 형제간에 관계성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믿는 자들이 저 모양이냐는 욕을 먹고 세상에 대해서 영향력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송사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고소를 하면 형제를 잃고 돈도 잃고 영향력도 잃게 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습니다. 억울하지만 손해를 보고, 당하는 것이 낫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진실을 다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승리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목초지 문제로 다투게 되었을 때 이를 양보하였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좌하리라”고 하면서 형제의 마음을 얻고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는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돌라오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겠습니다.

Ⅱ.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9-20)

  9,10절을 보십시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 시는 성적으로 극도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성을 육체적인 향락의 도구로만 생각했습니다. 불의한 자들의 목록에는 음란, 간음, 탐색, 남색 등 성에 관계된 범죄가 제일 많습니다. 고린도 시는 우상 숭배와 성범죄가 늘 병행했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천명의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밤이 되면 창녀로 변해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고 합니다.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는 동성연애자들을 말합니다(롬1:26,27). 고대 유명한 철학자들과 대부분의 로마 황제들이 변태적인 악을 행했습니다. 또 10절에 나오는 도적, 탐람, 술취함, 후욕, 토색하는 자들은 물질적인 탐욕과 난폭한 행위로서 남을 해치고 협박하는 폭력배들을 가리킵니다. 도적이란 산적이 아니라 좀도둑이나 소규모의 도둑을 말합니다. 도둑들은 공중 목욕탕과 공공 체육관에 잘 나타났는데 목욕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옷을 훔쳤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종들을 납치하는 일들이 흔했습니다.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도둑이 세 종류였는데 50드라크마(250만원) 어치 이상 훔친 도둑, 목욕탕, 체육관, 항구 등에서 무엇이든지 훔친 도둑, 밤에 무엇을 훔친 도둑들은 사형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좀도둑이 우글거리는 한 가운데서 살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는 술취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술 취하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소주를 일 년에 한 사람이 86병씩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에 한 병씩 먹는 양입니다. 알콜 소비량이 세계 4위입니다. 술 때문에 죽는 사람이 2만 3천명이고, 술로 인해서 일년에 16조원이 손실되고 있습니다. 술취함은 지금 이 나라를 병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정신으로 살기도 힘든데 술에 취해서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몸은 영혼의 무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영혼이니 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만 귀중하고 신체는 비천한 것이니 아무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망대로 더러운 정욕을 따라 방탕하게 사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우상숭배자가 되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불의와 탐욕이 가득한 자들이 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롬1:21,28). 그러므로 이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동성연애가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고 때로는 멋있게 보입니다. 도둑질하고 토색하는 것이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돈이 많은 자들이 돈 넣고 돈을 버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지만 영적인 기쁨이나 거룩한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우리는 죄를 행함으로 오는 즐거움과 이익은 절대적으로 끊어야 합니다. 이런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면 인생이 허무해지고 병들어 쓸모 없게 됩니다. 사는 즐거움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안해야 하는 것을 안 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술을 마신다고 해서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즐거움, 거룩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고린도 성도들도 과거에는 이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믿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씻음을 받았습니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영혼만 구원 받으면 된다, 몸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자유인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죄를 짓더라도 주님께서 이미 사해주셨으니 자백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자백만 해도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죄란 것은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단이 역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죄악된 본성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를 죄짓는데 쓰면 죄의 종이 됩니다. 결국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자유인답게 쓸 수 있으려면 절제가 필요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창녀를 찾아가는 행위를 나름대로 신학적으로 정당화 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도 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비판합니다. 그는 ‘너희들이 창녀에게 간다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몸이 가지는 의미가 어떠한가를 가르침으로서 영주주의의 영향 가운데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돕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은 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 몸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십니다. 식물은 위와 창자를 거쳐서 뒤로 배설되지만 음란은 인격에 큰 상처를 줍니다. 우리 몸은 음란을 위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우리 몸은 피곤해지고, 땀을 흘리고, 토하고, 아랫배가 나오고, 숨이 차게도 되지만 바로 이 몸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소중한 몸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만이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천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듯이 우리도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식물이나 배는 다 멸하실 것이지만 우리 몸은 영원히 사는 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음란을 위해서 내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합니다(롬12:1). 순종은 순전히 마음이나 감정이나 뜻만이 아니라 몸의 행동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말씀은 엄청나게 담대한 선언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수족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17)” 두 인격이 하나가 되며 너무 밀접하게 융합하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리도인의 연합을 묘사하기 위해 창녀와 연합하는 사람의 행동을 묘사할 때와 똑같은 문구 즉 ‘한데 딱 달라붙다’라는 단어(콜레메노스)를 사용했습니다(16). 남편과 아내의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됨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타나는 지침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 영이 되었으며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방 신전의 매춘굴에 출입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창세기 말씀을 근거로 그 죄악의 심각성을 깨우쳐줍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그들의 전 인격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기와 몸을 섞는다면 창기와 한 몸이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지체로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엄청난 죄가 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바울은 음행 죄는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해 지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죄인을 경고합니다. 남녀의 성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닙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성 관계를 맺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접촉이 아닙니다. 인격의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폭력은 심각한 인격파괴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인 피해를 당한 여성은 사소한 일에도 심하게 놀라고 과잉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피해의 기억을 회피하기 위해 방어 기제로 강박적인 관념이나 행동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체가 더럽다고 느껴지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목욕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의 결과로 자신의 순결이 상실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껴서 더 이상 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우울감, 무력감, 분노, 및 절망감, 죄책감이 심하게 됩니다. 가해자에 대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개심, 분노감, 복수심으로 시달립니다. 성적인 피해자들의 치명적인 피해 중의 하나는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 수치심 등과 같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대인 관계를 포함한 이성 관계를 기피하고 고립해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음행을 하고도 육체만 성병이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격과 삶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음행은 자기 몸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성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성을 축복된 결혼과 인격적인 사랑의 결합으로 사용할 때는 행복의 샘이 됩니다. 그러나 성을 남용하고 함부로 사용할 때 불행과 저주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과 같이 음행을 피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분의 지체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몸 안에 내주하면서 우리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결코 몸을 개인적인 쾌락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음행을 피하는 것이 소극적인 행동이라면 적극적으로 우리 몸과 온 지체로 의의 병기로 드려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우리는 몸으로 때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롬12:1,2). 그리고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 가지 일이라도 이루고자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쉬는 것을 좋아하고 안일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려면 투쟁이 필요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우리의 발은 복음을 전하는 발로,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손은 형제들을 섬기고 치료하는 도구로 드려져야 합니다.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음하는 형제의 고민을 들어주는데 써야 합니다. 눈은 성경을 바로 보고 사물의 이치를 분명하게 식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살피는 데 써야 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요,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산 것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몸을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특히 이번 가을 바이블 아카데미를 이 한 몸을 드려 온전히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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