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06년 전국 학사목자 수양회 주제 2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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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국 학사목자 수양회 주제 2 강
서로 사랑하라
말씀 / 요한복음 13:1-38
요절 /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송누가 목자님
오늘 주제 1강에서 우리는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임이니라”(막 13:10)말씀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재림신앙에 굳게 서서 복음전파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가지면서 말씀하신 유언적 메시지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과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는 장차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과 또한 아버지 집에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여 그들도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주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장차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지켜야 할 계명이 바로 새 계명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새롭게 영접토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1-30)
13:1절을 보십시요.“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제 머지 않아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 들 곧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여기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 함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구원과 심판의 모든 권세를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2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2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심판과 구원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긴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종들 중에서도 가장 천한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죽음이 촌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 마지막 시간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첫째,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씻기실 차례였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베드로는 주께서 결코 자기 발을 씻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더욱 강경하게 거절했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기 못하시리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과 머리를 세수 대야에 드리 밀며,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목욕한 자"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한 자, 곧 근본적인 죄 씻음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범하는 죄들을 예수님의 말씀과 보혈로 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 당하실 능멸과 조롱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깨끗케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추하고 부끄러운 죄도 깨끗케 씻어주시는 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도 깨끗케 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씻겨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의 씻겨주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7)고 하셨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 주도록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14,15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생 낮아지고 섬기시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허물과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고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명령하고 많은 사람위에 군림 하는 것을 출세요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세상 법칙과 다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칭찬과 영광을 받을 때 하나님께는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낮아지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알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게 되면 무시당하는 것 같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시당하면 참기 힘듭니다. 우리가 어떻게 낮아져서 섬길 수 있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이신 섬김의 본을 따라 이를 “행하면”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 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작은 지체에게 행한 것은 예수님께 행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장차 있을 심판의 때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의인들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의인들이 대답하여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 더 큰 이유는 유다의 배반을 두고 하신 것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서로 누구를 말씀하심인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한 조각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고 말씀하시고,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유다가 조각을 받자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 이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 그는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예수님을 배우고 순종하는 참 된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31-38)
예수님은 남은 열 한 제자들에게 다락방 강화를 시작하셨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요.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여기서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 는 말씀은 자신의 죽음이 시작된 그 순간, 수천 년 동안 준비 해 오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4,5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함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란 하나님의 맡기신 일에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자 애씁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면 멸망하지만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섬김과 희생과 낮아지심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 2:7-11)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하심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셔서 이제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십니다.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것은 다시 영광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감격스러운 구원의 소식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 것이 됩니다. 장차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감격스러운 영광의 소망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
이 영광의 소망을 기업으로 얻은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영광의 소망을 바라고 사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34,3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율법의 말씀입니다. 계명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계명은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계명을 지키면 영생과 구원이 있지만, 계명을 어길 때 심판과 멸망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9장에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영생과 천국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옛 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이 우리들의 새로운 기업이요 새로운 사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고난당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빛과 소망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섰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솟아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가득 차고 넘쳐흐를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 가운데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이 구원 얻은 성도의 삶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그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할 만큼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영접합니다. 제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고, 받은 은혜가 큽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으로 양들과 동역자들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1976년 대학 1학년 때 UBF에 나와서 의과대학 7년 동안을 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캠퍼스 목자로 세움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허물과 죄 투성이 였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한 해에 건강문제로 고통하며 사망권세에 시달렸습니다. 인생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절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저에게 빛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 인턴과정과 군의관 과정, 전공의 수련과정을 감당 할 수 있는 건강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공의 과정이 끝나자 대학에 교수자리도 주셨습니다. 박사학위도 주셨습니다. 1996년 해외연수를 앞두고 저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이 필요 했습니다. 부모님의 부채로 인해 장남인 저는 개업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공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시카고에서 일년 단기 선교사로서 믿음과 세계선교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작은 결단을 축복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 부모님의 부채와 생활문제를 평강 중에 책임 져 주셨습니다. 전공을 주님께 드렸는데 지난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가 연구비를 가장 많이 수혜 받는 교수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7년 동안을 주일 오후 여섯시 예배를 섬겨 왔는데, 2001년에는 학생 시절부터 간절히 기도 해 온 개척역사를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현재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광주 7 부 주일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 제게 이상한 방법으로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2004년에 제대 혈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환자 한 명을 임상시험 하였는데, 그 환자가 갑자기 좋아져서 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 국내외로부터 연구소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국내 어느 기업의 지원으로 벤처기업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연구소 이름을 Jesus Best 줄기세포 연구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며칠 전 대구에 다녀오면서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울며 찬송하며 비 내리는 밤길에 차를 몰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지닌날 질고로 고통하던 저의 치료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몰라 방황하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곤궁한 저의 부요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저는 절망으로부터 일어 서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시간 예수님은 이 사랑으로 제가 양들과 동역자들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섬기는 광주 7부에는 다섯 가정이 동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동역자가 힘들어져서 예배를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분을 생각 할 때 도저히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그분의 생각과 처세를 이해 할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돕고자 하는 믿음도 심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분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셋째,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35절을 보십시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의 제자 된 표식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서로 사랑 할 때,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요한 일서 4: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 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요한 일서 3:14절은 더 나아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도 부부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자라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역자간에 서로 사랑 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피차 자라게 됩니다.
36-38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가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부인 하였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반복하여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혈과 육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 할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 함을 입고 거듭나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났을 때, 그는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사랑의 목자요 담대한 복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 은혜를 감당 할 길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며, 동역자 , 양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 낮아지심과 섬김을 배우는 복된 주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말씀 / 요한복음 13:1-38
요절 /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송누가 목자님
오늘 주제 1강에서 우리는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임이니라”(막 13:10)말씀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재림신앙에 굳게 서서 복음전파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가지면서 말씀하신 유언적 메시지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과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는 장차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과 또한 아버지 집에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여 그들도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주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장차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지켜야 할 계명이 바로 새 계명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새롭게 영접토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1-30)
13:1절을 보십시요.“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제 머지 않아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 들 곧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여기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 함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구원과 심판의 모든 권세를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2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2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심판과 구원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긴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종들 중에서도 가장 천한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죽음이 촌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 마지막 시간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첫째,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씻기실 차례였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베드로는 주께서 결코 자기 발을 씻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더욱 강경하게 거절했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기 못하시리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과 머리를 세수 대야에 드리 밀며,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목욕한 자"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한 자, 곧 근본적인 죄 씻음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범하는 죄들을 예수님의 말씀과 보혈로 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 당하실 능멸과 조롱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깨끗케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추하고 부끄러운 죄도 깨끗케 씻어주시는 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도 깨끗케 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씻겨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의 씻겨주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7)고 하셨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 주도록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14,15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생 낮아지고 섬기시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허물과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고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명령하고 많은 사람위에 군림 하는 것을 출세요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세상 법칙과 다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칭찬과 영광을 받을 때 하나님께는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낮아지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알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게 되면 무시당하는 것 같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시당하면 참기 힘듭니다. 우리가 어떻게 낮아져서 섬길 수 있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이신 섬김의 본을 따라 이를 “행하면”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 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작은 지체에게 행한 것은 예수님께 행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장차 있을 심판의 때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의인들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의인들이 대답하여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 더 큰 이유는 유다의 배반을 두고 하신 것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서로 누구를 말씀하심인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한 조각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고 말씀하시고,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유다가 조각을 받자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 이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 그는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을 마음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예수님을 배우고 순종하는 참 된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31-38)
예수님은 남은 열 한 제자들에게 다락방 강화를 시작하셨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요.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여기서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 는 말씀은 자신의 죽음이 시작된 그 순간, 수천 년 동안 준비 해 오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4,5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함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란 하나님의 맡기신 일에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자 애씁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면 멸망하지만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섬김과 희생과 낮아지심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 2:7-11)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하심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셔서 이제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십니다.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것은 다시 영광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감격스러운 구원의 소식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 것이 됩니다. 장차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감격스러운 영광의 소망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
이 영광의 소망을 기업으로 얻은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영광의 소망을 바라고 사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34,3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율법의 말씀입니다. 계명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계명은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계명을 지키면 영생과 구원이 있지만, 계명을 어길 때 심판과 멸망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9장에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영생과 천국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옛 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이 우리들의 새로운 기업이요 새로운 사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고난당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빛과 소망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섰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솟아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가득 차고 넘쳐흐를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 가운데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이 구원 얻은 성도의 삶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그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할 만큼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영접합니다. 제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고, 받은 은혜가 큽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으로 양들과 동역자들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1976년 대학 1학년 때 UBF에 나와서 의과대학 7년 동안을 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캠퍼스 목자로 세움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허물과 죄 투성이 였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한 해에 건강문제로 고통하며 사망권세에 시달렸습니다. 인생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절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저에게 빛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 인턴과정과 군의관 과정, 전공의 수련과정을 감당 할 수 있는 건강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공의 과정이 끝나자 대학에 교수자리도 주셨습니다. 박사학위도 주셨습니다. 1996년 해외연수를 앞두고 저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이 필요 했습니다. 부모님의 부채로 인해 장남인 저는 개업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공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시카고에서 일년 단기 선교사로서 믿음과 세계선교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작은 결단을 축복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 부모님의 부채와 생활문제를 평강 중에 책임 져 주셨습니다. 전공을 주님께 드렸는데 지난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가 연구비를 가장 많이 수혜 받는 교수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7년 동안을 주일 오후 여섯시 예배를 섬겨 왔는데, 2001년에는 학생 시절부터 간절히 기도 해 온 개척역사를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현재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광주 7 부 주일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 제게 이상한 방법으로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2004년에 제대 혈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환자 한 명을 임상시험 하였는데, 그 환자가 갑자기 좋아져서 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 국내외로부터 연구소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국내 어느 기업의 지원으로 벤처기업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연구소 이름을 Jesus Best 줄기세포 연구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며칠 전 대구에 다녀오면서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울며 찬송하며 비 내리는 밤길에 차를 몰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지닌날 질고로 고통하던 저의 치료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몰라 방황하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곤궁한 저의 부요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저는 절망으로부터 일어 서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시간 예수님은 이 사랑으로 제가 양들과 동역자들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섬기는 광주 7부에는 다섯 가정이 동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동역자가 힘들어져서 예배를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분을 생각 할 때 도저히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그분의 생각과 처세를 이해 할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돕고자 하는 믿음도 심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분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셋째,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35절을 보십시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의 제자 된 표식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서로 사랑 할 때,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요한 일서 4: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 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요한 일서 3:14절은 더 나아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도 부부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자라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역자간에 서로 사랑 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피차 자라게 됩니다.
36-38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가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부인 하였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반복하여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혈과 육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 할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 함을 입고 거듭나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났을 때, 그는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사랑의 목자요 담대한 복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 은혜를 감당 할 길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며, 동역자 , 양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 낮아지심과 섬김을 배우는 복된 주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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