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06년 전국 학사목자 수양회 주제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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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국 학사목자 수양회
복음이 먼저 만국에
말씀 / 마가복음 13:1-13
요절 / 마가복음 13:10
-서경 이다윗 목자님
지난 1월25일에 있었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06년 지구촌을 위협할 4대 위험으로 원유 값 폭동, 조류독감바이러스 등 전염병의 확산, 테러리즘과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를 선정하였습니다. 요즘 저희들은 지진 해일 화산의 폭발 폭설 한파 기근 태풍 폭우 조류독감바이러스(AI)로 인한 재해 소식을 거의 날마다 듣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간의 전쟁의 소식과 테러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곧 망할 것 같습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 시대의 징조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환란 많고 혼란스런 오늘날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이 세상과 저희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지성인 구원역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1:1 성경선생의 역사적인 사명을 가장 먼저 감당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 1장 예루살렘성전의 파괴(1-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후 먼저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몰아내시며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막11:15-18) 성전을 도적과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종교지도자에게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당하시기 전까지 날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원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19:47) 제자들이 세상 정욕과 거짓으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본받지 말도록 엄히 경계하셨습니다.(막12:38-40)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이틀 전입니다. 예수님 앞에는 유다의 배반- 유월절준비- 최후의 만찬- 다락방강화- 감람산 기도- 체포- 재판 -십자가 등 절박하고 고통스런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날에도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성전을 나가려 하실 때 무슨 일이 발생하였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성전의 거대한 대리석들과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겉보기에 성전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본래 이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에스라 시대에 건립되어 그때까지 거의 500년이나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헤롯대왕은 유대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하여 이 성전을 보수하고 재건축을 하였습니다. 이 성전 재건축 공사는 BC19년에 시작되어 AD64에 완공 되었으니 공사기간이 무려 84년이나 소요되었으니 예수님 당시에도 재건축공사는 진행 중이었습니다. 입구에는 12M 높이의 대리석기둥이 있었으며, 주춧돌은 길이가 11.2M 폭이 5.5M 높이는 3.6M나 되는 초록 빛나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성전 뜰은 가로 세로가 164M, 191M로 약 9,475평이나 되었습니다. 성전 건물의 외벽은 하얀색 대리석으로 문과 지붕은 황금으로 덮여져 있어서 태양이 비치면 마치 거대한 금덩어리처럼 찬란히 빛났습니다. 이런 성전의 모습을 본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감탄을 하며 정신을 잃은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이 성전은 영원할 것 같이 보였습니다.
제자들이 성전의 돌들과 건물에 마음을 홀랑 빼앗긴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세상 소망과 세상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실 때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접수하려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차지하고 이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과 권세를 누리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된다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습니다. AD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그 후 AD691년에 그 자리에는 모하멧의 신봉자들이 모하멧을 위한 모스크를 건축함으로 옛 성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또한 장차 임할 세상의 종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기초하여 이런 무시무시한 예언을 하셨을 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관점에서 성전을 보셨습니다. 성전이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요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보셨습니다. 성전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본래의 기능과 능력을 상실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의 성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거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의 부패는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백성들과 세상이 회복 불능할 정도로 타락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죄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문명도 결국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2001.9.11.에 있었던 여객기를 이용한 폭탄 테러로 20세기 건축기술과 그 웅대함을 자랑하던 N.Y.의 WORLD TRADE CENTER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우리가 예수님의 눈으로 영적분별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3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감람산 언덕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성전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 가요?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할 성전과 예루살렘 백성들을 보며 심히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회개치 않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완악함을 인해 심히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이들을 심판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 밖에 없음을 아시고 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자 다시 다짐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굳게 세워 땅 끝까지 보내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때는 이처럼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데 여전히 성전의 겉모습 만 보고 세상 영광에 매여 있는 제자들로 인해 심히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한편 성전이 철저하게 훼파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의 멸망이요 곧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세상의 종말을 현실문제로 인식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였습니까? 3b,4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피할 길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될 것인지 그 때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종말이 가까웠음을 믿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사건과 사고를 예수님의 눈으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 안에서 종말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하셨습니까?
제 2장 말세의 징조들 (5-8)
예수님께서는 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고 나타날 징조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나타 날 징조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로, 거짓 메시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 많은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세상이 환란과 무질서로 어지러울 때 많은 거짓 메시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신자들을 미혹합니다. 오늘 날 한국에도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증산도등을 비롯하여 자칭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가 30명이 넘는 다고 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거짓 메시아가 출현하여 백성들과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메시아들은 예수님이 오실 정확한 날을 가르쳐 주며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저희 센타의 한 자매님은 귀가 중에 한 청년으로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미혹을 받아 그 자리에서 넘어가 두 번에 걸쳐 14만원을 주고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만났지만 거짓메시아는 틈만 있으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형제나 자매를 거짓 메시아로 착각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갖기를 원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나 소망이 우상이 되어 우리를 미혹합니다. 또한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물질만능주의는 심지어는 저희 모임 속에도 교묘히 침투하여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도록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생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거짓 메시아가 되어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생명공학과 의술,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의 발전이 인생들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 주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 하며 무병장수 할 수 있게 한다는 거짓 소망을 심고 있습니다. 환란 많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거짓메시아의 미혹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거짓메시야는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미혹합니다. 미혹당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잃고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에 힘쓰며 캠퍼스 심방에 집중하므로 거짓 메시아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전쟁과 재난의 연속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규모의 전쟁만 해도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미국과 이라크전쟁, 이스라엘과 PLO전쟁, 아프카니스탄전쟁, 이란과 이라크전쟁, 이라크와 쿠웨이트전쟁, 소련과 체첸간의 전쟁 등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는 전쟁의 와중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잔혹하게 진행되고 있는 종족 간 전쟁,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학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종교전쟁 국경도 전쟁터도 없이 세계 도처에서 날마다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등 세계 도처가 전쟁터 입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며, 유럽은 모하멧 만평 사건으로 무슬램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테러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종교전쟁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2.23자 문화일보 국제면을 보면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종파갈등으로 하루 동안에 90건의 충돌이 발생 7명이 죽었고 내전이 촉발할 위기 국면에 처해 있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독도와 무슬림간 충돌로 20명이 살해당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국방연구소원(KIDA) 자료에 의하면 작년 11.8에서 금년 2.7일까지 3개월 동안에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과 분쟁의 소식은 무려 418건이나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분쟁중이거나 잠재 분쟁 지역이 101곳이나 되었습니다. 인류는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으며 매일 무고한 인생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혹시 이러다가 제3차대전이 발발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심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이는 말세에 반드시 나타날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깨어 준비하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은 전쟁과 테러의 소식만이 아닙니다. 8절을 보십시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말세의 징조로 전쟁 등 인재와 더불어 지진과 기근 등 자연재해가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최근에 저희들은 지진과 해일, 폭우와 산사태, 폭설과 한파 가뭄과 기근 등 자연재해의 소식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자연재해의 발생빈도와 강도가 빨라지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2월25일에는 티베트에서 강도5.5, 23일에는 무잠비크에서 강도7.2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2월17일 필리핀 레이터 섬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나서 2000명 이상이 매몰되었습니다. 2005.8.28 미국의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초대형 폭풍과 해일 카트리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1069명이상이 사망하였으며 1백만 명이상이 집을 잃었습니다. 2004.12.26.에는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인근 지역을 강타한 사상 최대의 쓰나미로 인해 283,106명 이상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지진이나 폭풍우 같은 자연재해나 폭탄테러가 도시지역이나 원자력 발전소나 대규모의 댐 지역에서 발생을 한다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의 강도가 점차 강하여 지고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78년- 1995년 사이 18년 동안의 매년 지진 발생횟수는 최저 6회 최고 29회 총 359회로 평균19.9회였으나 1996년- 2005년 사이 10년 동안에는 매년 최저 21회 최고 91회 총428회가 발생하여 평균42.8회였습니다. 과학문명과 기술의 진보가 눈부실 정도인 오늘 날에도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30%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최근까지 3백만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있으며,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과 내전으로 인하여 아프리카에서는 17백만 명이 기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재난의 소식은 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재난과 재해로 세상을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시는 걸 까요?
하나님께서는 재난과 재해를 통하여 세상 소망을 가진 자들이 복음에 관심을 갖게 하며, 신자들에게는 하나님나라 산 소망을 더욱 굳게 붙잡도록 하십니다. 다가올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실제로 쓰나미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고 무늬만 신자인 척 하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으며, 심지어는 많은 불교도와 힌두교도들도 복음을 듣고 개종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재난과 재해를 예수님께서는 산통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재난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산통의 시작입니다. 산통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산고 후에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새 생명이 탄생하기 위하여 반드시 산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재난이 필수적으로 임합니다. 그러므로 재난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하는 시그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시작된 이 세상의 역사는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심으로 그 종말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바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말세의 징조를 보고 종말을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 3장 핍박 받는 성도들(9, 11-13)
말세에 믿음으로 사는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 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말세에 성도들은 핍박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며 열심히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면 세상 사람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선하고 착한 일을 한다며 칭찬을 할까요?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이라며 표창장이라도 줄까요? 그래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희들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저희들을 모함하여 공개재판을 받게 하고 매질하며 모욕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반드시 이런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을 받게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을 통해서라도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이들이 재림하신 주님 앞에서 복음을 듣지 못했다며 변명하지 못하도록 증거 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직장을 주시고 재무담당임원으로 세우신 것은 저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저를 통하여 직장의 상사인 사장과 회장께 예수님을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난 1월14.15에 있었던 직장의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일정은 일년 전에 확정된 계획으로 직장의 총수와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모든 임원들이 참석하여 2005년을 결산하고 2006년 새 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직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입니다.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은 그룹 회장의 특강으로 오전 10:30분에 시작하여 12에 끝납니다. 특강 후에는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함으로 세미나가 종료됩니다. 저는 15일 주일 오전 11시 주일 예배에서 신년 메시지 3강을 전하라는 특명을 2주 전에 오영찬 목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섬기기 위하여 14일 저녁식사 후 동료에게 사정을 말한 후 교육장인 용인인재개발원을 몰래 떠났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주일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주일 메시지를 전하고 나서 요회모임을 가지려 할 때 제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께서는 교육을 빠지려면 다음부터는 회장님께 직접 말하라며 책망하였습니다. 저가 교육을 빠진 것이 회장님께 발각이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가슴 조렸다 하셨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하자 사장께서는 일 년에 단 한 번 주일에 있는 교육이고 이미 일년 전에 예고된 일정이고 사장님께서 직접 주관하고 진행하는 전략경영세미나를 빠지는 것을 아무리 신앙의 문제라 하드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사장께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전해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송구스런 태도로 잘 알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무엇을 잘 알았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동역자들에게 저희 회사가 주일에는 교육을 하지 않도록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런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믿음 없음을 인해 깊이 회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회사가 일 년에 한 번 주일에 교육을 함으로써 저를 쓰셔서 사장님과 회장님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통하여 두 분에게 증거 되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소망을 심령 깊이 영접합니다. 제가 핍박을 받고 회사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 분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저희가 감당하는 복음역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의 개인 사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어떻게 복음역사를 이루셨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때 사도들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이루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승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가 핍박을 받아 직장 상사와 권력자들 앞에 설 때 성령께서 친히 함께 하시고 저의 혀와 몸을 주장하시고 대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 말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심판하실 자를 심판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핍박의 때가 바로 복음을 증거 할 때요, 성령의 역사를 체험 할 수 있는 때요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희가 세상에서 핍박 받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뜻입니다. 저희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핍박받기를 사모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세의 때에 가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냉혈한이 됩니다. 혈연으로 맺은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족공동체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지만 말세가 가까워지면 이 가족공동체마저 철저히 무너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배신하여 죽음으로 내몹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죽게 합니다.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배신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많은 가족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으며 비정하고 무자비한 일들이 저희들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의 육신의 정욕 때문에,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젊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우는 젖먹이 아기를 밖으로 던져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집에 화재를 일으켜 90 노모를 태워 죽인 사건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판사는 이 비정한 아들에게 160년 감옥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입니다. 이처럼 가족간에 사랑이 식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 우리는 말세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합니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요 도덕적인 존재요 사랑의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비정할 지라도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고 버티며 일어섭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깨어 질 때 우리는 일어설 힘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에게 더 이상 소망을 두실 수가 없습니다. 금수만도 못한 인생들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심판하시고 멸하십니다. 저희가 이 세대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나라 산 소망을 바라보며 말세를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세의 때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지속적인 핍박을 받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증거 하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왜 이유 없이 신자들을 미워합니까?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둠을 좋아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빛으로 인해 자신들의 치부와 죄악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는 신자들을 세상이 미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이런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만 구원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저희 믿음이 정금 같이 연단되어 지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말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요?
제 4장 복음이 먼저 만국에(10)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거짓메시야의 출현, 전쟁과 재난의 연속, 성도들의 핍박 등을 예언하시고 곧 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의 징조로 세상이 시끄럽고 핍박이 극심해 지더라도 먼저 그리고 절대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목숨을 다해 1:1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말세에 승리를 하고 말세를 준비하는 비밀이라 말씀하십니다.
말세에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은 먼저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 하실까요?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로 인해 인생들은 심판을 받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들의 비극이요 근본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죽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인들의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이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것이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환란으로 인해 “정말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하며 절규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먼저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1:1성경선생이요 캠퍼스 양 무리의 목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에 두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인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네게 무슨 소용이 있냐? 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하보다 소중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복음 전파의 사명을 최우선적으로 반드시 감당하라 하십니다.
이 세상 역사를 누가 주관하고 있습니까? 각 시대마다 나타났던 초강대국들과 황제들 입니까? 각 시대에 깨어 있던 선각자들입니까? 아니면 민초들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3:15 말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말씀을 기초로 주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차자 약속 하신대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약속하신대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어 세상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세상은 심판을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그날에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완성이 됩니다. 이 구원의 복음이 만민들에게 전파될 때 세상 끝이 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속역사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 거룩한 구속역사에 저희들을 주역들로 부르시고 쓰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급하게 저희를 재촉하십니다.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복음 전파를 왜 이토록 시급하게 서둘러야합니까? 세상의 종말이 내일 오지 않는 다 해도 사람들은 오늘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재해로 사람들은 죽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이면 늦습니다. 오늘 가서 요3:16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믿고 구원을 받을 형제가 있는데 내가 마음이 없어서 피곤해서 가도 늘 허탕이니까 하고 집으로 가서 애들과 놀고 TV보다가 편히 잠을 잤는데 그만 이 형제가 그날 밤 늦게 귀가 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땅을 치고 통곡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늘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환란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조차 예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하라”
세상을 사는 데 있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한 일 시급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성공을 합니다. 저희는 이 시대 캠퍼스 지성인을 구원하고 이들을 제자 삼는 역사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주권 가운데 저희 각자를 UBF 1:1 성경선생이요 제자 양성가요 선교사로 부르시고 세워 주셨습니다. 저희를 부르시고 세우신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1:1을 통한 캠퍼스 영혼 구원역사 입니다. 1;1을 통한 성서한국 세계선교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과 소망을 이루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먼저 행하는 자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제가 1994 선교지 NJ RUTGERS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 서경대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는 바울 사도의 심정으로 서경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하루라도 캠퍼스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라도 양을 만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 양들은 반드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제가 전한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확신 가운데 피싱을 하고 1:1을 하였습니다. 제가 캠퍼스에 가지 않으면 양들이 말씀을 듣지 못하여 죽는다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퇴근 후 뿐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캠퍼스를 심방하여 양들을 만나고 1:1을 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제가 점심시간에 캠퍼스를 심방하여 양들을 만나고 1:1을 하고자 할 때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점심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회사에서 용변을 보고 갈까 아니면 학교에 가서 볼까? 이상하게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급하게 용변을 보러가야 했습니다. 저는 화장실을 가면 캠퍼스에 갈 시간이 줄고 혹시 못가는 일이 생길까봐 곧바로 캠퍼스로 갔습니다. 어떤 때는 참고 지내면 다시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화장실 가는 것을 잊기도 하였습니다. 점심은 회사에 돌아온 후 시간이 나면 먹었습니다. 퇴근하면 캠퍼스와 센타로 가서 1:1을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양들을 심방하였습니다. 저는 양들을 심방하고 1:1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소감을 쓰고 양식을 먹는 일에 마음의 중심을 드리고 집중하였습니다. 저는 늘 생각하였습니다. “직장은 아르바이트이고 나의 주업은 1:1성경선생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어! 내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양들이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복음 전하는 일, 양을 만나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큰 죄야.” 이 때 저는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모임에 참석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양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습니다. 학교에 가면 많은 양들이 아는 채를 하였습니다. 매주 12팀 1:1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로 2부에서 1:1을 가장 많이 하여 전요한 박사님으로부터 1:1 금메달을 받기도하였습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을 때 모든 동역자들이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었습니다. 양들이 몰려오고 제자들이 자랐습니다. 동역자들 간에 사랑과 동역과 성령의 그릇이 견고히 이루어 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들어 초기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순수한 열정을 많이 상실하였습니다. 제가 믿음이 점차 약하여 지고 직장에서 적당히 타협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예수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여 더욱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으로 양들을 심방하여 주님과 복음을 증거하겠습니다. 저의 2006년 요절은 “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막6:37a)입니다. 부요절은 ”,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고전13:2b) 입니다. 제가 주님의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죽든지 살든지 12팀 1:1을 하겠습니다. 1:1하다가 죽는 것을 최상의 소망으로 영접하고 1:1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1:1성경선생이요 양무리의 목자로 끝까지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1:1역사에 제가 가진 모든 것 100%를 투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복음을 들고 사명의 땅으로 당장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사람마다 해결해야할 자기 문제가 있습니다. 실직자들은 먼저 직장부터 구해야 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 우선적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진학과 장래 문제, 신앙과 이성문제를 먼저 해결해주며 자녀들을 먼저 돌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잘 모시고 효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도 먼저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당면한 이러한 자기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물질을 모아 양극화의 심화로 극빈상태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과 전쟁과 재난으로 피폐해진 나라들을 찾아가 구호 활동을 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방향이 서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복음을 들고 캠퍼스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예수님께서는 먼저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라 하십니다. 실직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직장을 얻고자 버둥거리지 말고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땅 끝 모슬램 제국과 이스라엘에 선교사로 가라하십니다. 직장일 장래 염려 부모 자식들과 세상일 모두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들고 먼저 캠퍼스로, 선교지로 나가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의 현재적인 모든 소원과 필요를 다 들어 주시겠다 하십니다.(마6:33) 더 나아가 너희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사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시겠다하십니다. 우리가 나를 위하여 먼저 일하고 나를 위하여 먼저 먹고 나를 위하여 먼저 마시고 나를 위하여 먼저 쉬고자하는 나의 마음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먼저 캠퍼스에 나아갑시다. 가서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올 해부터 우리 각자가 12팀 1:1에 도전하며 매년 한 명씩 제자를 세우는 빼어나고 충성스럽고 열성적인 UBF 1:1 성경선생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그날이 급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은 유수같이 빨리 흘러갑니다.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말세가 우리 근처에 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진실로 잘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자기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당장 캠퍼스로 나아가 한 팀의 1:1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온 힘과 정성을 드려 한 팀의 1:1을 감당함으로 2007년까지 배가 역사를 이루며 2041까지 10만 선교사를 파송하는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복음이 먼저 만국에
말씀 / 마가복음 13:1-13
요절 / 마가복음 13:10
-서경 이다윗 목자님
지난 1월25일에 있었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06년 지구촌을 위협할 4대 위험으로 원유 값 폭동, 조류독감바이러스 등 전염병의 확산, 테러리즘과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를 선정하였습니다. 요즘 저희들은 지진 해일 화산의 폭발 폭설 한파 기근 태풍 폭우 조류독감바이러스(AI)로 인한 재해 소식을 거의 날마다 듣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간의 전쟁의 소식과 테러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곧 망할 것 같습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 시대의 징조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환란 많고 혼란스런 오늘날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이 세상과 저희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지성인 구원역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1:1 성경선생의 역사적인 사명을 가장 먼저 감당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 1장 예루살렘성전의 파괴(1-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후 먼저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몰아내시며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막11:15-18) 성전을 도적과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종교지도자에게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당하시기 전까지 날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원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19:47) 제자들이 세상 정욕과 거짓으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본받지 말도록 엄히 경계하셨습니다.(막12:38-40)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이틀 전입니다. 예수님 앞에는 유다의 배반- 유월절준비- 최후의 만찬- 다락방강화- 감람산 기도- 체포- 재판 -십자가 등 절박하고 고통스런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날에도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성전을 나가려 하실 때 무슨 일이 발생하였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성전의 거대한 대리석들과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겉보기에 성전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본래 이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에스라 시대에 건립되어 그때까지 거의 500년이나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헤롯대왕은 유대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하여 이 성전을 보수하고 재건축을 하였습니다. 이 성전 재건축 공사는 BC19년에 시작되어 AD64에 완공 되었으니 공사기간이 무려 84년이나 소요되었으니 예수님 당시에도 재건축공사는 진행 중이었습니다. 입구에는 12M 높이의 대리석기둥이 있었으며, 주춧돌은 길이가 11.2M 폭이 5.5M 높이는 3.6M나 되는 초록 빛나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성전 뜰은 가로 세로가 164M, 191M로 약 9,475평이나 되었습니다. 성전 건물의 외벽은 하얀색 대리석으로 문과 지붕은 황금으로 덮여져 있어서 태양이 비치면 마치 거대한 금덩어리처럼 찬란히 빛났습니다. 이런 성전의 모습을 본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감탄을 하며 정신을 잃은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이 성전은 영원할 것 같이 보였습니다.
제자들이 성전의 돌들과 건물에 마음을 홀랑 빼앗긴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세상 소망과 세상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실 때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접수하려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차지하고 이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과 권세를 누리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된다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습니다. AD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그 후 AD691년에 그 자리에는 모하멧의 신봉자들이 모하멧을 위한 모스크를 건축함으로 옛 성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또한 장차 임할 세상의 종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기초하여 이런 무시무시한 예언을 하셨을 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관점에서 성전을 보셨습니다. 성전이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요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보셨습니다. 성전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본래의 기능과 능력을 상실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의 성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거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의 부패는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백성들과 세상이 회복 불능할 정도로 타락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죄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문명도 결국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2001.9.11.에 있었던 여객기를 이용한 폭탄 테러로 20세기 건축기술과 그 웅대함을 자랑하던 N.Y.의 WORLD TRADE CENTER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우리가 예수님의 눈으로 영적분별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3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감람산 언덕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성전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 가요?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할 성전과 예루살렘 백성들을 보며 심히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회개치 않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완악함을 인해 심히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이들을 심판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 밖에 없음을 아시고 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자 다시 다짐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굳게 세워 땅 끝까지 보내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때는 이처럼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데 여전히 성전의 겉모습 만 보고 세상 영광에 매여 있는 제자들로 인해 심히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한편 성전이 철저하게 훼파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의 멸망이요 곧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세상의 종말을 현실문제로 인식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였습니까? 3b,4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피할 길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될 것인지 그 때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종말이 가까웠음을 믿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사건과 사고를 예수님의 눈으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 안에서 종말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하셨습니까?
제 2장 말세의 징조들 (5-8)
예수님께서는 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고 나타날 징조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나타 날 징조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로, 거짓 메시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 많은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세상이 환란과 무질서로 어지러울 때 많은 거짓 메시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신자들을 미혹합니다. 오늘 날 한국에도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증산도등을 비롯하여 자칭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가 30명이 넘는 다고 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거짓 메시아가 출현하여 백성들과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메시아들은 예수님이 오실 정확한 날을 가르쳐 주며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저희 센타의 한 자매님은 귀가 중에 한 청년으로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미혹을 받아 그 자리에서 넘어가 두 번에 걸쳐 14만원을 주고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만났지만 거짓메시아는 틈만 있으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형제나 자매를 거짓 메시아로 착각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갖기를 원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나 소망이 우상이 되어 우리를 미혹합니다. 또한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물질만능주의는 심지어는 저희 모임 속에도 교묘히 침투하여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도록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생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거짓 메시아가 되어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생명공학과 의술,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의 발전이 인생들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 주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 하며 무병장수 할 수 있게 한다는 거짓 소망을 심고 있습니다. 환란 많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거짓메시아의 미혹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거짓메시야는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미혹합니다. 미혹당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잃고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에 힘쓰며 캠퍼스 심방에 집중하므로 거짓 메시아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전쟁과 재난의 연속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규모의 전쟁만 해도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미국과 이라크전쟁, 이스라엘과 PLO전쟁, 아프카니스탄전쟁, 이란과 이라크전쟁, 이라크와 쿠웨이트전쟁, 소련과 체첸간의 전쟁 등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는 전쟁의 와중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잔혹하게 진행되고 있는 종족 간 전쟁,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학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종교전쟁 국경도 전쟁터도 없이 세계 도처에서 날마다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등 세계 도처가 전쟁터 입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며, 유럽은 모하멧 만평 사건으로 무슬램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테러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종교전쟁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2.23자 문화일보 국제면을 보면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종파갈등으로 하루 동안에 90건의 충돌이 발생 7명이 죽었고 내전이 촉발할 위기 국면에 처해 있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독도와 무슬림간 충돌로 20명이 살해당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국방연구소원(KIDA) 자료에 의하면 작년 11.8에서 금년 2.7일까지 3개월 동안에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과 분쟁의 소식은 무려 418건이나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분쟁중이거나 잠재 분쟁 지역이 101곳이나 되었습니다. 인류는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으며 매일 무고한 인생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혹시 이러다가 제3차대전이 발발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심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이는 말세에 반드시 나타날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깨어 준비하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은 전쟁과 테러의 소식만이 아닙니다. 8절을 보십시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말세의 징조로 전쟁 등 인재와 더불어 지진과 기근 등 자연재해가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최근에 저희들은 지진과 해일, 폭우와 산사태, 폭설과 한파 가뭄과 기근 등 자연재해의 소식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자연재해의 발생빈도와 강도가 빨라지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2월25일에는 티베트에서 강도5.5, 23일에는 무잠비크에서 강도7.2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2월17일 필리핀 레이터 섬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나서 2000명 이상이 매몰되었습니다. 2005.8.28 미국의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초대형 폭풍과 해일 카트리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1069명이상이 사망하였으며 1백만 명이상이 집을 잃었습니다. 2004.12.26.에는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인근 지역을 강타한 사상 최대의 쓰나미로 인해 283,106명 이상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지진이나 폭풍우 같은 자연재해나 폭탄테러가 도시지역이나 원자력 발전소나 대규모의 댐 지역에서 발생을 한다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의 강도가 점차 강하여 지고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78년- 1995년 사이 18년 동안의 매년 지진 발생횟수는 최저 6회 최고 29회 총 359회로 평균19.9회였으나 1996년- 2005년 사이 10년 동안에는 매년 최저 21회 최고 91회 총428회가 발생하여 평균42.8회였습니다. 과학문명과 기술의 진보가 눈부실 정도인 오늘 날에도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30%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최근까지 3백만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있으며,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과 내전으로 인하여 아프리카에서는 17백만 명이 기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재난의 소식은 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재난과 재해로 세상을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시는 걸 까요?
하나님께서는 재난과 재해를 통하여 세상 소망을 가진 자들이 복음에 관심을 갖게 하며, 신자들에게는 하나님나라 산 소망을 더욱 굳게 붙잡도록 하십니다. 다가올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실제로 쓰나미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고 무늬만 신자인 척 하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으며, 심지어는 많은 불교도와 힌두교도들도 복음을 듣고 개종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재난과 재해를 예수님께서는 산통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재난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산통의 시작입니다. 산통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산고 후에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새 생명이 탄생하기 위하여 반드시 산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재난이 필수적으로 임합니다. 그러므로 재난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하는 시그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시작된 이 세상의 역사는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심으로 그 종말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바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말세의 징조를 보고 종말을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 3장 핍박 받는 성도들(9, 11-13)
말세에 믿음으로 사는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 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말세에 성도들은 핍박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며 열심히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면 세상 사람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선하고 착한 일을 한다며 칭찬을 할까요?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이라며 표창장이라도 줄까요? 그래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희들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저희들을 모함하여 공개재판을 받게 하고 매질하며 모욕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반드시 이런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을 받게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을 통해서라도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이들이 재림하신 주님 앞에서 복음을 듣지 못했다며 변명하지 못하도록 증거 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직장을 주시고 재무담당임원으로 세우신 것은 저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저를 통하여 직장의 상사인 사장과 회장께 예수님을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난 1월14.15에 있었던 직장의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일정은 일년 전에 확정된 계획으로 직장의 총수와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모든 임원들이 참석하여 2005년을 결산하고 2006년 새 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직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입니다.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은 그룹 회장의 특강으로 오전 10:30분에 시작하여 12에 끝납니다. 특강 후에는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함으로 세미나가 종료됩니다. 저는 15일 주일 오전 11시 주일 예배에서 신년 메시지 3강을 전하라는 특명을 2주 전에 오영찬 목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섬기기 위하여 14일 저녁식사 후 동료에게 사정을 말한 후 교육장인 용인인재개발원을 몰래 떠났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주일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주일 메시지를 전하고 나서 요회모임을 가지려 할 때 제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께서는 교육을 빠지려면 다음부터는 회장님께 직접 말하라며 책망하였습니다. 저가 교육을 빠진 것이 회장님께 발각이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가슴 조렸다 하셨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하자 사장께서는 일 년에 단 한 번 주일에 있는 교육이고 이미 일년 전에 예고된 일정이고 사장님께서 직접 주관하고 진행하는 전략경영세미나를 빠지는 것을 아무리 신앙의 문제라 하드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사장께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전해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송구스런 태도로 잘 알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무엇을 잘 알았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동역자들에게 저희 회사가 주일에는 교육을 하지 않도록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런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믿음 없음을 인해 깊이 회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회사가 일 년에 한 번 주일에 교육을 함으로써 저를 쓰셔서 사장님과 회장님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통하여 두 분에게 증거 되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소망을 심령 깊이 영접합니다. 제가 핍박을 받고 회사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 분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저희가 감당하는 복음역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의 개인 사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어떻게 복음역사를 이루셨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때 사도들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이루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승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가 핍박을 받아 직장 상사와 권력자들 앞에 설 때 성령께서 친히 함께 하시고 저의 혀와 몸을 주장하시고 대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 말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심판하실 자를 심판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핍박의 때가 바로 복음을 증거 할 때요, 성령의 역사를 체험 할 수 있는 때요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희가 세상에서 핍박 받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뜻입니다. 저희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핍박받기를 사모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세의 때에 가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냉혈한이 됩니다. 혈연으로 맺은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족공동체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지만 말세가 가까워지면 이 가족공동체마저 철저히 무너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배신하여 죽음으로 내몹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죽게 합니다.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배신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많은 가족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으며 비정하고 무자비한 일들이 저희들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의 육신의 정욕 때문에,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젊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우는 젖먹이 아기를 밖으로 던져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집에 화재를 일으켜 90 노모를 태워 죽인 사건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판사는 이 비정한 아들에게 160년 감옥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입니다. 이처럼 가족간에 사랑이 식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 우리는 말세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합니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요 도덕적인 존재요 사랑의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비정할 지라도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고 버티며 일어섭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깨어 질 때 우리는 일어설 힘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에게 더 이상 소망을 두실 수가 없습니다. 금수만도 못한 인생들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심판하시고 멸하십니다. 저희가 이 세대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나라 산 소망을 바라보며 말세를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세의 때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지속적인 핍박을 받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증거 하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왜 이유 없이 신자들을 미워합니까?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둠을 좋아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빛으로 인해 자신들의 치부와 죄악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는 신자들을 세상이 미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이런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만 구원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저희 믿음이 정금 같이 연단되어 지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말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요?
제 4장 복음이 먼저 만국에(10)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거짓메시야의 출현, 전쟁과 재난의 연속, 성도들의 핍박 등을 예언하시고 곧 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의 징조로 세상이 시끄럽고 핍박이 극심해 지더라도 먼저 그리고 절대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목숨을 다해 1:1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말세에 승리를 하고 말세를 준비하는 비밀이라 말씀하십니다.
말세에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은 먼저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 하실까요?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로 인해 인생들은 심판을 받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들의 비극이요 근본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죽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인들의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이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것이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환란으로 인해 “정말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하며 절규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먼저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1:1성경선생이요 캠퍼스 양 무리의 목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에 두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인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네게 무슨 소용이 있냐? 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하보다 소중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복음 전파의 사명을 최우선적으로 반드시 감당하라 하십니다.
이 세상 역사를 누가 주관하고 있습니까? 각 시대마다 나타났던 초강대국들과 황제들 입니까? 각 시대에 깨어 있던 선각자들입니까? 아니면 민초들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3:15 말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말씀을 기초로 주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차자 약속 하신대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약속하신대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어 세상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세상은 심판을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그날에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완성이 됩니다. 이 구원의 복음이 만민들에게 전파될 때 세상 끝이 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속역사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 거룩한 구속역사에 저희들을 주역들로 부르시고 쓰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급하게 저희를 재촉하십니다.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복음 전파를 왜 이토록 시급하게 서둘러야합니까? 세상의 종말이 내일 오지 않는 다 해도 사람들은 오늘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재해로 사람들은 죽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이면 늦습니다. 오늘 가서 요3:16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믿고 구원을 받을 형제가 있는데 내가 마음이 없어서 피곤해서 가도 늘 허탕이니까 하고 집으로 가서 애들과 놀고 TV보다가 편히 잠을 잤는데 그만 이 형제가 그날 밤 늦게 귀가 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땅을 치고 통곡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늘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환란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조차 예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하라”
세상을 사는 데 있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한 일 시급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성공을 합니다. 저희는 이 시대 캠퍼스 지성인을 구원하고 이들을 제자 삼는 역사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주권 가운데 저희 각자를 UBF 1:1 성경선생이요 제자 양성가요 선교사로 부르시고 세워 주셨습니다. 저희를 부르시고 세우신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1:1을 통한 캠퍼스 영혼 구원역사 입니다. 1;1을 통한 성서한국 세계선교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과 소망을 이루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먼저 행하는 자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제가 1994 선교지 NJ RUTGERS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 서경대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는 바울 사도의 심정으로 서경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하루라도 캠퍼스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라도 양을 만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 양들은 반드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제가 전한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확신 가운데 피싱을 하고 1:1을 하였습니다. 제가 캠퍼스에 가지 않으면 양들이 말씀을 듣지 못하여 죽는다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퇴근 후 뿐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캠퍼스를 심방하여 양들을 만나고 1:1을 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제가 점심시간에 캠퍼스를 심방하여 양들을 만나고 1:1을 하고자 할 때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점심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회사에서 용변을 보고 갈까 아니면 학교에 가서 볼까? 이상하게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급하게 용변을 보러가야 했습니다. 저는 화장실을 가면 캠퍼스에 갈 시간이 줄고 혹시 못가는 일이 생길까봐 곧바로 캠퍼스로 갔습니다. 어떤 때는 참고 지내면 다시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화장실 가는 것을 잊기도 하였습니다. 점심은 회사에 돌아온 후 시간이 나면 먹었습니다. 퇴근하면 캠퍼스와 센타로 가서 1:1을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양들을 심방하였습니다. 저는 양들을 심방하고 1:1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소감을 쓰고 양식을 먹는 일에 마음의 중심을 드리고 집중하였습니다. 저는 늘 생각하였습니다. “직장은 아르바이트이고 나의 주업은 1:1성경선생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어! 내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양들이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복음 전하는 일, 양을 만나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큰 죄야.” 이 때 저는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모임에 참석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양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습니다. 학교에 가면 많은 양들이 아는 채를 하였습니다. 매주 12팀 1:1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로 2부에서 1:1을 가장 많이 하여 전요한 박사님으로부터 1:1 금메달을 받기도하였습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을 때 모든 동역자들이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었습니다. 양들이 몰려오고 제자들이 자랐습니다. 동역자들 간에 사랑과 동역과 성령의 그릇이 견고히 이루어 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들어 초기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순수한 열정을 많이 상실하였습니다. 제가 믿음이 점차 약하여 지고 직장에서 적당히 타협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예수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여 더욱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으로 양들을 심방하여 주님과 복음을 증거하겠습니다. 저의 2006년 요절은 “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막6:37a)입니다. 부요절은 ”,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고전13:2b) 입니다. 제가 주님의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죽든지 살든지 12팀 1:1을 하겠습니다. 1:1하다가 죽는 것을 최상의 소망으로 영접하고 1:1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1:1성경선생이요 양무리의 목자로 끝까지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1:1역사에 제가 가진 모든 것 100%를 투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복음을 들고 사명의 땅으로 당장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사람마다 해결해야할 자기 문제가 있습니다. 실직자들은 먼저 직장부터 구해야 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 우선적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진학과 장래 문제, 신앙과 이성문제를 먼저 해결해주며 자녀들을 먼저 돌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잘 모시고 효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도 먼저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당면한 이러한 자기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물질을 모아 양극화의 심화로 극빈상태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과 전쟁과 재난으로 피폐해진 나라들을 찾아가 구호 활동을 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방향이 서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복음을 들고 캠퍼스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예수님께서는 먼저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라 하십니다. 실직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직장을 얻고자 버둥거리지 말고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땅 끝 모슬램 제국과 이스라엘에 선교사로 가라하십니다. 직장일 장래 염려 부모 자식들과 세상일 모두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들고 먼저 캠퍼스로, 선교지로 나가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의 현재적인 모든 소원과 필요를 다 들어 주시겠다 하십니다.(마6:33) 더 나아가 너희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사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시겠다하십니다. 우리가 나를 위하여 먼저 일하고 나를 위하여 먼저 먹고 나를 위하여 먼저 마시고 나를 위하여 먼저 쉬고자하는 나의 마음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먼저 캠퍼스에 나아갑시다. 가서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올 해부터 우리 각자가 12팀 1:1에 도전하며 매년 한 명씩 제자를 세우는 빼어나고 충성스럽고 열성적인 UBF 1:1 성경선생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그날이 급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은 유수같이 빨리 흘러갑니다.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말세가 우리 근처에 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진실로 잘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자기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당장 캠퍼스로 나아가 한 팀의 1:1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온 힘과 정성을 드려 한 팀의 1:1을 감당함으로 2007년까지 배가 역사를 이루며 2041까지 10만 선교사를 파송하는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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