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서 고전11강(10:1-11: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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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 고린도전서 10:1-11:1
요절: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거울 삼아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것과(1-13) 세상에서 찾아오는 시험과 유혹을 물리 칠것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신앙생활의 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14-11:1).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배우고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역사의 교훈을 거울 삼으라(1-13)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이 결코 무시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1-4절에서 조상들이 광야생활에서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바로의 권세 아래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참했으며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크신 권능으로 바로를 치시고 그들을 바로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다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다 같이 지도자 모세의 지도를 받았으며, 다 같이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하사, 아비가 사랑하는 자녀를 보살피듯이 보호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절은 그 아름다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입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다수’는 1-4절의 ‘다’라는 말과 대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다가 즉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다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는 일을 하여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순종한 자만이 가나안에 입성하였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은혜를 많이 받은 자라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는 것입니다(히3:16).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 믿음이 없는 자들, 음행하는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 형식적인 신앙생활하는 자들, 이런자들은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격노케 할 때 멸망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엄숙히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미여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다수라고 해서 결코 봐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다수결의 원칙에 많이 동화되었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아무리 비리가 많이 들어나도 다수가 찬성하면 통과되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다수가 행하는 길은 좋든 싫든 분별치 아니하고 따라 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대의 분위기에 발맟춰 쉽게 불의를 행하고, 돈을 사랑하고, 음행을 행합니다. 때론 우리도 버팅기다가 "다 그런건데 뭐"하며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다수니까 봐 주실까요? 하나님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기뻐하십니까? 히브리서 11:6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하지 아니하고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황이 힘들어도 범사에 감사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기가 죽지 않고 늘 스피릿이 충만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핑계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센타역사를 섬기시는 목자님들은 새벽엔 기도로 방향을 정하고, 낮에는 직장 일에 충성하시고, 저녁엔 또 양들 섬기는 역사에 주력하시는 그런 모습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임을 확신합니다. 어떤 분은 말이 좀 많긴 하지만 보험업에 종사하시는데 늘 약자의 편에 서서 도와주고자 애를 쓰십니다. 저도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병명미상의 질환과 투쟁하느라 육신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캠퍼스에 오르고, 또 오르고자 투쟁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양이든 삼방양이든 만나면 말씀을 주고 돕습니다. 이럴 수 있는 원동력은 이 분안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축복하사 요회와 센타 가운데 생명의 열매들을 풍성히 주실 것을 믿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거울이란 예, 본보기란 뜻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고린도 성도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이 악을 즐겨하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나 멸망한 이유는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악을 즐겨했기 때문입니다. "즐겨한다"는 것은 "마음을 쏟고 갈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쫓아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애굽을 그리워하고 탐욕을 부리며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말씀의 거울에 비친 고린도 성도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지난날 이스라엘 조상들은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애굽 시절에 우상 숭배를 했던 가락을 쫓아,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출 32:1-6), 지금 고린도 성도들은 그런 우상숭배의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제반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돈이나 형제나 자매나 등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을 때 그것은 곧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를 멸하십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조상의 역사를 거울을 삼아 고린도 성도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역사의 사실은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간음을 행했으며,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했으며, 어떤 이들은 주와 주의 종을 원망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희가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민 25:1-5). 저희가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습니다(민 21:4-9). 저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불만을 품고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 의해 하루 아침에 멸망 당하였습니다(민 16). 우리는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 앞에 교훈을 얻고 간음하지 말고, 시험하지 말며, 원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의 현실은 우리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처럼 구원 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거세게 밀려올 때,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고 병들 때,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올 때, 불신자들이 입사시험도 첫 번에 통과되어 승승장구 하는데 나는 주님 일을 열심히 섬기고 기도한 것 같은데, 꼭 나만 떨어져서 초라하게 보일 때에는 한숨쉬며 눈물짓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또한 돈과 쾌락을 쫓는 시대의 풍조 속에서, 우리도 유혹에 빠져 물질을 우상숭배하고 정욕을 쫓아 음행의 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조상들의 다수가 한 일이었고,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형식적인 신자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말씀의 거울을 힘써 보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회개와 결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12절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 자부했던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주는 경계의 메시지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나는 믿음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헛된 자부심을 가지고 영적인 투쟁을 게을리 합니다. 스스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만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성장이 멈추고 결국 사단의 시험에 들어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을까 조심하다 보면 혹 나도 모르게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사 어떤 경우도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3).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질지라도 하나님의 건지심을 입게 됩니다. 우리가 유혹이 많은 세상을 지날 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 거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함으로 능히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4-33)
첫째, 우상 숭배를 피할 것(14-22). 사도 바울은 역사의 교훈을 이야기 한 후에 이제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피하라'는 말은 “도망하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 중 하나는 요셉과 같이 유혹의 때에 도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정욕을 자극하거나 영혼을 함정에 빠뜨리는 성향이 있는 모든 것에서 멀리 도망해야 합니다. 비디오 방, 인터넷 음란물들을 피해야 합니다. 회식이 2,3차로 이어질 것 같으면 피해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친구들을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우상 숭배하는 장소에 출입하며 그들의 식탁에 동참하는 것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의심스럽고 양심에 꺼리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고린도 성도들 각자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16-22절에서는 고린도 성도들이 우상의 전에 앉아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에서 잔을 마시고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고귀한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사건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바친 자들은 제사장과 함께 제물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제단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상의 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의 제단에 참예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제사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요 그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의 제사에 참예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그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귀신들과 동시에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시기나게 하여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질투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정 중에 가장 강렬한 감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우상 숭배를 미워하시고 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둘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것(23-33). 23,24절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쓰지 않고 남의 유익을 위해서 써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자신의 행복과 번영보다 타인의 행복과 번영을 더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의 속성입니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시24:1). 또한 불신자가 초청한 경우에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 먹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누가 ‘그 음식은 우상의 제물이야’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한 사람의 약한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나의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인해 판단을 받거나 비방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29,30).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대 원칙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은 인생의 제일 목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진정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아니할 때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금수나 버러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게 되고,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자가 되어 버립니다(롬1:21-25).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하찮게 보이는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생활이 아니라 일치된 생활입니다. "무엇이든지 다"는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예외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지, 직장에 다니든지, 결혼을 하든지, 돈을 벌든지, 양을 치든지, 운동을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잠을 자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은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실족할 수 있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32). 또한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33).
우리가 아는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은 출생시 의사가 집게로 뇌를 잘못 건드러 소뇌가 손상되어 일생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가난과 아버지 결핵과 10살이 넘어서야 숟가락을 겨우 쥘 수 있는 자신의 처지 등을 생각하며 자살을 결심하였고, 17살 때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매일 목숨을 걸고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 중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다 시가 되었습니다. 학교근처에 가본적도, 문학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입만 열면 시가 되어 흐느적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나 아무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것 할 수 없으나 주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며, 나 모든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길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그녀는 뒤틀린 입으로 하나님을 간증하고 “함께 선교단”을 만들어 문화 선교활동을 하며 세계를 돌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이와 같이 할수 없는 중에 나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은 이를 열납하시고 세계구원역사에 일익을 담당토록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을 깨닫고 영접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됨을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아멘
말씀: 고린도전서 10:1-11:1
요절: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거울 삼아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것과(1-13) 세상에서 찾아오는 시험과 유혹을 물리 칠것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신앙생활의 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14-11:1).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배우고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역사의 교훈을 거울 삼으라(1-13)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이 결코 무시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1-4절에서 조상들이 광야생활에서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바로의 권세 아래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참했으며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크신 권능으로 바로를 치시고 그들을 바로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다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다 같이 지도자 모세의 지도를 받았으며, 다 같이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하사, 아비가 사랑하는 자녀를 보살피듯이 보호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절은 그 아름다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입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다수’는 1-4절의 ‘다’라는 말과 대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다가 즉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다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는 일을 하여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순종한 자만이 가나안에 입성하였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은혜를 많이 받은 자라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는 것입니다(히3:16).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 믿음이 없는 자들, 음행하는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 형식적인 신앙생활하는 자들, 이런자들은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격노케 할 때 멸망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엄숙히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미여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다수라고 해서 결코 봐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다수결의 원칙에 많이 동화되었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아무리 비리가 많이 들어나도 다수가 찬성하면 통과되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다수가 행하는 길은 좋든 싫든 분별치 아니하고 따라 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대의 분위기에 발맟춰 쉽게 불의를 행하고, 돈을 사랑하고, 음행을 행합니다. 때론 우리도 버팅기다가 "다 그런건데 뭐"하며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다수니까 봐 주실까요? 하나님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기뻐하십니까? 히브리서 11:6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하지 아니하고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황이 힘들어도 범사에 감사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기가 죽지 않고 늘 스피릿이 충만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핑계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센타역사를 섬기시는 목자님들은 새벽엔 기도로 방향을 정하고, 낮에는 직장 일에 충성하시고, 저녁엔 또 양들 섬기는 역사에 주력하시는 그런 모습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임을 확신합니다. 어떤 분은 말이 좀 많긴 하지만 보험업에 종사하시는데 늘 약자의 편에 서서 도와주고자 애를 쓰십니다. 저도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병명미상의 질환과 투쟁하느라 육신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캠퍼스에 오르고, 또 오르고자 투쟁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양이든 삼방양이든 만나면 말씀을 주고 돕습니다. 이럴 수 있는 원동력은 이 분안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축복하사 요회와 센타 가운데 생명의 열매들을 풍성히 주실 것을 믿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거울이란 예, 본보기란 뜻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고린도 성도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이 악을 즐겨하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나 멸망한 이유는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악을 즐겨했기 때문입니다. "즐겨한다"는 것은 "마음을 쏟고 갈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쫓아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애굽을 그리워하고 탐욕을 부리며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말씀의 거울에 비친 고린도 성도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지난날 이스라엘 조상들은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애굽 시절에 우상 숭배를 했던 가락을 쫓아,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출 32:1-6), 지금 고린도 성도들은 그런 우상숭배의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제반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돈이나 형제나 자매나 등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을 때 그것은 곧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를 멸하십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조상의 역사를 거울을 삼아 고린도 성도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역사의 사실은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간음을 행했으며,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했으며, 어떤 이들은 주와 주의 종을 원망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희가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민 25:1-5). 저희가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습니다(민 21:4-9). 저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불만을 품고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 의해 하루 아침에 멸망 당하였습니다(민 16). 우리는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 앞에 교훈을 얻고 간음하지 말고, 시험하지 말며, 원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의 현실은 우리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처럼 구원 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거세게 밀려올 때,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고 병들 때,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올 때, 불신자들이 입사시험도 첫 번에 통과되어 승승장구 하는데 나는 주님 일을 열심히 섬기고 기도한 것 같은데, 꼭 나만 떨어져서 초라하게 보일 때에는 한숨쉬며 눈물짓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또한 돈과 쾌락을 쫓는 시대의 풍조 속에서, 우리도 유혹에 빠져 물질을 우상숭배하고 정욕을 쫓아 음행의 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조상들의 다수가 한 일이었고,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형식적인 신자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말씀의 거울을 힘써 보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회개와 결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12절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 자부했던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주는 경계의 메시지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나는 믿음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헛된 자부심을 가지고 영적인 투쟁을 게을리 합니다. 스스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만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성장이 멈추고 결국 사단의 시험에 들어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을까 조심하다 보면 혹 나도 모르게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사 어떤 경우도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3).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질지라도 하나님의 건지심을 입게 됩니다. 우리가 유혹이 많은 세상을 지날 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 거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함으로 능히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4-33)
첫째, 우상 숭배를 피할 것(14-22). 사도 바울은 역사의 교훈을 이야기 한 후에 이제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피하라'는 말은 “도망하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 중 하나는 요셉과 같이 유혹의 때에 도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정욕을 자극하거나 영혼을 함정에 빠뜨리는 성향이 있는 모든 것에서 멀리 도망해야 합니다. 비디오 방, 인터넷 음란물들을 피해야 합니다. 회식이 2,3차로 이어질 것 같으면 피해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친구들을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우상 숭배하는 장소에 출입하며 그들의 식탁에 동참하는 것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의심스럽고 양심에 꺼리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고린도 성도들 각자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16-22절에서는 고린도 성도들이 우상의 전에 앉아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에서 잔을 마시고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고귀한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사건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바친 자들은 제사장과 함께 제물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제단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상의 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의 제단에 참예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제사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요 그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의 제사에 참예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그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귀신들과 동시에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시기나게 하여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질투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정 중에 가장 강렬한 감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우상 숭배를 미워하시고 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둘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것(23-33). 23,24절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쓰지 않고 남의 유익을 위해서 써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자신의 행복과 번영보다 타인의 행복과 번영을 더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의 속성입니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시24:1). 또한 불신자가 초청한 경우에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 먹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누가 ‘그 음식은 우상의 제물이야’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한 사람의 약한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나의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인해 판단을 받거나 비방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29,30).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대 원칙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은 인생의 제일 목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진정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아니할 때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금수나 버러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로 전락하게 되고,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자가 되어 버립니다(롬1:21-25).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하찮게 보이는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생활이 아니라 일치된 생활입니다. "무엇이든지 다"는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예외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지, 직장에 다니든지, 결혼을 하든지, 돈을 벌든지, 양을 치든지, 운동을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잠을 자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은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실족할 수 있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32). 또한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33).
우리가 아는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은 출생시 의사가 집게로 뇌를 잘못 건드러 소뇌가 손상되어 일생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가난과 아버지 결핵과 10살이 넘어서야 숟가락을 겨우 쥘 수 있는 자신의 처지 등을 생각하며 자살을 결심하였고, 17살 때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매일 목숨을 걸고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 중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다 시가 되었습니다. 학교근처에 가본적도, 문학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입만 열면 시가 되어 흐느적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나 아무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것 할 수 없으나 주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며, 나 모든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길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그녀는 뒤틀린 입으로 하나님을 간증하고 “함께 선교단”을 만들어 문화 선교활동을 하며 세계를 돌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이와 같이 할수 없는 중에 나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은 이를 열납하시고 세계구원역사에 일익을 담당토록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을 깨닫고 영접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됨을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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