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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06 신년 특 제 3 강/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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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148회 작성일 06-01-15 10:50

본문

2006년 신년 특강 제 3 강
말씀 / 요한복음 6:1-15
요절 / 요한복음 6:9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우리는 오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자기 것도 아닌 한 어린 아이의 것을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드렸을 때 그것을 받으시고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폴진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건축하는 은사를 발휘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지성인들을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제자 삼고 있습니다. 그에게 큰 돈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믿음을 드려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사람도 필요하고 능력도 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도 능력도 돈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드릴 때 따라 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홍대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 역사를 섬길 수 있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1-3절을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셔서 자기에게로 오는 무리들을 보셨습니다. 2절을 보면 큰 무리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는 가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각종 병을 앓고, 정신적인 질환을 앓았습니다. 귀신들려서 고통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각종 병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사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각종 병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병든 자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는 목자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온 유대로 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며칠 씩 가르치자 이제는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무리들은 먹는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굶주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를 보시면서 빌립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5)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 질문을 하신 것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어떤 점을 시험하고자 하셨을까요? 또 이 시험을 통해서 빌립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고자 하셨을까요? 7절을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을 보시면서 빌립을 시험하신 것은 과연 빌립이 이 무리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이 무리들을 목자의 심정을 갖고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대답을 보면 그의 말에서 목자의 마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평소 빌립의 문제였습니다. 또 빌립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무리들을 먹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과 조건만 생각했을 뿐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생각에서 제외했습니다.

  우리도 빌립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늘 부족합니다. 나 자신이 아이처럼 아직 어리고 한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벅찹니다. 누구를 돌아볼만한 수준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작고 초라합니다. 그것도 어른용 오병이어가 아니라 어린 아이용 오병이어여서 크기도 작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예수님 시대와 달리 먹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양식인 말씀에 굶주려 있고, 사랑에 굶주려 있고, 마음이 굶주려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가 홍대에서 학생들을 제자 양성하여 2007년까지 배가의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고, 2041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큰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첫째, 목자의 심정이 있으면 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안드레는 자기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 나서서 대답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의 대답에는 ‘무리들은 이렇게 많은데 먹을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나타납니다. 안드레에게는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들을 먹일 방법이 어디 없는가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작은 것이지만 오병이어라도 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빌립은 머리는 좋지만 목자의 심정이 부족하였습니다. 옳지만 힘 빠지는 소리만 했습니다. 도움이 안 됐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머리가 뛰어나 보이지는 않지만 목자의 심정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목자의 심정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주린 무리들을 먹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머리만 굴리고 있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넋을 놓고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뭔가 방법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 보면 오병이어가 눈에 뜨입니다. 지붕이라도 뚫습니다.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지만 그거라도 예수님께 들고 나옵니다. 저는 이번 유럽 지부장 수양회를 다녀오면서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존 오웬의 「성령론」과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책의 후반부에서 우리가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쌍둥이의 불가사의한 이야기입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아기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병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담당 의사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엄마 자궁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히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쌍둥이는 한 인큐베이터 안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안았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고, 현재 두 아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소문을 들은 한 신문사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서로 포옹을 하고 있는 쌍둥이의 사진을 찍고는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지금 누군가 우리의 포옹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사랑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과 목소리에는 치유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로버트 피셔 목자는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않게 아버지가 해준 전화를 듣고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치료, 승리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둘째, 안드레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라고 했습니다. 안드레는 ‘여기’에서 방법을 찾았습니다. ‘저기’ 혹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답을 찾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찾았습니다. 안드레가 발견한 ‘여기에 있는 그것’은 결코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가진 그것은 오천 명의 무리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안드레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멋쩍어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무시해 버리지 않고 예수님께 들고 나간 것은 예수님이라면 혹시 이것을 가지고도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나 상황을 보고 절망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해야 할 큰 일만 바라보고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십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문제는 작아보입니다. 예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만유의 주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문제 속에서 자신이 이전에 체험했던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찾아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어야지, 무슨 소리야?”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과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믿는 대로 보인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보이고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예수님의 축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안드레의 오병이어가 귀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찮은 것들을 예수님께 들고나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축사하셨다는 것은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지고 온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이걸로 누구 입에 풀칠이나 하겠느냐?’고 하시며 땅바닥에 던져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감사히 받아주셨습니다.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작고 초라한 오병이어를 통해서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굶주린 무리들이 배불리 먹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빵을 나누어주실 때 빵은 떨어지지 않고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빵 다섯 개를 나누어주면 빵이 떨어져야 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어주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마르지 않는 빵의 샘처럼, 속에서 솟아나는 물고기의 샘처럼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오천 명의 무리가 마음껏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나 남았습니다. 뜻밖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드리는 오병이어를 무시해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내가 드리는 것이 오병이어와 같은 것일지라도 감사히 받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희망이 생깁니다. 작고 초라한 오병이어를 쓰셔서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용기가 생기고 힘이 납니다.

  우리 모임의 초기에 사람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과 전 세계에서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는 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목자의 심정으로 드린 오병이어를 주님께서 축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일대일 말씀 공부와 작은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세계선교를 하기 위해서 본국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낯선 이방 땅에서 이방 양들을 섬기는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5+2=7이 아닙니다. 5+2=5,000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축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내 진심과 믿음을 드리면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축복, 뜻밖의 기적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의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우리의 삶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영적으로 배고픈 한국과 세계 캠퍼스 학생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를 드릴 때 축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일대일 성경 공부를 축사해주셔서 2007년까지 배가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봄 학기에 하고자 하는 ‘목적 40일’ 캠페인을 축사하사 각 요회가 배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올 해에 7개의 요회가 개척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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