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6jn3(2:1-22)/물이 포도주로 변하다
페이지 정보

본문
2006년 요한복음 제 3 강
말씀 요한복음 2:1 - 22
요절 요한복음 2:11
물이 포도주로 변하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이 채워주신 포도주로 인해서 결혼 잔치는 풍성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셨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1-11) :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혼인 예식을 수요일에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잔치를 했습니다. 이때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새 살림을 차리는 신랑 신부를 축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음악과 춤과 덕담으로 축하하고 신랑 신부들은 기뻐서 먹을 것을 풍성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너무 맛이 있었는지 참석한 사람들이 평소보다 몇 배씩 마시는 바람에 포도주가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하여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의 흥이 깨집니다. 분위기도 썰렁해집니다. 잔치 집의 술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습니다. 돈이 모자라 학비를 마련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 모자라면 몸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어두워집니다. 사랑이 모자라면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나고 서로 간에 찬바람이 붑니다.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지혜가 모자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인간들에게는 모자란 것이 많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서럽고 썰렁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주인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합니다. 마리아는 손님으로 왔지만 그냥 섬김만 받지 않았습니다. 잔치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 포도주가 없다고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잔칫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가 잔치를 ‘즐기러’ 온 손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들과 달리 어떤 모양으로든지 잔치를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는 잔칫집에 부족한 것이 없는가를 늘 살폈고, 그러다가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신랑 신부도 아니었고, 주인도 아니었고, 연회장도 아니었지만 ‘주인의식’이 있었습니다. 주인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야단났다고 떠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잔치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포도주가 모자라요. 큰일났어요.” 하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진작 포도주를 좀 넉넉하게 준비해 놓지 않고 뭘 했어요.” 하면서 큰소리로 주인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주인의식이 있고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주인을 야단치고, 큰일났다고 법석을 떨었다면 잔치는 포도주가 떨어지기 전에 파장이 나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 문제를 가지고 은밀하게 예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즉 기도를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손님과 주인,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손님은 즐기려고만 하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잔치 집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섬기려 합니다. 그들은 살피고, 문제를 발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문제는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통해서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없는가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기도했는데 예수님의 응답이 어떠했습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 예수님의 대답은 참 냉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나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원하시는 때 아무 때나 일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때에 일하십니다. 지금은 포도주가 모자라 가고 있는 중이었지 포도주가 아주 떨어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이 바닥이 났을 때 새롭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준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찾았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만 기다리고 순종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순종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분부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때에 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자기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하시며, 어머니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일하고자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고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사람이 준비되는 것을 보면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부어집니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용 물이기 때문에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손님들이 이미 손을 씻고 잔치를 즐기고 있기 때문에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항아리 여섯이면 모두 세 드럼통이나 되는 많은 양입니다. 거기다가 잔칫집의 하인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여기저기서 왜 나는 숟가락이 없냐, 여기 잡채가 떨어졌다, 포도주 더 가져와라 야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쁜데 그들은 예수님께 왜 물을 채워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되 꿈지락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채우되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만큼 꽉꽉 눌러서(?) 채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노예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꾸중을 듣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고, 마음을 다해서 순종했고, 철저하게 순종했고, 100%가 아니라 120%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예수님은 또다시 더 힘든 명령을 하십니다. 항아리에 채웠던 물을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손 씻을 물을 가져다주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연회장에게 욕을 먹고 뺨 맞을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순종이란 이렇게 갈수록 태산이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이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10절을 봅시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인들의 순종을 통해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물(H2O)을 포도주( C2H5OH)로 변화시키심으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이심을 말해 주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과 같은 사람을 포도주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물과 같은 사람이 포도주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먼저 쓸모 없는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잔칫집의 맹물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손을 씻었으므로,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없으면 큰일입니다. 예수님은 있으나마나 한 맹물을 없어서는 안될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있으나마나 한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이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능력은 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조직이나 제도나 프로그램을 바꾸어 봅니다. 바꾸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조직 파괴, 형식 파괴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나 경쟁력있게 변해서 더 이기적이 되고 더 메마르고 거칠게 변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이 많아서 오히려 쓸모 없게 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그가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면, 재능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겸손과 은밀성을 갖춘 좋은 목자가 됩니다. 변화되면 모두가 개성이 살아나고, 그 개성에 따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능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변화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는 것은 또 ‘맛없는 사람’을 ‘맛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맹물은 색깔도 맛도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다릅니다. 포도주는 그 색깔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또 향기롭습니다. 무엇보다 맛이 그만입니다. 사람이 맛과 향기를 갖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밥맛 없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도움이 되고, 부담스럽게 하기보다 기쁨과 위로를 주고, 회의보다 믿음을 심고,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이번 바이블 까페를 하는 동안 이렇게 변화된 분들의 은혜로운 소감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변화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2. 성전되신 예수님(13-22)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희생 제사에 쓰기 위해 가져온 짐승을 퇴짜를 놓고 자기들이 키운 짐승을 16배나 바가지를 씌워서 팔아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 혼인 잔치에서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던 은혜스러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공의로운 모습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탐욕으로 썩는 냄새를 피우고 있는 그들을 볼 때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주의 전을 사모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요소들을 몰아내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눈에 보이는 성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있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만민을 위한 기도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성전은 세속주의, 물질주의, 탐욕, 거짓, 사기 등 온갖 죄악으로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의 죄악들을 청소하시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전이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죄의 쓰레기를 내어 놓고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께 깨끗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시자 제자들도 놀랐고 종교 지도자들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압박했습니다.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개축을 시작해서 사십 육년 동안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의 피는 믿는 우리의 죄를 씻고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며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2절을 봅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은 성령의 책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말씀을 공부하고 믿을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붉은 피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변화의 능력자 예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의 것으로 믿을 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이 됩니다. 믿을 때 성령의 역사로우리의 겉 사람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때 향기가 있는 사람, 쓸모 있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속사람과 공동체를 맛나게, 쓸모 있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요한복음 2:1 - 22
요절 요한복음 2:11
물이 포도주로 변하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이 채워주신 포도주로 인해서 결혼 잔치는 풍성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셨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1-11) :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혼인 예식을 수요일에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잔치를 했습니다. 이때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새 살림을 차리는 신랑 신부를 축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음악과 춤과 덕담으로 축하하고 신랑 신부들은 기뻐서 먹을 것을 풍성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너무 맛이 있었는지 참석한 사람들이 평소보다 몇 배씩 마시는 바람에 포도주가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하여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의 흥이 깨집니다. 분위기도 썰렁해집니다. 잔치 집의 술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습니다. 돈이 모자라 학비를 마련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 모자라면 몸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어두워집니다. 사랑이 모자라면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나고 서로 간에 찬바람이 붑니다.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지혜가 모자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인간들에게는 모자란 것이 많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서럽고 썰렁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주인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합니다. 마리아는 손님으로 왔지만 그냥 섬김만 받지 않았습니다. 잔치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 포도주가 없다고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잔칫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가 잔치를 ‘즐기러’ 온 손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들과 달리 어떤 모양으로든지 잔치를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는 잔칫집에 부족한 것이 없는가를 늘 살폈고, 그러다가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신랑 신부도 아니었고, 주인도 아니었고, 연회장도 아니었지만 ‘주인의식’이 있었습니다. 주인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야단났다고 떠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잔치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포도주가 모자라요. 큰일났어요.” 하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습니다. “진작 포도주를 좀 넉넉하게 준비해 놓지 않고 뭘 했어요.” 하면서 큰소리로 주인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주인의식이 있고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주인을 야단치고, 큰일났다고 법석을 떨었다면 잔치는 포도주가 떨어지기 전에 파장이 나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 문제를 가지고 은밀하게 예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즉 기도를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손님과 주인,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손님은 즐기려고만 하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잔치 집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섬기려 합니다. 그들은 살피고, 문제를 발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문제는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통해서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없는가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기도했는데 예수님의 응답이 어떠했습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 예수님의 대답은 참 냉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나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원하시는 때 아무 때나 일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때에 일하십니다. 지금은 포도주가 모자라 가고 있는 중이었지 포도주가 아주 떨어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이 바닥이 났을 때 새롭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준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찾았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만 기다리고 순종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순종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분부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때에 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자기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하시며, 어머니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일하고자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고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사람이 준비되는 것을 보면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부어집니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용 물이기 때문에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손님들이 이미 손을 씻고 잔치를 즐기고 있기 때문에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항아리 여섯이면 모두 세 드럼통이나 되는 많은 양입니다. 거기다가 잔칫집의 하인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여기저기서 왜 나는 숟가락이 없냐, 여기 잡채가 떨어졌다, 포도주 더 가져와라 야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쁜데 그들은 예수님께 왜 물을 채워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되 꿈지락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채우되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만큼 꽉꽉 눌러서(?) 채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노예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꾸중을 듣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고, 마음을 다해서 순종했고, 철저하게 순종했고, 100%가 아니라 120%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예수님은 또다시 더 힘든 명령을 하십니다. 항아리에 채웠던 물을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손 씻을 물을 가져다주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연회장에게 욕을 먹고 뺨 맞을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순종이란 이렇게 갈수록 태산이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이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10절을 봅시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인들의 순종을 통해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물(H2O)을 포도주( C2H5OH)로 변화시키심으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이심을 말해 주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과 같은 사람을 포도주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물과 같은 사람이 포도주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먼저 쓸모 없는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잔칫집의 맹물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손을 씻었으므로,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없으면 큰일입니다. 예수님은 있으나마나 한 맹물을 없어서는 안될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있으나마나 한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이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능력은 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조직이나 제도나 프로그램을 바꾸어 봅니다. 바꾸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조직 파괴, 형식 파괴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나 경쟁력있게 변해서 더 이기적이 되고 더 메마르고 거칠게 변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이 많아서 오히려 쓸모 없게 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그가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면, 재능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겸손과 은밀성을 갖춘 좋은 목자가 됩니다. 변화되면 모두가 개성이 살아나고, 그 개성에 따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능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변화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는 것은 또 ‘맛없는 사람’을 ‘맛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맹물은 색깔도 맛도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다릅니다. 포도주는 그 색깔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또 향기롭습니다. 무엇보다 맛이 그만입니다. 사람이 맛과 향기를 갖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밥맛 없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도움이 되고, 부담스럽게 하기보다 기쁨과 위로를 주고, 회의보다 믿음을 심고,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이번 바이블 까페를 하는 동안 이렇게 변화된 분들의 은혜로운 소감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변화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2. 성전되신 예수님(13-22)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희생 제사에 쓰기 위해 가져온 짐승을 퇴짜를 놓고 자기들이 키운 짐승을 16배나 바가지를 씌워서 팔아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 혼인 잔치에서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던 은혜스러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공의로운 모습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탐욕으로 썩는 냄새를 피우고 있는 그들을 볼 때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주의 전을 사모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요소들을 몰아내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눈에 보이는 성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있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만민을 위한 기도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성전은 세속주의, 물질주의, 탐욕, 거짓, 사기 등 온갖 죄악으로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의 죄악들을 청소하시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전이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죄의 쓰레기를 내어 놓고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께 깨끗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시자 제자들도 놀랐고 종교 지도자들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압박했습니다.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개축을 시작해서 사십 육년 동안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의 피는 믿는 우리의 죄를 씻고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며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2절을 봅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은 성령의 책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말씀을 공부하고 믿을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붉은 피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변화의 능력자 예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의 것으로 믿을 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이 됩니다. 믿을 때 성령의 역사로우리의 겉 사람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때 향기가 있는 사람, 쓸모 있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속사람과 공동체를 맛나게, 쓸모 있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
data/message1/1146966524/06jn3.hwp (0byte)
70회 다운로드 | DATE : 2006-05-07 09:27:4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