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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목적 40일 제 3 강/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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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090회 작성일 06-03-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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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40일 제 3 강
말씀 / 로마서 12:4-16
요절 / 로마서 12:5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지난주에, 우리는 인생의 첫 번째 목적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삶의 두 번째 목적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 우주 가운데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엡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가족을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 됩니다.

베드로전서 2:17을 함께 읽겠습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두 번째 목적입니다.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육신의 가족들은 결국에는 모두 흩어지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도 흩어집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영적인 가족들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우리는 육적인 가족들보다 영적인 가족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원하실까요? 첫 번째로, 사랑을 통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때를 준비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천국에서 해야 할 일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천국에서 다른 성도들과 잘 지내는 일입니다.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4:21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는 다른 성도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4,15).” 여기서 ‘교회’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어떤 기관도 아닙니다. 어느 조직이나 클럽도 아닙니다. 그것은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에는 네 가지 단계의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단계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의 두 번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인생의 다른 많은 목적들은 이 두 번째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절대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자기 혼자만의 삶을 살기 위해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교제에는 네 가지 수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 가족에 속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속할 교회 가족을 찾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9절에 나온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러분은 그 안에 속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에 속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서로 속하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교제는 이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날 때, 인류에 자동적으로 속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 즉 교회에 속하기로 선택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교회에도 나가지 않아요”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나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없으면 거룩해지기가 더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거짓되고 시험이 없는 거룩함입니다. 고립은 속임을 낳습니다. 주위에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이 성숙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숙함은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교회 가족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저는 축구 선수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요”라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은 또 이런 말과 비슷합니다. “저는 꿀벌이에요. 그런데 저는 꿀벌집이 없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소대에도 속하지 않은 군인은 전쟁에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합니다. 교회 가족이 없는 크리스천은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가족에 속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로마서 12장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모두 함께 하나님 가족의 일원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 몸은 여러 요회들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 각자는 각 요회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지체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체의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 믿음을 공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몸으로 함께 서로 속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속하고자 결심함으로써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교제의 두 번째 단계는 나누는 것을 배우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더라”고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인생은 독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친구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44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다 함께 있어’와 ‘통용하고’를 주목하십시오. 우선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고는 우정을 개발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나누지 않고서는 우정을 키워나갈 수 없습니다. 자주 만나면 가까워지는 법입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지 아세요? 그것은 우정을 위한 시간을 별로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성취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하느라 너무 바쁩니다. 그들은 우정에 시간을 할애하기 꺼려합니다. 우정을 위해서는 서로 만나야 합니다.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다른 일이 없어도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진실한 우정은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우정을 만들 시간을 내겠다고 선택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행운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입니다. 서로 나누는 것이 없이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나누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주 기초적인 교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 아이들은 나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서로 나누는 것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나누어야 할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깨달은 진리를 소감을 통해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경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지혜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옳은 질문을 가지고 접근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함께 소감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다보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진리, 놓쳐버린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교제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우리의 가정을 나누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군중 속에서 교제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은 요회 모임에서 우리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일대일로 만나는 만남에서 말입니다. 기독교 역사 초기 300년 동안 교회 건물이 전혀 없었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모든 교회는 가정에서 만남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당시 교회 전부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가 바로 교회에 가장 빠른 부흥과 성장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들은 혼자서만 끙끙대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을 나누면 그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어려움을 나누면 그 어려움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성경은 “애통하는 자들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가끔 요회 모임에서 웃지 못하고, 그냥 펑펑 울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서로 어려움을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잘 들어주는 귀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들을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문제들을 고쳐주려고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단지, 그 사람 옆에 앉아서 “푸,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이해합니다.”, “그건 참 힘들지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감과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요회 모임의 주된 목적은 서로서로 세워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이는 습관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교제의 세 번째 단계는 “동역(partnership)”입니다. 동역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요회에서 양들 심방하기, 함께 청소하기, 함께 식사 준비하기, 선교사님들께 편지쓰기, 캠퍼스에서 전도하기, 합심해서 기도하기 등등 나 혼자서 하기가 어려운 일도 함께 일하다보면 쉽게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곳에서 섬기고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 가족들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성경은 여러분과 제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할 때, 서로서로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씀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역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말해주고 서로 죄를 고하며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함께 일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단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획일성이 아닌 하나 됨을 원하십니다. 사소한 차이점들이 우리를 갈라놓게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집중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 하는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입니다.” 에베소서 4:16절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각 지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각 지체는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각 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에 맡은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합력할 때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다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삶 전부를 일하면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그녀는 인도에서도 캘커타라는 제일 가난한 곳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테레사 수녀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매일 죽음과 질병으로부터 어떻게 견디고 지내세요? 아주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십니까?”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목욕을 시키는 모든 사람들, 또 제가 붕대로 감아주는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 모두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니까요” 라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25:40절에서 섬기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가족의 교제에서 가장 깊은 단계는 바로 “친척과 같은 단계”입니다. “친척(Kinship)”은 문자 그대로 말하면 아주 가까운 친척을 말합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말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고, 여러분을 가장 잘 도와주고, 가장 친밀하게 대하고, 다른 어떤 중요한 일 보다 더 우선으로 여겨주고, 그런 사람이 바로 친척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향해서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친척관계의 가장 깊은 단계는 “형제 자매들을 정말 가족과 같이 사랑하기”입니다. 온전히 우리의 형제 자매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2:42에서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아니다. 너희 모두가 정말 한 가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10을 보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제(fellowship)”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교제에서 가장 깊은 단계입니다.
이것은 가족과 같은 친밀함입니다. 이것이 친척관계(kinship)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시작하는 이 말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1서 3:16 말씀은 그만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3:16절 만큼 중요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교제의 가장 깊은 단계입니다. 서로서로 희생하는 단계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가 고난을 당하신 선교사님들을 사랑하고 함께 고난을 짊어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 슬픔, 문제들을 나누어 질 때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정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세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1서 3:1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다음은 요한1서 4:20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마지막 구절입니다. 요한1서 3:14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롬12:16,18절은 말씀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된 교회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내가 속한 이 교회를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특히 대학 캠퍼스에는 수많은 청년들이 사랑을 받아야 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기꺼이 우리 모임에 오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몰려오는 그들을 수용할 수 없는 사태가 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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