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누가복음 2023년 눅37강(22:1-38)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3-05-21 13:24

본문

2023년 누가복음 제 37 강
말씀 | 누가복음 22:1-38
요절 | 누가복음 22:20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새 언약을 맺기 위함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이 자기의 살을 찢어 죄 사함을 이루고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심으로 맺어집니다. 이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여러 모양의 상처들이 치료되고 회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깨어진 관계들이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였습니다. 예수님은아무렇게나 죽을 수 없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악인들의 악조차도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유월절은 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에 죽으셔야 했습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였습니다.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아먹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을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시키고 경제적 풍요와 평화를 가져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자신이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여섯 번 이상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은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라 고난의 메시아로 오셨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의 생각과 꿈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을 무리가 없을 때에 대제사장들에게 넘겨 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돈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고 그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회개해야 하는데 가룟 유다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불편한 마음이 생깁니까? 하나님은 내가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 성숙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본성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으려면 불편한 마음을 부인하고 예배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성을 맺으려면 자기중심성을 부인하고 요회모임의 자리로 나아가고 대화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때 교제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도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이고, 기쁨도 섬김도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사랑을 할 수 있나요?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함께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관계를 맺지 못함으로 외로운 삶, 괴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결국 사탄의 종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이르셨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식사할 수 있는 방을 준비하고, 성전에서 양을 잡고, 누룩 없는 빵, 쓴 나물, 포도주를 구했습니다. 이 집은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열흘 동안 120명이 오로지 기도했을 때에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식사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체포되시고 심문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만일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죽음이 헛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잔을 받으사 감사기도 하시고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같이 식사를 나눔으로 관계성이 생기고 공동체의식을 갖게 됩니다. 함께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사랑을 나눕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보여 주십니다. 유월절 식사는 단지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식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완성되면 천국에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큰 잔치가 베풀어질 것입니다. 그때 구원 받은 모든 신자는 부활의 몸을 지닌 채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온전한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그 잔치는 풍성한 음식과 마음을 나누는 교제와 이 땅에서 받은 눈물과 상처를 씻어주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배와 요회모임을 하면서 이런 잔치를 조금이나마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 식사의 순서는 먼저 가장이 잔을 들어 축사한 후 자신이 먼저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같은 포도주를 함께 나누어 마심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19).” 예수님은 자기의 몸을 찢어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입니다.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을 합니다. 예수님이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그의 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삽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마음에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희생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양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이 평신도 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피땀과 같은 돈으로 섬길 때 양들이 사랑을 알게 됩니다. 아프리카는 서구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미 복음이 많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양들이 버스비가 없어서 공부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 선교사님들이 그들에게 사랑의 표현으로 물질지원을 했습니다. 그들은 선교사님들과 말씀을 공부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우리 선교사님들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자비량하면서 자신들을 섬기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선교사님들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들도 자립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배들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이 있다, 자비량을 한다, 이렇게 희생한다는 자기 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자세가 있을 때 교만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은혜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세를 잊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주님은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늘 기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자기의 몸을 아낌없이 나를 위해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오늘 하루도 풍성하게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보면 참으로 풍성하고 풍성하고 풍성합니다. 주시는 은혜가 차고 넘칩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알 때에 마음이 여유가 있고 넉넉해집니다. 사랑을 느낄 때, 기쁨이 있을 때 우리는 헌신을 하게 됩니다. 우리 모임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잔의 의미는 그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옛 언약과 어떻게 다를까요? 구약 성경에는 여러 언약들이 나옵니다. 아담과 맺은 행위 언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곧 할례 언약이 있습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도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옛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옛 언약은 돌판에 새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짐승의 피로 맺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살리라는 행위언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도리어 십계명 앞에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합니다. 옛 언약은 결국 우리로 절망하게 하고 구원자에게로 인도합니다.

  새 언약은 우리를 살립니다. 새 언약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맺은 언약을 완성하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들과 맺은 언약에 기초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근본 이유는 우리의 의지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들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가장 핵심적인 일은 새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 판에 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렘 34:31-34). 

  또한 새 언약은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웁니다.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하물며 영원한 d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e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d 그, '영' e 그, '여러분들의')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졌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모든 이방인을 위해서도 맺으신 것입니다. 새 언약은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서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 현재도 연약해서 짓는 죄, 미래에 지을 모든 죄까지도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흠이 없는 예수님의 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자주 죄에 넘어집니다. 성령께서 내가 지은 죄를 깨닫게 하실 때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면 성령께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변화시켜줍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그 사람의 내면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계속해서 우리 마음에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 소원을 주셔서 기꺼이 헌신하게 하십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죄악 되고,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로 누가 누냐 다투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제자들이 서로 경쟁해서 이기고 군림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통치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자 공동체가 정치판과 같이 더럽고 추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사람을 돕고 살려서 성공하도록 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산 자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맡기시고 다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섬길 때 열매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새 언약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감당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랑으로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이 사랑이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2건 7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32 사도행전 이엘리야 65 06-25
1231 사도행전 이엘리야 58 06-18
1230 누가복음 이엘리야 53 06-11
1229 누가복음 이엘리야 55 06-04
1228 누가복음 이엘리야 80 05-28
열람중 누가복음 이엘리야 58 05-21
1226 누가복음 이엘리야 63 05-14
1225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61 04-30
1224 누가복음 이엘리야 55 04-23
1223 누가복음 이엘리야 46 04-16
1222 고린도서 최고관리자 49 04-10
1221 누가복음 이엘리야 56 04-03
1220 누가복음 이엘리야 69 03-26
1219 누가복음 이엘리야 63 03-19
1218 누가복음 이엘리야 64 03-1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