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3년 눅36강(21:5-38)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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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누가복음 제 36 강
말씀 | 누가복음 21:5-38
요절 | 누가복음 21:36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기독교의 네 기둥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 신앙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초림을 고대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 역사의 종말이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을 때에 일어날 징조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전되신 예수님.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성전의 외관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인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우리가 겉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볼 수 있어야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듣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만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파괴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2년 동안 포위되었고 그 후에 110만명이 굶어죽고 약 9만7천명이 로마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성전의 기능을 예수님이 오심으로 대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고 이 땅에서 죄사함을 받도록 권세를 행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신자의 몸이 성전입니다. 신자는 그 몸을 거룩하게 해야 하고 진리의 성령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순종함으로 그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의 능력을 나타내고 그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몸을 사용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게 됩니다.
둘째, 말세의 징조들.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의 파괴는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말세는 믿음이 있는 자를 찾기가 어렵고 노아 시대와 같이 가정이 파괴됩니다. 불법이 성해짐으로 사회가 파괴됩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심각한 얼굴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지 말아야합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이단의 교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거짓 메시야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최근 50년 동안 세계 도처에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1,100명이 넘고, 한국에서는 자칭 구세주라고 하는 가짜 예수들이 300여명에 이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짓 메시야를 분별하고 미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만이 이를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처럼 이단들도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쾌락을 즐기고 돈을 끌어 모으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는 이단들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또한 전쟁 소식이 끊임이 없고 지진은 강도와 빈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우리는 3년 4개월 동안 고생을 했는데 이런 전염병은 얼마든지 계속될 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폭염과 폭설, 태풍과 자연재해는 어떠합니까?
또한 이 모든 일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박해를 받으며 회당과 옥에 넘겨지게 됩니다. 신자들이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거나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도리어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자혜를 주실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우리를 넘겨주어 순교자도 나올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신자들이 방송, 드라마, 뉴스 등 언론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짝하며 살아갈 때는 별로 미움을 받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고 진실하게 살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는 세상은 사탄에게 속하였고 성도는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미움과 박해는 우리의 신앙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해줍니다. 항상 시련은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버림받고 손해를 당하고 박해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신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하심을 받고 더욱 친밀한 관계 속에서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 모양만 신자인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따라서 세상을 선택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고난과 박해는 심해질 것이고 알곡과 가라지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미움과 박해를 당할 때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이는 끝까지 인내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조건절이 아닙니다. 확고히 서 있는 사람 즉 주님께 헌신된 사람은 어떤 시련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은 세상 유혹에 흔들립니다. 고난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상태에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이런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신자들이 말세에 당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환난의 때에 신자들로 하여금 인내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성전 파괴와 미혹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자연재해와 핍박자들이 많아지지만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제자들을 통한 교회의 시작과 확장,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길입니다. 재난이 도리어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됩니다. 전쟁과 어려움 후에 사람들의 마음이 가난해져서 영적인 부흥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 봄 수양회에 참석하여 추수할 때가 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감지하고 양들을 힘써 섬겨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울 때에 사람들은 성이 요새였기 때문에 그리로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기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한 신자들은 예루살렘이 포위 될 때에 다 피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입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70년 이후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까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유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메시아를 거부하고, 타락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범죄할 때 이와 같은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에는 하늘과 땅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25,26절을 보십시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마태복음 24장 29절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태양 빛은 가리워지고 달도 빛을 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뜻은 타락한 천사들의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하늘의 소멸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 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오십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지구와 우주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갱신을 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그의 만유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28).” “머리를 들라!” 이도령이 춘향이에게 머리를 들라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이 우리에게는 기쁨과 환희의 날입니다. 그 날은 완전한 속량의 날입니다. 그 때에 살아 있는 신자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몸이 거룩한 몸, 신령한 몸, 강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것이 재편될 것입니다. 이 날이 회복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우리는 사모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날이 개인적으로는 짧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십니다. 싹이 나면 우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말세지말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셋째, 말세를 사는 자세. 34,3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 집니다. 방탕함이란 함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요, 술 취함이란 육신을 다스리지 않고 쾌락에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란 먹고 사는 문제로 마음이 병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염려와 두려움의 종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동성애와 동성 결혼, 낙태가 좋다고 말하고 이런 것이 죄라고 말하면 인권침해라고 공격을 합니다.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조들이 나타나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덫에 걸린 것처럼 꼼짝하지 못합니다. 신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이 마음껏 죄를 짓고 타락할 대로 타락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는 심판 밖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마음에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홍수로 쓸어 버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에는 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 깨어있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 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지말에는 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힘쓰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지할 수 있고 그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빌립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빌립에게 남쪽으로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진리를 찾는 영혼들을 도우십니다. 깨어서 기도할 때 유혹과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쁘고 힘들수록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일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특히 어머니들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을 작곡한 존 뉴톤의 어머니는 아들이 글을 익히자마자 소요리문답을 외우게했습니다. 훗날 뉴턴은 “죄악에 빠졌음에도 어릴 때 배웠던 것이 거듭 생각나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링컨 역시 어머니 낸시 행크스 링컨으로부터 ‘말씀 조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어머니들은 자녀의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꾸준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구했습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의 어머니 아멜리아는 그를 복중에 품고 있을 때부터 기도했습니다. 자녀가 커서 선교사가 되게 해 달라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학교에 진학하면서 곧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졸업 후 아들이 은행원으로 살며 신앙을 등한시할 때도 아멜리아는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회심 후 소명을 깨달은 테일러는 결국 선교사로 중국 땅을 밟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습니다. 20여년간의 어머니 기도가 응답받은 순간입니다. 자녀의 삶과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머니의 기도의 저력은 자녀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은 건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도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말씀 | 누가복음 21:5-38
요절 | 누가복음 21:36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기독교의 네 기둥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 신앙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초림을 고대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 역사의 종말이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을 때에 일어날 징조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전되신 예수님.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성전의 외관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인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우리가 겉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볼 수 있어야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듣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만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파괴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2년 동안 포위되었고 그 후에 110만명이 굶어죽고 약 9만7천명이 로마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성전의 기능을 예수님이 오심으로 대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고 이 땅에서 죄사함을 받도록 권세를 행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신자의 몸이 성전입니다. 신자는 그 몸을 거룩하게 해야 하고 진리의 성령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순종함으로 그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의 능력을 나타내고 그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몸을 사용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게 됩니다.
둘째, 말세의 징조들.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의 파괴는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말세는 믿음이 있는 자를 찾기가 어렵고 노아 시대와 같이 가정이 파괴됩니다. 불법이 성해짐으로 사회가 파괴됩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심각한 얼굴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지 말아야합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이단의 교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거짓 메시야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최근 50년 동안 세계 도처에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1,100명이 넘고, 한국에서는 자칭 구세주라고 하는 가짜 예수들이 300여명에 이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짓 메시야를 분별하고 미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만이 이를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처럼 이단들도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쾌락을 즐기고 돈을 끌어 모으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는 이단들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또한 전쟁 소식이 끊임이 없고 지진은 강도와 빈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우리는 3년 4개월 동안 고생을 했는데 이런 전염병은 얼마든지 계속될 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폭염과 폭설, 태풍과 자연재해는 어떠합니까?
또한 이 모든 일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박해를 받으며 회당과 옥에 넘겨지게 됩니다. 신자들이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거나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도리어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자혜를 주실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우리를 넘겨주어 순교자도 나올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신자들이 방송, 드라마, 뉴스 등 언론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짝하며 살아갈 때는 별로 미움을 받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고 진실하게 살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는 세상은 사탄에게 속하였고 성도는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미움과 박해는 우리의 신앙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해줍니다. 항상 시련은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버림받고 손해를 당하고 박해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신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하심을 받고 더욱 친밀한 관계 속에서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 모양만 신자인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따라서 세상을 선택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고난과 박해는 심해질 것이고 알곡과 가라지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미움과 박해를 당할 때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이는 끝까지 인내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조건절이 아닙니다. 확고히 서 있는 사람 즉 주님께 헌신된 사람은 어떤 시련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은 세상 유혹에 흔들립니다. 고난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상태에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이런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신자들이 말세에 당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환난의 때에 신자들로 하여금 인내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성전 파괴와 미혹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자연재해와 핍박자들이 많아지지만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제자들을 통한 교회의 시작과 확장,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길입니다. 재난이 도리어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됩니다. 전쟁과 어려움 후에 사람들의 마음이 가난해져서 영적인 부흥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 봄 수양회에 참석하여 추수할 때가 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감지하고 양들을 힘써 섬겨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울 때에 사람들은 성이 요새였기 때문에 그리로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기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한 신자들은 예루살렘이 포위 될 때에 다 피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입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70년 이후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까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유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메시아를 거부하고, 타락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범죄할 때 이와 같은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에는 하늘과 땅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25,26절을 보십시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마태복음 24장 29절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태양 빛은 가리워지고 달도 빛을 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뜻은 타락한 천사들의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하늘의 소멸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 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오십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지구와 우주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갱신을 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그의 만유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28).” “머리를 들라!” 이도령이 춘향이에게 머리를 들라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이 우리에게는 기쁨과 환희의 날입니다. 그 날은 완전한 속량의 날입니다. 그 때에 살아 있는 신자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몸이 거룩한 몸, 신령한 몸, 강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것이 재편될 것입니다. 이 날이 회복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우리는 사모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날이 개인적으로는 짧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십니다. 싹이 나면 우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말세지말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셋째, 말세를 사는 자세. 34,3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 집니다. 방탕함이란 함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요, 술 취함이란 육신을 다스리지 않고 쾌락에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란 먹고 사는 문제로 마음이 병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염려와 두려움의 종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동성애와 동성 결혼, 낙태가 좋다고 말하고 이런 것이 죄라고 말하면 인권침해라고 공격을 합니다.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조들이 나타나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덫에 걸린 것처럼 꼼짝하지 못합니다. 신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이 마음껏 죄를 짓고 타락할 대로 타락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는 심판 밖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마음에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홍수로 쓸어 버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에는 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 깨어있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 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지말에는 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힘쓰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지할 수 있고 그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빌립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빌립에게 남쪽으로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진리를 찾는 영혼들을 도우십니다. 깨어서 기도할 때 유혹과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쁘고 힘들수록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일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특히 어머니들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을 작곡한 존 뉴톤의 어머니는 아들이 글을 익히자마자 소요리문답을 외우게했습니다. 훗날 뉴턴은 “죄악에 빠졌음에도 어릴 때 배웠던 것이 거듭 생각나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링컨 역시 어머니 낸시 행크스 링컨으로부터 ‘말씀 조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어머니들은 자녀의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꾸준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구했습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의 어머니 아멜리아는 그를 복중에 품고 있을 때부터 기도했습니다. 자녀가 커서 선교사가 되게 해 달라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학교에 진학하면서 곧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졸업 후 아들이 은행원으로 살며 신앙을 등한시할 때도 아멜리아는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회심 후 소명을 깨달은 테일러는 결국 선교사로 중국 땅을 밟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습니다. 20여년간의 어머니 기도가 응답받은 순간입니다. 자녀의 삶과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머니의 기도의 저력은 자녀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은 건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도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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