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요한복음 06jn21(12:20-50)/한 알의 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436회 작성일 06-09-17 08:04

본문

2006년 요한복음 제 21 강                                                           
말씀 요한복음 12:20-50
요절 요한복음 12:24
 한 알의 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11장까지에는 일곱 개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12장 전반부에서는 예수님이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겸손의 왕이요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하신 장면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한 알의 밀이 죽으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죽음 자체가 영광스러울 뿐만 아니라 죽음 후에 오는 수많은 열매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씨앗을 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하고 씨앗이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어떻게 한 알의 밀로서 죽고 열매를 맺으셨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생명이 살아나고 다른 사람을 살리며 영성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만나고자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수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찬송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외쳤습니다. 멀리 이방 땅에서 올라온 헬라인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단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습니다. 한편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나올 때 제자들은 의기양양했습니다. “선생님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면담하고자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영광을 얻을 때란 죽음의 때가 왔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영광으로 보신 것은 당신의 죽음의 의미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숙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탄생시키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가져오고 하나님 나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일시적으로 패배하는 것 같으나 궁극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기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닥치게 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들, 이방인들까지도 죄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을 바라보셨기에 큰 감동이 되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통해 십자가의 비밀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썩는 밀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으로서 인생들의 경배와 섬김과 찬양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영광과 권세와 자존심을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많은 인생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죄와 상처와 슬픔과 운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철저하게 희생하셨습니다. 그 결과 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새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떤 점에서 한 알의 밀로 비유하셨을까요? 첫째로, 우리 인생은 한 알의 밀처럼 일회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오직 하나의 밀로서 단 한 번 밖에 살 수가 없습니다. 밀 한 알처럼 작은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 생명을 어디에 드려야 할 지, 무엇을 위해 써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을 한 알의 밀이라고 한 것은 우리 인생이 한 알의 밀처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을 때 100개에서 120개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5년 동안 다시 경작하면 5년 후에는 무려 1백억 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을 가마니에 담으면 1만 7천 가마니가 되고, 200명이 20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 됩니다. 한 알의 밀에는 이렇게 큰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알의 밀 속에는 생명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이 아무리 탱탱하고 멋있고 반짝 반짝 윤이 나고 보기 좋아도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는 삼천년 전의 밀알이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밀이 지난 삼천년 동안 썩고 열매 맺고 또 썩고 열매맺는 일을 거듭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수확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하나로 있는 그 밀은 정말로 죄악된 밀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한 알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면 지나가던 새가 쪼아 먹어 버립니다. 겨울 추위에 얼고 골아터져서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죽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에 떨어져서 적당한 깊이에 묻히고 썩고 죽어야 합니다. 즉 자기 분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밀알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터지고 깨져서 밀의 본래 모습은 없어져야 합니다. 밀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영양분은 새롭게 움터오는 새싹에게 다 주어야합니다. 이런 자기 분해의 과정을 통해서 땅 속에서 자신이 조용히 썩어지고 죽어지고 없어질 때 마침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새싹이 터 올라서 줄기가 되고 꽃을 피워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25절은 이 밀알의 진리가 우리 인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말해 줍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들이 열매를 원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나 먼저인 생각과 생활 태도를 가집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으면 견디지 못해 합니다. 그리고 충동적인 욕구를 따라서 살아갑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많은 것을 잃어버립니다. 영적 생명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자기 생명도 잃어버립니다. 참 행복을 잃고 부끄럽고 죄악된 열매만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자기, 세상적인 자기,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기 등 죄악 된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양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하는 자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과 복음 역사를 위해서 공부하는 자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높아져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망할 것 같지만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얻고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승승장구할 것 같으나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현재 내가 수고한 것만큼 열매가 안 보일지라도, 동역자들이나 양들에게 비난을 받고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내 문제가 풀리지 않고 내 인생이 꼬여 보인다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죽고 썩어야 합니다. 자존심이 다 부서지기까지, 자기 사랑이 다 없어지기까지, 자기 의와 자기 생각이 다 깨어지기까지 철저히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떤 실패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만큼 복음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썩는 밀알이 될 때 비로소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탓하지 말고, 환경이나 시대를 탓하지 말고, 목자나 양들을 탓하지 말고 ‘내 탓입니다.’하며 자기 가슴을 치고 애통히 회개함으로서 밀알의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썩고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시고기는 비록 미물이지만 밀알의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미 가시고기가 알을 낳고 어디론가 사라지면 아빠 가시고기는 새끼 알을 지키기 위해서 2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지느러미를 파닥거립니다. 그렇게 해서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 나올 때가 되면 아빠 가시고기는 힘을 다 소진하고 죽습니다. 그러면 그 아빠 가시고기의 시신을 새끼들이 먹고 눈이 생기고 지느러미가 나오고 비늘이 덮여서 피라미로 자라나게 됩니다. 한 아빠 가시고기의죽음을 밑거름으로 해서 수백, 수천 마리의 새 가시고기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아빠 가시고기가 죽기 싫어서 바람을 피우고 혼자 살겠다고 무책임하게 멀리 도망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새끼로 태어나야 할 가시고기들은 다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되어서 죽고 맙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영원히 삽니까? 아닙니다. 그 아빠 가시고기도 언젠가는 늙어서 죽게 됩니다. 문제는 그 무책임한 아빠 가시고기는 하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무의미한 고기의 인생을 마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제자도를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어떠했으며 무엇을 하셨습니까? 27,28절을 봅시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과 불안에 사로잡혀 멍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죽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버림 받아야하는 고통을 당하셔야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도 비난과 모욕과 수치를 받아야했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이때를 위해서 준비해오셨고 이때를 기다려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지금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고뇌와 고통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원이 더 강했습니다. 그는 죽어야 할 때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시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도하심으로 이를 극복하시고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레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가 난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날 일들이 어떠합니까? 31,32절을 봅시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골2:15). 예수님은 자신의 이런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이끌겠다고 하십니다. 지금도 이 지구상에는 2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캠브리지 세븐의 멤버 중에 한 사람인 챨스 스터드(Charles Studd, 1860-1931)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수재요,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인해 달라고 몰려오는 팬들이 구름떼처럼 많았습니다. 각 팀에서는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대단히 부자여서 아버지가 유산으로 3만 파운드나 되는 돈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디엘 무디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자기 재산, 자신의 인기, 자신의 타이틀과 명예가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잃어버리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은 죠지 뮬러의 고아원과 디엘 무디의 성경학교,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선교회에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좋아했던 많은 여자들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중국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서 그곳 선교사와 결혼하여 18년 동안 중국선교역사를 감당했습니다. 중국 선교가 어느정도 안정되자 인도로 가서 6년 동안 선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0이 되었을 때에 그는 안식년이 되어 영국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식인종들도 선교사를 필요로 한다.” 그는 두 말 않고 홀몸으로 아프리카 수단으로 사역지를 옮겨서 그곳에서 20년 동안 선교역사를 감당하였습니다. 그가 만든 WEC 이라는 선교회는 지금도 2000여명의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내가 그분을 위해 하는 어떤 희생도 결코 클 수 없다.” 챨스 스터드 한 사람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중국, 인도, 아프리카 수단 땅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에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하고 이기적인 후배 캠브리지 대학생들이 자원하여 선교지에 나아가서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영광이 참된 영광입니까? 세상 영광은 오직 자기만을 높이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신의 소유와 타이틀을 자랑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삶입니다. 때로는 이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끌어내리고 경쟁자들을 짓밟아서 홀로 정상의 자리를 정복하는 삶입니다. 이처럼 세상 영광을 구하는 삶에는 잠시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아도취의 재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영광은 정말 잠시입니다. 또한 돌아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가신 인자의 영광의 길은 어떻습니까? 그 길은 자신이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입니다. 자신이 썩어짐으로서 다른 사람이 꽃 피우도록 돕는 길입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어나게 되었습니까? 마음에 위로와 평안과 나음을 덧입게 되었습니까? 마침내는 예수님 자신도 가장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이를 볼 때 다른 사람도 구원하고 나도 영화롭게 되는 길은 바로 예수님처럼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인생을 사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진리는 너무나 지당하고 평범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서부터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통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69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