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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07년 신년1강(사60:1-22) 일어나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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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214회 작성일 06-12-31 08:29

본문

2007년 신년 제 1 강
말씀 이사야 60:1-22
요절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오늘은 2006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에는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우리 자신이 또는 양들이나 자녀들이 영적 육적으로 더 성장하고 변화되길 원합니다. 나를 괴롭히던 그 끈질긴 인생 문제, 죄 문제에서도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빛 되신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빛을 받아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a절 봅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는 말씀은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데서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슬픔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작아졌고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사람, 병든 사람, 자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첫째, 죽은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어 관에 누워 있는 나인 성의 청년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청년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생명의 빛을 받고 관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어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달리다굼”하셨습니다. 이는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죽은 소녀에게 말씀의 빛이 임했을 때 싸늘했던 얼굴이 복사꽃 같이 피어났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골 골짜기에 널려 있는 바짝 마른 해골바가지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두 가지 죽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도 살리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들도 살리십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고,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목적도 존재의미도 모른 채 허무와 무기력, 정욕과 쾌락에 끌려 다니는,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외치십니다. “일어나라!”

  둘째, 예수님은 병든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베데스다에 누워있는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생존 경쟁에 패배하여 희망을 상실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거듭되는 실패로 인하여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누워 있었습니다. 여러 번 병을 낫고자 시도했지만 낫지 못하자 나의 병만큼은 안 된다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믿고 37전 했으나 37패를 하였습니다. 그는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믿고 37번을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도끼도 도끼 나름이지 그는 37패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실패하자 이제는 소원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이제 이상하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영접하고 체념하고 자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다스다 못가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죄로 인한 깊은 고질병이 있습니다. 일어나고 싶어도 못 일어나게 하는 어두운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일의 고질병이 있습니다. 안일은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해야 할 일 대신에 자기가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도 사실은 게으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이 강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고집대로 하다가 많은 손해를 봅니다. 어떤 분은 끝없이 솟아나는 음란한 생각과 안목의 정욕으로 괴롭습니다. 어떤 분은 잘 변화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의 기질로 인해서 절망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교만한 생각과 높은 마음으로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기심과 무정, 무자비한 자신의 모습에 어떤 분은 세상 소망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모습에 소망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 가지 병든 모습으로 누워있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어기고,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는 배 밑에 가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버리고 생활인이 되어서 잠을 잤습니다. 불순종과 고집으로 잠을 잤습니다. 그때 마침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선장이 잠을 자고 있는 그를 찾아가 깨웠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라.”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으로, 사명의 사람으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들은 병든 것도 아닌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져야할 십자가에 짓눌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자는 자들은 자기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는 자들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안일과 세상 쾌락에 빠져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외치십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언제까지 자기 문제로 잠을 자야 합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등한히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5:14).”
 
  1a절을 다시 보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빛을 비추다, 영광스럽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치료의 광선이 비추고 있기 때문에 나음을 받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시기 때문에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2절 앞부분을 보면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어두움은 하나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백성들은 영적인 무지 가운데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이 없이 듣기 때문에 좋은 말씀을 들어도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미워하고 인권을 침해했다며 고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허무한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그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져서 두려움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의기소침해져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모험하는 일을 기피하고 쉽고 편안한 일들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도하는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대신 어두움 가운데 쓰러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과 그 사회는 어둡고 악령이 지배합니다.
 
  그러나 2절을 다시 보십시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 말씀에서 ‘오직’이란 단어는 ‘비록 ~ 일지라도’입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매우 강해 땅을 뒤덮을지라도, 캄캄함이 심히 깊어 만민의 눈을 멀게 할지라도, 그들이 힘이 없고 능력이 없을지라도 오직 여호와께서 이 나라 위에 임하시면, 여호와의 영광이 이 나라 위에 나타나면, 우리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민족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임하실 때 외적으로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우리들은 빛이 됩니다. 희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 있는 어두움이 물러가고 모든 것이 환하게 됩니다. 달은 본래 빛이 없습니다. 발광체가 아닙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태양의 빛을 많이 받으면 보름달이 되고, 적게 받으면 그믐달이 됩니다. 지구도 빛이 없습니다. 태양 가까이서 빛을 받으면 적도가 되고 태양 멀리서 빛을 받으면 남극이나 북극이 됩니다. 달이나 지구처럼 우리에게도 빛이 없습니다. 빛을 발하고 싶어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는 이 빛을 받아서 세상을 향하여 비춰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빛 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야합니다. 노아나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듯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순종하며 다니엘처럼 절대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빛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인생들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진리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죄사함을 주는 복음의 빛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부활의 빛입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사랑할 힘을 주시는 사랑의 빛이십니다.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는 소망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 빛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 빛을 받을 때 캄캄한 밤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한 행실, 의로움, 진실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엡5:9). 베드로전서 2:9절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내비치게 됩니다. 말씀의 빛, 복음의 빛을 받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빛이 비추일 때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함이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됩니다(눅4;18). 우리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하려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갑니다. 우리가 어두움에 있을 때 문제 자체를 많이 묵상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 해결은 빛을 영접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잘 맺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이런 일에 힘쓴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반복해서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운데 빛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의지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의 샛별이 뜨기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영접할 때 주의 영광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빛을 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온 세상이 빛을 보고 나아옵니다. 3,4절을 봅시다.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빛이 있으면 빛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그 빛을 보고 나왔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그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제국 내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어두움과 캄캄함에 있던 나라들과 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취는 구원의 빛, 생명의 빛으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을 본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그에게 나아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의 빛이 비추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빛은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세계를 비추이고 있습니다.

  둘째, 부와 재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드려집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빈손이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다의 부가 돌아오며, 세계 모든 나라들의 재물이 모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많은 부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또 복음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을 하나님께서 부하게 하사 세계 선교 역사에 드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선교 역사를 이끌어 왔던 로마,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한국을 하나님께서 놀랍게 축복하셨습니다. 지금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눈부십니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영적인 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민 구원 역사에 쓰시기 위해서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6b,7절을 보십시오.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데 왕들과 열방들이 드리는 물질이 쓰여 지게 됩니다. 유럽이나 러시아를 여행해 보면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성당이요 교회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자매님이 여행사를 통해서 유럽 여행을 했는데 왜 성당만 보여주느냐고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저 구름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물질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여러 모양으로 영화롭게 하십니다.
 
  10절부터 22절까지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빛이 비추일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소망의 말씀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대하여 노하시되 죄인이 회개하면 즉시 그 노를 거두십니다. 죄인이 살 길은 확실한 소망 중에 회개하는 것뿐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을 쳤던 사람들이 동역자가 되어 성전 건축에 참여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방의 왕들이 개종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일이 많이 있게 됩니다. 왕들이 교회를 봉사하게 된다는 말은 그만큼 교회의 권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은 밤에도 말씀 공부가 계속되어 주님께 돌아오는 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자기 재물을 가지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것입니다.

  12절을 봅시다.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문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13).” 장래의 성전은 더욱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본다면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영적 은사를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양한 은사들이 합하여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주의 청년들이 성장함으로 더욱 푸르르게 됩니다. 저는 이런 소망 가운데 센터 앞 마당에 소나무, 잣나무, 황양목을 심었습니다. 15,16절을 보면 교회가 전에는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여 매우 미약하였으나 이후에 교회는 왕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방 나라들과 그 집권자들의 봉사를 받고 복음 진리의 위세가 나타날 때에 교회는 새삼스럽게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전능자이신 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심령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17). 다시는 강포한 일이 이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다시 없을 것이며 구원이 성벽과 같이 보장되고, 찬송의 문이 열리듯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일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개인에게만 아니라 모든 참된 교회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될 영광이 어떠합니까? 19,20절을 봅시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해와 달의 빛은 행복을 상징합니다. 즉 우리는 진리와 기쁨과 성결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빛이 되시며 하나님이 영광이 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복된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슬픔의 날이 끝날 것이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과 애통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 의롭게 되어 영원한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으셨고 그의 손으로 만드시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고 선한 일에 힘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어둡고 캄캄한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시대를 깨우며 믿음과 소망을 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시대를 비추는 빛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소망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게 하십니다. 2007년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이 시대에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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