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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06성탄4강(마2:1-12) 아기께 경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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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931회 작성일 06-12-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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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성탄 제 4 강                                                               
말씀 마태복음 2:1-12
요절 마태복음 2:11
  아기께 경배하고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사도 마태는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야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할 뿐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 멀고 먼 길을 찾아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요 왕의 모사들이요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경배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왜 예수님께 정성스런 경배를 드려야 마땅한가요? 또 경배란 무엇일까요? 이 시간 우리도 동방 박사들과 같이 순수하게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헤롯 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헤롯 왕은 능력이 있었지만 잔인무도하고 교활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엄청난 도시 건설 사업을 벌였습니다. 전반기에는 인기가 좋았지만 후반기에는 정권욕에 사로잡혀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가 국정을 그르쳤기 때문에 백성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가들은 권력 다툼에 정신이 팔렸지만 배고픈 백성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때는 영적으로도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한 명의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없을 때 그 나라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이같이 어두울 때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밤하늘을 비추는 샛별과 같이 탄생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아는 몇 사람들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고 연구함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는 미래 학자들이었습니다. 창1:14절에는 하나님께서 궁창에 별을 만드시면서 그 광명으로 징조를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징조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루어 알게 하는 일이나 현상, 조짐을 말합니다. 그러면 박사들은 어떻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았을까요? 그들은 밤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삶은 별 볼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들은 유난히 환하게 반짝이는 한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사하다가 민수기 24:17절을 발견했습니다. 휴레카! 찾았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난다는 말은 인류를 구원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의 메시야 사상은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 있던 유대인들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동방 지역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박사들은 특이한 그 별이 바로 유대인들이 말하던 메시야의 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배하고자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들은 앞뒤 재지 않고 짐을 챙겨 순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대학자로서 존경을 받고 귀족으로서 부와 명예를 다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아쉬워서 이 험한 순례 길을 떠났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들은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했고, 돈도 벌었지만 소유로는 그들의 영혼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어두움과 공허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이 나와 인류의 문제를 해결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이 메시야를 만나 경배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 있는 가장 큰 욕구는 깊이 들어가 보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드디어 박사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유대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그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 백성이 소동했습니다(3). 소동했다는 말은 마음이 심히 놀라고 요동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대망했지만 그가 온 줄도 모르고 그를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학교 옆에 사는 아이들이 항상 지각을 하고 멀리 사는 학생들이 학교에 일찍 오는 것과 같이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베들레헴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경배하러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서 동방 박사들은 멀리 페르샤에서 먼저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의와 자부심만 가득했지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은 구세주의 탄생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마치 성탄절에 돈 벌 궁리만 하는 상인들이나 놀 생각만 하는 철부지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철분제를 먹고 철이 들어야 할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말을 들은 헤롯 왕은 황급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리스도는 다스리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가 되십니다.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훌륭한 통치자는 기본적으로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풍성하게 해주고 그 나라를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야 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훌륭한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한 마음으로 따르게 만듭니다. 반대로 악한 지도자는 백성들을 가난과 기근으로 수백만 명씩 굶어 죽게 만들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권위를 부리고 교만하게 행하여 세계를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훌륭하건 못났건 그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고 한계적입니다. 왕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도록 죄인들이 받아야 할 모든 고난과 수치와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시고 죽으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단의 종된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해서 그 백성을 살리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도록 다스리십니다. 더 나아가 그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그는 부활 승천하사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 사랑과 평화로 다스려주십니다. 헨델은 메시야 곡 중에서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한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목자와 같이 다스리십니다. 목자는 겉보기에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고된 직분입니다. 양 똥을 치우고 때마다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고 항상 돌봐야 합니다. 양들이 병들면 약을 발라주고 서로 싸우고 갈등을 할 때는 중재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목자로서 생명의 말씀을 공급해 주시고 그 인생길을 섬세히 인도해 주십니다. 그는 목자 왕으로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함께 기뻐하시고 함께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양들의 죄와 허물을 감당해 주십니다. 목자 왕은 그 백성을 아버지와 같이 사랑하시고 돌봐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목자로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요한복음 10장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5).”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다윗은 목자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편).” 목자 왕 되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의 섬김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의 은혜가 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찬406).”

  이제 헤롯왕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아기에 대해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고하여 그를 경배할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을 속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헤롯의 머리 위에 계셨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박사들은 왕의 말을 듣고 걸음을 베들레헴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그들을 인도하여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고 찾는 자들에게 말씀의 별을 보내어 인도해 주십니다. 메시야의 별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있는 한 집 위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이 별을 찾은 동방박사들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확신은 큰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기쁨을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사중으로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사들의 마음 속에서는 마치 옹달샘에서 샘물이 철철 흘러넘치듯이 즐거움과 기쁨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사명의 땅 나이지리아에 있는 남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쁨이 충만한 이안나 선교사의 웃음보다 더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을 스멀스멀거리며 웃었습니다. 흐흐흐흐, 아하하하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들은 죄악된 피가 흐르는 타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의식과 정죄감으로 고통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를 갈망하며 모든 것을 투자해서 베들레헴까지 왔고 마침내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의 내면에는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희열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기쁨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이 구원자를 만났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를 만났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그들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영원히 다스려주실 평화의 왕이요 의의 왕을 만났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성탄절인 오늘 우리도 선물이나 맛있는 음식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11a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동방박사들은 별이 지시하는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보잘 것 없는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박사들은 영적인 눈이 있어서 아기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야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얼러리 까꾹’ 하며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엎드려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엎드린다는 말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는 의미입니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그들은 더욱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경배란 단어는 ‘깊은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경배란 무엇입니까? 먼저 나의 의지를 꺾고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려면 인간적인 생각, 자기를 높이려는 의지, 자기를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경배란 최고의 가치를 가진 분에게 최고의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경배란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마귀를 닮아갑니다. 그리고 늘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반발심과 불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됩니다. 마태복음 22:3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최고의 의무요 특권임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영적인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인간에게는 늘 경배의 대상을 찾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 친구를 또는 여자 친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무비 스타, 록스타가 청소년들에게는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돈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이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명예가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도 참된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 꽃과 같이 쇠하고 썩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은 자신이 경배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영원한 스타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니 항상 불만족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악질에 걸려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실용주의 시대인 오늘날 동방 박사들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진정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도 아주 현실적으로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인본주의에 기초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자아실현의 목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랑, 자아 성취, 인간의 행복 추구가 목표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목표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이 실현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악된 자기가 죽고 썩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올바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화랑센터의 이다윗목자님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그는 박사요 교수로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교사로 나가고자 합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가 선교사로 살고자 할 때 한국에서 누렸던 모든 특권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의 도전 정신, 사명을 위해 어려운 길을 찾아 나서는 믿음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경배를 마친 후 박사들은 미리 준비해온 보배합을 열어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변치 않는 충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왕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아무도 그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의 뜻이 이 땅에서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는 사랑과 진리에 기초해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유향은 기도하는 대제사장께 드리기에 합당한 선물입니다. 몰약은 마취제로 쓰거나 장사지낼 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썼습니다. 그래서 몰약은 구속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죄사함과 평강을 주셨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보물은 예수님께서 헤롯의 핍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가셨을 때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과거에 악명 높은 세리로서 지독한 이기주의자요 물질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늘 사람들을 대할 때 이 사람에게서 뭘 뜯어낼까 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는 얻어내는 데는 명수였으나, 주고 베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가장 귀하신 분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드리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인생 목적 가운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 그에게 최고의 것을 드렸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기쁜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특별히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바로 이 시대의 네 번째 동방 박사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일생 동방 박사들과 같이 순례자의 삶을 사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내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을 드려서 가장 귀하신 주님께 경배를 드려야겠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려서 일대일 성경 공부로 방황하는 인생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은 매일 드릴 수 있는 보배합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경배하는 데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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