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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06년 추수감사(시107:1-32) 기이한 일을 인하여 찬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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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978회 작성일 06-11-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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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추수감사절                                                       
말씀 시편 107:1-32
요절 시편 107:8

기이한 일을 인하여 찬송하라
“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드린 감사의 노래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서론(1-3)에 이어 광야에서(4-9), 포로에서(10-16), 병에서(17-22), 바다의 풍랑에서(23-32)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각자 감사 제목을 찾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1-3절은 이 시의 서론으로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죄의 뿌리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지혜와 능력을 주사 생명을 누리게 하셨는데 이에 대해 감사치 않는 것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시편 50: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또한 감사할 때 우리는 행복해 집니다. 시인은 감사하라는 말씀을 명령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기쁜 일도 많지만 어려운 일도 많이 겪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일에 주의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차원 높은 사랑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 광야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4-9) : 4,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에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하루 이틀 길이 아니라 몇 개월이 걸리는 고생길이었습니다. 광야 사막 길은 길이 똑바로 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이런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갈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해서 방황했습니다. 비전이 없음으로 헤맵니다. 영원한 샘물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함으로 세상의 구정물로 목마름을 채우고자 하다가 고통을 당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의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오락을 줄기고 여행을 하고 죄의 쾌락을 즐겨도 허무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지루하고 피곤합니다. 수고해도 시행착오를 겪거나 기대한 결과가 없을 때 우리는 피곤합니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근심은 내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칠 때 생깁니다. 주변 상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근심이 됩니다.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고 또 나아가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근심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기도해도 안 되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불신을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할 시간을 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새벽을 깨워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쉼을 갖게 하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께서 그릇된 길을 행하던 우리에게 베푸신 기이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천하무적과 같았던 바벨론이 어느 날 갑자기 페르샤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샤의 고레스가 예기치 못했는데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일어나 보니 “고향 앞으로 가!”라는 왕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수많은 강도와 도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안전하게 귀향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다가 사명을 버리고 소시민의 삶을 살고자하는 한 목자님의 인생에 개입하셨습니다. 사도 훈련을 받고 군대 가서 안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 간염 판정을 받고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사명인으로 다시 돌아와서 진단을 받아봤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목자님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사 축구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직장 일도 힘있게 감당하여 가정을 꾸리기까지 그 인생을 회복해주셨습니다. 그는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이제는 죄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 여름 수양회 가운데 기이한 일을 많이 이루셨습니다. 한 2세 목동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말씀을 통해서 변화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올 한 해 세계 선교 보고 대회를 성대하게 치루게 하셨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한 해를 보냈지만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주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둘째, 포로 생활에서 자유주심을 감사(10-16) :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한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켜 행하면 삶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실수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고의로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하여 젊었을 때에는 여호와를 격노시켰습니다. 그들은 드러내어 놓고 그들의 창조주요 은인이신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영광을 우상에게 돌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징계하시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수고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과도하여 기진맥진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 자고하였기 때문에 낮추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어렵게 하셨습니다. 풍요로부터 결핍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건강을 잃고 병들고 연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자긍하는 심령들이 얼마나 겸손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을 하는 가운데 완악한 죄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인관 관계를 맺으면서 모난 부분들이 깎이게 됩니다. 사람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깨어지고 낮아진 마음으로 고통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우리가 근심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습니다.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끊어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 안에 있는 고질적이고 끈질긴 죄의 사슬을 고난 속에서 끊어버리십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희생적인 목자로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의 종 되었던 사람을 인생의 시련들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청년의 정욕이라는 쇠사슬에 매여 일생 죄만 짓던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셨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게임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생을 합니다. 그들은 게임을 하면서 인생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점차 그것이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학생들에게 은혜를 주시면 게임에서 벗어나서 장래를 알차게 준비하게 됩니다. 15,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셋째, 병에서 치료하심을 감사(17-22) : 17,18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더 신뢰합니다. 미련한 자는 안일하여 자기를 멸망시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의 죄로 인해서 곤란을 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련한 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문제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습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어려운 형편과 힘든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그러니 힘이 빠지고 절망스럽습니다. 삶의 의욕을 갖지 못합니다. 자연히 먹는 것도 귀찮아지고 씻는 것도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사망의 문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미련한 자에게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십니다. 그리고 위경에서 건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어두움을 밝히시고 지혜롭게 행하게 하십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하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도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인하여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감사할 때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아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넷째, 바다의 풍랑에서 구원하심에 감사(23-32) : 배를 바다에 띄우며 영업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봅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파도를 일으킵니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합니다. 그들은 광풍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기 박치고 저기 박칩니다. 배가 흔들리는 때 구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가 물결을 따라 올라갈 때는 하늘에 올라간 것 같고, 내려갈 때는 땅 밑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선원들의 영혼은 거의 죽어 녹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을 위로 높이 드셨다가 밑으로 내리 꽂으십니다. 그리고 전후좌우로 흔들어놓으십니다. 그러면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물속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광풍으로 훈련하실 때 그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소리쳤습니다. 오래 동안 직장이 없이 생활해야 할 때 이 세상에 빠져 죽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계속해서 터질 때도 그러합니다. 믿음으로 사는데 고난만이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내 청춘은 어떻게 되는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양들이 다 떠나가고 세상에서 실패할 때에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 광풍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IMF의 광풍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서 안보에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새판 짜기로 인해서 안정되지 못합니다. 경제는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런 광풍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8-30절을 보십시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광풍을 잔잔케 하십니다. 그리고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광풍을 잠잠케 하심으로 그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광풍이 그대로 있지만 우리 마음에 평온함을 주셔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죤 웨슬레가 1735년 10월 18일 미국을 향하여 그레이브샌드 항구를 출발 하였습니다. 시몬즈 호가 넓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앗, 태풍이닷!!” “쏴-- 꽈르릉 꽈당,꽝” 캄캄한 밤, 순식간에 배는 하늘이 뚫린 듯한 소낙비와 무서운 파도 속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거센 파도소리를 뚫고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젠 상어 밥이 되는 구나.” 웨슬레도 어느새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은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찬송을 듣는 웨슬레는 너무나 놀랐고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안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웨슬리는 자신이 삶속에서 주님의 구원을 믿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4개월 만에 마침내 미국 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광풍을 만날 때 가던 길을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갈 수도 없습니다. 이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이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때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파도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위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임합니다.

  올 해 강원도에서 엄청난 홍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밀어닥친 홍수로 인하여 전후좌우 고립되어 탄식하며 부르짖는 사람의 귀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헬리콥터가 머리 위로 날아와서 구명 밧줄과 탈 것을 내리웁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그를 끌어올려 따듯한 쉼터가 있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다 놓습니다.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광풍 가운데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한 현실은 너무나 강한 광풍이 몰아닥쳤습니다. 형들에게 시기를 받아서 깊은 우물 속에 던져졌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 짐짝처럼 끌려갑니다. 애굽에서는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을 뿌리쳤는데 지저분한 누명을 뒤집어씁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흉악한 죄인들을 섬깁니다. 그의 인생은 광풍 속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 평온한 중에 소원의 항구인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광풍이 우리의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소원의 항구에 빨리 이르도록 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 광풍으로 인해서 우리는 비전을 감당할 만한 내면성이 있는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풍랑을 만나도 우리는 난파하지 않고 소원의 항구로 건너갑니다. 환란에는 다 뜻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을 심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속에서 부르짖어야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강풍 속에서 바이킹을 타는 듯이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소원의 항구는 각자가 간절하게 바라는 기도 제목입니다. 무엇보다 소원의 항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남은 40일 동안 새벽을 깨워 특별히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연초에 기도제목을 잡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지금 내가 당하는 광풍이 무엇입니까? 물질 문제입니까? 자녀문제입니까? 양 문제입니까? 장래 문제입니까? 건강 문제입니까? 결혼 문제입니까? 내가 진정 바라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합심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평온한 중에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광풍 속에서 평안함을 맛보고 소원의 항구에 다다르게 된 사람들은 찬양해야 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백성들의 모임에서 간증하여 여호와를 높이고 또 백성의 대표이며 지도자들인 장로들에게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나누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믿음의 용기를 줍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찾아서 온전한 감사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영원한 사랑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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