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요한복음 06jn26(16:1-3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204회 작성일 06-10-29 06:01

본문

2006년 요한복음 제 26 강                                                               
말씀 요한복음 16:1-33
요절 요한복음 16:13a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령의 역사는 은사와 관련을 시켜서 생각을 합니다. 즉 방언이나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는 것 등을 생각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역사가 무엇인가 잘 배울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 역사를 섬겨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5장 후반부에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이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을 때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밋빛 약속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정반대로 현실적으로 당할 고난과 핍박을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제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전도하고자 할 때 학생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배척하고 피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 위축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몰라서 영원히 지옥 불 속에 떨어질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이번 캠퍼스 바이블 까페에 그들을 초청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자 제자들은 엄마 없는 아이들의 심정이 되어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울상 짓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한계가 있지만 보혜사 성령께서는 각자 각자에게 늘 언제나 늘 가까이 어디서나 함께 하시며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끔 수제자들과만 같이 계실 때 아마 나머지 제자들은 우거지상을 하고 예수님이 그들만 편애하시는 것이 아니냐며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제자들과 다 인격적으로 함께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을 의지하는 신앙이 자립신앙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계시고 또 내 곁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자립 신앙을 가진 성숙한 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사람을 자꾸 의존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안 도와 주면  불평과 원망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매이게 되고 인간 중심이 됩니다. 또 사람은 아무리 잘 도와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므로 영적인 능력을 덧입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도 동역을 잘 하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한다는 뜻은 ‘확인시키다’, ‘유죄를 입증하다.’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죄의 개념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들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누구나 다 죄인 줄 압니다. 불교신자들도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 각성을 하고 보통 사람들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는 반성하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죄, 영적인 죄는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구주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사람이 멸망하는 것은 그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죄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로마서 1:21-23절은 죄의 뿌리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요즈음 사람들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돈을 전능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성령께서는 죄 중의 죄, 죄의 뿌리를 다루십니다. 성령께서는 그 놀라우신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지은 죄를 계속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3).”라고 외치게 됩니다. 성령의 책망하심으로 말미암아 눈으로 범한 죄와 입술로 범한 죄, 하나님에 대한 죄, 타인을 향한 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한 죄와 하여야 할 것을 행하지 않은 죄, 무지로 범한 죄와 고의로 행한 죄가 다 생각나게 되고 죄인으로서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야기 하고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했습니다(행2:36).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때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했을 때 그의 메시지를 듣고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내가 죄인이며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둘째, 성령께서 오시면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무엇이 의인가를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는 너무나 추하고 깊고 크고 끈질겨서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모두 원치 않게 지옥행 고속열차표를 따 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적인 사형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벌을 대신 받아 주시고 ‘너는 죄없다.’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의, 믿음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평생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고 고통하게 했던 영적인 죄수의 꼬리표를 떼고 이제 무죄 석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1:17절은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배척하고 영접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일생 의를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말을 믿지 못해서 수많은 크리스챤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바울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참된 의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만이 참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이 세상 임금인 마귀가 심판 받았음을 확증해 줍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사단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폐위된 임금입니다. 사단이 지금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머리통이 깨지고 꼬리만 꿈틀거릴 뿐입니다. 사람들은 사단이 심는 불신과 인간적인 생각을 뿌리치지 못하고 세상 풍조를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았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계시록 20:10절에 보면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패배를 당하여서 무저갱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황제들이 그렇게 득세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자 그들은 다 사라지고 마침내 로마제국은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반 기독교적인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일본천황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세상임금들과 악한 세력을 통해서 복음진리를 방해하고자 발악을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단의 정체를 폭로시키시고 그들을 책망하시고 무너뜨리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 (Madalyn Murray O'Hair)라는 여자는 1962년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소송을 걸어서 승소를 했습니다. 미국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는데 왜 특정종교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가? 이것이 그녀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더 이상 교실에서 공식적으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 미국의 지폐에서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성경적인 글귀도 삭제하고자 끊임없이 투쟁하였습니다. 그녀는 지난 30년 동안 반 기독교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그녀의 이면에 사단이 역사하여 조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머레이(William Murray)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는 나의 삶(My life without God)』라는 신앙 간증집을 출간하였는데, 자신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어머니 밑에서 얼마나 어둡고 불안하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는가 폭로했습니다. 더구나 그 어머니가 1999년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미국 공립학교에서 다시 기도를 하고 교실 벽에 십계명을 붙여놓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사단은 한 여인을 통해서 지난 30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믿음의 뿌리를 흔들고자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오히려 그 아들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사단의 역사를 심판하시고 복음진리가 승리케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잠시 우리가 패배를 당하는 것 같으나 성령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참으로 신비롭고도 오묘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성령께서는 친히 앞서가시며 이루십니다.

  성령께서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영으로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어두움의 세력에 정복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비록 거듭나서 ‘육에 따라’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육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정욕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꿈틀거립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갈5:17).”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단의 세력들을 파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순종하고 의지하여 영적인 싸움에서 승승장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넷째,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직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 제자들이 다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고 했는데, 제자들은 우리처럼 보통 사람들이라 하나를 가르쳐 주면 반 밖에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 말씀과 이적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하시면서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수많은 비유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에 마음에 빛을 비추시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에게는 계시로, 기록된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조명하심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것을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 예수님 시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이 진리임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진리임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성령께서는 그가 의로운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처형시켰던 백부장도 그의 운명하심을 보고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겸손하셔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는 곳이나 사람에게서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투광조명의 원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대문에 있는 투광조명은 어디에서 비취는지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밤에도 남대문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비추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예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감동과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17절에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한 말씀만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죄악된 삶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우리는 일대일 공부를 할 때나 메시지를 들을 때나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장래일이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미래의 비전을 가리킵니다. 사단은 항상 과거지향적인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과거의 상처, 과거의 실패, 과거의 실수 이런 것들만 생각나게 하고 거기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결국 미움과 피해의식과 열등감, 운명주의의 사슬에 꽁꽁 묶어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런 어두운 과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부 미래지향적이요, 희망적인 장래 일들을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게 하십니다(히12:1).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며 개척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빌3:14). 성령께서는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현명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요즘 좋은 승용차에는 대부분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원리는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보내서 자신이 가고자하는 위치로 정확하게 인도해 주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내가 어떤 길로 가야 가장 좋은 코스인지, 어디가 생명의 길인지, 어디가 복된 길인지 가장 잘 아시고 친히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욕심과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이상에서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사단이 심판을 받았음을 확신하게 하심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의와 거짓이 난무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 힘으로 선하게 산다, 진리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은 악하고 음란하고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의지할 때 우리는 어느 상황에서나 진리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가운데 사랑의 열매, 의의 열매가 가득 하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68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