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07년 마가 제 7 강(4:1-20) 말씀을 듣고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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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가복음 제 7 강
말씀 마가복음 4:1-20
요절 마가복음 4:20
말씀을 듣고 받아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그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으로 듣고 받아 일생 동안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사함을 주고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로서 추수의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도 있어서 실망이 되지만 제대로 심기면 삼십 배, 육십 배, 일백 배의 결실을 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결실할 소망으로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열매를 맺어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 가르치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들어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떠밀려 바다에 빠질 지경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었습니다. 바닷바람을 타고 낭랑한 예수님의 말씀이 육지에 있는 큰 무리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천재이십니다.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주제를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습니다. 비유 속에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이 같이 체험하고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중성이 있습니다. 비유는 또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맞는 비유를 개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중에 “들으라!”고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아마 말씀을 듣던 사람들 중에 하품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지 산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청력이 좋다고 다 듣는 것도 아닙니다.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들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들립니다. 듣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네 가지 밭에 대해서 살펴보고 나는 어떻게 해야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길가 밭. 15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 가에 뿌려진 씨들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새들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듣자마자 사탄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말씀을 뿌리는 것과 말씀을 받는 것은 영적인 전쟁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습니다(12).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죄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낚아채갑니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어내듯이 사탄은 우리가 먹어야 할 말씀을 먹고 교묘하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지 아니하면 사탄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듣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어떻게 말을 잘하는가 보자 하는 자세로 듣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위치에 둠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된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훌륭한 분이 와서 말씀을 전해도 다 튕겨버립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매우 강합니다. 고정 관념, 편견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생각하다가 말씀도 빼앗기고 결국은 자신이 사탄의 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바쁜 시대에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단순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매우 바쁜 두 분의 학사님들이 새벽 두시까지 말씀을 공부하는 것을 볼 때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그들의 자세가 많은 직장인들에게 본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께서 마음을 밝혀 주시고 또 사단의 방해로부터 마음을 지켜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먹어야 합니다.
둘째, 돌밭. 16,17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과 같은 사람은 말씀을 받을 때에 즉시 반응이 나타납니다. 듣는 사람이 아멘, 아멘 하면서 받으면 전하는 사람도 신이 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집니다. 사실 환난과 핍박은 6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해에 해당이 됩니다. 식물의 성장에 태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녹색식물의 엽록체에서 이산화탄소, 물, 빛에너지가 작용하여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것을 광합성이라고 합니다. 녹색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을 그대로 또는 이당류의 설탕, 엿당으로 저장하고 대부분은 다당류의 녹말로 바꾸어 저장합니다. 이렇게 저장된 녹말 덩어리들이 바로 쌀, 밀,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이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녹색식물이 만들어놓은 탄수화물을 섭취하여 살아갑니다. 녹색 식물이 태양열을 받아서 광합성작용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뿌리에서 물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이 타버리는 것입니다. 식물에서 뿌리는 줄기를 지탱하고 물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뿌리는 땅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뿌리가 없다는 말은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깊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뿌리가 없다는 것은 영적 가치관이 서 있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영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사탄이 좋아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역사에 잘 휘말립니다. 또 신앙이 연륜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뿌리가 자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너무 일찍 일꾼으로 세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많이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재미로 살다가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메마르기 쉽습니다. 사람의 인정이나 인기라는 것은 진정한 힘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맺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지면 말씀이 잘 들리고 믿음이 깊어집니다. 그러면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깊이 박힌 사람들에게 환란과 박해는 더욱 더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고난은 해와 같아서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고 자라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분들 중에는 축복의 때보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환란과 핍박은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없으면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뿌리를 내리려면 돌을 파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돌과 같은 완악한 마음, 굳어버린 상처 등을 들어내야 합니다. 밭에 있는 돌들을 골라내는 일은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내면에 있는 돌들은 소감을 쓰고 회개하는 가운데 드러낼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기초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감성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기보다 보고 느끼는 일에 더욱 친숙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도 자막으로 내주고, 연예인들이 나와서 낄낄거리며 노는 프로그램 같은 데서는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까지도 자막을 넣어 따로 설명해 주기까지 합니다. 귀 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고 마음 써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편히 앉아 있으면 되고, 조금 졸아도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차 생각하는 힘이 떨어져서 모두들 감각적이고 감정적이 되어가고, 세상에는 계속해서 충동적이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결단하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성경을 잘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또한 뿌리가 없는 이유는 뿌리를 내리기 싫어하기 마음, 헌신하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해 줄 것 같은 교회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결단을 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뿌리를 박고 헌신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위로 자라는 만큼 뿌리의 깊이도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가 위로 자라려면 먼저 속으로 자라야 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적인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반드시 보이지 않는 뿌리가 깊고 내면세계가 풍성합니다.
셋째, 가시떨기 밭. 18,19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떨기 밭에 떨어진 씨는 씨와 함께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가시란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을 가리킵니다. 세상 염려란 것은 가만히 있어도 들어옵니다. 그런데 95%가 쓸데없는 염려라고 합니다. 염려란 마음을 갈라놓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때에 가시떨기로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쭉정이가 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 것인가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학생들은 시험 성적이 잘 나올까 염려하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일학년부터 취직 걱정을 하고 조금 더 지나면 결혼 걱정을 합니다. 학사들은 자녀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이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존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합니다. 건강에 대해서 염려하고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고 양들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물질주의 시대인 오늘날은 염려가 대개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말씀의 기운을 가로막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을 잘 해보고 싶은 욕심, 과도한 지식욕, 먹는 것에 대한 탐식, 시간만 나면 누워버리는 수면욕, 무조건 모아놓고자 하는 소유욕 등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말씀의 기운이 막히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연애 감정이라는 잡초가 말씀이 자랄 수 있는 기운을 결정적으로 막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육신이 있고 또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우리 마음에서는 잡초들이 끊임없이 자라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자라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할 것들을 기도제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또 육신의 소욕과 욕심을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인 투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잡초를 뽑아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의 씨가 자라서 염려를 극복할 힘이 생기고 문제들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해야겠습니다.
넷째, 좋은 땅 :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에 씨가 떨어지면 잘 자라 무성해지고 결실하게 되는데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추수를 하게 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나 메시지를 들을 때나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아멘으로,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과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그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비유가 아니었으므로 대강의 뜻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뜻이 과연 바른 것인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또 자기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더 깊은 뜻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에게 물어서라도, 더 확실하고 더 깊은 뜻을 알고자 하는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삶의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곧 말씀을 받아들인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말씀을 공부하고 또 깨닫지만, 과연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말씀은 몇 마디나 됩니까? 우리 센터의 올 해 연요절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요한계시록 2: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소감을 깊이 쓰는 가운데 주일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진리의 말씀을 체험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죄사함의 열매를 맺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믿지 못하던 그들이 말씀을 공부하고 믿음의 열매를 삼십 배나 맺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감사의 열매를 육십 배나 맺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욕심의 죄를 사함 받고 사랑의 열매를 백배나 맺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크다고 주장하며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섬김의 열매를 백배나 맺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맺은 동역의 열매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언제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먼저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에 힘을 썼습니다. 그때 그들은 수많은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그럴수록 말씀과 기도에 더욱 힘을 써서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서로 교제하며 기도와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정말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자였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노래합니다. 그가 그처럼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받아 열심히 묵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수보다 뛰어난 지혜를 때마다 주셨습니다. 뛰어난 지략을 주셔서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가 말씀을 힘써 묵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그에게 부어 주사 백성들을 사랑하고 잘 돌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시편 1편의 고백처럼 철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좋은 마음 밭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했습니다(행17:11).
요즘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곳을 열심히 가꾸고 꾸밉니다. 외모를 치장하는데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정말 힘써 가꾸어야 할 곳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을 잘 가꾸어서 해가 갈수록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올해 복음 역사를 위해서 3월부터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100명 정도 일대일 양들을 얻었습니다. 이번 주 수, 목요일에 있는 바이블 아카데미에 간절한 마음으로 양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씨를 더 깊이 심어야겠습니다. 이번 바이블 아카데미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말씀을 잘 듣고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마가복음 4:1-20
요절 마가복음 4:20
말씀을 듣고 받아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그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으로 듣고 받아 일생 동안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사함을 주고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로서 추수의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도 있어서 실망이 되지만 제대로 심기면 삼십 배, 육십 배, 일백 배의 결실을 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결실할 소망으로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열매를 맺어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 가르치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들어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떠밀려 바다에 빠질 지경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었습니다. 바닷바람을 타고 낭랑한 예수님의 말씀이 육지에 있는 큰 무리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천재이십니다.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주제를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습니다. 비유 속에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이 같이 체험하고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중성이 있습니다. 비유는 또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맞는 비유를 개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중에 “들으라!”고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아마 말씀을 듣던 사람들 중에 하품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지 산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청력이 좋다고 다 듣는 것도 아닙니다.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들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들립니다. 듣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네 가지 밭에 대해서 살펴보고 나는 어떻게 해야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길가 밭. 15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 가에 뿌려진 씨들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새들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듣자마자 사탄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말씀을 뿌리는 것과 말씀을 받는 것은 영적인 전쟁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습니다(12).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죄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낚아채갑니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어내듯이 사탄은 우리가 먹어야 할 말씀을 먹고 교묘하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지 아니하면 사탄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듣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어떻게 말을 잘하는가 보자 하는 자세로 듣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위치에 둠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된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훌륭한 분이 와서 말씀을 전해도 다 튕겨버립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매우 강합니다. 고정 관념, 편견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생각하다가 말씀도 빼앗기고 결국은 자신이 사탄의 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바쁜 시대에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단순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매우 바쁜 두 분의 학사님들이 새벽 두시까지 말씀을 공부하는 것을 볼 때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그들의 자세가 많은 직장인들에게 본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께서 마음을 밝혀 주시고 또 사단의 방해로부터 마음을 지켜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먹어야 합니다.
둘째, 돌밭. 16,17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과 같은 사람은 말씀을 받을 때에 즉시 반응이 나타납니다. 듣는 사람이 아멘, 아멘 하면서 받으면 전하는 사람도 신이 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집니다. 사실 환난과 핍박은 6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해에 해당이 됩니다. 식물의 성장에 태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녹색식물의 엽록체에서 이산화탄소, 물, 빛에너지가 작용하여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것을 광합성이라고 합니다. 녹색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을 그대로 또는 이당류의 설탕, 엿당으로 저장하고 대부분은 다당류의 녹말로 바꾸어 저장합니다. 이렇게 저장된 녹말 덩어리들이 바로 쌀, 밀,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이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녹색식물이 만들어놓은 탄수화물을 섭취하여 살아갑니다. 녹색 식물이 태양열을 받아서 광합성작용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뿌리에서 물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이 타버리는 것입니다. 식물에서 뿌리는 줄기를 지탱하고 물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뿌리는 땅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뿌리가 없다는 말은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깊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뿌리가 없다는 것은 영적 가치관이 서 있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영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사탄이 좋아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역사에 잘 휘말립니다. 또 신앙이 연륜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뿌리가 자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너무 일찍 일꾼으로 세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많이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재미로 살다가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메마르기 쉽습니다. 사람의 인정이나 인기라는 것은 진정한 힘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맺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지면 말씀이 잘 들리고 믿음이 깊어집니다. 그러면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깊이 박힌 사람들에게 환란과 박해는 더욱 더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고난은 해와 같아서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고 자라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분들 중에는 축복의 때보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환란과 핍박은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없으면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뿌리를 내리려면 돌을 파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돌과 같은 완악한 마음, 굳어버린 상처 등을 들어내야 합니다. 밭에 있는 돌들을 골라내는 일은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내면에 있는 돌들은 소감을 쓰고 회개하는 가운데 드러낼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기초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감성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기보다 보고 느끼는 일에 더욱 친숙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도 자막으로 내주고, 연예인들이 나와서 낄낄거리며 노는 프로그램 같은 데서는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까지도 자막을 넣어 따로 설명해 주기까지 합니다. 귀 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고 마음 써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편히 앉아 있으면 되고, 조금 졸아도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차 생각하는 힘이 떨어져서 모두들 감각적이고 감정적이 되어가고, 세상에는 계속해서 충동적이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결단하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성경을 잘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또한 뿌리가 없는 이유는 뿌리를 내리기 싫어하기 마음, 헌신하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해 줄 것 같은 교회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결단을 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뿌리를 박고 헌신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위로 자라는 만큼 뿌리의 깊이도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가 위로 자라려면 먼저 속으로 자라야 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적인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반드시 보이지 않는 뿌리가 깊고 내면세계가 풍성합니다.
셋째, 가시떨기 밭. 18,19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떨기 밭에 떨어진 씨는 씨와 함께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가시란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을 가리킵니다. 세상 염려란 것은 가만히 있어도 들어옵니다. 그런데 95%가 쓸데없는 염려라고 합니다. 염려란 마음을 갈라놓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때에 가시떨기로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쭉정이가 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 것인가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학생들은 시험 성적이 잘 나올까 염려하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일학년부터 취직 걱정을 하고 조금 더 지나면 결혼 걱정을 합니다. 학사들은 자녀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이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존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합니다. 건강에 대해서 염려하고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고 양들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물질주의 시대인 오늘날은 염려가 대개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말씀의 기운을 가로막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을 잘 해보고 싶은 욕심, 과도한 지식욕, 먹는 것에 대한 탐식, 시간만 나면 누워버리는 수면욕, 무조건 모아놓고자 하는 소유욕 등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말씀의 기운이 막히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연애 감정이라는 잡초가 말씀이 자랄 수 있는 기운을 결정적으로 막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육신이 있고 또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우리 마음에서는 잡초들이 끊임없이 자라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자라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할 것들을 기도제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또 육신의 소욕과 욕심을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인 투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잡초를 뽑아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의 씨가 자라서 염려를 극복할 힘이 생기고 문제들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해야겠습니다.
넷째, 좋은 땅 :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에 씨가 떨어지면 잘 자라 무성해지고 결실하게 되는데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추수를 하게 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나 메시지를 들을 때나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아멘으로,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과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그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비유가 아니었으므로 대강의 뜻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뜻이 과연 바른 것인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또 자기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더 깊은 뜻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에게 물어서라도, 더 확실하고 더 깊은 뜻을 알고자 하는 영적인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삶의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곧 말씀을 받아들인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말씀을 공부하고 또 깨닫지만, 과연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말씀은 몇 마디나 됩니까? 우리 센터의 올 해 연요절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요한계시록 2: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소감을 깊이 쓰는 가운데 주일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진리의 말씀을 체험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죄사함의 열매를 맺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믿지 못하던 그들이 말씀을 공부하고 믿음의 열매를 삼십 배나 맺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감사의 열매를 육십 배나 맺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욕심의 죄를 사함 받고 사랑의 열매를 백배나 맺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크다고 주장하며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섬김의 열매를 백배나 맺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맺은 동역의 열매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언제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먼저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에 힘을 썼습니다. 그때 그들은 수많은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그럴수록 말씀과 기도에 더욱 힘을 써서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서로 교제하며 기도와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정말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자였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노래합니다. 그가 그처럼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받아 열심히 묵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수보다 뛰어난 지혜를 때마다 주셨습니다. 뛰어난 지략을 주셔서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가 말씀을 힘써 묵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그에게 부어 주사 백성들을 사랑하고 잘 돌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시편 1편의 고백처럼 철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좋은 마음 밭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했습니다(행17:11).
요즘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곳을 열심히 가꾸고 꾸밉니다. 외모를 치장하는데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정말 힘써 가꾸어야 할 곳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을 잘 가꾸어서 해가 갈수록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올해 복음 역사를 위해서 3월부터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100명 정도 일대일 양들을 얻었습니다. 이번 주 수, 목요일에 있는 바이블 아카데미에 간절한 마음으로 양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씨를 더 깊이 심어야겠습니다. 이번 바이블 아카데미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말씀을 잘 듣고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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