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07년 마가 제 1 강(1:1-13) 복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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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봄 마가복음 제 1 강
말씀 마가복음 1:1-13
요절 마가복음 1:1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각 대학에는 전체의 1/4이 새 얼굴인 신입생들입니다. 07학번 새내기들이 있는 캠퍼스는 싱싱함이 느껴지고 막 잡은 고기들 마냥 활력이 넘칩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정문인 홍문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세계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마가복음의 문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신입생들과 같이 행동적인 복음서입니다. 많은 이야기보다는 예수님의 행동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복음의 시작 : 마가복음은 장엄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르케’ 즉 ‘시작’이라는 말이 첫머리에 대문자로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 시작은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을 말해 줍니다. 창세기 1:1절이 천지창조의 대 역사를 선포하는 말씀이라면, 마가복음 1:1절은 인류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복음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시간이 시작되었고 공간이 시작되었고 우주 만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복음의 시작을 선언하십니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쁜 소식보다는 좋은 소식을 원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기쁨이 넘치고 힘이 솟아납니다. 빚더미에 눌려 앉아 있는 사람에게 빚을 갚아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목자들이 성경 공부를 하겠다는 양을 만나게 되면 이것 또한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면 마가가 전하는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란 구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왕이십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 마가는 이미 예언된 그 기쁜 소식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어린 아이의 탄생은 생명이 자라나는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새로운 설계를 하고 새 봄 학기가 되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이러한 시작이 힘있게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 출발을 해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 거룩한 꿈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는 삶을 청산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 사명을 찾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이제 까지는 율법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죄인에 대해서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격리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값없이 구원을 받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은 은혜는 값없이 죄인들을 의롭게 합니다. 죄로 지배당하는 삶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어두움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두움과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복음이 임함으로 빛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은 입학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속은 더럽습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사람은 더러워집니다.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어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겨 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거룩한 삶, 깨끗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움을 이기고 사랑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외적 변화라기보다는 내적 변화요 변혁입니다.
2.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2-11):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어느 나라를 방문하기에 앞서 대통령 비서 실장이나 외교관들이 준비 작업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선구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2,3).”고 예언했습니다.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그들의 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요한은 성공하는 삶, 긍정적인 사고방식, 건강하게 사는 비결 등 듣기 좋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백성들의 실제적인 죄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좋은 말만 해 주고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일시적으로 사이가 안 좋을지라도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 시대에 와서 말씀을 전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했겠습니까? 사람의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의 뿌리에는 신앙적인 죄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죄란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잘 못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이익과 재미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거나 가진 자들을 무조건 미워하고 자기 보다 못한 자들은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신앙적인 죄입니다. 모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악의 뿌리에는 이러한 신앙적인 죄, 하나님에 대한 바르지 못한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바르지 못함으로 생기는 죄를 깨닫고, 슬프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 마음에 복음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쉽지 않습니다. 먼저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습니다. 또 회개하고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죄를 버리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변화가 두려운 것입니다. 또 회개한다고 해서 과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자기 발견이 있어야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회개는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한 회개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로서 죄사함을 받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는 근본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서 더러운 죄악을 태워 버립니다. 성령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여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또 우리 마음을 바꾸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고자 하는 소원과 그 소원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다시 태어난 것 같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시원함과 자유함과 이상한 힘이 솟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죄사함의 확신과 새로운 삶을 살 힘을 얻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다 도망갔습니까? 아닙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죄 사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물질적인 풍요와 각종 오락 사업으로 인해 즐거운 것 같지만 사람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죄로 인해서 상처를 주고받고 괴로워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죄를 즐기고 싶은 죄의 소욕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죄를 제어하고 죄로부터 벗어나 떳떳하고 자유롭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죄에 대해 변명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서로 남을 탓하며 변명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 죄를 짓고 그녀가 목욕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 아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만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를 지닌 그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죄를 깨닫기만 해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마음에 자유를 누립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비전이 넘칩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는 호의호식하며 살지 않고 광야에서 검소하게 살며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삶은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만큼 인기가 치솟았습니다(눅3:15). 이렇게 인기가 올라가면 무엇이나 된 양 교만해져서 못쓰게 되기 쉽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때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돌렸습니다. 자기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천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증거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며 그 뒤에 오실 분을 소개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유대의 요단강까지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9). 백성들은 죄인이기에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히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백성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세례는 연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 열차를 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 열차에 탔으면 죄의 짐을 내려놓고 그 차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내가 부산까지 내 힘으로 걸어서 가려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미국까지 헤엄쳐서 가고자 하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이 구원 열차가 되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비행기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오셨습니다. 하늘이 갈라진 것은 이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삼팔선 같은 철의 장벽이 쳐져 있었는데 이제 새롭고 산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이 바른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강림하신 것은 예수님이 행하실 일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 세례를 받고 평화와 기쁨과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 강림하심으로 능력과 지혜를 위로부터 덧입히셨습니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신입니다(사 11:1,2).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심으로 예수님은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습니다(행 10:38).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로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결단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들과 같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 동참하시는 사건으로서 장엄한 메시야 대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랑하시는 자로서 확증해 주시고 인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들고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기셨습니다.
3. 시험 받으신 예수님(12,13) :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원수 사탄과 맞서 싸우도록 외롭고 거친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져서 사단의 노예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반드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도 좋지만 먼저 먹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사명보다 먹는 문제에 두도록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사명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길을 가도록 유혹했습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천하를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심으로 사단의 모든 계략을 간파하시고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사단에게 시험받는 우리들을 깊이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히2:18).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실 때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사단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시고 광야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시고 시험에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사단의 시험에 대항하여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이 기쁜 소식을 힘써 이웃들과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마가복음 1:1-13
요절 마가복음 1:1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각 대학에는 전체의 1/4이 새 얼굴인 신입생들입니다. 07학번 새내기들이 있는 캠퍼스는 싱싱함이 느껴지고 막 잡은 고기들 마냥 활력이 넘칩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정문인 홍문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세계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마가복음의 문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신입생들과 같이 행동적인 복음서입니다. 많은 이야기보다는 예수님의 행동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복음의 시작 : 마가복음은 장엄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르케’ 즉 ‘시작’이라는 말이 첫머리에 대문자로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 시작은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을 말해 줍니다. 창세기 1:1절이 천지창조의 대 역사를 선포하는 말씀이라면, 마가복음 1:1절은 인류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복음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시간이 시작되었고 공간이 시작되었고 우주 만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복음의 시작을 선언하십니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쁜 소식보다는 좋은 소식을 원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기쁨이 넘치고 힘이 솟아납니다. 빚더미에 눌려 앉아 있는 사람에게 빚을 갚아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목자들이 성경 공부를 하겠다는 양을 만나게 되면 이것 또한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면 마가가 전하는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란 구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왕이십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 마가는 이미 예언된 그 기쁜 소식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어린 아이의 탄생은 생명이 자라나는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새로운 설계를 하고 새 봄 학기가 되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이러한 시작이 힘있게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 출발을 해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 거룩한 꿈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는 삶을 청산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 사명을 찾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이제 까지는 율법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죄인에 대해서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격리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값없이 구원을 받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은 은혜는 값없이 죄인들을 의롭게 합니다. 죄로 지배당하는 삶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어두움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두움과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복음이 임함으로 빛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은 입학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속은 더럽습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사람은 더러워집니다.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어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겨 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거룩한 삶, 깨끗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움을 이기고 사랑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외적 변화라기보다는 내적 변화요 변혁입니다.
2.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2-11):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어느 나라를 방문하기에 앞서 대통령 비서 실장이나 외교관들이 준비 작업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선구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2,3).”고 예언했습니다.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그들의 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요한은 성공하는 삶, 긍정적인 사고방식, 건강하게 사는 비결 등 듣기 좋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백성들의 실제적인 죄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좋은 말만 해 주고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일시적으로 사이가 안 좋을지라도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 시대에 와서 말씀을 전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했겠습니까? 사람의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의 뿌리에는 신앙적인 죄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죄란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잘 못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이익과 재미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거나 가진 자들을 무조건 미워하고 자기 보다 못한 자들은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신앙적인 죄입니다. 모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악의 뿌리에는 이러한 신앙적인 죄, 하나님에 대한 바르지 못한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바르지 못함으로 생기는 죄를 깨닫고, 슬프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 마음에 복음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쉽지 않습니다. 먼저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습니다. 또 회개하고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죄를 버리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변화가 두려운 것입니다. 또 회개한다고 해서 과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자기 발견이 있어야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회개는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한 회개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로서 죄사함을 받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는 근본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서 더러운 죄악을 태워 버립니다. 성령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여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또 우리 마음을 바꾸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고자 하는 소원과 그 소원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다시 태어난 것 같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시원함과 자유함과 이상한 힘이 솟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죄사함의 확신과 새로운 삶을 살 힘을 얻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다 도망갔습니까? 아닙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죄 사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물질적인 풍요와 각종 오락 사업으로 인해 즐거운 것 같지만 사람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죄로 인해서 상처를 주고받고 괴로워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죄를 즐기고 싶은 죄의 소욕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죄를 제어하고 죄로부터 벗어나 떳떳하고 자유롭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죄에 대해 변명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서로 남을 탓하며 변명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 죄를 짓고 그녀가 목욕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 아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만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를 지닌 그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죄를 깨닫기만 해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마음에 자유를 누립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비전이 넘칩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는 호의호식하며 살지 않고 광야에서 검소하게 살며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삶은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만큼 인기가 치솟았습니다(눅3:15). 이렇게 인기가 올라가면 무엇이나 된 양 교만해져서 못쓰게 되기 쉽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때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돌렸습니다. 자기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천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증거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며 그 뒤에 오실 분을 소개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유대의 요단강까지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9). 백성들은 죄인이기에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히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백성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세례는 연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 열차를 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 열차에 탔으면 죄의 짐을 내려놓고 그 차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내가 부산까지 내 힘으로 걸어서 가려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미국까지 헤엄쳐서 가고자 하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이 구원 열차가 되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비행기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오셨습니다. 하늘이 갈라진 것은 이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삼팔선 같은 철의 장벽이 쳐져 있었는데 이제 새롭고 산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이 바른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강림하신 것은 예수님이 행하실 일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 세례를 받고 평화와 기쁨과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 강림하심으로 능력과 지혜를 위로부터 덧입히셨습니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신입니다(사 11:1,2).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심으로 예수님은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습니다(행 10:38).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로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결단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들과 같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 동참하시는 사건으로서 장엄한 메시야 대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랑하시는 자로서 확증해 주시고 인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들고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기셨습니다.
3. 시험 받으신 예수님(12,13) :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원수 사탄과 맞서 싸우도록 외롭고 거친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져서 사단의 노예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반드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도 좋지만 먼저 먹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사명보다 먹는 문제에 두도록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사명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길을 가도록 유혹했습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천하를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심으로 사단의 모든 계략을 간파하시고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사단에게 시험받는 우리들을 깊이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히2:18).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실 때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사단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시고 광야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시고 시험에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사단의 시험에 대항하여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이 기쁜 소식을 힘써 이웃들과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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