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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07년 마가 제 10 강(5:21-43) 믿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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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177회 작성일 07-05-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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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봄 마가복음 제 10 강                                                             
말씀 마가복음 5:21-43
요절 마가복음 5:36

믿기만 하라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고 자라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기적도 체험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됨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시고 믿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과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믿음으로 나아온 이들을 축복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인생 문제들이 해결 받고 복음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일행은 데가볼리 지방에서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지만 사람들의 반대로 그곳을 다니며 전도를 하지 못하고 다시 바다 건너편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벌써 큰 무리가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간곡하게 구하였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23).” 회당장은 그 지역에서 신앙심이 깊고 덕망이 있는 사람 중에서 뽑았습니다. 회당장은 주로 예배 순서를 관리하고 재판도 하는 등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의 딸을 살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의 어린 딸은 열 두 살이었습니다. 야이로는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음악도 가르치고 성경과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었습니다. 딸에게 아름다운 옷을 사서 입히고 맛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먹이고자 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이런 소망 가운데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광풍이 부는 폭우 속에서 소풍을 다녀오다가 병이 생긴 딸이 열이 높아지더니 잘 낫지가 않았습니다. 약을 계속 써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딸 아이는 온 몸에 붉은 반점도 생기더니 병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딸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야이로는 심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밤을 새워 간호를 하고 용하다는 의사들을 다 동원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개 아이들이 병들면 어머니들이 나서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야이로는 아버지로서 자신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를 볼 때 그가 얼마나 자상한 아빠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어린 시절 아버지 문제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요즘 큰 교회들은 아버지 학교를 만들어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야이로는 우리의 좋은 본이 됩니다. 그는 딸의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체면이나 사회적인 지위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과는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런 태도는 더욱 놀랍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보다 딸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외동딸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좋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딸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에 감동을 받으신 예수님은 계속된 여행과 사역으로 피곤했지만 바로 그의 집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이때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부인병으로서 자궁근종으로 인해서 생기기도 하고 난소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기도 합니다. 혈루증은 혈액이 응고가 되지 않는 병입니다. 이병으로 인해서 여인은 빈혈에 시달리고 화장발도 먹지 않았습니다. 또 그녀는 부정한 자로 취급되어 사람들과 함께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병을 고쳐 보고자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의사들은 한 움큼 더 되는 약을 복용하도록 했고 때로는 대침을 수도 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의사를 바꿀 때마다 처음부터 진단을 받아야 하고 이약 저약 시험적으로 먹어보다가 그녀는 약만 보아도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고 아무 효험도 없이 더 중하여졌습니다. 그로 인해 한숨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산다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도 깨끗하게 하시고 중풍병자도 일어나 걷게 하시고 귀신도 쫓아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여인의 마음에 믿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믿음은 복음을 들음에서 옵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상상이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들을 때 옵니다. 이 여인은 말씀을 듣고 받아 열매를 맺은 좋은 밭과 같았습니다. 이 여인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 번 대기만 하면!(Just one touch!) 물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졌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만진 것이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은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는 안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여인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병을 가졌기 때문에 정식으로 나와서 도움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기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믿음으로 실천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를 살짝 대었을 때 120볼트의 전기가 흐르듯이 몸이 찌리릿하더니 혈루 근원이 곧 말라버렸습니다. 자신도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습니다. 천근만근 무겁던 몸이 깃털과 같이 가벼워졌습니다. 몸이 축 늘어졌었는데 이제는 생기가 넘치고 피부도 뽀송뽀송해졌습니다. 얼굴에 홍조가 돌면서 환하고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병이 낫게 된 것은 여인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역사에 민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부지런히 가시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시더니 뒤로 돌이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30). 예수님은 왜 자기 옷에 손을 댄 사람을 찾으셨을까요? 먼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믿음의 역사를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믿음을 갖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구원에 이르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 믿음으로 나오면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은혜가 많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는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서도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둘러보시며 자기를 찾는 것을 알아차린 여인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의 몸이 치료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깊은 경외심으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녀의 인생 소감 발표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십이 년 동안 당한 고생과 한숨,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나음을 받은 것까지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눈물로 발표한 인생 소감을 다 들으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라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여인의 치유는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을 부정하게 했다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또는 예수님의 능력을 허락없이 훔쳤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잘 해 놓고도 율법적인 생각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율법적인 생각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대하듯이 섬겨주셨습니다. 혈루증에서 나음을 받은 이 여인은 이제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 여인은 삶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피가 샘으로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는데 피가 샘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힘을 빼는, 생명을 쇠약하게 하는 오랜 내면의 고질병들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죄책감,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내면의 문제,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문제,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뼈를 썩게 하는 인간 갈등의 문제 등은 우리의 힘을 빼놓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들고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일서 1:7-9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사야 53:4,5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의 힘을 빼는 죄의 병이 아무리 오래되고 끈질기고 더럽고 추하다 해도 예수님의 피는 다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근원부터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 여인과 같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의 20년, 30년 된 영혼의 혈루증이 나음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때로 우리의 더러운 죄로 인해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고 남도 나를 부담스러워한다 해도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어떤 죄라도 용서해 주시고 ‘죄 없다’해 주십니다. 성령의 불로 모든 죄의 흔적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고후 5: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시간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건강할지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한편 여인의 말이 길어질수록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야이로였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딸을 위해서 일초라도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여인이 예수님을 너무 붙잡고 늘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불안해지고 두려웠습니다. 바로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급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들의 말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이가 죽었는데 계속 살려달라고 하면 예수님이 얼마나 곤란하겠느냐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생각해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얼마나 예수님을 무시하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병은 고쳐줄 수 있지만 죽은 자까지 살려낼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한계 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하는 말을 들으시고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헬라어 원문에서는 곁에서 들으시고 말씀이 “파라쿠오”로서 “거부하다”라는 뜻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Ignoring what they said, Jesus told the synagogue ruler, "Don't be afraid; just believe.”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말을 무시하시면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는 집에서 온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부활의 권능자이십니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사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리십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이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고,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구원했고, 혈루병 걸린 여인을 극적으로 치유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죽음이 주는 치명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죽음에는 쏘는 고통이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절망을 가져옵니다. 한편으로 그의 마음에 믿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떠올라 심란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에게 집으로 가서 딸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라, 계속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온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믿어도 소용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배반당한 것 같은 때에도 오직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불신은 어려운 상황을 크게 보는 것이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상황보다 예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믿기만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즉시 그 믿음을 빼앗아가고자 합니다. 악한 영들의 주업은 믿기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빼앗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믿음, 오직 믿음. 참된 믿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에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했는데, 기도했는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믿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기도를 그만하고 싶습니다. 내 믿음의 한계는 여가까지다 주장하며 마음으로 드러눕습니다. 이럴 때 박수치며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단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양들을 섬겼는데 양들이 떠나갈 때 믿음을 잃고 다시 새 양들을 섬길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더 큰 믿음, 더 순수한 믿음을 배울 때입니다. 처음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계속 제자 양성에 도전하여 믿음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셨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이 떠들고 울며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집 안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보는 야이로는 두려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에게 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죽음은 잠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잠을 자고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를 때 예수님의 말씀 앞에 비웃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다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달리다굼’ 이는 당시 어머니들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울 때 쓰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임하자 죽은 소녀가 살아나 곧 일어나서 걷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죄와 사단의 다스림 안에서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임할 때 살아나고 일어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변함없이 믿고 믿음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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